한국의 순자산 상위 5% 부자들은 가구주들이 높은 학력을 보유한 것은 물론 후대를 위한 교육에도 중산층 가구(상위 20~80% 가구)의 3배에 달하는 비용을 지출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매일경제신문이 통계청의 2021년 가계금융복지조사 마이크로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순자산 최상위 5% 가구의 가구주 가운데 석사 이상 학력을 보유한 비중이 24.8%에 달했다. 상위 5% 가구의 가구주 4명 중 1명꼴로 대학원에서 학위를 획득한 셈이다.
상위 5% 가구의 평균 순자산은 24억3737만원이었으며, 5% 경계선에 해당하는 가구의 순자산은 14억1318만원이었다. 전체 보유자산에서 부채를 뺀 순자산이 14억원을 넘는 가구라면 국내 상위 5% 부자인 셈이다. 이 같은 수치는 통계청 마이크로데이터에 나타나는 824가구의 수치를 바탕으로 산출한 것이다.
통계청은 매년 약 2만 가구를 대상으로 설문과 각종 행정데이터를 복합시켜 소득·자산·부채를 조사하는 가계금융복지조사를 실시하는데, 정부가 공식으로 발표하는 분위별 통계는 5분위별(전체 가구를 20%씩 분류) 수치까지다. 분위를 이보다 작게 쪼갤 경우 표본 숫자가 부족해 신뢰도를 보장할 수 없다는 이유로 통계청은 자세한 수치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표본가구 숫자가 워낙 방대한 덕분에 상위 5%에 해당하는 가구 숫자만 해도 824가구에 달하며, 이는 최상위 부자들의 소득·자산·부채 등을 엿볼 수 있는 자료 가운데 국내 최대 규모다.
비교 대상으로 삼은 중산층 가구는 순자산 규모 상위 20%에서 80% 사이에 있는 곳들을 기준으로 삼았다. 가계금융복지조사상 표본가구는 1만973가구에 달한다. 이들의 평균 순자산은 2억5900만원이었으며, 하위구간(상위 80%) 순자산 경곗값은 4810만원이고 상위구간(상위 20%) 순자산 경곗값은 6억1626만원이었다. 중산층으로 한군데에 묶기에는 이질적일 수 있지만, 최상위 5% 자산가 계층의 가구와 비교하는 용도로 일반 국민들의 생활상을 보여주기 위해 가능한 넓은 집단을 포함시켰다. 연간 집계가 필요한 소득·지출 관련 통계는 2020년 수치이며, 기타 통계는 2021년 3월 말 기준으로 집계했다.
▶대졸자 합치면 80% 육박
상위 5% 가구에서는 석·박사 가구주 비중이 25%에 육박했던 반면 중산층 가구에서는 그 비중이 4.5%로 급감했다. 상위 5% 가구주의 박사 이상 학력을 보유한 비중도 6.4%에 달했는데, 이는 중졸 이하 비중인 4.8%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3년제 이하를 포함한 대학 졸업자 비중은 상위 5% 가구에서 52.0%로 집계됐다. 석·박사 비중을 합치면 상위 5% 가구의 약 80%가량이 대학 졸업 이상의 학력을 보유한 셈이다. 중산층 가구의 대졸자 비중은 38.6%로 석·박사 이상을 합친 비중이 40% 남짓에 그쳤다.
지난 수년간 코로나19 사태로 대학원 졸업자 수가 많아지며 학력으로 인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더욱 심화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취업 시장 문이 닫히고 비대면 근로·수업 등이 늘어나며 자산가 계층에게는 대학원 학위를 취득하기에 유리한 여건이 마련됐지만, 경제 여건이 넉넉하지 못한 가구들 입장에서는 높은 학비가 부담돼 선뜻 대학원 진학을 선택할 수 없었던 탓이다.
교육통계서비스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수여받은 고학력자는 1만6139명으로 2000년 이후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2000년 당시 박사 학위 취득자가 연간 6141명이었던 것에 비해 3배가량 늘어난 수치다. 이는 전년도 8월과 당해 연도 2월 학위 취득자를 합한 수치다. 출산율 저하에 따른 학령인구 감소로 수년째 대학·전문대학 졸업자가 줄어들고 있는 것과 대비되는 추세다.
계열별로는 공학계열이 4518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그 뒤를 사회계열 3016명·자연계열 2745명·의약계열 2262명·인문계열 1582명 등이 뒤를 이었다. 주요 대학별로는 서울대가 지난해 가장 많은 1454명의 박사 인력을 배출했다. 이어 연세대 757명, 고려대 725명, KAIST 721명, 한양대 598명, 성균관대 565명 등이다. 학비가 비싼 서울시내 주요 대학을 위주로 박사인력이 배출된 점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이다.
▶연간 교육비가 전체 지출의 15%
자산가 가구의 학업에 대한 열정은 자연히 아랫세대를 위한 교육 지출까지 이어진다. 상위 5% 가구의 연간 교육비 지출액은 평균 775만2300원으로 전체 지출액의 15.5%에 달했다. 통계청이 조사하는 6개 항목(식료·주거·교육·의료·교통·통신) 가운데 식료품 구매를 위한 지출(1509만6600원·30.3%)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수치다. 이 외에는 주거비 지출이 505만8500원(10.1%)으로 세 번째로 큰 비중을 차지했으며, 교통(376만9400원·7.5%)·의료(310만5700원·6.2%)·통신(208만3600원) 등이 뒤를 이었다.
자산가 가구의 교육비 지출은 중산층 가구의 연간 교육비 지출액이 평균 263만600원에 그쳐 전체 지출액의 9.8%에 그쳤던 것과 명확히 대비됐다. 중산층 가구의 경우 6개 지출 항목 가운데 교육비 지출 비중의 순위도 3위로 밀려났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은 자산가 가구와 마찬가지로 연간 849만7500원(31.7%)을 지출한 식료품이었지만, 두 번째로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은 연간 299만9000원(11.2%)을 지출한 주거비였기 때문이다. 중산층 가구는 식료·주거·교육 지출에 이어서 교통비 지출액(260만7300원·9.7%)이 많았으며, 이어서 의료(186만2000원·6.9%)와 통신(173만5900원·6.5%) 순이었다.
자산가 가구와 중산층 가구의 지출액수를 직접 비교하면 교육에 대한 투자가 얼마나 차이 나는지 더욱 극명히 드러난다. 자산가 가구의 교육비 지출액(775만2300원)은 중산층 가구 교육비 지출액(263만600원)의 2.95배에 해당하는 수치다. 배율차이가 두 번째로 컸던 항목이 식료품 지출인데, 여기서도 자산가 가구의 지출액(1509만6600원)은 중산층 가구 지출액(849만7500원)의 1.8배 많은 수준에 그쳤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인근 학원가의 모습. 학력과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사교육비 지출이 많아 계층격차가 교육격차로 이어진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진 연합뉴스>
교육·식료 항목을 제외하고는 주거비 지출 배율 차가 1.69배로 가장 컸다. 자산가 가구들이 좋은 학군에 자녀를 진학시키기 위해 서울 강남과 목동 등에 거주하는 비중이 높은 것을 감안하면 주거비 지출 격차 역시 일정 부분 교육을 위한 지출 격차로 해석할 수 있다. 이어서 의료비 지출 격차가 1.67배로 주거비 격차와 비슷한 수준이었으며, 교통비 격차(1.45배)와 통신비 격차(1.2배)는 상대적으로 덜한 편이었다.
자산가 가구의 소비 행태를 엿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지표는 자동차 자산가액이다. 자동차 구매 지출은 기획재정부·통계청 등 국가 거시경제를 관리하는 정부부처들에서도 경기를 진단할 때 따로 살펴볼 정도로 국민들의 일상지출 중 큰 비중을 차지한다. 다만 가계금융복지조사상으로는 지출항목을 집계할 때 자동차 구입비용을 따로 조사하지는 않는데, 가구별 실물자산 보유현황을 통해 자동차 관련 지출을 간접적으로 확인해볼 수 있다.
감가상각이 반영된 자동차 자산액수를 비교하면 상위 5% 가구는 약 2506만850원, 중위 60% 가구는 약 1228만9900원으로 상류층 가구의 자산가액이 중산층 가구의 2배를 넘어섰다. 상류층 가구가 주로 구입하는 고가의 외국산 차량들의 감가상각 폭이 큰 것을 감안하면 실제 자동차 지출액 격차는 훨씬 더 벌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중산층이 주로 이용하는 차량들은 범용성이 좋아 중고차 시장에서 인기가 좋고, 그 덕분에 감가상각 폭이 상대적으로 덜하기 때문이다.
▶사교육 시장 격차 확대
지난 3월 교육부와 통계청이 함께 발표한 2021년도 사교육비 조사 결과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감지됐다. 이 조사에 따르면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가구 간 사교육비 격차는 5.1배로 교육 양극화 현상이 확인됐다. 지난해 월 소득 800만원 이상 가구는 월평균 59만3000원을 지출했다. 반면 200만원 미만 가구는 11만6000원을 지출하는 데 그쳤다.
사교육 참여율 격차는 39.4%포인트로 2020년 40.4%포인트에 비해서는 줄었지만 2019년 38.3%포인트보다는 커졌다. 특히 월평균 20만~70만원 미만을 지출한 학생의 비중은 2020년에 견줘 1%포인트대로 늘어난 반면 월평균 70만원 이상 지출한 학생의 비중이 3%포인트나 늘어났다. 사교육비 지출의 빈익빈 부익부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시행된 원격수업에 대한 불신이 쌓이며 사교육 시장이 대폭 커진 것도 교육 양극화가 확대됐을 것을 짐작게 한다. 지난해 사교육비 총액은 23조4000억원으로 2020년 19조4000억원과 2019년 21조원에 견줘 각각 21%, 11.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넘어선 것은 물론 기존 최대치였던 2009년 21조6000억원을 뛰어넘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코로나19 사태의 여파로 기존에 사교육비 의존도가 높은 영어·수학 등의 과목을 넘어서 국어와 사회·과학탐구 과목도 사교육을 듣기 시작한 학생들이 증가한 것이 특징이다. 전체 학생 기준 2021년 국어 과목의 월평균 지출액은 3만원, 사회·과학탐구 과목은 1만6000원으로 2019년에 견줘 각 31.5%, 26.1% 증가했다.
이는 영어(19.2%), 수학(17.1%)보다 높은 증가율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원격수업 질에 대한 의구심이 학부모와 학생의 학습결손·기초학력 저하에 대한 불안과 우려로 이어졌다”며 “국·영·수뿐만 아니라 일반 교과 전반에 대해 불안 심리가 많이 작용해 사교육 수요가 확대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