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의 예금금리와 대출금리 차(예대금리차)가 매월 공시되면서 은행들은 대출금리 인하 압박을 지속적으로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감독원의 ‘이자장사’ 경고 이후 금융당국의 은행들에 대한 공시 압박까지 가해지면서 금융소비자들은 금리 인상기에도 일부 금리 인하 효과를 받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지난 7월 발표한 ‘금리정보 공시제도 개선 방안’에 따라 신규 취급액 기준 예대금리차가 은행연합회 홈페이지에서 비교 공시된다. 지금까지는 기존에 분기별로 공시됐던 은행의 예대금리차가 8월부터 매월 비교 공시되는 것이다. 당국은 이처럼 은행들이 금융소비자를 향해 예대마진처럼 금융 정보에 대해 알 권리를 충족시키도록 의무화하면서 은행들이 대놓고 ‘이자장사’를 하지 못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러나 은행들은 대출계약서에 금리 산정 방식을 구체적으로 담는 것은 영업비밀을 공개하는 것이고, 이는 다른 산업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은행들 입장에선 과거처럼 손쉽게 이익을 거두기 어려워진 것이지만 금융소비자들은 이럴 때 적극적으로 대응할수록 매월 발생하는 원리금 상환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셈이다.
당국의 압박에 따라 은행들은 투덜대면서도 금리 상승을 일정 부분 제한하는 금리상한형 대출 상품을 내놓고 있다. 일부 시중은행은 성실하게 대출 상환에 임한 차주에 대해 금리를 깎아주고 원금까지도 감면해주고 있다. 이같은 금리상한형은 시중은행 기준으로 크게 세 가지로, 금리상한형 주담대와 대환 프로그램, 시중은행별 금리상한 상품들이다.
▶부활한 금리상한형 주담대
최근 기준금리 인상에 따라 시장 금리가 급등하자 작년까지 외면받았던 금리상한형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이 인기를 끌고 있다. 금리상한형 주담대는 일정 기간 금리 인상 폭이 제한되는 상품으로, 작년에 출시됐지만 제로금리(기준금리가 0%대)로 인해 굳이 가입할 필요가 없는 고금리 상품이었다. 그러나 올 들어 금리가 크게 상승하면서 상대적인 저금리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시중은행에 따르면 지난 7월 한 달 동안에만 금리상한형 주담대 가입은 197건, 438억원으로 집계됐다. 상품이 출시된 작년 7월부터 올 6월까지 1년간 49건, 84억원이었던 점을 고려할 때 가입 건수와 규모가 급증했다. 금리상한형 주담대는 기본적으로 변동금리지만 이자 상승 폭을 제한하도록 설계된 것으로 최근 쏟아져 나오는 금리상한형 상품의 원조 격이다. 출시 당시 적용 금리를 연간 0.75%포인트, 5년간 2%포인트 이내로만 올릴 수 있도록 했다.
대신 은행들은 이보다 금리가 더 오르면 손실을 떠안아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일반 변동금리 주담대보다 0.15~0.2%포인트가량 금리를 올렸다. 가입 후 1년 동안 금리가 0.9%포인트 이상 올라야 차주 입장에선 혜택을 볼 수 있다. 작년 제로금리 시절엔 이 정도로 금리가 오를 것으로 예측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올 들어 시장금리가 오르기도 했지만 상품의 기본 조건이 개선되면서 최근 부활하고 있다. 금융당국과 은행들은 올 들어 금리상한형 주담대 금리 상승 제한 폭을 연간 0.45~0.75%포인트로 내렸다. 이같은 상승 제한 폭은 은행별로 다르니 별도로 체크해봐야 한다.
국민·하나은행은 0.5%포인트, 신한·우리은행은 0.75%포인트다. 이 주담대 가입비용도 0~0.2%포인트로 낮췄다. 이 역시 은행별로 다르다. 금리상한형 주담대 가입 방법은 은행 영업점을 방문해 간단한 서류를 작성하고 특약을 신청하면 된다. 최근 주담대를 받았거나 새로 받으려는 금융소비자는 중도상환수수료, 가입비용 등을 따져봐야 한다. 중도상환수수료는 ‘중도상환금액×중도상환해약금률×(대출잔여일수÷대출기간)’로 계산한다. 중도상환해약금률은 주담대 변동금리의 경우 1.2%다.
기존 대출 고객이라면 직접 계산하지 않더라도 은행 뱅킹 앱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반면 대출받은 지 3년이 넘은 고객이라면 중도상환수수료가 없어 금리상한형 주담대에 가입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대환 프로그램 9월 말 접수
연 10%가 넘는 고금리 사업자대출을 최대 6.5%(보증료 포함)의 대출로 갈아탈 수 있는 대환 프로그램이 9월 말 나올 예정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제2금융권 등으로 밀려난 자영업자 소상공인이 이 프로그램의 대상이다. 모두 8조5000억원 규모의 대환이 실시된다. 연 7% 이상 고금리 사업자대출의 40%, 20만 명가량이 대환 프로그램을 이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위원회는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개인사업자 또는 법인 소상공인·소기업의 고금리 사업자대출을 최대 6.5%의 은행권 대출로 바꿀 수 있는 ‘대환 프로그램’을 도입한다고 최근 밝혔다. 연 7% 이상 고금리 금융권 대출을 대상으로 다음 달 말부터 대환 신청을 받을 계획이다.
이 같은 대환 프로그램이 나온 것은 지속적인 팬데믹 사태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부담이 커졌고 이들의 대출이 금융권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실제 은행권에 2금융으로 넘어가거나 여러 금융권에 돈을 빌린 다중채무자가 늘어나고 있다. 3개 기관 이상에 대출을 받은 개인사업자는 2019년 말 7만5000명에서 지난 6월 말 33만2000명으로 4.4배나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시내 한 은행에 대출 관련 광고 안내문이 설치돼 있다. <사진 연합뉴스>
금융당국은 연 7% 이상의 고금리 사업자대출은 22조원(49만 건) 규모로 이 중 약 40%가 대환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원 대상은 코로나 피해를 입었으나 정상적인 경영 활동 중인 개인사업자 또는 법인 소기업이다. 손실보전금 등 재난지원금 또는 손실보상금을 받았거나 지난 6월 말 이전 금융권 만기 연장·상환 유예 조치를 이용한 차주가 대상이다. 다만 휴·폐업, 세금 체납, 금융기관 연체 등 정상 경영이 어렵다면 대상에서 제외된다.
저금리로 바꿀 수 있는 채무는 지난 5월 말 이전에 취급된 연 7% 이상의 고금리 사업자대출이다. 은행과 저축은행, 여전사(카드사, 캐피털사), 상호금융, 보험사에서 취급한 대출로, 사업자등록번호를 통해 진행된 대출만 대환이 가능하다. 대환 한도는 개인이 5000만원, 법인은 1억원까지다. 5년 만기로 2년 거치 후 3년 분할상환이 가능하다.
보증료는 1%로 중도상환수수료는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금융권과 협의를 통해 결정된다. 금리는 보증료를 포함해 최대 6.5% 이내에서 결정된다. 기간별 상한 범위 내에서 차주의 신용도에 따라 결정된다.
1~2년 차는 최대 5.5% 이하의 고정금리에서 결정되고, 3~5년 차에는 은행채 1년물(AAA)에 2%포인트를 더한 값이 상한으로 적용된다. 이번 대환 프로그램은 비은행권에서 은행권으로 갈아타는 방식으로 주로 운영된다. 신용보증기금 보증을 취급 중인 5대 시중은행들과 함께 기업·수협·SC제일·부산·경남·대구·광주·전북·제주 등 모두 14개 은행이 참여를 확정했다.
▶시중은행별 금리상한 상품은
신한은행은 연 7% 초과 신용대출을 이용하는 고객 대상으로 1년간 최대 1.5%포인트 금리 인하를 8월부터 시행 중이다. 이번 금리 인하 지원 대상은 7월 말 기준 연 7% 초과 새희망홀씨대출 등 서민성 일반신용대출을 보유 중인 다중채무자(신한은행 포함 3개 이상 금융기관 대출 보유)다. 금리를 7%까지 최대 연 1.5%포인트 인하한다.
예를 들어 현재 서민성 신용대출을 이용하는 고객 금리를 연 9%로 가정하면 최대 연 1.5%포인트를 적용하고, 고객 금리를 연 8%로 가정하면 연 1%포인트를 적용한다. 이에 따라 최종 고객 금리는 각각 연 7.5%, 연 7%로 낮아지는 것이다.
신한은행은 이번 상생 프로그램 지원 대상 금액이 약 7500억원으로 약 7만2000여 명 고객이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앞서 신한은행은 지난 7월 초 5% 초과 주택담보대출 금리 인하 조치, 5년 기한 연장을 이용한 분할상환금 완화, 금리상한 주택담보대출 약정 시 가산금리 면제, 전세자금대출 2년 고정금리 인하 등 금리 상승기 상생 금융 조치를 이행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대출 원금 감면 금융지원 제도를 8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적용 대상은 신용등급 7등급 이하의 저신용 고위험 다중채무자다. 이들 중 그동안 대출 원리금을 성실히 갚아온 차주가 혜택을 볼 수 있다고 이 은행은 강조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 소상공인진흥시장공단 서울중부센터에서 직원이 대환대출 확인서 발급 안내문을 게시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기존 개인신용대출을 연장하거나 재약정 시, 약정금리가 6%를 넘을 경우 6% 초과 이자금액으로 대출 원금을 깎아주게 된다. 일반적인 채무 탕감 방식과 달리 성실 이자 납부자에 한해 고객이 낸 이자로 원금을 상환하는 방식이다. 차주 입장에서는 금리 6% 초과 구간에 대해 납부한 이자로 원금을 상환하면서 전체 상환 부담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앞서 우리은행은 지난 2019년 4월에도 취약차주 지원 차원에서 고객이 갚은 이자로 대출 원금을 상환하는 해당 제도를 시행한 바 있다. 국민은행은 저소득 근로자와 영세 사업자 등 제도권 금융소외계층 대상 서민금융지원 대출 상품의 신규 금리를 연 1%포인트 낮춘다.
대출 금리가 연 7%를 넘는 차주가 만기를 연장할 때 우대 금리를 제공하는 프로그램도 시행 중이다. 하나은행 역시 연 7% 초과 고금리 개인사업자 대출과 서민금융지원대출에 대해 각각 최대 1%포인트의 금리 감면을 실시하고 있다.
금융당국의 요청대로 은행들은 성실상환 신용차주에 대한 대출 원금 감면이나 고금리 차주에 대한 금리 인하를 적극 시행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최근 우리은행이 원금 감면형 상품까지 내놓자 다른 은행들도 원금 감면을 검토하면서 차주들의 부담이 낮아질 것이란 기대감도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