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파트 청약에서 잇달아 미계약이 나오고 있다. 만점에 가까운 당첨 가점도 뚝뚝 떨어져 30점대 아파트 당첨 사례도 나오고 있다. 최근 서울 아파트 시세 상승이 확연히 완만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이 같은 트렌드가 윤석열 정부 임기 기간에 꾸준히 이어질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상품성이 떨어지는 아파트 일부에서 미분양이 나온 것으로 시장 전반을 진단하기는 무리라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 주요 단지 신고가 랠리가 여전한 가운데 집값 하락을 전망하기는 시기상조라는 주장이다.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4월 서울 강북구 미아동에서 분양한 ‘한화 포레나 미아’ 최저 당첨 가점은 34점을 기록했다. 업계는 서울 내 브랜드 아파트 청약 가점이 30점대를 기록한 것이 상당히 이례적인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이촌동 일대 신동아 아파트 전경.
서울 아파트값이 보합세를 보이는 가운데 용산구의 경우 최근 신고가 거래가 늘어나고 있다.
▶높은 분양가 표면적인 이유
표면적인 이유는 분양가가 비싸서다. 이 단지는 분양가상한제 적용을 받지 않았다. 그래서 분양가를 주변 시세 수준으로 책정할 수 있었다. 이 단지 전용면적 84㎡ 분양가는 최고가 기준 11억5003만원에 달했다. 주변에 있는 아파트 단지보다 분양가가 오히려 비쌌다. 또 대출을 받을 수 없는 점도 낮은 가점의 원인이 됐다는 분석이다. 분양가가 9억원이 넘으면 중도금 대출을 원칙적으로 받을 수 없다.
이 단지는 328가구 모집에 2374명이 신청해 7.3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두 자릿수 청약 경쟁률을 보인 전용면적 59㎡A(23.7 대 1)와 39㎡A(12.6 대 1) 타입을 제외한 나머지 6개 주택형은 모두 한 자릿수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에 앞서 인근에서 분양한 강북구 미아동 ‘북서울자이폴라리스’ 역시 청약 성적이 기대를 밑돌았다. 이 역시 고분양가 논란이 한몫한 것으로 분석된다. 미아3구역을 재개발한 이 단지의 분양가는 전용 84㎡ 기준 9억4600만~10억400만원, 전용 112㎡ 12억6500만~13억4300만원이었다. 주변 시세와 비슷한 수준으로 평가된다. 시세 차익을 보기 쉽지 않겠다는 전망이 나오며 계약 포기자가 속출했다. 무순위 청약 단계까지 가서야 주인을 찾을 수 있었다.
국내 최고 분양가 신기록을 세웠던 단지도 예상대로 미계약 물량이 발생했다. 서울 송파구 잠실 더샵 루벤(송파 성지아파트 리모델링)이 그 대상이다. 이 단지는 국내 최초 ‘수직 증축’ 리모델링 아파트다. 4월 초 일반분양을 실시해 29가구 모집에 총 7310명이 청약 접수하면서 평균 252.1 대 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최고 경쟁률은 282.5 대 1로 전용 106㎡E에서 나왔다. 잠실 더샵 루벤의 3.3㎡당 분양가는 무려 6500만원에 달했다. 역대 분양 아파트 단지 중 단연 최고 금액 기록을 세웠다. 지난해 6월 분양한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원베일리’의 당시 평당 분양가 5272만9000원보다도 1200만원 이상 높았다. 분양가는 무려 25억7440만~26억4700만원에 달했다.
그런데도 ‘1순위 청약 마감’에 성공했다. 이 단지는 30가구 미만으로 분양돼 만 19세 이상이면 청약통장 없이 누구나 청약할 수 있다. 실거주 의무에서도 제외되는 등 각종 규제도 받지 않는다. 서울 강남권에서는 보기 드문 중대형 신축 단지라는 점도 눈길을 끈 요인이었다. 계약 후 분양권 전매도 할 수 있다. 일단 청약을 받아놓고 단기에 프리미엄을 받고 되팔려는 수요가 많이 몰렸을 것으로 업계는 추정한다. 하지만 당첨자·예비당첨자 계약 기간 내에 일반분양 물량인 29가구 모집에 실패했다. 투자 목적으로 청약신청을 넣었던 사람 다수가 계약을 진행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집값 하락세 전조’ 목소리
서울 곳곳에서 벌어지는 청약 현장에서 속속 미계약이 발생하자 이것이 서울 집값 하락세가 본격화하는 전조가 아니겠느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기원 데이터노우즈 대표는 “고분양가 논란 등 실수요자 입장에서 꺼려지는 대목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집값이 앞으로 크게 오른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으면 그래도 조기 완판되었을 것”이라며 “이제 부동산 시세가 꺾일 거란 예상이 확산되자 미계약분이 나오기 시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일부의 사례로 서울·수도권 시장 전체를 전망하기엔 시기상조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값은 4월 첫째 주 기준 11주 만에 하락세를 멈췄다. 이어 둘째 주에도 보합세를 유지했다. 전체 25개 구 가운데 11개 구가 상승 추세로 전환한 것은 의미가 있다.
강남구 아파트 매매가는 전주 대비 0.04% 올랐다. 강남 재건축 단지들의 호가가 크게 상승한 덕을 봤다. 직전 변동률(0.02%)의 두 배로 뛰었다. 반포동 위주로 신고가 거래가 나온 서초구는 0.02% 올랐다. 양천구는 목동신시가지 재건축 단지의 가격 상승으로 전주 보합(0%)에서 0.02%로 상승 전환한 것으로 나타났다.
양천구 아파트값이 오른 것은 지난 1월 셋째 주(0.01%) 이후 무려 12주 만에 벌어진 일이다. 강북권에서도 용산구 아파트값이 0.03% 상승했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따른 지역개발 기대감이 지속되면서 상승 폭이 2주 연속 확대된 것이다.
실제 서울 주요 지역 재건축 단지에서는 신고가 거래가 이어지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시스템에 따르면 압구정 신현대11차 아파트 전용면적 183.41㎡는 3월 17일 59억5000만원에 거래됐다. 이 평형은 2020년 12월 52억원에 거래된 바 있다. 기존 신고가보다 7억5000만원이 오른 것이다. 목동신시가지 9단지 전용 106.9㎡도 3월 29일 21억5000만원의 신고가로 계약서가 오갔다.
용산구 서빙고동 신동아아파트 전용면적 140㎡ 역시 3월 40억5000만원에 신고가를 찍었다. 지난해 7월 같은 평형이 33억원에 거래된 것과 비교해 7억5000만원 오른 것이다. 고준석 제이에듀투자자문 대표는 “입지가 좋은 서울 유수의 단지들에 쏠리는 관심은 여전하다”며 “올해 역시 서울 아파트 가격은 상승 마감할 공산이 크다”고 분석했다.
고분양가 논란이 없는 수도권 청약 단지는 여전한 인기를 과시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지난 인천 서구 검단신도시에서 4월 나온 3개 단지는 모두 높은 경쟁률로 1순위 마감했다. 제일풍경채 검단2차는 921가구(특별공급 제외) 모집에 총 2만7916명이 신청해 평균 30.31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검단역 금강펜테리움 더 시글로 2차는 169가구 모집에 2426명이 신청해 1순위 청약 마감했다.
힐스테이트 검단 웰카운티는 지난해 12월 이후 검단신도시 최다 청약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 단지는 575가구(특별공급 제외) 모집에 4만6070명이 신청해 평균 80.12 대 1을 기록했다. 전용 99㎡D 등 일부 주택형은 세 자릿수 경쟁률을 기록했다.
저렴한 분양가가 청약 흥행에 발판이 되었다는 분석이다. 세 단지는 모두 공공택지에 공급해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했다. 단지별 3.3㎡당 평균 분양가는 제일풍경채 검단2차가 1379만원, 힐스테이트 검단 웰카운티 1399만원, 검단역 금강펜테리움 더 시글로 2차 1391만원이었다. 전용 84㎡ 기준 분양가로 환산하면 4억5000만원 안팎이다. 검단신도시 일대 시세 대비 약 60% 수준으로 추산된다.
업계 관계자는 “수도권 아파트 시장 전체 열기가 싸늘하게 식을 것으로 모두가 예상한다면 아무리 주변 시세보다 싼 가격에 분양가가 책정돼도 많은 사람이 몰리지는 않을 것”이라며 “가격 민감도가 높아진 것일 뿐 내 집 마련에 대한 수요는 여전하다”고 말했다. 청약 실수요자의 옥석 가리기가 본격화하며 ‘묻지마 청약’이 사라졌지만 될 만한 단지에 대한 청약 열기는 여전하다는 뜻이다.
국내 최대 재건축 사업인 둔촌주공아파트 공사가 시공사업단과 조합 측의 극한 대립으로 지난 4월 15일 전면 중단되는 등 파행을 빚고 있다.
▶주요 아파트 분양 일정 속속 밀려
게다가 서울 주요 아파트 분양 일정이 속속 밀린 것이 수도권 집값 상승의 불쏘시개가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최근 동대문구 이문1구역, 이문3구역, 은평구 대조 1구역, 성북구 보문 2구역 등 단지는 잇달아 분양 시기를 뒤로 미루는 분위기다. 분양 물량이 쏟아지며 시장에 풀리면 시장 안정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분양 일정이 기약 없이 뒤로 밀리면 청약 대기 수요 일부가 매매로 돌아서며 집값 상승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다수의 예비청약자들이 목이 빠져라 기다리는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이 난항에 빠진 것도 악재다. 지난 4월 15일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공사는 착공 2년여 만에 올스톱됐다. 이날 둔촌주공 재건축 시공사업단(현대건설·HDC현대산업개발·대우건설·롯데건설)은 공사 현장의 모든 인력과 장비를 철수하고 출입을 통제했다. 유치권 행사 중이란 플래카드를 걸고 공사 재개를 무기한 보류했다.
업계에 따르면 둔촌주공 재건축 공정률은 현재 약 52% 수준이다. 절반 이상 시공이 진행됐다는 얘기다. 공사비 증액을 둘러싸고 둔촌주공 재건축조합과 시공사업단 간 이견의 폭이 넓다. 2016년 둔촌주공재건축 공사비는 2조7000억원 수준에 계약이 이뤄졌다. 이후 2020년 가구 수, 상가 건물 추가 등으로 약 3조2000억원으로 5300억원가량 증액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이 계약이 조합원들에 의해 해임된 전 조합장 명의로 체결됐다는 문제가 있었다. 현 조합은 이 계약이 조합장이 쫓겨나듯 물러나는 상황에서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맺었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계약은 무효라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 시공사업단은 제대로 된 절차를 거쳐 전임 집행부와 체결한 유효한 계약을 현 집행부가 무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서울시까지 중재에 나섰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공사 중단 사태까지 놓인 것이다.
둔촌주공재건축조합은 최악의 경우 시공계약을 해지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갈등이 격화하면서 사업비는 불어나고 있다. 시공사업단에 따르면 현재까지 들어간 기성 공사비만 1조7000억원에 달한다. 건설사 관계자는 “시공사업단은 돈 한 푼 받지 않고 무상으로 공사를 해왔다. 조합 측이 무리한 조건을 내걸고 있다”고 주장했다.
시공사업단에 따르면 공사비 1조7000억원에 조합에 사업비 7000억원 규모를 지급보증(신용공여)한 것과 금융비용 1500억원 등을 합치면 총 2조5000억원에 이르는 큰돈을 시공사업단이 투입했다고 주장한다. 반면 조합 측은 “어떤 경우에도 공사는 계속돼야 하지만 시공사업단이 공사 중단이라는 파행적인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양측의 갈등이 격화되면서 올해 상반기 예정됐던 4700여 가구 규모의 일반분양도 뒤로 미뤄질 게 확실하다는 점이다. 둔촌주공 재건축은 서울 강동구 둔촌동 둔촌주공아파트 5930가구를 철거하고 지상 최고 35층, 85개 동, 1만2032가구의 신축 아파트 ‘올림픽파크 포레온’을 짓는 사업이다.
업계 관계자는 “강남권 입지에 일반분양 가구 수가 워낙 많아 둔촌주공만 기다리고 청약통장을 아껴온 사람들이 매우 많다”며 “이대로 가면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이 제대로 될지 여부를 가늠할 수 없어 예비청약자 상당수는 둔촌주공을 가능성 있는 카드에서 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빠른 합의만이 양측이 모두 사는 길이지만 워낙 기 싸움이 거센 상황이라 협상 조기 타결이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시공사업단이 건설 중단을 결정하고 인력과 장비를 뺀 것이 이례적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