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대폭 인상 움직임 탓에 주요국 증시가 큰 폭으로 출렁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브라질과 인도네시아 같은 ‘자원부국’ 신흥국 투자 상품 수익률이 뛰고 있다.
투자자들은 우크라 전운 탓에 안전자산 격인 미국 달러화와 금 가격이 치솟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위험자산으로 간주되는 신흥국 관련 종목 시세가 뛴다는 점에 주목하는 모양새다. 신흥국 강세 배경으로는 에너지·곡물 시장에서 러시아 제재에 따른 반사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기대감과 더불어 그간 해당 국가들의 경제 건전성이 개선된 결과 ‘테이퍼탠트럼(긴축 발작)’ 위험이 줄었다는 점이 꼽힌다.
비료에 이어 밀, 옥수수, 콩의 시세가 오르기 시작하면서 시장의 눈은 농지 경영, 곡물 가공업체로 향한다.
▶올해 브라질 ETF 36% 뛰어 눈길
지난 4월 13일(현지시간) 기준 미국 뉴욕 증시에서는 브라질 주요 기업에 투자하는 ‘아이셰어스 MSCI 브라질’ 시세 연중 상승률이 36.11%를 기록했다. 미국 주요 기업에 투자하는 ‘SPDR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ETF’의 연중 변동률이 -8.36%인 점에 비하면 눈에 띄는 상승세다. 남미 브라질과 더불어 또 다른 신흥국으로 꼽히는 아시아의 인도네시아 투자 상품도 오름세가 비슷하다. ‘아이셰어스 MSCI 인도네시아’ 올해 1월 3일 이후 연중 상승률은 5.17%다.
브라질이나 인도네시아 등 신흥국에 투자하는 상품이 상승세를 탄 것은 크게 세 가지 배경을 찾을 수 있다. 첫째는 에너지·광물·곡물 등 보유 자원이 풍부한 신흥국의 경우 러시아 제재에 따른 반사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외환 보유고가 확충됐고 경상수지 적자 폭이 줄어들면서 신흥국 경제의 대외 건전성이 높아졌다는 점, 셋째는 증시 측면에서도 신흥국이 선진국 대비 저평가된 상태라는 점이다.
▶‘광물 자원부국’ 인도네시아도 인기
밀·옥수수 주요 수출국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갈등이 불거지자 투자자들은 ‘세계의 곡물창고’ 브라질 수출이 반사효과를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일례로 옥수수를 보면 우크라이나는 전 세계 옥수수 수출량의 13%를 차지하지만 브라질은 미국과 더불어 수출 1~2위에 오르내리는 국가다. 이달 25일 중국 글로벌타임스에 따르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탓에 중국에서는 옥수수 가격이 36.84% 급등해 1톤(t)당 2600위안으로 치솟은 상태다. 중국의 옥수수 수입량 중 우크라이나산 비중은 29%다.
이런 가운데 지난 4월 9일 데이비드 맬패스 세계은행 총재는 배런스 기고를 통해 “올해 3월 이후 주요 곡물 수출국들이 자국 곡물 수출을 제한하면서 두 달간 제한 조치 수가 2배 증가했다”면서 “일례로 밀의 경우 상위 5대 수출국 중 하나가 밀 수출을 금지하면 여러 파급 효과를 통해 전 세계 밀 가격이 최소 13% 오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현재 밀 등 곡물 수출을 제한한 국가는 35개국으로 이 중 러시아, 세르비아 등 9개국은 밀 수출을 제한했다. 맬패스 총재는 “최근 10년간 밀 가격이 무려 30% 급등하면서 전 세계에 식량위기가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럽의 곡물창고’인 우크라이나에서 농사가 위축되고 정세 불안으로 인해 각국이 식량안보를 내걸고 곡물 확보에 나섰다는 점에서 당분간 곡물 가격이 고공행진할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 브라질은 석유·금속 수출국이라는 점에서 최근 원자재 가격 급등 반사효과를 볼 수 있다. 석유의 경우 브라질은 지난 2007년 발견된 심해 유전 덕에 수출국으로 진입했고 브라질 에너지연구공사(EPE)는 오는 2026년까지 브라질 석유 생산량이 하루 평균 520만 배럴로 늘어나 수출 세계 5위권에 진입할 수도 있다고 내다본 바 있다.
최근 국제 유가는 배럴당 100달러를 향하며 고공행진 중이다. 이 밖에 브라질은 호주에 이어 세계 2위 철광석 수출국이다. 아이셰어스 MSCI 브라질 ETF 상위 구성 종목이 ‘글로벌 광물 업체’ 발레, ‘중남미 최대 석유 기업’ 페트로브라스, ‘대형 금융사’ 이타우 우니방코 등이다.
한편 김태구 미래에셋증권 브라질법인장은 최근 서울 중구에 위치한 미래에셋 본사에서 진행된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브라질 시장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김 법인장은 “브라질은 인구가 많고 시장 규모가 크기 때문에 우량 기업이 대거 포진된 시장”이라며 “정유, 원자재, 농산물, 금융 등 여러 분야에 걸쳐 튼튼한 기업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난해까지 글로벌 투자 트렌드에선 정보기술(IT), 전기차 등 성장주들이 주목받았다”며 “브라질 증시는 가치주 비중이 높기 때문에 최근 2~3년간 많은 관심을 받지 못했다”면서 “금리 인상 등으로 인해 가치주 중심으로 투자 트렌드가 변하고 있는 만큼 브라질 증시도 경쟁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인도네시아 ETF도 브라질 못지않은 상승세를 타고 있다. 국제 상품 시장에서 광물 가격이 뛴 영향이다. 지난 2020년 기준 인도네시아는 전 세계에서 니켈 생산 1위, 보크사이트 생산 5위, 금·은 생산 7위를 기록한 바 있다. 일례로 2차전지 원료인 니켈의 경우, 3월 27일 런던금속거래소(LME)에 따르면 니켈 가격은 1t당 2만4690달러를 기록했다. 올해 들어 약 20% 뛴 수준인데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로 러시아 광산기업 노르니켈이 경제 제재를 받을 위험이 불거지면서 4월 가격이 상승세다. 노르니켈은 지난해 기준 전 세계 니켈 생산량(270만t)의 약 7%를 생산해 왔다.
자원부국이라는 강점 외에도 브라질이나 인도네시아 등은 경제의 대외 건전성이 개선됐다는 평도 받고 있다. 이는 미국 연준이 기준금리를 빠르게 인상하더라도 지난 2013년 당시와 같은 테이퍼탠트럼(taper tantrum)이 일어날 위험이 낮아졌다는 의미다. 테이퍼탠트럼이란 지난 2013년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움직임 탓에 당시 신흥국 통화와 주식 가치가 급락한 사태를 말한다. 당시 모건스탠리의 제임스 로드 신흥 시장 전략가는 연준 금리 인상에 취약한 5대 신흥국으로 브라질과 인도, 인도네시아, 남아프리카 공화국, 터키를 꼽은 바 있다.
다만 신흥국들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수지 적자 비중이 과거 4.4% 수준에서 최근 0.4%로 줄었다는 분석이 눈에 띈다. 지난 2013년과 달리 인도네시아 경상수지는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했고, 인도는 외환보유고를 두 배로 늘렸다. T 로 프라이스의 언스트 영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배런스 인터뷰를 통해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 여파로 석유·광물·곡물 등 모든 상품 가격이 앞으로 더 뛸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기 때문에 브라질 같은 자원부국에 투자할 만하다”면서 “특히 브라질과 인도네시아 등의 경제 건전성이 개선됐기 때문에 투자하기에 매력적”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브라질에서는 중앙은행이 미국 연준에 앞서 기준금리를 빠르게 올림으로써 공격적인 선제 대응에 나선 상태다. 브라질 기준금리는 5년여 만에 연 10%를 넘긴 상태다. 지난 3월 11일 브라질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기존 연 10.75%에서 11.75%로 1.0%포인트(p) 올렸다. 브라질은 지난해 3월 이후 기준금리를 8번에 걸쳐 총 8.75%p 인상했다.
▶불확실성 여전… 투자 신중론도
증시 차원에서 볼 때 신흥국이 선진국에 비해 저평가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블룸버그 집계에 따르면 MSCI 신흥국 지수 상장 기업들의 2022년 연간 이익 증가율은 10.20%로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 상장 기업들의 이익 증가율(8.90%)보다 높다. 신흥국 기업의 12개월 선행 주가 수익 비율(PER)도 12배로 S&P 500 지수 상장 기업들(19배)보다 낮아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상태다.
앞으로 미국 달러화 강세가 수그러들면 신흥국 증시가 강세를 보일 것이라는 예상도 따른다. 윌리엄 블레어의 토드 맥클론 공동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과거 데이터를 분석해보면 달러화 약세일 때 신흥 시장이 선진 시장을 앞지른 경우가 90%에 달했다”고 분석했다.
다만 신흥국 시장은 여전히 리스크가 적지 않다. 우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 리스크 외에도 연준의 기준 금리 인상이 따를 경우 달러화 강세 기조가 이어질 수 있는데 이는 신흥국 무역수지를 악화시킬 수 있다. 이 밖에 신흥국 역시 전 세계적인 물가 상승 압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 글로벌 증시 전반적으로 투자 심리가 위축된 상황이라는 점, 정치적 리스크가 상존한다는 점도 투자 시 고려해야 할 변수다.
일례로 브라질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하는 경우 브라질 무역수지에 주목해야 한다. 브라질은 광물, 농산물 등 원자재 수출 비중이 높은 국가인 만큼 무역수지가 증시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브라질에서도 인플레이션이 계속되고 있어 기준금리인 셀릭(Selic) 금리와 소비자물가지수(IPCA) 움직임을 눈여겨봐야 한다. 또 브라질은 오는 10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데, 이때 포퓰리즘 공약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과 불안이 커지면 증시가 하방 압력을 크게 받을 가능성이 있다.
신흥국 투자가 꺼려지는 경우 뉴욕 증시에서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갈등 반사효과를 받을 만한 종목이 주목받고 있다. 특히 곡물 관련주가 관심사다. 단기적으로는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주요 곡물 수출국이 ‘식량안보’를 이유로 자국 곡물 수출 제한에 나서면서 공급이 더 위축됐고, 중장기적으로는 러시아산 비료 수출 제재, 전 세계 인구 증가세 등을 감안할 때 곡물 가격 상승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에 따라 투자자들이 앞다퉈 관련주 매수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브라질 최대 국영 석유기업 페트로브라스(Petrobras)의 한 정유공장 모습.
▶밀·옥수수 오르자 이제는 ‘콩’
3월 13일 뉴욕 증시에서는 미국 농업 투자 업체인 아데코아그로 주가가 하루 새 4.69% 올라 1주당 12.95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미국 곡물 가공·유통업체인 번지 주가도 전 거래일 대비 1.39% 오른 120.96달러에 거래를 마감했다. 아데코아그로와 번지는 지난달 14일 이후 한 달간 주가가 각각 18.59%, 11.84% 올랐다. 이는 한 달 동안의 S&P 500 지수(6.55%) 수익률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하면서 비료·곡물 가격이 치솟은 가운데 월가도 곡물 관련주 매수를 추천하고 있다. 일례로 애런 선더램 CFRA리서치 연구원은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국제 갈등뿐만 아니라 남미 지역의 고질적 기후 문제인 라니냐(가뭄) 등을 고려할 때 곡물 가격은 추세적으로 오를 수밖에 없다”며 “특히 밀·옥수수 가격이 지나치게 치솟았기 때문에 사료 수요가 대체재 격인 콩으로 흐르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고 언급했다.
비료에 이어 밀, 옥수수, 콩의 시세가 오르기 시작하면서 시장의 눈은 농지 경영, 곡물 가공업체로 향한다. 대표적인 곳이 아데코아그로와 번지다. 특히 번지에 대해 선더램 연구원은 “불과 5년 전과 달리 지금은 번지의 수익성이 높아질 기회가 열렸다”면서 “번지는 특히 콩 가공·유통에 주력하고 있는데, 콩은 최근 가축 사료 대체재로 주목받을 뿐만 아니라 친환경 시대의 바이오 에너지원으로도 각광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곡물 가공·유통업체들은 일단 높아진 곡물 가격 압박을 받지만 곡물이 필수재인 만큼 가격을 더 올려 수익을 낼 여지가 많다”고 덧붙였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번지에 대한 투자 의견을 중립에서 매수로 높이고 12개월 목표주가도 105달러에서 120달러로 올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