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코로나19 충격으로 인한 주가 폭락 이후 전 세계 증시는 ‘제로금리’로 인한 유동성 장세에 힘입어 상승 가도를 달려왔다. 하지만 올해 11월부터 자산 매입 축소(테이퍼링)가 시작됐고 이르면 내년엔 조기 금리 인상이 가능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국내 증시의 경우 최근 두 달 동안 긴축 장세에 대한 우려감에 외국인 투자자들이 매수세를 거둬들이기 시작하면서 시가총액이 높은 대형주들은 쉬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국제 정세 혹은 정책주로서 강세 테마의 수혜를 입은 중·소형주들의 주가 상승폭이 컸다. 덩치가 상대적으로 가볍다 보니 하나의 호재에도 주가가 상승 동력을 얻기 충분했다는 분석이다.
섹터별로 살펴보면 내년 대선을 앞둔 만큼 정치 테마주의 변동 폭이 컸다. 특히 국내 유가증권 시장(코스피)에선 세계 공급 대란의 영향을 받은 원전·에너지·원자재주들의 상승세도 거셌다. 세계가 점차 친환경을 정책 모멘텀으로 삼자 관련 수소·섬유·소재주들도 상승 탄력을 받았다. 반면 코스닥에선 기존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로의 전환 흐름에 힘입어 2차전지주들에 수급이 몰렸다. 한국이 세계 경쟁력을 갖추고 있고 암호화폐 시장과 결합하는 등 신성장 사업도 추진 중인 게임주들은 코스닥에서 상승률이 가장 높았다. 금융투자업계는 내년 코스피 상단을 3400~3600선으로 제시한다. 최근 중국의 경기 지표가 호조세를 보이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의 매수세가 되돌아오고도 있다. 반면 인플레이션 지속 및 긴축 우려로 하락세가 지속될 경우 2800 선까지 지수가 밀릴 것이란 의견도 있다.
문제는 당장 내년엔 코스피의 이익증가율이 올해보다 크게 둔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속적으로 나온다는 점이다. 이전과 동일한 ‘대세 상승장’을 기대하긴 어렵다는 뜻이다. 하지만 여전히 이익성장률이 높거나 밸류에이션이 저평가된 종목들을 중심으로 선별 투자하는 전략은 유효하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바닥을 확인해왔던 대형주와 더불어 실적 장세를 이어가거나 국제 정세, 정책의 수혜를 입는 종목들이 내년에도 상승 모멘텀을 받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올해 코스피는 ‘원전·수소·섬유’
코스닥은 ‘게임·플랫폼’ 강세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코스피에서 상승 폭이 가장 컸던 섹터는 원전이었다. 올해 초부터 11월 16일까지 코스피에서 가장 높은 상승률을 보인 종목도 원전 관련주인 한전기술이었다. 올해 한전기술은 무려 480% 상승하는 저력을 보여줬다. 관련주인 한전산업, 한신기계도 각각 214%, 176% 올랐다. 최근 중국이 탄소 배출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대규모의 원자력발전소 건설에 나선다는 소식 등 호재가 줄을 잇자 상승 동력을 유지하고 있는 모습이다. 대표적인 원전주인 두산중공업도 연초 1만3500원에서 이달 2만원대 중반 가격을 회복하는 등 약 90.4% 상승했다.
내년 초 대선이 예정된 만큼 정치 테마주들의 상승률도 거셌다. 특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관련주인 이스타코, 일성건설의 경우 각각 올해 초 대비 417%, 374% 폭등하며 코스피 상승률 상위 2, 4위를 차지했다. 세계 공급, 물류 대란에 따른 광물자원 등 원자잿값 급등의 수혜를 입은 원자재·철강업 종목들의 상승 폭도 컸다. 올해 초 558원에 불과했던 플레이그램(구 엔케이물산)의 주가는 11월 16일 2695원에 마감하며 383% 상승했다.
알루미늄 가격 급등의 수혜주로 부각된 조일알미늄과 삼아알미늄은 각각 281%, 147% 상승했다. 철강값 인상의 영향으로 한국주강(328%), 포스코강판(227%), 세아제강지주(167%)도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효성첨단소재(334%), 코오롱플라스틱(230%), 코스모신소재(130%), 솔루스첨단소재(100%), 코오롱인더(95%) 등 수소·소재 관련주들의 상승세도 거셌다. 최근 세계적으로 수소경제를 국가미래전략산업으로 육성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등 친환경으로의 전환이 현실화되는 추세를 반영한 모양새다. 관련 육성 정책이 쏟아지고 시장의 관심을 받게 되면서 몰리는 수급이 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 효성첨단소재는 수소 저장용기의 핵심인 탄소섬유를 생산하는 업체다. 코오롱인더는 고분자 전해질 연료전지의 습도 조절에 필요한 수분제어장치를 공급하고 있다. 수소 관련주들은 대체적으로 주가수익비율(PER)이 고평가돼 있지만 ‘미래 가치’가 높아 여전히 밸류에이션 매력도를 인정받고 있다. 반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시가총액 상위 대형주들은 대부분 부진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는 연초 대비 각각 12%, 5% 하락했다.
올해 코스닥에서 가장 크게 상승한 종목은 쌍용자동차의 새로운 주인이 된 에디슨EV(구 쎄미시스코)로 연초 대비 무려 2162% 상승했다. 섹터별로 보면 게임주가 대세였다. 데브시스터즈의 경우 자사 대표 게임인 ‘쿠키런’ 시리즈의 전 세계 월간 이용자 수가 1000만 명을 넘어서는 등 호재가 지속되면서 주가가 870% 올랐다. 암호화폐를 게임 속 거래 시스템에 접목시킨 위메이드의 주가도 961% 폭증했다. 최근 비트코인이 사상 최고가를 갈아치우는 등 암호화폐 시장 훈풍이 불자 관련주로 묶인 위메이드도 상승 가도를 달린 것으로 평가된다. 카카오게임즈(136%)도 대표 게임 ‘오딘’의 매출 성장이 크게 나타나면서 주가가 상승 탄력을 받았다.
테슬라의 거침없는 질주에 배터리 관련주인 엘앤에프(237%), 에코프로비엠(230%)의 상승 폭도 컸다. 엘앤에프는 차세대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소재인 NCMA(니켈·코발트·망간·알루미늄) 양극재를 LG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 등에 공급하고 있다. 테슬라를 최종 고객사로 확보한 것이 가장 큰 투자 포인트로 지목됐다.
최근 유럽, 미국 시장 진출을 공식화한 에코프로비엠은 양극재 추가 증설 계획을 발표하며 코스닥 시총 1위 자리를 넘보고 있다.
그 밖에 ‘대체불가능토큰(NFT)’과 메타버스 테마로 엮인 위지윅스튜디오(613%), 덱스터(540%), 엔피(497%), 서울옥션(352%), 갤럭시아머니트리(314%)의 상승세도 거셌다.
▶한국 증시 지지부진한 이유는
유동성 장세 종료 시그널?
지난해 코로나19 충격 이후 세계 증시는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주가가 ‘고공행진’을 이어왔다. 하지만 높은 인플레이션과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지난 11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테이퍼링을 현실화하면서 ‘돈줄 죄기’에 나서자 단기 투자 심리가 위축돼 코스피는 2900 선까지 밀렸다. 특히 미국 증시가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는 동안 신흥국으로 대표되는 한국 증시는 하락세를 타며 살얼음판을 걸어왔다. 올해 초부터 11월 16일까지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와 나스닥지수는 각각 24.4%, 22.3% 상승했다. 반면 코스피는 4.3% 상승에 그쳤다.
만약 연준이 테이퍼링을 끝낸 후 보유 자산 매각에 나서고 내년 조기 금리 인상을 할 경우 신흥국을 중심으로 과거 ‘긴축발작’이 재현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경우 달러 강세 현상이 지속돼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자금이 대거 빠져나갈 위험성이 있다. 동시에 한국은 산업 구조 자체가 중국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경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세계 공급망 병목과 원자잿값 강화 등 인플레이션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최근 중국에서 발생한 전력난으로 인한 공급망 불안이 심화된 점도 코스피 투자 매력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만약 국내 인플레이션 압력이 지속될 경우 한국은행은 추가적인 금리 인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다행인 건 10월 중국의 산업생산, 소매판매 지표가 전년 동월 대비 각각 3.5%, 4.9% 증가했단 점이다. 경제적으로 중국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특성상 중국 경기에 훈풍이 불면 외국인 투자자들의 매수세가 살아날 가능성이 있다.
▶내년 주가 지수 향방은
“코스피 3400~3600 예상”
삼성증권은 보고서를 통해 내년 코스피가 2800~3400 선에서 ‘뫼비우스의 띠’ 박스권을 형성할 것이라 예측했다.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은 대외 불확실성이 실적 기대치를 무너뜨릴 경우 지수가 밴드 하단인 2800까지 후퇴할 수 있다는 얘기다.
김용구 삼성증권 연구원은 “2022년 글로벌 경기 환경은 순환주기 측면에서 여전히 잠재성장률 이상의 성장세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며 “테이퍼링 관련 최대 충격은 이미 지난 7월 FOMC 의사록 공개를 통해 상당 수준 선반영된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고 밝혔다.
신한금융투자는 코스피가 2850~3500 선을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과거 ‘박스피’ 시절과는 다르게 체질이 변화했고 수소 밸류체인, 신재생에너지 등 구조적 성장 산업이 한국 시장을 이끌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또 내년 국내 증시에 개인투자자 자금(고객예탁금) 유입 속도는 떨어지더라도 주식 시장의 큰 조정이 없다면 이들이 시장 자체를 떠날 가능성은 낮다고 봤다. 노동길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개인투자자의 비중이 높아진 만큼 개인 자금의 주가 하방지지 역할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하나금융투자는 내년 코스피 순이익을 184조원으로 추정 시 코스피 상단은 3480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과거 사례를 고려할 때 코스피는 시가총액 2위 기업과 흥망성쇠를 함께하며 그런 점에서 SK하이닉스의 실적 개선 및 시가총액 증감이 중요하다고 분석했다. 실제 2006~2007년(포스코), 2010~2011년(현대차)의 시가총액 비중이 증가하자 코스피는 상승가도를 달렸다. 그 밖에 KB증권은 코스피 상단 목표로 3600 선을 제시했다. 내년 초 중국의 정책 전환과 인플레이션 우려 완화 등 경기활성화로 인한 반등 랠리가 진행될 것으로 봤다.
글로벌 에너지 대란 속에 중국·유럽 등 세계 각국의 원전 건설이 본격화되리라는 기대감이 커지는 가운데 ‘원전 대장주’로 꼽히는 한전기술의 상승세가 무섭다.
▶국내 기업 이익성장률 둔화
강세 섹터 선별 투자해야
국내 증시 체질이 변화됐다곤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내년 코스피의 이익성장률은 올해보다 둔화될 것으로 보인다. 신한금융투자는 내년 코스피 영업이익이 256조원으로 올해 대비 10% 증가할 것이라 추정했다. 성장세는 이어가지만 74.8% 증가할 것으로 추정되는 올해 대비 증가율이 둔화된다는 점이 문제로 지목된다. 이에 따라 그동안 밸류에이션 저평가를 받아왔던 가치주에 집중하거나 ‘상상력이 풍부한’ 주가 상승 모멘텀을 보유한 성장주를 선별해 투자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이투자증권은 경제 정상화 기대감과 함께 호텔, 레저, 미디어, 교육 분야의 경우 내년에도 양호한 이익 증가율이 기대된다고 밝혔다. 그 뒤로 조선, 정보기술(IT), 에너지 등 업종이 거론된다.
당장 올 연말엔 안정적인 배당금을 받기 위한 배당주에 수급이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리츠(부동산 투자 신탁), 통신주, 금융주 등 대표적 배당주들은 증시 조정기에 주가 방어에도 용이하다. 올해 큰 실적 향상을 바탕으로 배당금 증액을 노려볼 수 있다.
또 4분기 실적 전망이 긍정적인 업종을 선별하는 방법도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해 4분기 전년 동기 대비 영업이익 증가율이 높을 것으로 추정되는 업종은 반도체 및 관련 장비(322.6%)다. 그 뒤로 해상운수(252.8%), 금속·광물(208.6%), 화학(192.5%), 미디어(187.5%) 순이었다.
올해 주가 낙폭이 과대했던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가치주들을 다시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앞서 반도체 관련주들은 공급과잉에 기초한 단가 하락 우려에 하락세를 탔다. 하지만 최근 외국인 투자자들이 대표주인 삼성전자, SK하이닉스를 매수하기 시작해 바닥권 확인 후 추세 전환을 시도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10월 말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한국 인덱스 기준 반도체 업종 12개월 선행 밸류에이션은 5.5배 수준으로 심각한 저평가 수준이란 지적이다.
전기차 배터리 관련주들의 약진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투자 전략 측면에서의 위상과 가치에 흔들림이 없다는 분석이다. 자동차 이연수요 부활이 이끄는 성장과 한국 전기차의 세계 경쟁력 강화가 실적 개선을 이을 것으로 예측된다.
김용구 삼성증권 연구원은 “2022년은 미국의 기존 내연기관 제조업체들의 전기차 전환이 가속화되는 원년”이라며 “한국의 2차전지 관련 업체들은 직접 진출 혹은 합작선 구축을 통해 가장 빠르게 대응하는 중으로 주가 리레이팅의 핵심 촉매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KB증권은 중소형 성장주들이 내년 시장의 주도주로 돌아올 것이라 봤다. 특히 미디어·엔터 등 콘텐츠주와 친환경주를 유망하다고 분석했다. 콘텐츠주의 상승 동력이 여전한 이유는 방탄소년단(BTS) 빌보드 차트 1위 등극과 <오징어 게임> 열풍에 힘입어 한국 문화콘텐츠의 힘을 전 세계가 인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11월엔 디즈니플러스, 애플TV플러스 등 세계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업체들이 한국 시장에 진출하기도 했다. 이후 콘텐츠 제작사에 대한 투자금액도 크게 늘고 세계에서 한국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넷플릭스의 한국 콘텐츠 확보를 위한 투자 금액은 2016년 150억원에서 지난해 4150억원으로 크게 늘어난 바 있다.
수소, 원전, 태양광, 풍력 등 친환경주의 경우 각국의 친환경 정책과 최근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인해 수요가 꾸준히 높아질 것으로 봤다.
최근 석탄, 천연가스 등 국제 원자잿값이 급등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그린플레이션’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데, 오히려 이러한 현상이 친환경으로의 전환을 촉진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