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 필리핀의 평균 월급은 약 4만4600페소(약 104만원)이다. 최근 필리핀에서는 게임을 즐기는 것으로 평균적인 수입을 넘게 벌어들이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자신의 등록금을 게임으로 벌었다는 게임 이용자가 나오는가 하면, 심지어 또 다른 이용자는 게임에서 번 돈으로 집 2채를 구입하기도 했다.
# 국내 게임사 위메이드는 자사의 핵심 IP인 미르 시리즈에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한 ‘미르4’ 글로벌 버전을 출시했다. 이 게임이 동시 접속자 수 80만 명을 돌파하며 인기를 끌자 위메이드의 주가, 관련 코인의 가격도 빠르게 오르고 있다.
블록체인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당신이 제일 먼저 떠올린 것은 무엇인가. 대다수의 경우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가상화폐 투자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인지상정일 것이다. 이를 통해 단시간에 갑부가 된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부럽기도 하지만, 손해를 봤다는 주변 얘기를 들으면 실제로 투자를 하기는 꺼려지기도 한다. 미래를 이끌어나갈 기술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그 실체를 파악하기 어려워서다.
하지만 이처럼 불분명하던 블록체인이 더해지면서 의외의 시너지 효과를 얻는 분야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앞서 언급한 두 사례의 공통분모, 바로 ‘게임’이다.
오락실에서 동전을 넣어야 게임을 할 수 있던 시절부터 CD나 게임팩을 사고, 아이템을 사는 시대까지 게임을 하려면 사용자가 돈을 내는 것은 상식이었다. 게임사가 돈을 벌어야 또 다른 게임이 나올 수 있기에 이기고 즐겁기 위해 게임을 하던 이들은 조금 더 게임을 잘하기 위해서도 돈을 냈다. 게임사의 수익을 올려주며 자신의 캐릭터를 강화할 수 있는 ‘페이 투 윈(Pay to Win·P2W)’이 등장한 배경이다. 하지만 블록체인의 등장이 게임의 상식까지 바꾸기 시작했다. 우리는 지금 ‘플레이 투 언(Play to Earn·P2E)’ 게임의 시대가 시작되는 것을 목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게임으로 돈 벌어보자
블록체인을 적용한 게임들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도, 플레이 투 언 게임이라는 용어가 퍼지기 시작한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이야기다. 기존의 게임에 블록체인을 활용해서 달라진 점도 간단하다. 게임 아이템과 캐릭터 등에 대한 소유권을 블록체인에 명확히 기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기존에는 게임사가 아이템과 캐릭터 등 게임 내부의 규칙을 임의로 설정했다면, 지금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신뢰를 확보하고 이용자가 자신의 권리를 찾을 수 있게 됐다. 이용자는 객체가 아닌 주체로서 말 그대로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얻는 아이템 등을 이용해 실제 수익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이미 해외에서는 성공 사례가 있다. 베트남의 스타트업 게임사인 스카이마비스는 2018년 이더리움 기반 블록체인 게임 ‘엑시인피니티’를 개발했는데, 암호화폐와 연계한 이후 필리핀 등 동남아 지역에서 큰 인기를 얻는 게임이 됐다. 현재는 이용자가 100만 명 단위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을 정도니 상당한 인기 게임이다.
엑시인피니티 내 마켓에서 판매되는 엑시 캐릭터의 가격. 한화 기준 모두 몇 십만원대에 거래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국내에서도 삼성전자의 투자 자회사인 삼성넥스트가 약 1800억원 규모의 시리즈B 투자에 참여하면서 또다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게임은 마치 ‘포켓몬고’처럼 ‘엑시’라고 불리는 NFT(대체불가능토큰) 캐릭터를 키우는 방식으로 즐길 수 있다. 저마다 다른 생김새와 능력치를 가진 엑시 캐릭터들끼리 교배를 시켜 아예 새로운 캐릭터를 탄생시킬 수도 있고, 전투를 즐기면서 게임 자체를 즐길 수도 있다. 일단 3마리의 엑시를 구매한 뒤 게임을 시작할 수 있고, 비싼 엑시를 가지고 있을수록 게임 진행이 쉬워지기에 초기 투자비용이 든다. 하지만 게임 내 거버넌스 토큰으로 활용되는 엑시인피니티샤드(AXS) 코인 외에도 게임 플레이를 통해서 스무드러브포션(SLP)이라는 이름의 코인으로 보상을 획득할 수 있고, 결국 실질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 인기의 근본 요인으로 꼽힌다. 또한 게임 내 교배 시스템인 브리딩을 이용해 자신이 새롭게 만든 엑시 캐릭터 혹은 게임 내 루나시아(Lunacia)라는 이름의 가상세계 속 랜드의 부동산을 판매할 수도 있는데 때로는 실제 금액으로 수억원 규모의 거래가 이뤄지기도 할 정도다.
물론 3마리의 엑시를 사야 하는 것은 일종의 진입 장벽이 될 수도 있다. 보통 수십만원 단위를 호가하는 엑시를 3마리 갖추려면 평균 월급 이상의 돈이 들기 마련이다. 이런 경우를 위한 방법도 따로 있다.
‘엑시인피니티’에서는 스칼러십 제도를 이용해서 타인의 계정을 대여해 제3자가 게임을 플레이할 수도 있다. 마치 토지를 빌려주는 지주와 농사를 짓는 소작농이 분리된 것처럼 소유자와 실제로 플레이한 사람이 5 대 5, 6 대 4 등 나름의 계약대로 벌어들인 코인을 나눠 가질 수 있다. 일반적으로 게임사들은 게임 캐릭터를 타인에게 대여하거나 양도하는 방식으로 운영하는 것을 막지만 스카이마비스는 장학금 제도를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한 달간 ‘엑시인피니티’를 해서 벌어들이는 SLP만 해도 평균 월 300달러 수준이라고 하니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이처럼 다양한 방법으로 실제 돈을 벌 수 있다 보니 평균 임금이 낮은 동남아 지역에서는 이 게임을 통해 학비를 벌고, 심지어 집을 샀다는 사람까지도 등장했다. 실제 사회에서 성공 가능성을 보이자 이 게임에서 사용되는 AXS 코인 역시 엄청난 가격 폭등을 기록하며 가상화폐 시장에서 화제의 중심이 됐다. 업비트 기준 지난 5월 개당 5000원대였던 AXS는 10월 중순 15만원대까지 치솟으며 반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30배 이상 폭등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스카이마비스 공동설립자인 제프리 저린은 지난달 업비트 개발자 회의에서 “사용자가 직접 게임을 만들고, 시장을 형성하며 새로운 가상 경제를 만들 것”이라며 “노인이나 싱글맘 등 개발도상국에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재미가 있어야 오래가지 않을까?
물론 성공 사례가 하나 발생했다고 해서 그 다음에도 성공을 거두고,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대세가 될 것이라는 예측은 아직 섣부를지도 모른다. 우선 블록체인을 적용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특정 게임이 인기를 끌고, 그 인기를 오래 유지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게임성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재미가 없으면 게임을 꾸준히 하는 이용자가 줄어들고, 이용자가 줄어들면 수익과 관련 코인의 시세 역시 떨어지는 악순환이 벌어질 수 있다. 게임 자체의 팬보다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사용자가 많다면 시세나 시장 상황에 따라 단기간에 인기를 잃는 것도 가능하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은 자연스럽다.
블록체인을 적용한 첫 게임인 2017년 말 캐나다 대퍼랩스가 만든 디지털 고양이 수집 게임 ‘크립토키티’에서 요즘의 블록체인 게임이 크게 달라지고 재미를 주는 요소가 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엑시인피니티’는 물론 ‘버니콘(Bunicorn)’ 등 후발 주자들도 아직 게임성 자체에서 큰 인정을 받는 단계도 아니다.
또한 각 국가의 상황에 따라 블록체인 게임의 성장 가능성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점도 글로벌 대세가 될 수 있을지 여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한국을 비롯해 중국 등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관련 규제가 있는 나라도 많기에 그 성장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애초에 베트남에서 만들어진 ‘엑시인피니티’가 필리핀에서 가장 큰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환경이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우선 영어를 사용하는 국가이기에 게임 자체에 대해 접근성이 높았고, 이 게임을 통해 직장인 평균 급여 이상을 벌 수 있을 정도로 GDP와 물가, 소득 수준이 낮았다는 평가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은 “아직은 서구권, 동아시아 등 다양한 시장에서 블록체인 게임이 대세라고 말하기는 이른 단계”라고 말했다.
실제로 돈이 오가는 게임이기에 이용자들이 주의해야 할 점도 있다. 국내의 ‘엑시인피니티’ 관련 커뮤니티에는 가짜 로닌 지갑 사이트를 주의하라는 공지가 자주 올라온다. 엑시를 구매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로닌 지갑에 이더리움을 넣어야 하는데, 가짜 지갑은 곧바로 해커에게 이더리움을 탈취당할 수 있다. ‘엑시인피니티’는 수많은 이용자를 보유하고 있지만 아직도 얼리 액세스 버전으로 정식 출시 단계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게임사 스카이마비스가 위험 보장을 해주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게임사뿐만 아니라 이용자가 함께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새로운 BM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여전히 ‘엑시인피니티’를 위시한 블록체인 게임들이 눈길을 끄는 것만은 사실이다. 황성익 한국모바일게임협회장은 “게임이 금융과 융합·확장되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라며 “국내에서는 IT업계 대기업 위주로 관심을 보이는 단계지만 성공 사례가 나오며 해외에는 도전하는 업체가 많다. 선제적으로 시도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SK증권은 NFT를 활용한 서비스와 블록체인 게임 시장이 지난해 3억4000만달러(약 4035억원)에서 올해 20억달러(약 2조3740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위메이드에서 서비스 중인 ‘미르4’
▶한국에서는 아직 시기상조?
국내 게임사들 역시 미래의 가능성을 보고 블록체인에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규제 기관인 게임물관리위원회가 사행성을 우려한다는 이유로 블록체인 게임의 등급 분류를 거부하고 있어 실제로 국내에서 사업을 할 수는 없는 처지다. 무조건 글로벌 시장으로 나가서 사업을 해야 하니 쉬운 일만은 아니다.
그럼에도 위메이드 정도가 블록체인을 활용한 플레이 투 언 시장에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다. 장현국 위메이드 대표는 매일경제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기존에 게임 플랫폼 변화가 디바이스를 바꾸는 것이었다면, 블록체인은 다른 차원의 재미를 만드는 플랫폼으로 등장할 것”이라며 큰 기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 밖에도 카카오게임즈가 지난해 블록체인 게임 개발사 웨이투빗 최대 주주가 되고, 넥슨과 게임빌 등도 잇따라 가상화폐 거래소에 투자하며 시장의 흐름을 보고 있기도 하다.
실제로 위메이드의 ‘미르4 글로벌’은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애초에 한국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인기 IP를 가지고 간단한 캐주얼 게임이 아닌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에서의 블록체인 결합 시도인 만큼 해외에서도 관심이 높다. 이 게임 이용자는 일정 레벨이 되면 핵심 재화인 ‘흑철’을 채광할 수 있는데 이 흑철 10만 개를 모으면 ‘드레이코’ 코인으로 바꿀 수 있고, 또 이 코인을 ‘위믹스’ 코인으로 바꿔 현금화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런 부분이 글로벌 시장에서도 호응을 얻으며 지난 14일에는 동시접속자 수 80만 명을 돌파하기도 했다. 덩달아 위메이드 주가도 52주 최고가를 새로 쓰기도 했다.
위메이드 관계자는 “애초에 국내 시장은 규제로 가능성이 크지 않아 해외를 먼저 보고 개발한 것이다. 지난 8월 서버 11개로 시작했지만 현 시점에는 아시아, 유럽, 북미, 남미, 인도 등 약 140개에 달하는 서버를 운영할 정도로 호응을 얻고 있다”며 “게임 아이템이 NFT 시장에 잘 맞아 발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고 밝혔다. 아직 성공과 실패를 분명히 가늠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지만 일단 주목해볼 만한 시도다. ‘엑시인피니티’ 열풍의 뒤를 잇는 블록체인 게임이 한국에서 나올 수 있다면 그 역시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