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전국 아파트값 상승률 1위를 기록한 세종특별시 부동산 시장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 고공행진하던 집값이 다섯 달째 내림세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아파트 매매가격이 42.37% 급등하며 전국 1위 상승률을 기록한 세종시 아파트값은 지난 5월 81주 만에 하락 전환한 이후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행정수도와 국회 이전론으로 세종시 집값이 과도하게 오른 데 따른 피로감과 공시가격 인상으로 인한 보유세 부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조정 국면에 돌입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최고점 대비 수억원 낮은 가격에 손바뀜도 이뤄지고 있다.
다만 세종시에 국회의사당 분원을 설치하는 국회법 개정안이 지난 9월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집값에 어떤 영향을 줄지 주목된다.
국회는 이날 본회의를 열고 세종의사당 설치 근거를 담은 국회법 개정안을 가결했다. 국회법 개정안은 세종특별자치시 설치 등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세종특별자치시에 국회 분원으로 세종의사당을 둔다’는 조항을 포함했다.
세종시 다정동에서 바라본 시내에 아파트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
▶행정수도 이전론에 들끓었지만
입주물량 증가·세금 부담에 급매물도
지난해까지만 해도 세종시는 전국에서 가장 뜨거운 곳 중 하나였다. 작년 한 해 동안 세종시 아파트값이 42.37% 폭등할 정도였다.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세종 이전을 추진하면서 세종시 아파트값이 크게 올랐다.
행정수도 이전은 작년 7월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행정수도 이전론을 꺼내며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행정수도 이전론으로 세종시 부동산시장이 꿈틀대며 매매는 물론 전세시장도 모두 올랐고, 이후 이낙연 당시 민주당 대표가 국회를 세종시로 완전히 이전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겠다고 밝히면서 고공행진했다. 작년 초만 해도 9억원 선에서 거래되던 세종시 보람동 호려울마을10단지 전용 109㎡는 같은 해 10월 4억원 오른 13억원에 손바뀜되기도 했다.
하지만 올 들어 세종시 부동산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 급등 피로감에 더해 아파트 입주물량 증가로 인한 영향이 크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세종 아파트 입주물량은 지난해 5655가구에서 올해 7668가구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입주물량이 늘어난 데다 하반기에만 1350가구(임대 제외)가 신규 분양을 앞두고 있어 해당 가구가 입주하는 2~3년 후에는 주택 공급이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게다가 정부가 최근 세종시 연기면에 6000가구, 조치원읍에 7000가구 규모의 공공택지 조성계획을 내놓으면서 세종시 공급 과잉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은 “지난해 단기적인 가격 급등에 따른 피로감과 올해 입주물량이 많아진 것이 세종시 아파트값 하락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여기에 세종시 아파트 공시가격이 급등으로 높은 보유세 부담에 다주택자들이 매물을 내놓고 있는 점도 집값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 올해 세종시 공동주택 공시가격은 70.6% 올라 전국 1위를 차지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세종시 주요 단지마다 집주인들이 내놓은 매물이 쌓이는 분위기다. 부동산정보업체 아실에 따르면 지난 10월 18일 매매 기준 세종시 아파트 매물은 4434건에 달한다. 1년 전 매물이 3011건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47% 넘게 늘었다.
▶급등 피로감에 세종시 아파트 호가 뚝뚝
한국부동산원 주간아파트동향에 따르면 세종시 아파트 매매가격은 지난 5월 셋째 주에 전주 대비 0.10% 하락하며 81주 만에 꺾였다. 세종시 아파트 매매가격은 2019년 11월부터 80주 연속 한 주도 쉬지 않고 올랐다.
세종시 아파트값은 지난 5월 셋째 주 81주 만에 하락 전환한 이후 등락을 거듭했지만 전반적으로 하락세를 이어갔다. 5월 셋째 주부터 10월 둘째 주까지 약 5개월간 매주 평균 0.04% 하락했다. 지난 7월 넷째 주부터는 12주 연속 하락 중이다.
세종시 새롬동의 한 중개사무소 대표는 “쉼 없이 급등했던 세종시 아파트값이 최근 수개월째 조정받고 있다”며 “최고가 대비 수억원 낮게 거래된 사례가 나오고, 현재 호가도 작년 말보다 1억원가량 내렸다”고 전했다. 올해 1월 9억500만원에 거래됐던 세종시 보람동 ‘호려울8단지중흥S클래스에코시티’ 전용면적 84㎡는 지난 9월 말 6억원에 거래됐다. 연초 거래 가격보다 3억원 가까이 내린 가격이다. 해당 아파트 동일평형 호가는 현재 7억9000만원 수준에 형성돼 있다.
올 들어 세종시 아파트값 상승률도 전국 17개 광역시도 중 가장 낮았다. 올 초부터 10월 둘째 주까지 전국 아파트값은 11.24% 상승했다. 수도권 아파트값은 14.00%, 서울은 5.30% 올랐다. 이에 비해 세종시 아파트값 상승률은 2.13%에 그쳤다.
지난 9월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세종시에 국회의사당 분원을 설치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을 박병석 의장이 가결 선언 하고 있다.
▶국회의사당 분원 설치 영향 제한적
이런 가운데 지난 9월 말 세종시에 국회의사당 분원을 설치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되면서 집값 반등에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해 행정수도 이전론의 영향으로 세종시 집값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현지 공인중개사무소들은 “작년 말만 하더라도 7억원에 거래되던 새롬동 59㎡ 아파트의 경우 현재 호가가 저층 기준 6억2000만원까지 떨어졌지만 더 떨어질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면서 “국회가 이전하면 아파트값이 더 오를 것”이라며 기대감을 보이고 있다.
다만 “보유세 부담 등으로 집주인이 호가를 올리기보다는 일단 시장 분위기를 지켜보고 있다”며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미 지난해 오른 집값에 국회 이전 이슈가 반영됐기 때문에 지금의 조정장이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작년 말 급등한 세종시 아파트값에 국회 이전 이슈까지 선반영됐다고 본다”면서 “세종시 아파트 입주물량이 많아 집값이 반등하기보다는 지금처럼 숨 고르기 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회의사당 분원 이슈보다는 세종시가 선거 공약의 영향을 많이 받는 지역인 만큼 당장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다시 시장이 자극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세종 대평동의 한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급매물은 이제 대부분 소진됐다고 보면 된다”며 “선거가 다가오면 이슈가 많아지는 데다 내년 초 새 학기가 시작할 때가 되면 다시 시장이 꿈틀거릴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