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집값이 워낙 올라서 미국 집값이 오히려 싸보이더라고요. 투자할 만한 물건이 있는지 찾아보고 있습니다.”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한 프라이빗뱅킹(PB) 센터에서 자주 나오는 상담 의뢰 멘트다. 특히 종합부동산세와 재산세, 취득세 등 한국 주택 세금 부담이 워낙 높아지면서 이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미국 부동산이 각광받고 있다.
한국과 비교해 미국은 없는 세금항목이 많다. 취득 당시 내야 하는 비용은 미미하고 종합부동산세는 없다. 집 몇 채를 가지고 있든 상관없이 부동산 세금을 중과하지 않는다.
반면 한국의 취득세는 상당히 높다. 어떤 집을 가지고 있느냐, 몇 채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1~12%까지 다양하다. 2주택을 살 때는 8%, 3주택 이상과 법인은 12%까지 부담이 늘어나는 구조다. 12% 세금 구간에 있는 사람이 조정지역에서 10억원의 집을 매입하면 세금만 1억2000만원이다.
▶종부세 없고 취득세도 미미
또 집을 여러 채 가지고 있으면 이에 비례해 재산세와 종부세가 큰 폭으로 늘어난다. 올해부터 다주택자의 종부세 최고 세율은 기존 3.2%에서 6.0%로 올라갔다. 양도세 최고 기본세율은 기존 42.0%에서 45.0%로 올라 세금 부담이 커졌다.
미국 부동산 투자가 이점을 발휘하는 분야가 바로 여기다. 다주택자 취득세 중과를 피할 수 있고, 집을 여러 채 사도 세금을 더 내지 않는다.
다만 체감적으로 느껴지는 1주택 부동산 보유세는 미국이 한국보다 높다. 지역별로 예를 들어 살펴보자.
최근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미국 전역에 걸쳐 ‘부동산 세금, 센 주와 약한 주 랭킹 10’을 매겼다. 부동산 중개 기업 월릿허브(WalletHub)의 정기 주간조사를 인용한 것이다. 여기서 부동산 세금은 보유세만을 의미한다. 순위는 세율이 기준이다.
한국은 재산세와 종부세 등 보유세의 세율이 전국적으로 같다. 하지만 미국은 50개 주와 수도 워싱턴 세율이 저마다 다르다. 가장 높은 뉴저지주의 2.49%부터 하와이주의 0.28%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주별 주택가격의 ‘중간값’도 상당한 차이가 있다. 보유세율 상위 10개 주들의 가격대는 33만달러에서 15만달러 대에 걸쳐 있다. 반면 보유세 하위 10개 주 역시 61만달러에서 11만달러 사이에 있다.
보유세율이 2.49%로 가장 센 뉴저지주부터 먼저 보자. 이 지역 주택 중간값(시가)은 33만5600달러(약 3억9700만원)였다. 그런데 이 집을 가지고 있으면 1년에 8352달러(약 1047만원)를 내야 한다. 한국과 비교하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보유세가 높다.
반면 보유세율이 0.28%로 가장 낮은 하와이주를 살펴보면 사정이 다르다. 하와이 주택 중간값은 61만5300달러(약 7억2820만원)였다. 이 집의 연 보유세는 1715달러(약 202만원)이다. 남부에 있는 앨라배마주는 세율이 0.41%이고 중간값이 14만2700달러(약 1억6888만원)로 보유세가 587달러(약 69만원)다. 보유세의 미국 전체 가구 평균치는 2471달러(약 292만원)로 드러났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부동산에 들어가는 세금을 총체적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수연 제주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우 집을 사면 보유세인 재산세와 종부세를 내야 하는 데다 취득세, 양도세 부담도 상당하다”며 “단순히 보유세 하나만 비교해서 한국 부동산 세금이 미국 부동산 세금보다 낮다고 봐선 안 된다”고 말한다.
서울 안에서 집 두 채를 보유하고 있다면 더욱 상황이 그렇다. 예를 들어 최근 28억여원에 거래된 잠실주공5단지 전용 82㎡를 보유한 A씨가 최근 19억원 선에 거래된 마포래미안푸르지오 84㎡를 한 채 추가로 매입한다고 하자. 이 경우 내년 보유세는 9000만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3~4년 안에 세금이 1억원을 넘을 것으로 예측된다. 한국은 ‘공시가격 현실화’라는 명목하에 공시가와 시세를 근접시키려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설사 부동산 시세 상승이 멈추거나, 실거래가가 하락한다고 하더라도 보유세 부담은 매년 높아질 수 있는 구조다. 그런데 A씨가 마포래미안푸르지오를 사는 대신 미국 부동산을 한 채 매입한다면 상황이 어떻게 될까. A씨가 잠실주공5단지만 보유하고 있을 경우 보유세는 1000만원 초반대로 떨어진다. 다주택자에 매기는 징벌적 보유세가 감면되기 때문이다.
만약에 A씨가 하와이에서 19억원을 주고 부동산 한 채를 매입한다면 여기서 나오는 보유세는 매년 527만원 수준일 것으로 전망된다. 잠실주공5단지와 하와이 집을 합해서 1년 보유세가 2000만원을 밑도는 수준이다. 마포래미안푸르지오를 살 때와 비교해 보유세 부담이 5분의 1로 떨어지는 것이다.
▶미국 보유세 상승 연 2%로 제한
한국인이 많이 매입하는 캘리포니아 지역 부동산 보유세를 감안해도 다주택의 경우 한국 부동산 대신 미국 부동산을 사는 게 이득이다. 캘리포니아 지역 보유세는 연 1.05~1.2% 수준이다.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19억원짜리 집을 산다면 매년 나오는 보유세는 약 2000만원 선이다.
미국은 한국처럼 보유세를 공시지가에 연동된 과세 기준이 아니라 시세를 기준으로 한다. 그러나 미국 부동산 보유세는 인상 한도가 연 2%로 제한된다. 시세가 매년 30%씩 급등하더라도 보유세 과세 기준의 상승폭은 최대 2%다. 아파트 가격이 중장기 완만한 상승세를 기록한다고 가정할 때 한국 대비 보유세 부담이 낮아지는 구조다. 예를 들어 100만달러의 부동산을 샀을 때 첫해에는 재산세로 1만달러가 나오지만 10년이 지나 부동산 가격이 두 배, 세 배로 오르더라도 재산세는 많아야 20%까지만 오르는 것이다.
게다가 주민발의안60·90(Proposition 60·90) 등을 통해 재산세를 더 아낄 여력도 있다. 기존에 살던 집을 팔고 부동산을 새로 샀을 때 새로 구입한 부동산 가치를 기준으로 재산세를 매기는 게 아니라 원래 거주하는 주택의 재산세를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세법도 있어 세금을 아낄 수 있다.
여기에 취득세까지 감안하면 미국 세금이 더 싸 보이는 효과를 낸다. 예를 들어 A씨가 마포래미안푸르지오를 19억원 주고 살 때 취득세는 8%가 적용돼 취득세만 1억5000만원이 넘어간다. 만약 3주택이 될 경우 취득세 세율이 12%여서 2억원을 넘게 내야 한다.
반면 캘리포니아에서는 취득세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것만으로 캘리포니아 같은 시세의 집을 살 때 나오는 보유세 7~10년어치를 아낄 수 있는 셈이다. 다만 주택을 구입할 때 수수료가 든다. 매매가의 2% 정도가 감정평가비 등으로 소요된다.
양도소득세의 경우에도 여러 절세 방법이 있다. 매매 시점 기준 5년 이내에 2년간 거주하면 부부 합산 50만달러까지 양도소득세를 면제해준다.
투자 목적의 부동산일 경우에도 ‘1031 부동산교환(1031 Exchange)’을 이용해 양도차익이 발생한 부동산에 대해 세금을 이연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예를 들어 100만달러의 투자용 부동산이 200만달러에 팔렸을 때 원래대로라면 양도차익 100만달러에 대해 양도소득세를 내야 한다. 하지만 매매 후 6개월 이내에 200만달러 이상 부동산에 재투자할 경우 양도소득세를 이연할 수 있는 것이다.
또 미국은 증여·상속세는 이중 과세라고 간주해 1160만달러(부부 합산 약 2320만달러)까지는 증여·상속세가 없다. 집을 물려줄 때 막대한 증여세를 내야 하는 한국과는 사정이 다르다. 정수연 교수는 “더 큰 문제는 미국의 경우 비교적 투명한 절차에 입각해 예측 가능한 세금을 물리는 데 반해 한국의 공시지가는 자의적인 기준이 많이 개입돼 들쭉날쭉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미국 부동산의 경우 잘 찾아보면 재산세를 집주인이 아닌 임차인이 대신 내주는 사례도 있다. 재산세뿐만 아니라 보험, 유지보수까지 임차인이 집주인을 대신해 지불해주는 부동산이 있다고 어태수 네오집스 미국대표는 설명한다.
어 대표에 따르면 트리플넷(Triple Net ·NNN)이라는 리스계약이 이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스타벅스, 뱅크오브아메리카, 체이스뱅크 등이 트리플넷이라는 리스계약을 맺고 있다고 그는 설명한다.
어 대표에 따르면 트리플넷 리스는 대부분 10년 정도의 장기 임대차계약 조건을 내건다. 5년마다 10% 내외의 임대료 상승을 해주는 구조다.
길게는 30년까지도 임대차계약이 가능한데, 임차인이 재산세, 보험, 유지보수에 따른 비용을 지불한다. 이를 감안한 수익률도 4% 안팎이다.
어 대표는 “매장 보수를 잘 해야 손님을 잃지 않기 때문에 이런 계약이 나오는 것”이라며 “이런 매물을 잘 잡으면 한국에서도 손쉽게 리스크를 최소화한 투자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유학생 자녀가 있어 정기적으로 달러를 송금해야 하는 부모 입장에서는 안정된 월세를 받을 수 있어 최적의 매물이라고 어 대표는 설명한다. 한국에서 수익형 부동산을 사서 월세를 받은 뒤 이를 달러로 송금할 수도 있지만 환율 헤지를 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요즘처럼 원화값이 떨어지고 있는 국면에서는 유학비용을 충당하기에 더 불리한 구조다.
하지만 미국 수익형 부동산에 투자해 달러로 월세를 받으면 환율 움직임에 상관없이 안정적으로 비용을 충당할 수 있는 것이다. 어 대표는 “미국 부동산 투자를 통해 달러자산에 투자하는 효과도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 한 주택이 매물로 나와 있다.
▶미국도 집값 거품 논란
다만 단기간 가파르게 오른 집값은 고려해야 한다. NYT는 최근 올해 3분기 뉴욕 맨해튼 아파트 거래 건수가 4523건으로 3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부동산 거품이 터지기 직전이었던 2007년의 3939건보다도 높은 수치다.
물론 기저효과가 들어간 수치이기는 하다. 지난해의 경우 코로나19 사태가 극심해 뉴욕 도심에서 벗어난 외곽 주택에 대한 수요가 몰렸다. 하지만 코로나19에 대한 공포가 희석된 최근 들어 반대 추세가 형성된 것이다. 밀려있던 거래가 한 번에 터졌다는 얘기다.
뉴욕 맨해튼 아파트의 거래량은 지난해 3분기에 비해 3배나 늘었다. 3분기 맨해튼 아파트의 전체 거래액은 95억달러(약 11조3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돼 거래액 기준으로도 8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이미 이 같은 트렌드는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미국 부동산중개인협회(NAR)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존 주택 매매 건수는 전월보다 2.0% 증가한 599만 건으로 집계됐다. 7월에 팔린 기존 주택 중위가격은 35만9900달러로 전년 동월보다 17.8% 급등했다. 온라인 부동산 정보업체 ‘질로우’에 따르면 6월 댈러스 지역의 일반 주택은 30만6031달러에 매매됐는데 1년 전엔 26만1710달러였다. 세인트루이스연방준비은행 총재 제임스 블라드는 NYT와의 인터뷰를 통해 “주택 시장에 거품이 끼기 시작했다는 생각에 불안하다”고 말한 바 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당시 의회 청문회를 통해 “금리는 주택 수요를 자극하는 하나의 요소지만 주택 공급 측면과 관련해 연준이 할 수 있는 일은 사실상 거의 없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미국에서도 주택 거래 건수는 조금씩 줄어드는 추세다. NAR는 지난 8월 2년 반 만에 처음으로 주택 매매량이 가장 적었다고 발표했다. NAR에 따르면 8월 중고 주택 판매 건수(계절조정치)는 연율 환산으로 전월 대비 2.0% 줄어든 588만 채를 기록했다. 인구 밀도가 높은 남부는 3.0% 감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단독 주택 매매는 1.9% 줄었고 콘도(Condo)나 공동 주택 매매는 2.8% 줄었다.
그렇지만 수요가 줄어들어 거래가 줄어든 것은 아니다. 주택담보대출 은행협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주택 구매를 위한 대출 신청자는 여전히 늘고 있다. 기존 주택 가격 중간값은 35만6700달러에 달해 전년 같은 달에 비해 14.9% 상승했다. 물론 지난 5월에 기록한 23.6%보다 수치는 줄었지만 여전히 10%가 넘는 전년 동월 대비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금융시장에서는 미국 테이퍼링이 조만간 시작되고 이어 미국도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는 환경이 올 거라 전망하고 있다. 완화적 통화정책이 저물면 어떤 식으로든 부동산 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최근 들어 금융과 실물자산인 부동산을 연결하는 고리가 헐거워졌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지만 그렇다고 둘이 완전히 별개로 돌아간다고 보기는 여전히 힘들다.
한국에서도 금리 인상에 따른 집값 하락론이 솔솔 나오고 있는데 미국이라고 그런 얘기가 안 나오라는 법이 없다. 전문가 일부는 “부동산에 거품이 끼었다”고 경고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 미국 부동산에 투자한다면 이 같은 리스크는 감안해야 한다. 적어도 올해 보여준 가격 급등 랠리가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