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히 새로운 은행’. 제3인터넷전문은행인 토스뱅크가 선언한 경영 방향이다. 토스뱅크가 지난 10월 5일 영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시장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홍민택 토스뱅크 대표는 출범 기자간담회에서 “모두가 모바일로 은행을 이용하는 지금도 은행 상품은 30년 전과 비교해 전혀 변화하지 않았다”며 “은행 서비스와 사용자 경험을 새롭게 만들 ‘새로운 은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토스뱅크의 가장 큰 특징은 모든 상품이 단 1개라는 것이다. 여신상품과 수신상품, 카드상품이 각각 1개다. 모바일 금융 플랫폼인 토스 애플리케이션(앱)에 은행 서비스를 담은 것도 특징이다. 토스 앱에서 간편송금부터 은행, 증권, 보험 서비스를 모두 이용할 수 있다.
토스뱅크 출범으로 시중은행과 인터넷전문은행들은 긴장하고 있다. 특히 선두주자인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는 고객들을 잡기 위해 수신 금리를 높이고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 토스뱅크 등 인터넷은행 간의 치열한 경쟁이 펼쳐질 전망이다.
다만 최근 강화된 정부의 대출 규제는 토스뱅크 성장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토스뱅크는 이미 올해치 대출한도를 모두 소진하고, 대출을 중단했다. 내년 1월 초 대출 서비스가 다시 시작된다.
▶토스뱅크가 다른 은행과 다른 점
신용카드사업 직접 진출
토스뱅크의 여수신 상품군은 여타 은행과 다르다. 토스뱅크는 우선 예·적금 상품과 대출상품, 카드상품을 각각 1개씩 선보였다. 수시입출금통장인 ‘토스뱅크 통장’은 금액과 기간 제한 없이 연 2% 금리를 준다. 홍 대표는 “시중은행은 특판을 통해 고금리 상품을 한정해 판매하고 높은 금리를 받으려면 수많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며 “토스뱅크 고객은 아무런 조건도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대신 고객은 자금 운용 목적에 따라 ‘나눠 보관하기’ ‘잔돈 모으기’ ‘목돈 모으기’ 등 기능을 활용하면 된다. 이 같은 기능은 고객이 필요할 때 수시로 껐다 켤 수 있다.
신용대출상품도 한 개다. 최성희 토스뱅크 여신상품 프로덕트오너는 “A은행의 대출상품이 25개, B은행 대출상품이 40개로 직업과 신용도에 따라 수많은 대출상품이 존재해 (고객이) 수많은 상품을 직접 비교하고 발품을 팔아야 했다”며 “토스뱅크에선 고객의 불편함을 없애고 단 한 번의 조회로 최고 수준의 대출을 받는다”고 말했다. 토스뱅크의 대출 금리와 한도는 다른 인터넷은행과 비교하면 경쟁력이 높다. 토스뱅크 신용대출 금리는 지난 10월 5일 기준 최저 연 2.76%, 최고 연 15.00%다. 금리 범위가 넓은 이유는 고신용자뿐만 아니라 중·저신용자까지 끌어안기 위해서다.
신용대출 최고 한도는 2억7000만원(연소득 이내)이다. 언제든지 꺼내 쓸 수 있는 ‘마이너스통장’의 경우 최대 1억5000만원까지 빌릴 수 있다.
토스뱅크는 ‘내 한도 관리 서비스’와 ‘상시금리 인하 서비스’도 도입했다. 내 한도 관리 서비스는 대출 한도와 금리를 언제나 손쉽게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다. 대출 한도가 달라지면 토스뱅크가 고객에게 먼저 알려준다. 상시금리 인하 서비스는 고객이 ‘알림’ 신청을 하면 금리를 낮추는 조건이 되면 고객에게 알려주는 제도다. 소득이 늘거나 개인 신용평가점수가 올랐을 때 은행에 금리를 내려달라고 요구할 권리인 ‘금리인하요구권’을 소비자에게 맞게 도입한 것이다.
체크카드도 단 한 개다. 혜택을 받기 위한 전월실적이나 통합한도 등 조건은 따로 없다. 교통과 택시, 편의점, 커피전문점, 음식 프랜차이즈 등 5개 분야에서 매일 사용할 때마다 300원을 돌려준다. 월 최대 4만6500원까지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 해외에선 어느 가맹점에서 쓰든 결제액의 3%를 돌려준다. 카드에는 결제방향을 알려주는 ‘V팁’ 표식이 추가됐다. 보안성을 높이기 위해 카드 플레이트에서 카드번호도 사라졌다.
수수료도 모두 무료다. 전국의 모든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서 입금과 출금, 송금 수수료가 무료다. 카드나 일회용비밀번호(OTP)를 발급받을 때도 수수료는 없다.
▶토스뱅크, 금융 플랫폼에서 우위 노린다
토스뱅크는 월간활성사용자수(MAU)만 1412만 명에 달하는 강력한 플랫폼인 ‘토스’를 활용한다. 모든 은행 서비스는 토스 앱에서 이용하면 된다. 이는 카카오톡을 이용하는 대신 별도 앱으로 금융업에 진출한 카카오뱅크와 다른 전략이기도 하다. 카카오뱅크는 금융업을 하기 위해 새로운 모바일 앱을 선보였다.
토스뱅크는 또 인터넷은행 가운데 처음으로 신용카드 사업에 직접 진출할 계획이다. ‘돈 되는’ 데이터를 모아 신용평가모형을 고도화하고 플랫폼의 힘을 키우기 위해서다. 홍 대표는 “신용카드에서 파생된 여신상품을 확장하고 (소비자에게) 편익을 제공하는 데 관심이 있다”며 “라이선스 획득을 위해 정부와 초기 단계 논의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사용자 환경·경험(UI·UX)에 대한 토스의 가치도 앱에 담겼다. 고객이 앱에서 ‘통장’을 누르면 토스뱅크로 곧바로 이동한다. 통장에서 ‘채우기’를 누르면 고객이 보유한 은행 계좌가 보인다. 돈을 가져올 계좌를 선택해 금액을 입력한 뒤 확인을 누르면 이체가 완료된다. OTP가 없는 것도 토스뱅크의 특징이다. 은행들은 고액을 이체할 때 플라스틱 OTP를 사용한다. OTP에서 보여주는 일회용 비밀번호가 인증서 역할을 한다. 반면 토스뱅크는 체크카드에 OTP 기능을 넣었다. 카드마다 고유의 근거리무선통신(NFC)이 내정돼 있어 카드를 휴대전화에 갖다 대면 인증이 끝난다. 윤성권 토스뱅크 프로덕트디자이너(PD)는 “카드를 집에 두고 나와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며 “토스뱅크는 안전한 얼굴 인증 기능을 탑재해 신분증의 사진과 얼굴의 특징점을 대조해 큰 금액을 안전하게 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인터넷은행 3파전 ‘고객 혜택 늘려’
토스뱅크 출범으로 인터넷은행 간 경쟁이 가장 치열하게 펼쳐질 분야로 ‘중저신용자 대출’이 꼽힌다. 토스뱅크는 이미 수차례 새로운 신용평가모형을 강조했다. 신용평가모형이란 은행이 대출을 내줄 때 고객의 신용등급을 매기는 시스템이다. 은행들은 통상 신용평가사인 나이스(NICE)평가정보와 코리아크레딧뷰로(KCB) 등에서 받은 개인 신용점수에 각기 다른 정보를 더해 등급을 매긴다.
토스뱅크는 데이터와 기술을 결합해 중저신용자를 위한 대출을 하겠다고 밝혔다. 조민석 토스뱅크 데이터사이언스팀 리더는 “기존 신용평가모형은 안전하게 수익을 얻을 고신용자를 찾는 게 목표라 중저신용자들은 정확한 평가를 받기 어려웠다”며 “토스뱅크는 중저신용자와 사회초년생, 개인사업자 등 신용대출이 필요하지만 소외된 대상을 포괄할 수 있는 모형을 만드는 걸 목표로 했다”고 말했다. 토스뱅크는 이 같은 신용평가모형을 바탕으로 기존 은행권에서 신용대출이 어려웠던 소비자의 30% 이상이 토스뱅크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토스뱅크는 새로운 신용평가모형을 기반으로 올 연말까지 중·저신용자 대출 비중을 34%로 끌어올리는 게 목표다.
토스뱅크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 역시 중저신용자 대출 확대에 집중하고 있다. ‘중저신용자 대출’ 확대를 출범 당시 명분으로 내세웠던 인터넷전문은행들이 막상 고신용자 대출에만 치중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다.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는 올 연말까지 중저신용자 대출 비중을 각각 20.8%, 21.5%로 늘린다는 계획안을 금융당국에 냈다. 카카오뱅크는 지난해 말 기준 1조4380억원인 중저신용자 신용대출 잔액을 올해 말 3조1982억원까지 늘린다. 케이뱅크도 같은 기간 중저신용자 신용대출 잔액을 5852억원에서 올해 말 1조2084억원으로 확대한다. 이를 위해 카카오뱅크는 지난 6월 새로운 신용평가모형을 도입했다. 지난 4년 동안 모은 대출 고객 데이터 2500만 건을 분석한 뒤 이동통신3사가 보유한 통신료 납부정보 등을 추가했다. 내년에는 카카오 공동체가 보유한 비금융정보도 신용평가모형에 추가된다.
중저신용자를 잡기 위한 혜택도 이어지고 있다. 카카오뱅크는 지난 6월부터 진행한 이자 지원 혜택을 연말까지로 연장했다. 중저신용자 고객에게 대출 첫 달 이자를 지원해주는 행사다. ‘중신용대출’과 ‘중신용플러스대출’, ‘중신용비상금대출’ 등을 받은 고객이 지원 대상이다.
중저신용자 대출 외에도 고객을 잡기 위한 신경전도 있다. 케이뱅크는 10월 초 대표 예금 상품인 ‘코드케이 정기예금’ 금리를 0.1%포인트 인상했다. 12개월 이상 연 1.40% 금리는 연 1.50%, 24개월 이상 1.45%였던 금리는 1.55%로 각각 올랐다. 케이뱅크의 금리 인상은 지난 8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한 이후 두 번째다. 당시 케이뱅크는 은행권 중 가장 먼저 정기예금 금리를 0.2%포인트 인상했다.
카카오뱅크 역시 수신 고객을 위해 파킹통장인 ‘세이프박스’ 한도를 기존 1000만원에서 최대 1억원으로 확대했다. 세이프박스는 하루만 맡겨도 연 0.8% 금리를 주는 상품으로, 계좌 속 금고로 손쉽게 잔고를 분리할 수 있다. 카카오뱅크는 앞서 예·적금 기본금리를 0.3∼0.4%포인트 인상하면서 세이프박스 금리를 연 0.8%로 올렸다.
윤호영 카카오뱅크 대표는 올해 ‘중금리·중저신용자 대출 확대’를 위해 공급 규모를 확대한다고 밝혔다.
▶대출총량 규제는 토스뱅크 성장에 걸림돌
다만 토스뱅크 앞날이 밝지만은 않다. 토스뱅크는 당장 영업 시작 9일 만에 대출을 중단했다. 정부의 강력한 가계대출 규제에 따라 연말까지 정해진 대출한도 5000억원이 순식간에 차면서다.
토스뱅크는 10월 14일 홈페이지 공지에서 “올해 말까지 적용되는 가계부채 안정화 대책에 따른 조치로 토스뱅크도 일시적으로 대출 서비스를 중단하게 됐다”며 “토스뱅크 대출을 기다리던 분들께 불편함을 드리게 돼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기존 여신상품의 한도 증액도 불가능하다. 토스뱅크엔 약 150만 명이 줄을 섰으나 몰려들 대출 수요에 대응하느라 나눠서 가입자를 받았다. 이 때문에 토스뱅크 출범을 기다리던 고객들의 불만도 이어졌다. 업계에선 연 2% 금리를 주는 입출금통장의 지속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출범 초기 일시적으로 제공하는 마케팅이라는 의문이다.
홍 대표는 이에 대해 “연 2% 금리는 다른 은행보다 높지만, 현재 조달금리 대비 크게 높은 수준은 아니고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며 “토스뱅크는 시중은행으로 준수해야 하는 건전성과 수익성 등 규제를 모두 준수하며 연 2% 금리를 유지할 수 있게 상품을 설계했다”고 말했다.
적절한 시기에 증자하는 것도 숙제도 남아있다. 제1호 인터넷전문은행인 케이뱅크 역시 증자에 계속 실패하며 1년 넘게 대출을 중단한 바 있다. 케이뱅크는 자본금 확충을 위한 유상증자에 계속 실패하고, 2019년 5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대출을 중단했다. 대주주로 오르려던 KT가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인터넷전문은행법상 대주주 적성 심사에 걸려 자본금을 추가로 납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1년 넘게 영업을 중단한 이후 케이뱅크는 BC카드를 내세워 자본금 문제를 해결했다.
현재 토스뱅크 자본금은 2500억원으로, 최대 대출 규모는 3조원 정도다. 홍 대표는 “향후 5년간 1조원을 증자할 계획”이라며 “서비스 중단 없이 빠르게 더 큰 금액을 증자하는 경우에 대해서도 주주사들과 사전 협의가 돼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