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디즈니’와 일본의 ‘산리오’는 직접 제품(캐릭터 굿즈)을 만들어 판매하는 매출보다 잠자는 동안 통장에 쌓이는 로열티 수입이 10배나 많다. ‘헬로키티’(1974년)는 ‘아기공룡 둘리’(1983년)보다 9년 먼저 태어났지만 전 세계에 알려졌고, 둘리는 한국에서만 안다. 과연 그 이유가 뭘까. 오은진 이너부스 대표는 “한국엔 아직 세계 시장에 알려진 캐릭터가 없다”며 “콘텐츠는 잘 만드는데, 그걸 2차, 3차로 사업화하는 산업 구조가 취약하다”고 꼬집었다. 콘텐츠 강국 7위인 한국이 라이선싱(캐릭터·브랜드 등 IP(지식재산)를 활용해 상품화, 유통, 마케팅 협업을 진행하고 그 대가로 로열티 등을 받는 비즈니스 방식) 역량은 세계 17위에 머무는 이유다. 오 대표는 그 간극에서 사업 아이템을 발견했다. 현재 6000여 개 기업이 이용하는 IP 라이선싱 플랫폼 ‘이너부스(INABOOTH)’의 시작이다. 최근 일본 ‘도쿄 콘텐츠 페어’에 참가하며 “행사 기간 3일 만에 현지 기업 1200여 장의 명함을 받았다”고 전한 그는 “한국도 산리오나 디즈니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Q 이너부스는 일반인에게 낯선 이름인데, 어떤 기업입니까.
A 저희는 B2B 서비스가 주력이죠. 일례로 짱구 캐릭터를 라이선싱하고 싶은 기업이 “어느 회사에 어떻게 연락해야 하냐”고 물으면 바로 그 문제를 해결해줍니다. IP를 가진 권리자와 그걸 사용하려는 기업을 연결하고 관리하는 중개 플랫폼(이너부스), 캐릭터 사업자를 위한 굿즈 제작, 그리고 한국의 유망한 IP를 해외로 수출하는 글로벌 비즈니스, 이 세 축이 이너부스의 사업입니다.
Q IP 비즈니스는 작가, 에이전트, 브랜드 파트너, 팬과 소비자가 모두 성장하는 생태계인데, 이너부스는 그 생태계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겁니까.
A 사실 저희가 정말 하고 싶은 건 이 산업의 판을 키우는 거예요. 한국은 IP를 쓰고 싶은 기업이 어떻게 해야 할 지 방법을 몰라서 기회를 잃는 경우가 종종 있거든요. 수천만원의 예산을 갖고 있는 기업이 정작 캐릭터를 어떻게 라이선싱하는지 몰라 저희를 찾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저희는 그 정보 비대칭을 플랫폼에서 해소하고 있습니다.
Q 사업 부문을 세 축으로 설명했는데, 매출 비중은.
A 창업 초기에는 플랫폼으로 시작했는데, 현재 매출 비중은 대부분 굿즈 제작과 판매에서 나오고 있어요. 2025년 매출이 18억원이었는데, 처음으로 해외 수출 10만 달러를 달성했습니다. 라이선스 무형 로열티 매출과 굿즈 판매 매출이 함께 있는 구조예요. 올해는 두 배 성장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Q 2020년 창업했는데, 원래 IP 업계에서 일한 건 아니었다고 들었습니다.
A 원래는 제품을 만들고 판매하는 일을 했어요. 창업 당시에 디자이너를 고용할 여력이 없어서 ‘우리나라에 좋은 디자인을 보유한 작가들이 많은데 빌려다 쓸 수 없을까’란 생각으로 수소문하다 라이선싱이란 산업을 알게 됐습니다. 스누피 라이선스를 어디에 문의해야 하는지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더군요. 온라인상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어요. 그 불편함이 출발점이었습니다.
Q 이너부스 이전에는 이런 서비스가 없었습니까.
A 시도한 플레이어들은 있었지만 유의미한 회사는 없었어요. 이 시장이 굉장히 전통적이고 폐쇄적이거든요. 글로벌 시장도 마찬가지죠. 저희도 초기에는 IT 백그라운드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2~3년 동안 제품은 만들었지만 알리지 못하고 다시 만들기를 반복했어요. 지금은 저희가 선두에 서서 플랫폼을 만들고 있는데, 최근 리뉴얼을 통해 멤버십 기반의 구독 모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Q 현재 이너부스 플랫폼을 이용하는 기업은 얼마나 됩니까.
A IP를 사용하려는 기업(라이선시)은 2000여 개, IP를 보유한 IP 홀더는 4000여 곳이 가입해 있습니다. 유료 마케팅을 진행한 적이 없는데도 한 달에 5000~8000여 명이 방문하고 있어요. 연간 6만~8만 명 규모입니다.
Q 이 플랫폼을 꼭 사용해야 하는 이유라면.
A 물건은 구입하면 거래가 끝나는데, 라이선싱은 계약기간이 보통 1년 이상이에요. 캐릭터를 활용해 제품을 만들고 판매를 시작하는 데만 반년이 걸립니다. 이후에 매월 혹은 분기별로 캐릭터 사용료를 정산해야 하죠. 이 과정에서 주고받는 문서와 이메일만 80개가 넘고, 자료가 분산되어 있기 때문에 일일이 파악해야 합니다. 게다가 캐릭터 하나에 기업 하나가 아니라 하나의 IP가 20~30개 기업과 동시에 계약하면 관리 부담이 폭발적으로 늘어나죠. 이 병목을 디지털로 해결하는 게 이너부스 플랫폼의 핵심입니다.
Q 우주먼지 등 한국 IP를 해외로 수출하고 있는데, K-캐릭터의 반응이 실제로 어떻습니까.
A 최근 일본 최대 B2B 라이선싱 페어인 ‘도쿄 콘텐츠 페어’에 참가했는데, 응대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일본 회사들이 한국 IP를 찾고 있었어요. 에이전시뿐 아니라 현지 브랜드, 유통사들까지 한국 IP 소싱을 원했고, 행사 기간 3일 동안 받은 명함만 1200장이 넘었습니다. 5년 전까지만 해도 이렇지 않았어요. K-팝과 K-뷰티가 해외로 알려지면서 K-캐릭터에 대한 수요가 함께 커지는 걸 현장에서 체감하고 있습니다.
Q 올해 중국 법인을 설립했는데.
A IP 부문에선 생각보다 훨씬 무서운 국가죠. 라부부 사태만 봐도 그렇거든요. 대단한 세계관이 있던 캐릭터가 아닌데 리테일 시장이 뒷받침되니 껑충 커졌습니다. 중국 기업들은 자국의 제조·유통망으로 어제 만들어진 캐릭터도 스타로 만들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게 됐어요. 그 시장에 올라타야 합니다. K-캐릭터를 중국의 유통망에 태워 전 세계로 내보내는 것, 그게 중국 법인을 설립한 이유예요.
Q IP 강국인 일본과 중국 시장에서 K-캐릭터를 바라보는 시선은 어떻습니까.
A 중국 시장은 시스템이 잘 구축된 일본 캐릭터를 더 선호합니다. 산리오, 포켓몬을 비롯해 일본 개인 작가들의 IP가 이미 선점하고 있어요. 그 안에서 경쟁해야 하는데, 한국 작가들이 홀로 글로벌 라이선싱을 진행하긴 어렵거든요. 우선 정보가 제한적이고 상대 기업을 믿을 수 있는지 확신이 없다 보니 계약이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신뢰의 가교 역할을 저희가 하고 있는거죠.
Q IP 비즈니스에서 꼭 챙겨야 할 요소를 짚어주신다면.
A 우선 정답이 없는 시장이에요. 유명한 캐릭터를 쓴다고 제품이 무조건 잘 팔리는 것도 아니거든요. 가장 중요한 건 타깃에 맞는 IP를 찾는 겁니다. IP 홀더 입장에선 금융, 카드, 뷰티, 스타트업 앱 서비스 등 과거에는 없던 신규 산업군을 돌아봐야 합니다. 라이선싱을 쓸 수 있는 시장이 훨씬 넓어졌어요.
Q 이너부스만의 성장 공식이라면.
A 3년 전부터 한국의 유망한 IP를 직접 발로 뛰며 중국과 일본에 연결하는 사업을 시작했어요. 그 과정에서 이 산업이 돌아가는 구조를 빠르게 흡수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쌓인 글로벌 네트워크와 계약 노하우를 다시 플랫폼으로 연결하는 게 올해의 핵심 과제죠. 창작의 영역과 창작물을 비즈니스로 끌어오는 건 점점 더 다른 영역이 되고 있어요. 개인 창작자가 혼자 글로벌 라이선싱까지 하기엔 한계가 있습니다. 이너부스를 이용하세요(웃음).
Q 현재 투자 상황이 궁금해지는데요.
A 지난해 스트롱벤처스와 신용보증기금으로부터 11억원(프리A)을 투자받았어요. 연간 매출 성장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올해는 시리즈 A를 목표로 하고 있는데, 글로벌 VC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너부스의 타깃이 가장 큰 시장이 미국이어서 미국 내 사무 공간을 마련하는 것도 준비 중입니다.
Q 분명 AI가 IP 비즈니스를 지배하는 시대가 오게 될 텐데요. 이건 기회일까요.
A 저희 플랫폼에 들어오는 IP 홀더는 어제 만든 캐릭터를 갖고 있는 분들이 아니에요. 수년간 수만 명의 팬덤을 보유한, 진짜 지식재산권이 된 자산들이죠. AI로 쉽게 생성된 캐릭터와는 결이 다른 시장입니다. 저희는 오히려 AI를 비즈니스 과정에 활용하는데요. 창작자가 IP를 라이선싱하려면 브랜드 가이드라인 등 수많은 문서가 필요한데, 그걸 만드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거든요. 그 부분에 AI를 접목해 창작자가 더 빨리 비즈니스에 진입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선 기회죠.
Q 미국의 디즈니, 일본의 헬로키티처럼 한국에 글로벌 장수 IP가 없는 이유를 꼽는다면.
A 우린 콘텐츠 자체는 정말 잘 만드는데, IP를 2차, 3차로 사업화하는 산업 구조가 취약해요. 뽀로로 외에는 세계 시장에 알려진 캐릭터가 사실상 없거든요. 법률만 안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IP를 분석하고 이종 산업 간의 이해도를 갖추고, 전략적으로 협의·계약을 이끌어내는 전문 인력이 필요합니다.
Q 흔히 스타트업의 목표를 IPO나 엑시트라 말하곤 하는데, 어떻습니까.
A 사업하다 보면 매번 부족함을 알게 되고, 그걸 이겨내는 과정을 반복하게 되는데, 좀 더 똑똑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성장한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죠. 단, 지금은 미국에 진출해 시장을 넓히는 게 목표입니다.
[안재형 기자 · 사진 류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