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시리즈’는 BMW의 플래그십 세단이다. 보통 플래그십(Flagship)이란 단어는 한 기업이 내세우는 주력 상품이나 대표 상품을 수식할 때 사용한다. 그러니 7시리즈는 BMW를 대표하는 가장 크고 성능 좋은 세단이다. 당연히 BMW가 공들여 완성한 첨단 기술이 모두 적용됐다. 엔진 부터 내부 시트의 촘촘한 박음질까지 어떻게 하면 세련되고 고급스럽게 완성할 수 있을까란 고민이 묻어난다. 물론 이 모든 행위로 완성된 제품은 가격부터 남다르다. 국내시장에서 가장 선호도가 높은 ‘740i xDrive’의 가격이 1억 7600만~2억 90만원에 이른다. 그럼에도 이 차, 잘 팔린다. 그냥 잘 팔리는 게 아니라 올 1월부터 10월까지 수입 플래그십 세단 부문에서 판매량 1위에 올랐다. 전기차로 거듭난 ‘i7’까지 포함한 총 판매량은 4892대. 전년 동기(3847대) 대비 약 27.2%나 증가한 실적이다. 업계에선 연말까지 5000대 이상 판매가 이미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덕분에 BMW 본사의 관심도 남다르다. 중국, 미국에 이어 전 세계에서 7시리즈가 가장 많이 팔리는 국가이니 신경을 안 쓸래야 안 쓸 수가 없다. 국가 면적 대비 판매량을 따지면 세 국가 중 단연 1위다. 그만큼 설비나 인프라, 마케팅 측면에서 집약적인 투자가 가능하다. BMW그룹코리아 측은 ‘BMW그룹의 전략적 거점’이란 정돈된 단어를 사용하곤 한다. 테스트베드계의 바로미터라 할 수 있는 한국에서 통해야 세계 시장에서 통한다는 의미다. 또 하나, 국내시장에서 독보적인 럭셔리로 군림해 온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의 아성을 무너뜨린 사실도 한몫했다. 한국수입차협회(KAIDA)의 자료를 살펴보면 i7을 포함한 시리즈는 올 1월부터 8월까지 총 3992대가 판매됐다. 반면 ‘EQS’를 포함한 S클래스는 2915대가 판매되며 1000대 이상의 차이를 보였다. 7시리즈의 고공행진을 이끈 주역은 ‘740i xDrive’다. 올 10월까지 총 2504대가 판매되며 전년 동기(1876대) 대비 약 33.5%나 성장했다.
7시리즈 전체 판매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수치다. ‘740d xDrive’도 전년 동기(997대)보다 무려 42.3%(1419대)나 더 팔리며 힘을 보탰다. 과연 하이엔드 소비층이 7시리즈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7시리즈의 첫 모델은 1977년에 첫선을 보였다. 당시 BMW의 상징이던 원형 트윈 헤드라이트, 키드니 그릴, 솟아오른 후드 등 전면부 디자인이 모두 이때 완성된다. 1세대 7시리즈는 거대한 차체와 운전자의 편의를 위해 디자인된 운전석, 파워풀한 엔진, 최신 섀시 기술이 적용돼 ‘스포티한 럭셔리 세단’이란 수식어를 얻었다. 세계 최초로 전자식 속도계와 속도 감응형 파워스티어링 시스템, 전동 조절식 아웃사이드 미러, 전자식 데이터 장치 체크 컨트롤 등이 적용돼 그야말로 화제가 됐다. 독일 바이에른주의 딩골핑 생산공장에서 주문량을 감당할 수 없었다는 후문이 전설처럼 전해진다. 당시 반년 만에 2만 대, 이듬해 3만 5745대, 이후 2년 간 3만 5000대 이상의 생산량을 기록했다. 1세대 모델의 총 판매량은 28만 5000여 대. 1986년 2세대가 등장하며 단종됐다. 새롭게 등장한 2세대 모델은 더 넓어진 키드니 그릴, L자형 후미등이 눈에 띈다. 이후 BMW의 새로운 상징이 됐다. 7시리즈 최초로 롱 휠베이스 에디션이 함께 출시됐는데, ASC 슬립 컨트롤 시스템, 전자식 액셀러레이터와 드래그 토크 컨트롤이 세계 최초로 적용됐다. 1987년 발표된 ‘750i’는 1930년대 이후 독일에서 처음으로 12기통 엔진이 장착된 세단이었다. 2세대 모델은 8년간 총 31만 1000대가 판매됐다.
1994년에 공개된 3세대는 외관상으로 큰 변화가 없었지만 1999년에 세계 최초로 V8 디젤엔진과 커먼레일 분사 시스템을 동시에 적용한 ‘740d’를 선보이며 이목이 집중됐다. 이 모델의 최고 출력은 245마력, 최고속도는 242㎞나 됐다. 3세대 모델은 총 32만 8000여 대가 판매됐다. 2000년대 들어서며 7시리즈는 변신을 거듭한다. 2001년 4세대 모델은 BMW iDrive라는 콘셉트와 현대적인 디자인 언어로 무장했다. 새롭게 개발된 8기통 엔진이 탑재된 ‘735i’와 ‘745i’는 세계 최초로 6단 자동변속기가 기본 적용됐다. 4세대 7시리즈는 2004년에 럭셔리카 부문 글로벌 판매량 1위를 차지했고, 출시 단 4년 반 만에 3세대가 기록한 전체 판매량을 경신했다. 2005년 ‘730d’ ‘745d’가 출시 이후 총 34만 4000여 대가 판매됐다.
2008년에 모습을 드러낸 5세대 모델은 ‘7시리즈 최고의 성공작’으로 불린다. 세 가지의 서로 다른 엔진 버전으로 제작된 ‘750i’ ‘740i’ ‘730d’를 선보였는데, 차량 내 인터넷 지원 등 당시로선 혁신적인 인포테인먼트 기능들이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자극했다. 2009년에는 두 번째 디젤 모델인 ‘740d’와 ‘액티브 하이브리드 7’이 등장한다. 특히 액티브 하이브리드 7에 적용된 어드밴스드 드라이브 시스템은 8기통 내연기관 엔진과 전기모터가 동시 혹은 교차 작동하며 한층 진일보한 성능으로 평가됐다. 5세대 모델은 총 37만 4000여 대가 판매됐다. 2015년에 등장한 6세대 모델은 좀 더 커진 외관에 터치 디스플레이와 제스처 콘트롤, 레이저 라이트 등 신기술을 선보이며 ‘드라이빙 럭셔리’의 기준을 제시한다. BMW가 6세대 7시리즈를 통해 새롭게 선보인 전자기계식 능동형 롤 안정화 장치인 ‘이그제큐티브 드라이브 프로’는 고속으로 코너를 빠져나갈 때에도 정확하게 차체의 기울어짐을 제어했다. 덕분에 가장 큰 세단이 더 안정적이고 효율적으로 움직였다.
최고급 모델답게 외장 색상과 내장재 선택에서도 희소성과 차별성을 갖춰 고급스러움을 더했다. 2019년엔 6세대 부분변경 모델도 출시된다. 이전보다 약 40%가량 커진 키드니 그릴이 전면부에 장착됐는데, 그간의 디자인과 달리 호불호가 갈리기도 했다. 넓은 공간과 엄선된 소재, 다양한 디자인 요소들로 마무리된 실내는 좀 더 고급스럽게 변신했다. 퀼팅 처리한 최고급 나파 가죽 시트와 통풍, 메모리 기능을 포함한 전동 조절식 컴포트시트, 4존 에어컨, 인디비주얼 가죽 대시보드가 모든 7시리즈에 기본으로 적용됐다. 6세대 모델은 총 35만여 대가 판매되며 2022년 7세대에게 바통을 넘겨줬다.
앞서 밝혔듯 한국은 BMW그룹 내에서 전 세계 3번째로 7시리즈가 많이 판매되는 시장이다. BMW의 대형 모델 제품군을 의미하는 ‘럭셔리 클래스’(X7, XM, 8시리즈, M8 등)로 범위를 확대해도 역시 세계 3위다. BMW그룹코리아 측은 “디지털 기능에 능숙하고 첨단 기술에 관심이 높은 중장년층이 늘면서 BMW 럭셔리 클래스에 대한 선호가 꾸준히 늘고있다”며 “그 중 7시리즈는 외관의 존재감과 실내의 초대형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 대한 선호도가 확실하다”고 판매량의 근거를 제시했다. 2022년 4월에 공개된 7세대 7시리즈를 살펴보면 이러한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키드니 그릴에 대한 호불호는 여전하지만 간결해진 후면부 디자인은 좋은 평가를 이끌었다. 여타 BMW 차량에도 적용된 스와로브스키의 크리스털 기어와 조그다이얼 겸용 터치 패드가 탑재됐고, 버튼을 길게 누르면 자동으로 열고 닫히는 매립형 도어핸들도 멋스럽다. 무엇보다 주목받은 건 뒷좌석 천장에서 펼쳐져 내려오는 ‘BMW 시어터 스크린’이다. 32:9 비율의 31.3인치 스크린은 나만의 극장이라 불릴 만큼 압도적이다. 넷플릭스나 유튜브 등 OTT 플랫폼을 내장해 별도의 기기 연결 없이 직접 구동할 수 있고, HDMI 연결을 통한 외부기기 콘텐츠 재생도 가능해 움직이는 회의실로도 활용할 수 있다. 모델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바워스&윌킨스 다이아몬드 서라운드 사운드 시스템’(4D)이나 비행기 일등석을 연상케 하는 뒷좌석 ‘이그제큐티브 라운지’, 탑승객의 흔들림을 최소화하는 섀시 기술인 ‘이그제큐티브 드라이브 프로’까지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보이는 게 없다.
BMW그룹코리아 측은 “7시리즈의 최상위 모델인 750e xDrive, i7 xDrive60, i7 M70 xDrive에 제공되는 ‘BMW 인디비주얼’ 서비스를 이용하면 외관 디자인, 외장 컬러, 익스테리어 라인, 시트 소재와 컬러 등 4가지 항목으로 구분해 최대 2만 2000가지 조합을 개인화 옵션으로 구성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수입차 업계의 한 관계자는 “프리미엄 대형 세단의 판매량은 개인화 옵션이 얼마나 다양한지가 중요하다”며 “하이엔드 고객들이 원하는 차별화된 혜택이 구매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고 전했다. BMW그룹코리아는 럭셔리 클래스 구매 고객을 대상으로 프리미엄 멤버십 서비스인 ‘BMW 엑설런스 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프랑스 칸 영화제 VIP 참석, 유럽과 미국의 남자 골프 대항전 ‘라이더 컵’ 초청 등 다양한 혜택이 주어진다.
그런가 하면 판매량의 성장과 함께 올해 30주년을 맞은 BMW그룹코리아의 역할도 주목받고 있다. 독일 본사가 100% 투자해 설립한 수입차 업계의 첫 현지 법인이다. BMW가 국내에 진출한 1995년의 수입차 판매량은 6921대에 불과했다. 그 해 BMW의 판매량이 700여 대에 불과할 만큼 작은 시장이었다. 지난 30년간 국내 수입차 시장은 약 35배나 성장했다. 더불어 BMW그룹코리아도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한다. 2011년에 수입차 브랜드 최초로 연간 판매량 2만 대 시대를 열었고, 2013년에는 3만 대, 2014년에는 4만 대를 넘어섰다. 2015년까지 ‘7년 연속 수입차 1위’라는 기록도 세웠다. 2023년에 총 7만 7395대를 판매하며 8년 만에 1위 자리를 탈환한 BMW그룹코리아는 2024년에 이어 올해도 1위 수성이 예상된다. 국내 완성차 업계의 관계자는 “수입 브랜드가 한 국가에서 사랑받으려면 첫째 동반 성장의 의지와 그에 걸맞은 투자가 이어져야 한다”며 “BMW의 경우 영종도의 드라이빙센터나 국내 관련 업체들과의 협업이 주목받는 요소”라고 지목했다. 그는 “2018년 화재 사고 이후 결함 은폐 의혹이 제기되며 판매량이 급감하기도 했지만 한국 고객을 위한 맞춤형 설계나 5년 보장을 기본으로 하는 보증 등 다양한 정책적 시도가 신뢰 회복으로 이어졌다”고 덧붙였다.
[안재형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83호 (2025년 1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