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영의 영화로 보는 유럽사] (11) 근대 계몽주의 | 영화 `로얄 어페어`와 군중에 의해 실패한 개혁
입력 : 2020.11.03 16:08:10
수정 : 2021.08.11 14:21:18
17, 18세기 유럽에서 일어난 계몽사상은 인간의 이성으로 문화와 문명을 발달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다시 말해 이성의 힘으로 자연과 인간관계, 사회와 정치문제를 객관적으로 관찰해 보편적 진리를 발견하려는 시대정신이라고 볼 수 있다. 계몽사상은 인간의 존엄과 평등, 자유권을 강조하고, 전제군주와 종교의 족쇄로부터 인간 이성의 해방을 주장했다. 이러한 계몽사상은 국가·정부의 역할을 바꾸는 데도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정부를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고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식하게 했다. 이런 연유로 계몽사상은 17, 18세기 시민혁명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당시 최대의 정치적 사건으로 손꼽히는 프랑스 혁명으로 이어졌다.
영국이나 프랑스와는 달리 시민계급의 성장이 늦거나 자본주의적 발전이 뒤진 국가에서는 계몽군주들이 출현했다. 이들의 개혁은 비록 전제군주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스스로 계몽사상을 배우거나 계몽사상가의 힘을 빌어 농업을 개량하고 교육, 정치, 경제 제도의 개혁을 시도하고자 했다.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가 볼테르를 초빙하여 계몽정치를 실현하려고 했던 일이나 오스트리아 요제프 2세가 루소의 이론을 상당 부분 받아들였다는 사실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 시기 덴마크에서는 독일의 한 계몽사상가가 국왕의 주치의로 왕실에 들어가 봉건적인 구습에 반대하는 혁신적인 개혁정책을 단행한 일이 발생했다. 계몽사상에 기반한 그의 정책은 대중의 존엄과 자유권을 쟁취하는 데 성공하는 듯했으나, 왕비와의 염문으로 개혁은 대중의 외면을 받고 실패했다. <로얄 어페어>는 18세기 덴마크에서 일어난 이러한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시대극이다.
▶계몽가와 왕비의 사랑과 파멸 다뤄
<로얄 어페어(A Royal Affair, 2012)>는 다음과 같은 자막으로 시작한다. “18세기 유럽에서는 귀족의 압제와 종교 세력이 맹위를 떨쳤다. 하지만 변화의 바람은 불기 시작했다. 지식인과 자유사상가들이 개혁과 자유를 요구하는 계몽주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1766년 이성과 자유에 관한 계몽서적을 즐겨 읽던 영국의 캐롤라인 마틸다 공주는 예술을 좋아한다고 알려진 덴마크 왕 크리스티안 7세에 대한 부푼 마음을 안고 정략결혼을 한다. 그러나 왕은 조울증과 정신착란을 앓고 있는 데다 창녀에게 빠진 난봉꾼이었다. 왕가를 이어야 하기에 왕세자를 낳지만 왕에게 질려버린 왕비는 하루하루 외롭고 불행한 생활을 이어간다. 왕의 증세가 날로 심해지자 궁에서는 왕의 주치의를 찾게 되고 독일 출신 의사인 요한 스트루엔시가 궁에 들어오게 된다. 요한은 자유권과 관련된 책을 출간할 만큼 투철한 계몽사상가였지만 궁에 들어오기 위해 그 사실을 숨긴다. 그는 왕의 외로움을 이해하고 돈독한 관계를 키워가면서 금세 왕의 신임을 얻고 왕실 안에서 영향력을 키워간다.
세속적 인물로 요한을 의심했던 왕비는 요한의 서재에서 루소 책을 발견하고 그와 계몽사상을 공유하면서 새로운 감정이 싹트게 된다. 요한은 왕과 왕비의 신임을 바탕으로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정치에 관여하기로 하고 개혁법안을 하나씩 실행해간다. 당시 귀족으로 구성된 덴마크 의회는 이러한 개혁법안을 반대하고 요한을 국외로 추방하려고 했지만, 요한을 신임한 왕은 의회를 해산한다. 이후 실권을 잡은 요한은 예방접종 실시, 태형제도 폐지, 출판의 자유 보장, 보육원 설립, 검열 폐지 등 당시로선 획기적인 개혁법안을 통과시킨다.
개혁이 급속도로 추진되는 과정에서 요한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귀족들은 왕비와 요한의 관계를 눈치 채고 이들을 궁에서 몰아낼 계략을 꾸민다. 결국 요한은 왕비와 함께 왕을 시해하려 했다는 누명을 쓰고 사형당하고 왕비는 이혼당해 유배지에서 병을 얻어 죽어간다. 요한이 제거되자 덴마크는 다시 중세로 후퇴한다. 하지만 왕비가 유언으로 남긴 계몽정신을 이어받아, 아들인 프레데리크 6세는 통치 55년간 요한의 법안 대부분을 부활시키고, 농노제 폐지와 소작농 해방도 실현했다는 자막으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영화 속에 나타난 봉건 구습의 개혁법안
<로얄 어페어>는 대중을 짓눌렀던 봉건 구습의 모습과 이를 타파하는 개혁법안들을 개연성 있게 연결시켜 중세와 근세가 공존했던 18세기를 체감할 수 있게 한다. 먼저 중세도시는 오물과 악취로 뒤덮인 도시로 표현된다. 영화 속에 나오는 덴마크 거리는 쥐들이 우글거린다. 요한의 개혁정치는 거리의 청소부를 3배로 늘리는 작업부터 시작한다. 비용을 충당할 수 없다는 의원들의 반대가 있지만 귀족의 연금으로 청소비용을 충당한다.
검열(檢閱)은 다양한 생각을 공유하면서 지식을 추구하는 과정을 가로막는 커다란 장애물이지만, 이 시대에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영화 초반부 캐롤라인이 결혼을 위해 덴마크에 도착했을 때 그녀가 갖고 온 계몽서적은 모두 빼앗긴다. 표현의 자유는 고사하고 마음대로 책을 읽을 수도 없었던 것이다. 검열은 요한이 실권을 잡은 후 사상과 신념의 자유를 심어주기 위해 폐지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검열폐지로 인해 요한 자신의 치부가 만천하에 공개되고 그것을 막기 위해 다시 검열을 부활시키는 상황이 연출된다.
봉건적 구습의 또 다른 유형으로는 태형이나 고문과 관련된 장면이 나온다. 요한이 우울한 여왕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말을 타고 함께 야외로 나갔다가 고문에 짓이겨 죽은 한 남자를 본다. 그 남자는 심하게 맞아 형체가 어그러졌고 나무에 묶여 있었다. 왕비는 놀라지만, 요한은 이 남자가 도둑질 같은 잘못을 해서 주인에게 벌을 받았을 것이고 귀족들의 사유지에서 가끔 발생하는 일이며 현재로서는 막기 어렵다고 말한다. 이후 개인의 신체가 함부로 구속되지 않을 권리인 ‘태형 폐지’나 ‘고문 금지’ 법안은 요한이 실권을 잡은 후 통과된다. 그러나 요한이 체포된 후 새 내각에서 고문이 다시 부활되고 요한이 고문에 못 이겨 거짓 자백을 하는 장면에서 개혁 실패의 참담함이 느껴진다.
영화는 과학보다 신앙을 중시했던 구시대의 모습도 보여준다. 왕세자가 천연두에 걸리자 새로운 치료를 받을지 말지를 놓고 논쟁이 벌어진다. 요한은 당시 발명된 종두법을 이용하자고 주장하지만 왕실에서는 왕위를 계승할 목숨은 하느님께서 지켜주실 거라며 반대한다. 왕비의 결정으로 종두법이 시행되고 치료는 성공한다. 이 일을 계기로 왕비는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도록 시립병원에서 천연두 예방접종을 확대하는 것을 건의하고, 이 법안은 요한의 섭정 속에서 통과된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최고의 봉건적 구습은 허수아비 왕의 존재이다. 국왕이 정신질환에 걸려 국정을 보살필 수 없지만 명목상의 권력은 다 가졌기 때문에 섭정의 문제점이 그대로 드러난다. 많은 폐단을 갖고 있던 군주제는 18~19세기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입헌군주제나 공화제로 바뀌어간다.
▶계몽사상가 볼테르마저 인종차별주의자라고?
영화에서는 계몽주의 운동의 선구자인 볼테르도 등장한다. 요한의 섭정 속에 개혁정책이 빠르게 추진되면서 왕은 그로부터 편지를 받는다. 볼테르의 편지 “떠오르는 태양이자 북쪽의 빛이여, 그대의 무한한 지혜를 따르리라”는 내용으로 국왕을 계몽군주로 칭송하고, 왕은 매우 기뻐한다. 볼테르는 프랑스의 대문호인 빅토르 위고가 “이탈리아에 르네상스가 있다면 프랑스에는 볼테르가 있다”는 말을 남길 정도로 프랑스를 대표하는 계몽운동가이다. 그는 정부와 가톨릭교회를 비판하는 많은 글을 발표했고, 항상 자신과 다른 것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 선구자이다. 그러나 그마저 ‘인종’이라는 측면에서는 차별의 벽을 넘지 못한 듯하다. 지난 6월 파리에 있는 볼테르의 동상이 빨간색 페인트를 뒤집어썼는데 재산 중 일부를 식민지 무역으로 모았다는 이유에서였다.
흑인이 끔찍한 노예생활을 할 때가 인본주의가 고개를 들던 계몽주의 시대였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칸트 또한 흑인을 인류 등급에서 가장 바닥에 두었다고 한다. ‘이성’을 중시한다는 계몽사상이 지금의 이성으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프레임에 갇혔던 것이다. 이 때문인지 이성으로 문명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계몽사상을 전적으로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너 자신을 알라’며 무지를 일깨워주는 소크라테스의 말이 더 계몽적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