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프로젝트] 호미반도 해안둘레길|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 불쑥 솟은 해 보며 빌어보는 새해 소망
안재형 기자
입력 : 2019.12.31 15:18:42
수정 : 2019.12.31 15:18:56
서울에서 꼬박 5시간 반을 운전해 도착한 포항은 잠잠했다. 저녁 7시 무렵 도착한 ‘영일대해수욕장’은 한겨울인데도 밤바다를 즐기려는 이들이 드문드문 백사장을 산책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어쩐지 한없이 고요했다. 파도가 잦아든 동해바다의 고요함 탓인지 울긋불긋 네온사인 휘황찬란한 해수욕장 유흥가도 불빛만 요란할 뿐 드나드는 이들은 이상하리만치 차분했다.
“저녁 잡샀는교?”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쑥 들어온 질문에 한참을 쳐다봤다. 처음 보는 객에게 밥 먹었냐고 묻는 품이 낯설지 않았다. 그냥 인사치레일 수도 있고, 먹지 않았다면 알아봐주겠다는, 나름 친절한 이 한마디가 반가운 건 익히 알고 있는 포항의 일미(一味) 때문이다. 물회가 유명한 포항은 겨울이면 과메기에 대게, 문어까지 고급 해산물이 제철이다.
“그런데 해수욕장이 조용하네요.”
괜한 걸 물었나 싶었다. 이번엔 듣는 이가 빤히 쳐다본다. 아니 아직 그 이유를 모르냐는 듯.
“동백꽃 때문 아니에요. 저 호미곶 반대편에 구룡포는 아주 북적북적합니데이. 그리 갔으면 사람 구경 좀 할 근데.”
아차, 그렇지. 요즘 포항의 핫플레이스가 호미곶 구룡포란 걸 깜빡했다. 막 내린 TV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이 이곳에서 촬영되면서 전국에서 관광객이 몰린 탓이다. 주 촬영지가 구룡포항 바로 뒤편에 있는 일본인 가옥거리였는데, 주인공 동백의 가게부터 용식이 엄마의 게장집까지 드라마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가게가 이곳에 있다. 드라마의 포스터 촬영이 진행된 곳은 구룡포공원의 계단. 동백과 용식이 서로 마주보고 웃는 장면을 똑같이 따라하는 커플을 보는 건 지금 이곳에선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숙소 주인의 말을 빌면 “누구나 따라하는” 일상이 됐다. 그런 이유로 주변 관광지가 여느 때보다 한산해졌다는, 비과학적이지만 나름 논리적인 주장을 뒤로하고 백사장으로 나섰다. 해수욕장 건너편에 붉은 조명으로 한껏 멋을 낸 포스코 포항제철소가 밤바다를 밝히고 있었다.
일출을 보기 위해 호미곶 해맞이 광장을 찾은 이들
▶우뚝 솟은 손 위에 덩그러니 놓인 해 하나
새해를 맞아 경북 포항을 찾은 건 당연히 일출 때문이다. 동해안 일대 어딜 가도 볼 수 있는 해돋이를 꼭 이곳에서 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호미곶이 바로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호미곶에선 매년 12월 31일 오후부터 1월 새해 아침까지 이틀간 ‘호미곶 한민족해맞이축전’이 펼쳐진다. 1999년부터 개최했으니 21년이나 된 국내 대표적인 해맞이 축제다.
새벽 6시 반…. 평일 오전 해맞이광장은 7시 18분부터 시작되는 일출을 보기 위해 모여든 이들로 분주했다. 바다 위에 조성된 손 조형물(상생의 손)과 가까운 광장 끝 쪽은 매서운 바닷바람에도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 서 있었다. 바다 앞 편의점에 들러 물어보니 매년 연중무휴로 펼쳐지는 풍경이란다. 드디어 불쑥 솟은 해 하나…. 휴대폰 카메라 들이밀며 한 해 소원을 비는 이들의 얼굴엔 미소가 한가득이다. 근심걱정은 이미 남의 나라 얘기다. 이렇게 한 해가 저물고 또 새로운 해가 시작된다.
호미곶은 우리나라 지도를 호랑이로 표현했을 때 꼬리 부분에 해당한다. 그래서 이름도 호미(虎尾·호랑이꼬리)다. 이 호미곶이 내려다보는 바다가 영일만(迎日灣)인데, 이름 그대로 해를 맞이하는 바다다. 그리고 이 영일만을 끼고 도는 호미반도 일대에 이름하여 ‘호미반도 둘레길’이 조성됐다. 걷는 내내 바다를 바라보며 천혜의 자연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올레길이다.
서쪽의 동해면과 동쪽의 호미곶면, 구룡포읍, 장기면에 걸쳐 있는데, 이번엔 새벽 일출도 볼 겸 호미곶 해맞이광장에서 시작해 4코스에서 3코스로 가는 길을 역주행했다.
▶아기자기한 항구와 해수욕장이 이어지는 해안길
호미반도 둘레길의 4코스 호미길과 3코스 구룡소길은 각각 5.3㎞와 6.5㎞의 짧지 않은 길이다. 그런데 이 길, 지루하지 않다. 게다가 구불한 산길이 아니라 경사가 심하지 않아 비교적 어렵지 않게 걸어나갈 수 있다. 그렇다고 쉽게 보고 덤볐다간 큰 코 다친다. 우선 해맞이광장에서 독수리바위로 이어지는 호미길은 바닷가를 걷다보면 이육사의 청포도 시비, 국립등대박물관이 눈에 들어온다.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걷다보면 포항 항구의 여유로운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언뜻 제주의 어느 곳을 닮은 것도 같고 통영 언저리 어딘가를 닮은 것도 같다.
장군바위, 구룡소, 천연기념물인 모감주나무로 이어지는 3코스 구룡소길로 들어서면 작은 낚시배들의 출어준비가 분주하다. 항구 곳곳엔 벌써부터 예닐곱 개의 낚싯대를 드리운 이들이 삼삼오오 잡아 올린 물고기를 비교하며 한바탕 대결 중이다. 걸어 나가는 둘레길의 한켠으로 자전거 둘레길도 이어지는데, 자전거길은 산을 타고 넘어야 하기 때문에 웬만해선 도전하기가 쉽지 않은 코스다. 시간과 체력이 허락한다면 2코스 선바우길도 추천한다. 해안선을 따라 선바우 데크로드가 이어지는데, 선녀가 내려와 놀았다는 하선대와 힌디기, 검등바위, 구멍바위, 흥환해수욕장 등 관광명소가 이어지며 눈을 즐겁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