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영화가 아닌 척 유령처럼 떠도는 시대다. 영화는 죽지 않고 사람들 곁을 머물고 배회한다. 이 모든 것은 ‘왓챠’와 같은 VOD서비스, ‘넷플릭스’와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 등등 ‘OTT(Over the Top: 인터넷을 통해 방송 프로그램과 영화, 미디어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통해 가능하게 됐다. 바야흐로 영화와 드라마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게 됐다.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이번 호에 2014년에 만들어져 화제를 뿌렸지만 방영 당시에는 국내에서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던 8부작 미드 <트루 디텍티브2>를 소개하기 위함이다. 이 드라마 아닌 드라마, 영화보다 더한 드라마는 현재 왓챠 서비스에서 만날 수 있다. 올 여름처럼 극장용 영화들이 맥을 못 출 때, 작품들의 구질이 별로일 때는, 넷플릭스와 왓챠를 넘나들 수밖에 없다. 올 여름 식이라면 극장은 사멸, 아니 자멸할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5년 전 작품이지만 생생한 마니아型 미드
<트루 디텍티브2>는 5년이 지난 지금도 구작(舊作)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고 세월이 더 흘러도 언제든 생생한 작품일 것이라는 점에서 ‘유령’이라는 표현이 맞다. 하지만 그보다는 1974년에 로만 폴란스키가 만든 전설적인 영화 <차이나타운>, 아니 그보다는 그 영화에 나왔던 주연배우 잭 니콜슨이 1990년에 직접 속편 격으로 만든 <불륜의 방랑아(The Two Jakes)>를 빼어 닮았다는 점에서 ‘유령’의 느낌을 확실하게 전달한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차이나타운>이라는 영화를 알고 있어야 올 수 있는 감(感)이다. 결국은 극히 마니아型 미드라는 것이다. 특히 <불륜의 방랑아>는 웬만한 영화광도 놓친 작품일 것이다. 영화는 늘, 보는 만큼 보인다. 무엇보다 작품들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경우가 많다. 지나온 시절의 흐름과 그 역사를 아는 사람일수록 영화를 더 잘, 무엇보다 더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법이다.
<트루 디텍티브2>는 시즌1과도 아주 다르고 시즌3과는 더더욱 다른 작품이다. 개인에 따라서는 매튜 맥커너히와 우디 해럴슨이 나왔던 시즌1을 더 좋아할 수도 있겠다. 시즌1이 극도의 누아르 분위기라면 시즌2는 완벽한 하드보일드다. 취향에 따라 호오가 갈린다는 얘기다. 시즌2에는 일단 나오는 형사가 셋이라는 점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레이 벨코로(콜린 파렐)가 메인이고 애니 배저라이즈(레이첼 맥아담스)와 우드로(테일러 키취)가 나온다. 이들은 소속이 다르다. 주 검찰 요원, 시 경찰, 고속도로 순찰대 등등, 뭐 그런 식이다. 배경은 LA다. 도심 외곽의 카지노와 라스베이거스로 가는 길목의 황야 혹은 사막 지대가 교차된다. 어느 날 고속도로 변에서 눈알이 뽑힌 엽기적인 사체가 발견되는데, 형사이자 경찰인 세 명은 이 사건으로 얽히게 된다. 시체는 LA지역의 유명 인사이자 이런저런 범죄에 얽혀 있을 것으로 의심돼 수사 당국으로부터 진즉에 요주의 대상이 됐던 인물인 벤 캐스퍼다. 그런데 주(州)가 됐든 시(市)가 됐든 이상하게도 캐스퍼 살인사건을 해결할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 세 명의 형사로 하여금 서로를 의심하게 만들면서 사건을 오히려 ‘묻어 버리기’ 위해 ‘캐고 다니게’ 한다. 본말이 전도되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에는 조직범죄 냄새가 물씬 풍기는데 이 지역 내 마피아 출신 사업가인 프랭크(빈스 본)가 관련이 돼 있기 때문이다. 프랭크를 둘러싼 사업가들, 지역 유지들, 권력가들(시장과 검찰총장, 주지사)은 카지노와 LA북부를 횡단하는 철도 건설을 둘러싼 이권과 마약 밀매, 매춘사업 등으로 얽히고설킨 관계들이다. 무엇보다 이들이 비밀리에 회동하는 장소는 늘 동유럽 출신의 고급 콜걸이 동원되는 변태 그룹 섹스의 현장이어서 여기서 벌어진 일들이 비밀리에 촬영되고 사진이 찍혀 음모와 협박의 대상이 된다. 사방에서 살해된 캐스퍼의 동영상이 담긴 하드 디스크를 찾느라 혈안이 된다. 그러면서 사건은 걷잡을 수 없는 지경으로 번져 나가기 시작한다.
거기에 형사 셋은 셋 대로 각자의 에피소드들이 즐비한 캐릭터들이다. 벨코로는 아내가 10년 전에 강간을 당한 후 (자신의 아이인지 범인의 아이인지 모를) 아이를 낳았고 결국 그 범인을 찾아내서 잔혹하게 살해한 인물이다. 그 과정에서 벨코로는 마피아 보스 프랭크의 도움을 받았고, 그 후 두 사람은 협조적 관계를 맺어 왔다. 벨코로는 사실상 프랭크의 사람이 됐던 셈이다. 여 형사 애니는 히피 아버지 때문에 어렸을 때 종교 공동체에서 살았던 기억이 있다. 그 억압의 기억 때문인지 성 관계가 꽤나 복잡한데 남자 부하 경찰을 성추행했다는 고발을 받고 내사를 받는 처지에 있다. 그녀 역시 어릴 적에 공동체 안의 누군가로부터 4일간 납치됐었고 성폭행을 당했다. 우드로는 이라크 전쟁영웅이지만 팔루자에서의 대량 양민 학살 작전에 관련돼있고 고속도로 순찰 중에 검문에 걸린 할리우드 여배우가 자기를 봐 주는 대가로 유사 성행위를 강요받았다는 이유로 그를 고발해 정직 처분을 받은 직후 특수 임무에 합류한 상태다. 우드로에게는 현재 임신한 여자 친구가 있지만 그의 성적 정체성은 남자 쪽을 향해 있고 그걸 감추고 살아가느라 고민이 많다. 그리고 그 문제가 끝내 이 남자의 발목을 잡게 된다.
▶과거와 이어진 사건비화, 완벽한 서사구조
드라마는 한 회 한 회를 거듭할수록 오히려 미궁에 빠진다. 아무도 믿을 수가 없어진다. 모두가 범인인 것 같아진다. 사랑 따위, 우정 따위, 신의와 맹세 따위는 일고의 가치도 없어 보인다. 모두가 죽고 죽이는,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칠 뿐이다. 전체 8부 가운데 6부쯤에서부터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하는 350만달러짜리 다이아몬드의 정체와 행방이 모든 수수께끼의 원인이 되고 있음이 드러난다. 살해된 캐스퍼가 과거에는 경찰이었으며 1992년 LA 폭동사태 때 벌어졌다가 흐지부지 종결된 보석상 강도 사건을 담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같은 경찰서의 홀러웨이 서장과 버리스 경위라는 자도 이 보석 강도 사건을 진두지휘했었다는 것인데, 모든 실마리는 여기서 풀리기 시작한다.
이쯤 되면 <트루 디텍티브2>는 제임스 엘로이의 걸작 하드보일드 <LA컨피덴셜>의 서사를 이어받고 있음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하나의 사건은 20여 년이 가까운 세월 속에서도 어떻게 깊은 상처로 내재하며 그것이 결국 또 어떻게 더 큰 사건으로 비화(飛禍)하는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시즌 드라마의 이야기 구조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철저함을 나타낸다. 개인의 삶과 전체 사회, 세상의 운행 방식은 그런 점에서 매우 닮아 있다. 한번 잘못된 삶의 궤적이 제자리를 찾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세상도 그렇다. 주인공들은 모두 왜곡된 부성(父性) 하에서 자란 탓에 각자 깊은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모두들 하나같이 아이를 키우고, 낳아서 갖고 싶어 하지만(벨코로는 양육권을, 프랭크는 체외수정을, 게이인 우드로조차 여자 친구의 임신을 통해) 뜻대로 되지 않는다. 한번 무너진 ‘부권=세상’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란 바빌론의 왕국을 세우는 것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성격파 배우들의 열연이 그 어느 미드보다 돋보이는 작품이다. 콜린 파렐의 연기야 말할 것도 없고 레이첼 맥아담스의 열연은 새삼 배우로서 그녀의 존재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입증한다. 빈스 본은 그 어느 때보다 좋고 테일러 키취는 언제 <배틀 쉽>같은 한심한 영화에 나왔었던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그리고 그 수많은 조연들. 콜린 파렐의 아버지 역으로 프레드 워드까지 나온다. <헨리 밀러의 북회귀선> 등에 나왔던 전설의 명배우다. 배우만으로도 볼거리가 넘치는 미드다. 한여름 밤의 꿈같은, 재미와 의미가 철철 넘치는 작품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