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이었다. 한 환자가 진료실로 들어왔다. 과도한 스트레스에 힘든 시기를 보내다 몸이 쑤시는 증상이 나타났고, 가벼운 몸살이나 허리가 결린 줄 알고 방치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줄 알았는데 며칠 후 갑자기 작은 물집이 여러 개 생기고 번지며 통증이 가라앉지 않았고 결국 병원을 찾은 결과 대상포진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특히 중장년층에서 발생한 대상포진은 이렇게 진행된 상태에서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다. 잘 지내다가도 조금 몸이 약해지는 모습을 보이면 재빠르게 드러나는 증상 중에 하나가 대상포진이다. 몸에 면역력이 떨어지면 오는 질환으로 주로 노년층에서 많이 발생해 노년층 질환이라고 한다. 그러나 요즘은 20~30대 젊은 층에서도 크게 늘어나고 있어서 과도한 스트레스로 면역력이 약해지면 나이에 상관없이 오는 질환이 됐다.
증상이 감지될 때 악화되지 않도록 빠른 진단과 치료를 받는 일이 중요하다. 이 또한 스트레스를 감소시키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왜 생길까
대상포진은 바이러스성 질환으로, 그 원인은 ‘수두 대상포진 바이러스’다. 과거에 수두를 앓았거나 수두 예방접종을 한 사람에게는 신경절에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가 평생 잠복한다. 잠복해 있던 바이러스가 몸의 항상성이 깨지는 면역계의 변화로 인해 재활성화되면 신경절에 염증을 유발하고, 신경을 따라 피부에 편측성으로 군집성 물집을 보이는 특징적인 발진을 형성한다. 대상포진 발병의 위험인자로는 면역력 저하, 감정적 스트레스, 종양, 국소외상 등이 있으며 고령으로 인한 면역력 감소도 중요 인자다.
증상은
대상포진의 피부 발진이 발생하기 수일 전부터 신경절을 따라 통증, 압통 등의 전구증상을 보일 수 있다. 이는 고령일수록 더 흔히 보인다. 일부는 두통, 권태감, 발열을 동반할 수 있다. 피부 발진은 침범한 신경을 따라 중앙선을 넘지 않는 편측성의 띠 모양 홍반, 구진, 물집으로 나타난다. 대략 7~10일이 지나면서 딱지가 형성되는데, 딱지는 2~3주 이상 지속될 수 있다. 적절한 치료와 휴식을 하지 않으면 발진이 더 심하게 번질 수 있고, 신경통 등의 후유증 발생률도 높아질 수 있다. 또한 병변부 2차 감염이 발생하거나 색소침착, 흉터가 남을 수 있어 초기 치료가 매우 중요하다. 대체로 고령의 환자가 더 심각한 통증을 호소하고 발진 소실 이후에도 지속되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중장년층에서도 바늘로 찌르는 듯한 심한 통증과 감각 이상이 지속될 수 있으므로 방심해서는 안 된다.
초기 진단과 치료의 중요성
치료를 시작할 당시 발진의 정도가 대상포진의 급성기 통증의 강도와 기간에 영향을 미친다. 이 때문에 대상포진 피부병변이 더 번지기 전에 빠른 내원이 필요하다. 항바이러스제를 발진 시작 72시간 이내에 투여하면 피부병변의 치유를 촉진하며, 급성 통증의 기간을 줄이고 포진 후 신경통 등 후유증의 발생빈도를 줄일 수 있다. 대상포진으로 내원하는 환자의 절반가량이 피부 병변이 발생하고 3일 이상이 경과해 치료를 시작하게 된다. 특히 젊은 층에서 발생한 경우 치료가 더 늦어지는 경우가 많다. 초기에 적절한 치료를 빨리 시작하면 대상포진을 빠르게 회복할 수 있지만, 수포성 발진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2차 세균감염으로 인해 염증과 농이 생길 수 있고 흉터가 남게 된다.
내원 시 치료는
면역력 저하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질환인 만큼 몸의 항상성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과 적절한 항바이러스제의 복용이나 주사 요법이 반드시 필요하다. 피부 발진도 관리를 철저히 해야 물집에 2차 감염이 발생하는 다른 합병증을 예방할 수 있다.
대상포진의 치료는 통증을 완화시키고 바이러스의 확산 억제, 포진 후 통증 등 합병증 예방 및 최소화를 위해서 시행한다. 항바이러스제 조기 투여를 기본으로 하며, 초기 물집 흉터에 대한 소독과 습포 드레싱 등으로 통증을 완화하고 진정시킬 수 있다. 신경성 통증과 피부의 재생을 돕는 레이저치료를 병행할 수 있다.
급성기에 통증이 심한 경우, 수면장애, 피로, 우울증이 동반될 수 있으므로 적극적인 통증 치료가 필요하다. 약물치료 외에 스테로이드 병변 내 주사를 시행할 수 있고, 보다 심한 경우 통증클리닉에서 신경치료 등을 시도해볼 수 있다.
후유증은
① 포진 후 신경통
일부의 경우 피부 발진이 많이 가라앉은 후에도 통증이 계속되는 일이 있다. 피부병변이 호전된 후 1~3개월 후에도 통증이 지속되는 경우가 포진 후 신경통으로 가장 흔한 합병증이다. 50세 이하에서는 비교적 발생이 드물며 약 50%가 60세 이상에서 발생한다. 위험인자로는 급성기의 심한 통증, 심한 피부발진, 안구 침범 등이 있다. 조기에 진단, 치료한 경우 포진 후 신경통의 발생을 크게 줄일 수 있다. 그러나 후유증으로 남을 경우 끊임없는 고통으로 환자 삶의 질에 큰 영향을 줘 조기 진단과 치료가 중요하다.
② 안구 대상포진
바이러스가 안구 신경을 침범해 합병증으로 포도막염, 각막염, 결막염, 망막염, 시신경염, 녹내장 등이 발생할 수 있다. 발진은 눈 주위에서부터 두피까지 발생할 수 있으나, 이마 중앙선을 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안과 진료가 필수적이다.
③ 안면신경, 청신경 침범
안면마비, 이명, 안구진탕증 등이 나타날 수 있고, 현기증이나 감각신경성 난청을 초래하기도 한다.
④ 피부병변의 2차 감염
이외에도 심한 경우, 발진과 통증이 전신에 나타나는 경우와 2차 합병증으로 뇌수막염이나 뇌염, 폐렴을 일으켜 사망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대상포진은 잘 재발한다
대상포진은 쉽게 재발한다고 알고 있는 경향이 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와는 달리, 대상포진이 재발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쉽게 재발한다는 편견은 대상포진 초기에 잘못된 관리와 치료로 후유증이 남아 간헐적인 신경통 증상이 있는 환자들의 비율이 높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대상포진의 재발은 면역력이 정상인 사람에게는 극히 드물다. 그러나 소수에 한하지만 대상포진 바이러스는 신경절에 잠복하고 있기 때문에 다시 재활성화돼 재발할 수 있다.
수두와 연관이 있을까
대상포진의 발병은 수두의 유행과는 관련이 없으며, 계절에 상관없이 1년 내내 산발적으로 발생한다. 수두나 대상포진 환자와의 접촉으로 인해 발병하지는 않고, 이미 잠복해 있던 바이러스의 재활성화로 발생한다. 수두보다 전염력이 낮으나, 발진 발생 시작 후 7일까지 대상포진 환자와 직접 접촉 후 드물게 수두 발생이 가능하므로 수두에 대한 면역력이 없는 어린이들과의 접촉은 피하는 것이 좋다.
대상포진의 예방
2006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대상포진 백신이 승인돼 고령에서 대상포진과 포진 후 신경통의 발생과 심각도를 감소시키는 것으로 증명됐다. 60세 이상에서 대상포진의 병력과 무관하게 접종을 권고하고 있다. 가까운 피부과에 가면 예방접종이 가능하므로, 60세 이상이나 심리적, 신체적으로 스트레스에 노출이 잦은 사람은 몸 상태에 따라 의사와 상담 후 접종을 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급성기의 대상포진이나 포진 후 신경통의 치료는 백신의 적응증이 되지 않는다.
요즘 시대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살아가기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됐다. 마음에 빨간 경고등이 켜지면 과부하 걸린 심신을 달래야 한다. 바쁜 도시인들은 잠시 시간을 내어 도심 속에 보석처럼 박혀 있는 공원을 걸어보고 깊이 날숨과 들숨을 쉬어 보자. 건강한 마음과 몸은 내 안에 활력을 줄 것이고 면역력을 높여 줄 것이다. 또 하나, 건강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내 몸이 보내는 신호를 잘 감지하고 빠른 진단과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다.
불쾌지수가 높아지는 8월, 몸과 마음을 겸손하게 낮추어야겠다.
[김정은 피부과 전문의 아주대학교 병원 피부과 임상강사 전 명동 고운세상 피부과 원장 현 순천향대학교부속 천안병원 피부과]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9호 (2015년 08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