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미술시장 분석기관인 아트프라이스닷컴(artprice.com)이 지난달 초에 내놓은 보고서인 ‘2013미술시장 트렌드(Art Market Trends 2013)’에서 작년 세계미술경매시장의 매출액이 120억달러(약 13조원)로 역대 최고를 찍어 한동안 화제다. 10년 전인 2003년에는 연간 매출액이 20억달러에 불과했다. 한 해 동안 팔린 미술작품의 수는 10년 전에 비해 고작 두 배로 늘었는데, 가격으로는 6배가 불었으니, 지난 10년간 미술시장이 엄청나게 성장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이 기관이 집계하는 미술품의 평균가격인 ‘아트프라이스 인덱스(Artprice Global Index)’는 2013년 한 해만 따져도 15%나 올랐다. 또, ‘작품 최고가격’의 기록이 깨진 작가가 무려 1만5000명이나 되었다. 하루에 41명씩 자신의 작품 최고기록을 깨고 있었다는 얘기다.
작년 세계미술시장 역대 ‘최고’
이런 수치 보고서를 볼 때마다 사람들은 이런 생각이 들 법하다. 왜 미술시장 규모는 점점 커질까? 왜 미술작품 가격은 점점 비싸지는 것처럼 보일까? 미술작품 최고기록은 왜 계속 깨지는 것일까?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 중 미술작가 측면(공급자 측면)과 컬렉터 측면(수요자 측면)의 이유를 생각해보자.
첫째, 미술작가 측면이다. ‘스테디셀러’ 작가들이 있는 한 미술시장 전체 규모는 계속 커질 수밖에 없다. 심지어 슈퍼 작가 몇 명만으로도 미술시장 전체 매출액수는 계속 늘어날 수 있다.
미술시장에 대한 수치 보고서를 보고 모든 미술작품, 모든 미술작가가 그렇게 비싸게 팔린다고 생각하면 절대 안 된다. 언제나 비싸게 팔리는 스테디셀러 작가들이 전체 시장의 규모를 좌지우지하기 때문이다. 미술시장에는 불황 때조차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슈퍼스타’ 작가들이 있다. 이들의 작품공급은 한정되어 있지만 사려는 사람들은 계속 있다. 그래서 이들의 작품 가격이 치솟는 것만으로도 전체 시장규모는 얼마든지 커질 수 있다.
가장 극단적인 케이스는 세계미술시장이 곤두박질쳤던 2008~2009년에도 기록을 깨는 초고가 기록이 계속 나왔던 것이다. 미국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으로 세계경제가 휘청했던 2008년은 연초부터 불안한 기운이 감돌았던 해이고, 세계미술시장 전체적으로 기억하기 싫은 불황의 해였다.
하지만 그 해에도 역시 기록가 행진은 있었다. 한 예로 그 해 6월 크리스티 런던에서는 모네의 ‘수련’이 8040만달러에 낙찰돼 모네의 작품 중 최고가를 찍었다. 이 작품 하나 덕에 이날 저녁 경매의 낙찰총액은 유럽 경매 사상 최고액(약 2840억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모네(Monet, 1840~1926)는 ‘인상파’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작가다. ‘인상파’라면, 서양미술사에서 회화 분야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왔던 미술사조, 그러면서도 미술 애호가가 아니더라도 일반인 누구나 잘 알고 있고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미술사조라고 할 수 있다. 과거의 그림에서 중시했던 사실적 묘사를 버리고, 작가의 주관적 느낌을 강조했으며 햇빛에 따른 색깔의 변화에 주목해 한 사물도 시시각각 색이 바뀌고, 같은 색깔도 캔버스 위에서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 다른 색으로 변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색채의 마술사들인 인상파 화가들,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모네야말로 시장의 경기를 타지 않는 대표적인 작가 중 하나다.
이런 작가의 대표적인 그림 한 점이 경매에 나온다면, 그 그림 한 점만으로도 하루의 경매를 살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이런 작품, 이런 작가 몇몇만으로도 전체 미술시장 규모는 유지될 수 있다.
‘슈퍼스타’ 작가들의 공헌
이 모네의 작품이 팔리기 한 달 전인 2008년 5월에는 아일랜드 출신으로 영국을 대표하는 현대미술 작가인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909~1992)의 회화인 ‘삼부작’이 경매에서 8600만달러(약 900억원)에 팔려 당시로서 현대미술 작품 최고가를 세웠다. 베이컨 역시 현대미술 작가들 중 손가락 안에 드는, 특히 영국 현대미술에서는 톱으로 꼽히는, 우리나라의 박수근 같은 화가다.
그러니 현대미술 수집을 하는 컬렉터라면 누구나 손에 넣고 싶어 하고, 그의 대표적인 작품이 경매에 나오면 경쟁이 치열하게 붙는다. 작년 11월에는 베이컨의 ‘루시안 프로이드 초상 삼부작 습작’(1969)이 1억4240만달러(약 1528원)에 팔려 더 비싼 기록을 깼고, 올해 2월에는 런던 크리스티에서 베이컨이 자신의 동성연애자를 그린 그림 ‘말하고 있는 조지 다이어의 초상’(1966)이 4220만파운드(약 747억원)에 팔려 또 초고가를 세웠다.
미술작가들도 비싼 작가의 작품가격은 계속 비싸고, 값이 안 오르는 작가는 안 오른다. 앞선 아트프라이스닷컴의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에 그렇게 미술시장의 규모가 성장했지만, 팔렸던 작품의 92%는 여전히 5만달러(약 5000만원) 이하였다. 팔린 작품 가격 기준 상위 500명의 작가들이 전체 매출의 75%를 차지했다.
아무리 경기가 안 좋아도 미술작품을 사는 ‘대부호’들은 언제든지 있다. 이들은 앞서 설명한 ‘최고’ 수준에 들어가는 유명 작가들의 대표적인 작품이 나오면 눈에 불을 켠다. 실제로 그런 작품의 공급은 한정되어 있다.
그래서 그런 작품이 경매에 나오면 ‘지금 아니면 다시 시장에 나오지 않을 작품’이라는 생각에 컬렉터들은 치열하게 경쟁한다. 그러니 이런 슈퍼스타 작가들의 대표적인 스타일을 보여주는 수작이 몇 점씩만 나와 주면, 미술시장 전체 매출액 규모는 얼마든지 유지될 수 있다.
K옥션 경매 응찰장면
‘컬렉터 다양화’도 큰 공헌
세계 미술시장 규모가 점점 커지는 이유를 컬렉터 측면에서 보자면, 세계 각국에서 신흥부자들이 점점 많아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BOA메릴린치와 캡제미니가 해마다 발표하는 세계부자보고서에 따르면, 보유 주택을 제외한 순자산이 100만달러 이상이 되는 부자들은 자산의 25%를 미술품에 투자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 백만장자들의 숫자는 해마다 늘고 있고 이들의 나이는 점점 젊어지고 있으며, 이들이 속한 나라도 다양해지고 있다. 특히 자산으로 그림 사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미술애호가 부자들의 경우 미술작품의 값이 비싸면 비쌀수록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 이런 부자들의 수가 계속 늘어나는 한, 고가 미술품의 기록행진은 계속된다.
소더비와 크리스티 같은 세계 톱 경매회사들의 VIP 리스트에는 10년 전과 비교할 수 없게 많은 젊은 컬렉터들의 이름이 올라있다. 국적도 다양하다. 10년 전만 해도 미국과 유럽 몇몇 국가의 컬렉터들이 세계 미술시장을 잡고 있었다면 지금은 아시아, 중동, 남미, 러시아 등 여러 곳에서 이루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컬렉터들이 뉴욕과 런던과 홍콩을 다니며 그림을 사고 있다. 그러니 어느 한 나라의 경제가 흔들린다 해도 세계 미술시장이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
게다가 새로 세계미술시장의 무대에 진입하는 신규 컬렉터들은 ‘최고 리스트’에 오르기 위해 좀 더 과감하게 돈을 쓰는 경향이 있다. 앞서 말한 프란시스 베이컨의 900억원짜리 그림 ‘삼부작’을 샀던 사람은 영국 프리미어 리그 축구팀 첼시의 구단주인 로먼 아브라모비치였다. 이는 해외 언론에 보도가 되었다. 러시아 출신의 40대 갑부인 그는 이후 세계 미술시장의 큰손으로 여기저기에 이름을 날리고 있다. 그런데 세계미술시장에서 초고가에 팔린 작품이 누구누구가 샀다라고 보도되는 것을 보면 흥미롭다. 신진 컬렉터가 그만큼 많아졌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전통적인 큰손 컬렉터들은 철저하게 장막 속에 숨기 때문에 산 사람이 누구인지 알려지는 경우가 별로 없었다. 기자들이 아무리 열심히 취재를 해도 누가 샀는지 기사를 쓰기 쉽지 않았다.
따라서 구매자가 누구라고 보도가 나온다는 것은 그 컬렉터가 ‘내가 샀다고 알려줘도 좋다’는 암시를 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미술시장에는 공급량이 한정된 슈퍼스타 작가들이 있고, 그 작가들의 대표작을 손에 넣으려고 혈안이 된 컬렉터의 숫자는 점점 늘어난다. 그러니 세계미술시장의 규모는 갈수록 커질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