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는 봄이 왔다.
몸과 마음이 저절로 들뜨는 이 계절엔 가벼운 모젤의 리슬링 한잔으로 분위기를 맞춰보는 것은 어떨까.
알코올 도수가 높지 않은 모젤 지방의 리슬링은 가벼운 스낵을 곁들여도 괜찮지만 식후에 여유를 갖고 안주 없이 마셔도 좋은 화이트 와인이다.
그중에서도 독일 최고의 와인 메이커가 만드는 프리츠 하그(Friz Haag)는 하늘에서 즐겨도 좋을 만큼 신선하고 그윽한 향미가 일품이다. 카타르 항공이 이 와인을 퍼스트 클래스에서 서빙하고 있을 정도니 수준은 따로 말하지 않아도 좋을 듯.
로버트 파커는 “빌헬름 하그가 생산한 이 우아하며 정제된 리슬링은 모젤 지역이 생산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와인의 모범이다”라고 했고, 또 다른 와인 평론가 톰 스티븐슨은 프리츠 하그를 독일 10대 와이너리 중 하나이자 모젤 지역 최고의 와이너리로 꼽았다.
독일 와인의 전설로 꼽히는 빌헬름 하그(Wilhelm Haag)와 그의 아들 올리버 하그(Oliver Haag)는 세계 최고 수준의 리슬링을 만들고 있다.
특히 올리버 하그는 와인을 만들기 시작한 지 2년 만에 독일 최고의 와인메이커 타이틀을 거머쥔 천부적 재능을 가진 장인이다.
그래서인지 이들이 만드는 리슬링은 내로라하는 와인메이커들이 즐비한 독일 최고의 와인산지 모젤 지역에서도 단연 으뜸으로 꼽힌다.와인전문가들이 하그 부자를 모젤 와인의 지존이라거나 살아있는 전설로 부르는 것도 그래서다.
모젤 유일의 그랑 크뤼
와인 메이커 하그 부자
그런데 프리츠 하그는 밭 역시 뛰어나다. 이 와이너리의 역사는 4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런 만큼 이곳 포도나무는 평균 80년이나 되는 수령을 자랑한다. 그만큼 풍미가 뛰어난 포도를 생산하고 있다.
이 와이너리의 역사가 담긴 가장 오래된 문서에는 프리츠 하그가 1605년에 두제몬트라는 마을에 있었다고 적혀 있다. 그 마을 이름은 나중에 브라우네베르거(Brauneberger)로 바뀌었다. 나폴레옹이 모젤의 진주라고 극찬한 포도원 브라우네베르거 유퍼 존네누어(Brauneberger Juffer Sonnenuhr)를 잘 알리려는 의도에서 그랬다고 한다.
현재 프리츠 하그는 100% 리슬링만 생산하고 있다. 이 와이너리의 포도밭은 두 개로 나뉘는데 하나는 ‘브라우네베르거 유퍼 존네누어’이고 다른 하나는 ‘브라우네베르거 유퍼’이다. 두 밭은 모두 1806년 모젤 지방에 등급분류가 시작됐을 때 유일하게 1등급을 받은 그랑 크뤼(Grand Cru)다.
프리츠 하그의 포도원은 최고 80°에 이를 정도로 가파른 경사면에 자리 잡고 있다. 덕분에 햇빛을 잘 받아 포도가 잘 자란다. 다만 경사가 심해 기계 수확을 못하고 일일이 손으로 포도를 수확해야 한다. 데본기에 형성된 점판암질 토양은 75%가 돌로 형성돼 있다. 이곳에서 나온 와인은 매우 섬세하며 미네랄이 풍부하다.
서늘한 지역에서 생산되는 리슬링의 양대 산지는 독일의 모젤과 프랑스의 알사스. 그런데 두 곳의 리슬링은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모젤이나 알사스는 서로 이웃해 있지만 알사스 리슬링은 프랑스인 식습관에 맞게 알코올 도수가 높은 반면 모젤의 리슬링은 식후에 와인을 마시는 독일인 습성에 맞게 알코올 도수가 낮은 게 특색이다.
유퍼(Juffer)라는 지역명은 18세기에 나왔다고 한다. 유퍼는 게르만어로 노처녀를 뜻했는데 나폴레옹 점령 당시 유퍼 빈야드의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던 지역 정치가의 세 딸이 결혼하지 않고 와인 만드는 데만 전념하자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아버지가 그 지역 전체를 유퍼라고 부른 데서 유래했다고 하다.
존네누어(Sonnenuhr)는 독일어로 해시계를 뜻하는데 독일의 특급 빈야드를 부를 때 쓰인다. 100여 년 전 모젤강 유역 해가 잘 드는 경사지에 해시계를 세워 일꾼들에게 점심시간이나 일이 끝나는 시간을 알려줬는데 마침 해시계 근처 포도나무들이 햇빛을 한껏 받아 농축미 짙은 포도를 생산할 수 있었기에 붙였다고 한다.
프리츠 하그의 와인들
① 프리츠 하그 브라우네베르거 유퍼 존네누어 리슬링 아우스레제
닐 베케르와 휴 존슨이 죽기 전에 꼭 마셔봐야 할 와인 1001로 선정한 프리츠 하그의 최고급 와인. 존네누어 포도원에서 수확한 포도로만 만드는데 스파이시하면서도 꿀과 구아바 맛이 난다. 2010년 빈티지에 대해 와인 스펙테이터가 95점, 로버트 파커가 93점을 주었다.
② 프리츠 하그 브라우네베르거 유퍼 리슬링 슈페트레제
배와 사과 등 과일의 향이 은은하게 풍기는 와인. 약간의 미네랄 느낌이 살아 있어 매콤한 한국 음식과도 잘 어울린다. 2010 빈티지는 와인 스펙테이터에서 92점, 로버트 파커로부터 89점을 받았다.
③ 프리츠 하그 리슬링 파인헤르브
녹색이 살짝 도는 금색 와인으로 복숭아향과 사과향이 매력적이다. 식후 가볍게 마시기에 좋은 와인으로 시원하고 상큼한 느낌을 준다. 샐러드와 가벼운 고기 요리, 스낵과 잘 어울린다.
④ 프리츠 하그 브라우네베르거 리슬링 카비넷
슈페트레제나 아우스레제에 비해 발효 기간을 짧게 해 당도가 높다. 산도와 미네랄의 균형감이 뛰어나 너무 달게 느껴지지 않으며 묵직하고 강렬한 포도의 향을 느낄 수 있다. 약간 스파이시하면서도 그을린 듯한 향미가 나 생선과 닭고기, 샐러드 등과 잘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