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은 고루하고 어렵다?’
지금은 대다수 사람들에게 잘못된 편견으로 인식될 이 명제가 대세로 자리 잡았던 시절이 있었다. CF 영화 각종 공연 속에서 친숙하게 접한 클래식도 공연에서는 외면 받았던 때였다. 클래식과 점점 멀어져 가는 대중들에게 끊임없이 손을 내민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올 7월 디큐브아트센터 신임 극장장에 오른 박은희 씨(60)다. 기억도 가물가물한 시절에 피아노를 시작해 6살에 음악가로 정식 데뷔했다. 반백년이 넘는 세월 동안 클래식 음악가로 살아온 그녀지만 장르의 이미지가 가진 오만이나 도도함과는 거리가 멀다.
취임 후 채 2주가 지나지 않아 정신없이 바쁠 시기에 디큐브아트센터를 찾은 기자를 그녀는 환하고 순수한 소녀의 미소로 맞았다. 극장장이란 생소한 직무가 낯설지는 않을까? 라는 첫 질문에 유쾌한 웃음과 자신 있는 대답이 돌아왔다.
“보통 클래식 연주자들이 다른 곳으로 눈 돌리는 경우는 드물어요. 저는 클래식 장르에 몸담은 사람치고는 상식에 벗어나는 일을 많이 해왔어요. 그래서 이 자리에 잘 어울리지 않나 싶어요.(웃음)”
그녀는 국내 클래식 대중화를 이끈 선구자로 불린다. 그녀가 기획한 드라마 음악회는 어렵고 졸린 공연으로 인식되던 클래식에 연극을 가미해 스토리와 위트를 불어넣어 단순한 퓨전공연을 뛰어넘은 새로운 장르를 열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아직도 클래식하면 정장차림에 박수타이밍을 고민해야 하는 장르로 여겨지고 있는 것 같아 아쉬워요. 문학이나 미술 무용 등 여러 가지 장르의 예술과 접목한 공연들이 많이 탄생했으면 합니다. 또 그러한 공연들이 이곳(디큐브아트센터)에 많이 올려지도록 하는 것이 목표기도 하구요.”
1인 8역 팔방미인 ‘취미가 곧 직업’
박용학 전 대농그룹 명예회장의 딸인 박 극장장은 고교졸업 직후 유학길에 올라 미국 뉴욕 맨해튼 음대를 졸업했다. 평생의 반려자인 이상렬 청운대학교 총장은 스무살 유학시절에 만났다. 대학과정을 마치고 귀국해 서울대 음악대학원을 졸업한 이후 그녀는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1982년부터 근 10여 년간 FM라디오에서 클래식과 문화관련 프로그램 진행자로 활동하는 한편 2년 넘게 TV에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두 아이의 엄마, 한 남자의 아내로 지내며 대학에 출강해 후진을 양성하는 교육자로 나서기도 했다. 1986년부터는 실내악 단체인 한국페스티벌앙상블을 창단해 대표이자 음악감독 역할을 지금까지 맡아오고 있다. 언급만으로 숨이 찬 이력에 디큐브아트센터 극장장이라는 중책을 더했으니 팔방미인이라는 호칭이 익숙할 법도 하지만 손사레를 친다.
“사실 특별히 잘하는 게 없어요.(웃음) 여러 가지 활동을 했지만 대부분이 제 취미인 음악이 중심이 되는 활동이라 다 즐겁고 행복하게 해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평소에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공연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편이에요. 어떤 공연이든 막이 오르기 전 가슴이 두근두근하잖아요. 그 순간이 참 좋아요.”
인터뷰 내내 밝은 기운을 발산하던 박 극장장에게도 시련의 순간이 있었을까 궁금해졌다.
“당시 국내에 제대로 된 클래식 페스티벌이 없었죠. 유학을 다녀오니 없던 애국심이 생겼는지 우리나라도 세계적인 축제가 탄생했으면 좋겠다는 일념으로 한국페스티벌앙상블을 만들었어요. 그러나 당시에는 메세나(커다란 대가를 바라지 않고 문화예술 활동을 지원하는 개인이나 기업)의 개념도 약했고 클래식 공연이 돈이 될 리도 없었죠. 근 10년간 사비와 지인들의 도움으로 참 어렵게 단체를 꾸려갔던 기억이 있어요.”
의문점이 들었다.실내악단체를 어렵게 운영하던 시절 없는 살림에 어디서 돈이 나와 기부를 했을까?
“당연히 돈은 없었어요.(웃음) 그런데 한 건축가 분이 좋은 제안을 하셨죠. 과천 인근 지방주민들의 문화수요가 상당하니 베네핏 콘서트를 기획해보자는 것이었죠. 단원들에 동의를 받아 후원해 줄 분을 직접 선택하고 15회 공연을 통해 야외무대를 기부할 수 있었어요. 돌아보면 의미 있는 공연이라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극장장으로서의 비전을 물었다. “우선 (극장이) 쉬지 않고 공연을 올려 많은 관객들을 만나야 해요. 디큐브아트센터 내 뮤지컬 극장은 잘 운영되고 있지만 다목적 극장으로 여러 장르의 공연이 가능한 ‘스페이스 신도림’의 경우 아직 그렇지 못하죠. 신도림하면 스페이스 신도림이 생각나도록 신드롬을 일으켜 디큐브시티가 서남부 지역의 공연문화의 확실한 랜드마크가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