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스펙테이터의 The TOP 100’. 와인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 이상 들어봤을 만큼 잘 알려진 와인 선정 이벤트로, 미국 유명 와인전문지 '와인스펙테이터(Wine Spectator)'에서 매년 발표하는 올해의 100대 와인 순위이다. 2010년 말에 발표된 '와인스펙테이터'의 2010년 100대 와인, 그 명예의 전당 25위에 당당한 얼굴을 드러낸 와인은 바로 ‘모두스(Modus) 2007’이다. 이태리 슈퍼 투스칸을 대표하는 이 와인은 이태리 와인명가 루피노의 집약된 와인 메이킹 기술을 보여주는 와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루피노 모두스
순위 발표와 동시에 해당 와인에게 쏠리는 굉장한 관심은 와인메이커 루피노에게 행복한 비명을 지르게 해주었다. 발표 이후 각국의 와인 수입 유통사에서 요청하는 수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지만, 매년 일정한 생산량으로 품질을 유지하는 와인메이커에게는 어려운 일. 이미 2007년산 모두스 생산이 끝난 시점으로 추가 제품 생산이 어려운 안타까운 현실은 공급과 수요의 법칙에 따라 자연스레 와인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와인 수입사 입장에서는 발표 이후 빈티지의 가격 차이가 나지 않게 조정하며 최대한 많은 물량을 확보하는 어려운 일 또한 감당해야 할 ‘후폭풍’이라 할 수 있겠다.
이처럼 권위 있는 매체 혹은 평가기관을 통해서 발표되는 순위, 수상 내역은 전 세계적으로 와인애호가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물론 와인시장의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보이지 않는 큰 손 역할을 한다. 뿐만 아니라 특정 와인이 유명인의 사랑을 받는다거나, 국제적 행사의 공식 와인으로 지정되거나, 혹은 역사적 스토리를 바탕으로 감춰진 매력을 보여주며 새롭게 주목 받는 사례도 찾아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다양한 요소들로 더욱 특별한 와인이 탄생하게 되며 사랑받게 된다.
평가 점수로 유명해진 와인
‘와인스펙테이터 97점, 로버트 파커 98점’. 와인을 소개하는데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요소는 바로 이러한 점수이다. 점수는 와인을 평가하는 매체, 기관 또는 평론가들이 발표한다. 점수 또는 순위의 영향력은 때때로 상식을 초월해 와인 가격을 좌우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세계적으로도 가장 영향력을 크게 미치는 매체 중 하나는 미국의 와인 전문지 '와인스펙테이터'이다. 1988년에 시작돼 매년 연말이면 발표되는 The Top 100은 중요한 와인 트렌드를 반영한다. 그 해의 성공적인 와인과 훌륭한 와인생산자를 선별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2010년에는 전 세계 1만5800개에 해당하는 새로운 제품을 와인전문 에디터의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거쳐 선정했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점은 ‘품질’, ‘가치’, ‘생산량’, 특별한 매력 요인을 의미하는 ‘X-factor’ 이렇게 네 가지로 나뉜다.
또 다른 주요 평가자는 와인평론가 로버트 파커다. 파커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와인 전문가이다. 미국 변호사였던 그는 와인에 대한 열정으로 자신이 마신 와인들의 시음 노트를 지인들에게 돌리곤 하다 결국 '와인 애드보킷(Wine advocate)'이라는 잡지까지 출판하게 되어, 84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와인 평론가의 길로 나섰다. 와인 업계에서 그의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하는데, 파커 점수 85점과 95점은 100억원이라는 엄청난 매출 차이로 이어지는 사례까지 있다. 그는 테이스팅 노트로 설명되는 기존의 와인 평가의 형식을 벗어나, 누구나 쉽고 간편하게 와인을 파악할 수 있는 100점 만점의 점수 형태로 와인 평가의 좌표를 제시했고 와인 대중화에 앞장섰다. 그 외에 미국의 유명 와인 잡지 '와인 엔쑤지에스트(Wine Enthusiast)', 영국의 권위 있는 매거진 '디켄터(Decanter)', 이태리 와인평가의 기준 '감벨로 로쏘(Gambero Rosso)', 미국의 와인매거진 '와인앤스피리츠(Wine&Spirits)' 등이 있다.
국내에서도 매년 진행하는 코리아 와인 챌린지(Korea Wine Challenge)와 국내 모 일간지에서 매달 특별한 주제로 진행하는 와인컨슈머리포트 등이 있다. 앞서 소개한 모두스를 비롯해, 칠레 와인 최초로 ‘와인스펙테이터 100대 와인’에 선정된 콘차이토로의 ‘마르께스 데 까사 콘차’와 같이, 와인 평가 점수를 통해 명성을 쌓아 세상에 알려지는 와인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와인의 명성은 유명인의 특별한 사랑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유명인이 즐겨 찾는다고 해서 와인의 이름보다는 그 애칭으로 더 유명해지게 된 경우도 많다. 일례로 프랑스의 명품 샴페인 ‘폴로저(Pol Roger)’는 윈스턴 처칠이 가장 사랑하는 샴페인으로서 ‘젠틀맨의 샴페인’이라는 애칭으로 큰 인기를 얻게 되었다. 1944년 처칠이 어느 파티에서 처음 마셔보고 매료되어 폴로저 신봉자가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처칠은 이후 자신의 경주마 이름을 폴로저라고 지었을 정도로 돈독한 관계를 과시했다. 노후 건강이 악화되어도 매일 샴페인을 마셨던 처칠을 위해 폴로저는 본래 병 사이즈인 750ml보다 적게 마실 것을 권하며 500ml 병을 별도로 제작해 그에게 보내기도 했다. 처칠이 91세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폴로저는 검은색 띠를 레이블에 부착해 그의 서거를 알리고 조의를 표했다고 한다. 1975년에는 처칠 사후 10주년을 기념해 고인의 생전 모습에서 영감을 얻어 탄탄한 구조감과 중후한 성숙미가 돋보이는 최고의 상파뉴를 탄생시켰다. 이 최고급 상퍄뉴의 정확한 양조법은 아직까지도 외부에 누출되지 않고 가족들만 공유하고 있는 비밀이라고 한다. 블렌딩 비율은 처칠의 굴하지 않는 꿋꿋한 정신과 캐릭터를 반영했다는 수준에서만 알려져 있다.
영국 왕실에서 선택한 샴페인으로서 2004년 1월부터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위한 공식 샹파뉴 공급처로 지정되어 왕실인증서(Royal Warrant)를 부여 받은 사실로 명성에 버금가는 품질과 전통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것도 또 하나의 자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1.퀴베 서 위스턴 처칠 / 2.니더버그 인젠뉴티 레드 / 3.루피노 리제르바 두깔레 끼안티 클라시코
공식행사 협찬 와인
니더버그(Nederberg)는 1791년부터 시작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대표적 와이너리이다. 평범한 와이너리가 이러한 명성을 얻기까지는 수많은 수상과 국가행사의 공식 와인으로 선정됐던 사례들이 뒷받침하고 있다.
니더버그의 수많은 수상 실적은 어깨띠 디자인의 브랜드 로고에서도 보여줄 정도다. 2007년 영국 국제 와인&스피리츠 쇼(WSC)에서 최고의 쉬라즈 상을 받은 것을 비롯해 셀 수 없이 많은 수상 경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니더버그가 남아공 대표 와인으로서 주목받게 된 큰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영국 여왕 즉위 25주년 축제와 넬슨 만델라 대통령 취임식에 사용된 공식 와인이기 때문이다. 또 2010년 전 세계인의 관심 속에 성대하게 치러진 남아공 월드컵의 국제축구연맹 FIFA 공식 와인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남아공 올림픽 공식 와인은 국내에서도 매진될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다. 외부 행사의 공식 타이틀은 이처럼 그 와인의 역사에 새로운 전환점이 될 정도의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한다.
니더버그의 대표적 와인인 ‘인젠뉴티 레드’는 니더버그 와이너리의 혁신을 알리는 대표적인 와인으로 이태리 포도품종을 새롭게 흥미로운 방법으로 블렌딩한 것이 특징이다.
역사적 스토리가 담긴 와인
흥미로운 삽화가 담겨 있는 와인이 하나 있다. 바로 와인을 즐기는 귀족의 모습을 보여주는 ‘루피노 리제르바 두깔레(Ruffino Reserva Ducale)’이다. 리베르바 두깔레는 이태리에서 유일하게 등급이 아닌 제품명에 리제르바라는 단어를 허용해 줬을 만큼 백년 이상 끼안티 와인 카테고리의 벤치마킹 대상이다. 미국 내 이탈리아 와인 판매 2위로 ‘뉴요커의 와인’이라는 애칭도 가지고 있는 이 와인은 ‘귀족의 와인’으로 더욱 잘 알려져 있다.
130년 넘는 세월 동안 토스카나 와인의 전통과 끼안티 와인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는데 앞장 선 와이너리로, 1984년 끼안티 지역이 DOCG(이탈리아 와인 최상등급)로 지정됐을 때 최초의 보증 레이블 ‘AAA00000001’을 수여 받았다. 루피노는 20세기 이탈리아 와인의 역사와 함께 발전해 왔으며 새롭게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는 와이너리인 셈이다.
이러한 명성에는 재미있는 역사적 스토리가 뒷받침되고 있다. 1890년경, 이탈리아의 아오스타(Aosta) 공작이 루피노의 와인 저장고에 있는 와인들을 시음해보고 그 중 품질이 우수하고 특별한 느낌을 받은 와인들을 선택해 루피노에 그 와인의 공급을 요청했다.
그 후 선택된 와인의 통에는 ‘공작만이 마실 수 있다’는 의미로 ‘리제르바 두깔레(Riserva Ducale(dukes Reserve; 공작의 소유)’라고 써놓았고, 그것은 그 전부터 인정받고 있던 루피노의 품질과 명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한 계기가 됐다. 시간이 흐른 뒤, 루피노는 끼안티 지역에서 아주 우수한 품질의 와인을 개발했는데, 공작과의 친분과 루피노의 히스토리를 반영해 이 와인을 ‘리제르바 두깔레’라는 이름으로 판매하기로 결정했다. 그 후로 이 와인은 루피노의 ‘역사’가 됐다. 리제르바 두깔레의 레이블에는 이런 역사적 스토리가 반영돼 있으며 ‘귀족의 와인’으로 불린다.
항간에서는 97점과 100점의 차이가 무엇이냐 라는 소리도 들리지만, 선정 여부에 따라 그 와인의 명성에 굉장한 영향을 미치며 와인의 성패가 갈리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순위 안에 들기 위해 그 선정기관이 선호한다고 일컫는 스타일로 맞춰 와인을 생산하거나, 엄청난 금액의 로비로 스폰을 하는 등 부작용이 발생한다.
와인전문가의 검증을 받거나 혹은 유명인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그 와인의 특별한 요소를 잘 보여주는 사례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맞는 와인이 아닐까. 이번 기회에 나만의 와인 TOP 10을 정해보는 것은 어떨까.
■ 이달의 추천 와인마르께스 데 까사 콘차(Concha y Toro, Marques Casa Concha)
마스께스는 ‘후작’, 콘차는 ‘성’이라는 뜻을 지녔다.
1781년 당시 스페인 국왕 펠리프 5세가 콘차이토로 가문에 수여한 작위 명에서 유래됐다. 칠레 건국 200주년 기념 건배주로 쓰이며 대통령의 와인으로 잘 알려진 마르께스 데 까사 콘차는 '와인 스펙테이터'가 매년 선정하는 올해의 100대 와인에 진입한 최초의 칠레 와인 브랜드다. 강렬한 보라빛이 감도는 레드 컬러로 비단처럼 부드러운 타닌의 질감이 입 안에서 마지막까지 긴 여운을 남긴다. 6만5000원.
문의 금양인터내셔날 02-2109-9200
[유동기 / 금양인터내셔날 마케팅 차장 dkyoo@keum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