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모님의 고향은 경상북도 내륙인데 해물이 아주 귀한 곳이었다. 그래서 ‘간고등어’가 등장했고 소금 친 어물이 아니면 쉽게 접할 수 없었다. 냉동기술이 발달하면서 오징어를 먹을 수 있게 됐는데 이게 보통 귀한 물건이 아니어서 어지간한 부잣집이 아니면 먹기 힘들었단다. 기억해 보면 내 어린 시절에도 오징어는 만만한 음식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한겨울에 손님이 오시면 냉동 오징어에 사각거리는 무를 넣어 초회를 만들어 내셨다. 나름 접대용 음식이었던 것이다. 하긴 마른오징어도 별러야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으니까.
그러던 것이 이십여 년 전부터인가 어로기술도 늘고 배도 커지면서 오징어잡이가 활발해졌다. 그때 주문진항에서 오징어는 그야말로 함지박 가득 담아도 1만원이었다. 가져가고 싶은 만큼 담으라고도 했다. 펄떡펄떡 뛰는 팔뚝만한 산 오징어를 말이다. 그것이 일종의 흉조(凶兆)였다. 이제 오징어가 귀하기 그지없다. 동네 산 오징어집은 다른 어물로 구색을 바꿨고 간혹 판다고 해도 꽤 비싸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산 오징어는 씨알이 작고 값이 비쌌다. 고등어가 ‘금등어’가 되더니, 오징어도 ‘금징어’가 되려나 보다.
나는 오징어 광이었다. 오죽하면 내 왼쪽 턱 근육은 오징어가 만들었다고 할까. 특히 지느러미(머리라고 부르는)를 좋아했다. 그걸 꼭꼭 씹으면 오랫동안 동해의 단물이 입안에 퍼졌다. 아무런 간도 하지 않고, 딱 맞는 이 간이란 것도 신기하다. 문어를 말리면 짜고 생선은 소금을 치지 않고 말리면 싱겁다. 오징어는 제 몸통에 딱 맞춤한 간을 맞춰서 유영한다. 그리고 사람에게 잡혀 그 편리와 깊은 감칠맛을 주는 것이다.
푸아그라는 아니어도 푸어그라는 된다
오징어가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가 하는 건 요리사들의 환대를 봐도 알 수 있다. 그저 껍질을 벗기고-이건 약간의 수고다-내장을 따는 일이 손쉽다. 비늘이 있나 고약한 내장이 있나 아니면 냄새 나는 아가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 잡으면 절반은 못 먹는 부위인 생선과는 또 다르다. 오징어야말로 머리부터 발끝까지(심지어 껍질도 맛있다) 다 먹게 된다.
내가 제일로 아쉬운 것은 오징어의 내장이다. 이탈리아에서는 싱싱한 오징어를 받으면 우선 내장부터 고른다. 두툼하고 부드러운 그 부위가 바로 간인데 이게 진미다. 여기에 먹물을 넣어 양념하고 약간의 마늘과 파슬리를 뿌리면 살살 녹는 간 요리가 된다. 내가 멋대로 이름 붙이되 푸아그라는 아니어도 푸어그라는 된다. 일본에서도 간장에 조려 멋진 술안주로 변신시킨다. 영양은 또 얼마나 많겠나. 그 거칠고 너른 동해를 유영한 녀석들이 온갖 해물을 먹어 치우고 그걸 간 속에 차곡차곡 쌓지 않았는가.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걸 버린다. 제일 바보 같은 짓이 아닌가.
오징어는 종류도 워낙 많아서 철마다 비슷한 녀석들이 어시장에 나온다. 한여름은 오징어철이라고 할 수 있다. 서해안의 귀물(貴物) 갑오징어는 철이 조금 일러 양력 오뉴월에 많고 우리가 가장 많이 먹는 살오징어와 한치는 여름에 쏟아진다. 꼴뚜기가 나오는 때도 이 즈음이다. 제주도에선 한치와 무늬오징어가 나오는데 이게 상당히 비싸고 맛있다. 도시에서 먹는 한치회는 대부분 원양 냉동 한치다. 다행스러운 건 한치나 오징어는 얼려도 품질이 비교적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살의 조직이 연한 생선과 달리 결합력이 단단하고 치밀한 단백질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해동을 잘하면 냉동 제품도 횟감으로 먹을 수 있는 어물이다.
오징어는 말린 게 일품, 굽는 게 이품, 회가 삼품이라고 하듯이 굽는 요리가 중요하다. 오징어를 구울 때는 껍질을 벗기는 게 입에 넣었을 때 촉감이 훨씬 좋다. 조금 수고스럽더라도 껍질을 벗긴다. 선도가 나쁠수록 잘 벗겨지므로 껍질 벗기기가 힘들다면 오히려 좋은 일이다. 오징어 껍질은 키친타월과 굵은 소금으로 쉽게 벗겨낼 수 있다. 소금을 술술 뿌린 후 키친타월로 문지르면 금세 벗겨진다.
오징어를 구우면 조직의 특성 때문에 한쪽으로 크게 휜다. 이 원리를 이용해 모양을 낼 수 있다. 칼집을 무수히 넣어 중국요리에 쓰는 방법을 보통 모양에 따라 ‘솔방울’이라고 한다. 이탈리아식으로 발(주렴)처럼 길게 늘어지게 잘라 구우면 오글오글한 다리 모양을 즐길 수 있다. 가늘게 자른 다리는 촉감도 좋다.
몇 해 전 후쿠오카에 갈 일이 있었다. 호텔의 스시 바에서 특별 지방요리를 한다고 했다. 아우라가 대단한 요리사가 초밥을 쥐는데 특이하게도 지역의 채소만 고명으로 얹었다. 구운 당근과 여러 가지 근채류. 그중에서도 달콤해서 디저트 같았던 구운 가지를 얹은 초밥이 일품이었다. 일본인은 가지를 좋아하고 맛있게 요리할 줄 안다. 반면 언제부턴가 한국은 가지 요리의 ‘불모지’가 돼버렸다. 기껏 해야 쪄서 무침을 해먹는 게 전부 아닌가. 그런데 가지는 튀기거나 구우면 훨씬 맛있다. 껍질의 뽀득뽀득한 맛이 졸을 때도 있지만 구울 경우엔 속살만 요리하면 낫다. 껍질을 모두 벗기고 속살을 두툼하게 해서 팬에 구우면 금세 익는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가지구이와 오징어가 아주 환상적인 궁합을 보인다. 오징어의 짠맛과 감칠맛, 매운맛을 가지의 단맛이 중화시켜 주기 때문이다. 원래 단맛과 짠맛은 조화롭다.
하물며 인간이 기르는 소고기도 제철이 있다. 오징어는 말해 무엇 하리. 살 속에 진한 감칠맛을 가둔 오징어구이와 오징어회로 이번 여름, 나는 건강해질 터. 몸에 각별히 좋은 가지까지 곁들인다면야. 술은 일본산 ‘나마죠조(生貯藏)’로 양조한 청주와 스파클링이나 화이트와인이 좋다. 물론 차가운 맥주도 좋다.
프랑스는 샴페인의 나라다. 그러나 샴페인 상표를 붙이지 않는 다른 지방의 개성 강한 스파클링 와인도 많다. 이 제품은 화이트 와인이 특히 유명한 리무지역의 스파클링 와인이다. 화사한 꽃향기와 복숭아, 사과 같은 밀도 는 과일 향이 뛰어나다. 모작이라는 품종을 주로 쓴 특이한 배합도 흥미롭다. 약간의 부드러운 단맛이 뒤를 받치는 드라이한 스파클링이 특징이다. 병도 예뻐서 가벼운 손님들 접대에 좋겠다. 소비자가 5만원으로 부담스럽지 않다. 문의 레뱅드매일(02-2127-9877)
[박찬일 / 라꼼마 셰프 chanilpark@naver.com│사진 = 정기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