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는 저서 ‘기후 재앙을 피하는 법’에서 인간이 시멘트·철·플라스틱을 만드는 행위가 전체 온실가스의 31%를 배출한다고 분석했다.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지속가능한 건축에 대한 관심도 커지게 된 배경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지속가능한 건축이 환경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가치로도 주목받고 있다. 글로벌 규제에 따라 건축물들이 친환경적으로 지어져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지어지거나 리모델링된 건물들의 임대가치가 올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대표하는 금융가 주이다스 지구. 1970년대부터 이 지구 터줏대감으로 자리잡고 있던 건물 ‘EDGE 암스테르담 웨스트’는 붉은색 팔각형 건물 여러 동이 가운데 중정을 두고 원을 이룬 독특한 외관으로 유명하다. 업계에 따르면 이 건물은 2021년 네덜란드 유명 건축 기업 ‘아키텍튼 씨(de Architekten Cie)’가 독특한 방식으로 리모델링한 이후 가치가 4500만 유로에서 2억 9400만 유로로 6.5배 급상승했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이전에 사용되지 않았던 중정이 화려한 유리 천장으로 덮여 건물의 새로운 중심이 되었다는 점이다. 또 기존 외벽들은 부분 제거돼 사무 공간에 채광이 더 들 수 있도록 개조됐다.
시장에서 주목한 부분은 세련되게 바뀐 건물의 외관만큼이나 높아진 에너지 효율이었다. 유리 시공으로 최적화된 건물 중심부는 에너지 소비를 줄일 수 있었고, 건물은 축열 시스템과 태양열 집열판, 공기 및 물·열 펌프를 활용해 자체적으로 에너지를 생산하고 있다. EDGE 암스테르담 웨스트 리모델링에 적용된 방식은 ‘순환건축’ 개념이다. 순환건축은 단순히 친환경 자재로 건물을 짓는 것에서 나아가 건축물을 구성하는 요소의 수명주기를 파악해 건물의 설계와 시공, 해체와 재활용까지 전 과정에서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EDGE 암스테르담 웨스트처럼 건물의 자연 채광을 극대화해 에너지 효율을 개선하는가 하면 탄소를 머금는 목조구조나 탄소발자국 감소를 위한 모듈러 공법, 재활용 콘크리트 등을 사용해 건물의 가치를 극대화한다.
지난 5~6년간 세계적으로 순환건축은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개념의 대두와 함께 주목받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순환건축 개념을 포함한 ‘친환경 건축’이 경제적으로도 가치가 커질 것이라는 점에 업계 관심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건산연)에 따르면 제로에너지건축물 시장 규모는 2022년 기준 약 15조~20조원 수준에서 2030년 93조~107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제로에너지 건축물이란 건물에서 에너지를 사용한 만큼 에너지를 생산해 에너지 사용과 생산의 합이 ‘0’이 되는 건축물을 의미한다.
그린 리모델링 시장도 커질 전망이다. 건산연이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에서 제시된, 향후 그린 리모델링을 실시해야 할 기존 건축물의 연면적을 산출한 결과 29.5억~48.2억㎡로 추정됐다. 이 면적에 단위 면적당 그린 리모델링 비용을 곱해보니 2023~2050년 그린 리모델링 시장규모는 1706조~2781조원, 연평균으로 63조~103조 원으로 예상됐다. 이홍일 건산연 연구위원은 지난해 말 발표한 ‘탄소중립 시대 녹색건축 시장의 성장 가능성과 과제’ 보고서에서 “제로에너지건축과 그린 리모델링은 탄소중립 달성뿐 아니라 기술혁신, 일자리 창출, 주거환경개선, 소득재분배와 같은 사회경제적 효과가 기대된다”며 “정부의 추가 활성화 정책이 필요하고, 향후 시장 성장에 대비한 기업의 전략적 대응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건설 기업들도 선언적인 수준을 넘어 점차 순환건축을 실제 경영에 필요한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KPMG의 ‘2023 글로벌 건설업 서베이’에 따르면 2008년 글로벌 엔지니어링 및 설계 기업들의 56%는 ESG 정책을 도입하는 주요 동인으로 ‘자신들을 혁신적이거나 환경을 고려하는 기업으로 포지셔닝하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그러나 2023년 설문조사에서는 54%의 응답자가 ‘ESG 혜택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고 성숙도와 개선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답했다. 37%는 ‘ESG에 일부 혜택을 보고 있다’고 응답했다.
다만 국내 관련 시장이 로드맵을 따라 성장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특히 민간 건축물을 제로에너지 건축물로 만들거나 그린 리모델링할 수 있도록 유인하려면 더욱 탄탄한 규제와 유인책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 연구원은 “전체 건축물 중 민간 건축물 비중은 97%로 민간건축물이 건물 탄소중립의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민간건축물은 제로에너지 건축물 인증 의무화 대상에 포함된 이후 인증을 하지 않으면 소정의 과태료가 부과돼 어느 정도 강제성이 있으나 한계가 존재한다”며 “민간의 추진을 유인할 수 있는 활성화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표적으로 녹색건축 활성화를 위한 공사비 저리 대출, 보조금 지원, 부가세 감세, 세금 환급 등이 방안으로 꼽힌다. 녹색건축을 하면 에너지 비용 절감과 사용자 편익 증대로 부동산 가치 상승도 기대할 수 있어 이를 공인하는 통합적 인증제도를 마련하고 활성화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예컨대 프랑스는 주택을 매각하거나 임대할 때 에너지 성능 인증제(EPC) 및 표시제(DPE)를 시행하고 있다.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주택 구매자들은 저에너지 건물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 개발 및 공간 기획 전문 기업 JLP인터내셔널 관계자는 “한국은 친환경 건축, 순환건축, 혹은 지속가능한 건축에 대한 정보나 실증이 부족하고, 사실상 막연하게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명확한 아젠다가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JLP인터내셔널은 최근 ‘아키텍튼 씨’와 함께 해외 순환건축 실증 사례를 담은 책 ‘순환건축’을 출간하기도 했다. 이어 “제로에너지 건축물 설계 및 시공에 필요한 전문 인력과 기술도 부족하다”며 “국내에서 제로에너지 건축물에 적용할 수 있는 기술 표준화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아 건설 과정에서 기술적 어려움이 발생한다”고도 지적했다. 특히 건축은 국가별로 사람들의 생활 양식이나 규제 체계가 달라 한국만의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는 분석이다. 예컨대 대표적인 친환경 건축 소재인 목재는 층간소음을 증가시킬 우려가 있어 순환건축에 적용할 때 보다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또여러 순환건축 기술을 수입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탄소 배출이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이 같은 딜레마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업계 가이드라인이 마련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EDGE 암스테르담 웨스트를 리모델링한 후 가치가 약 6.5배 상승했는데 그 배경은 무엇인가?
에너지 성능을 개선함으로써 에너지 요금을 절감할 수 있었고, 입주기업을 한곳에서 여러 곳으로 늘리면서 사용가치를 키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건물 중심부 사용 면적을 늘리면서 의미 있는 회의 공간을 추가할 수 있었고 WELL(건물 내 환경 요소가 인간 건강과 웰빙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는 국제 인증 시스템) 인증 최고 등급인 ‘Platinum’, BREEAM(건축물의 에너지 효율성, 자원 절약, 생물다양성 보전 등을 고려해 친환경성과 지속가능성을 평가하는 국제 인증 시스템) 최고 등급인 ‘Outstanding’ 등 각종 그린 빌딩 인증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순환건축으로 경제적인 이익을 볼 수 있는 경우는 건물 장기 소유자일 때만 유효할 수 있을 것 같다. 단기 밸류에이션과 차익을 위한 고객은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까?
모든 것은 규제에 달려 있다. 유럽에서는 단계적으로 투자자들이 포트폴리오의 상당 부분을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개발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들은 디벨로퍼에게 지속 가능하거나 순환적인 방식으로 개발할 것을 요청한다. 그래야만 단기 고객도 순환적인 방식으로 건축물을 개발할 인센티브를 갖게 된다.
건축업계에서 순환건축의 개념이 널리 확산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순환성에 관한 지식이 확산돼야 한다. 그래야 고객, 설계사나 시공사가 순환성을 리스크나 ‘그린 워싱’으로 보지 않고 현실적인 가능성으로 인식할 수 있다. 순환성을 설계의 제약이 아닌 긍정적인 기회로 생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고객이 요청하지 않더라도 건축가나 설계사들이 적극적으로 나서 고객에게 순환 설계 솔루션을 제안하길 바란다. 정부의 규제와 이를 실현하기 위한 재정적 인센티브 등도 필요하다.
강인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