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압구정 로데오 거리에 자리한 ‘바이버 쇼룸’은 평일에도 손님이 북적이는 시계 맛집이다. 하이엔드 명품시계 100여 종을 직접 착용해 볼 수 있는 이 공간에선 매일 하루 40~50개의 시계가 목록을 채우고 30~40여 개가 주인을 찾는다. 시계거래 플랫폼인 ‘바이버’로 이동하면 그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약 900~1200여 개의 명품 시계가 저마다 자태를 뽐내고 있다. 롤렉스, 오데마피게, 파텍필립, 오메가, 까르띠에, 바쉐론콘스탄틴, 랑에운트죄네, 브레게, 블랑팡, 위블로, IWC, 예거르쿨트르, 튜더 등 취급하는 브랜드만 총 16개나 된다.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의 자회사로 2022년 8월 동명의 플랫폼을 론칭한 바이버는 현재 플랫폼과 쇼룸, 랩스 등 3가지 서비스를 운영하며 판매자와 구매자 간 온라인 거래를 중개하고 있다. 국내외 거래 정보를 수집해 시세를 알려주는 ‘바이버 인덱스’, 정품 시계 확인을 위한 ‘바이버 감정진단 서비스’, 시계를 선택하는 방법부터 관리법 등 시계 전문가가 전하는 ‘바이버 매거진’은 시계 구매 전 꼭 한번 들러야 하는 코스로 자리잡았다. 지난해 이커머스 업계에서 바이버 대표로 부임한 문제연 대표는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명품 시계 거래는 국내에선 이제 시작 단계”라며 “투명한 감정과 보증, 서비스를 통해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소개했다.
서울대에서 항공우주공학을 전공했다. 2005년부터 17년간 이베이코리아 전략총괄(CSO), 영업본부장(COO)으로 근무했다. 2022년 컬리 전략총괄 부사장(CSO)을 거쳐 2023년 7월 바이버 대표로 부임했다.
Q 이베이코리아, 컬리를 거쳐 스타트업인 ‘바이버’ 대표로 이동했습니다. 특별한 이유라면.
A 두 회사에서 총 18년간 재직했는데 사실 만족도가 높았습니다. 그런데 제 나이가 50살이 되다 보니 앞으로 남은 10년, 혹은 15년의 직장생활은 좀 더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럭셔리 분야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었는데,(웃음) 바이버에 입사하기 전엔 애플워치를 차고 다녔었거든요. 명품업계는 잘 모르지만 이 분야에 대한 국내 시장이 시작 단계였고, 시장을 만들어간다는 측면에서 굉장히 매력적이었습니다.
Q 온라인 명품거래 시장이 이제 시작 단계다?
A 하이엔드 시계를 매장에서 구입한 후 몇 년 사용하다 중고로 내놓거나 아니면 아예 새 제품에 원하는 금액을 얹혀서 내놓으면 바이버가 중개하는 역할을 합니다. 신제품과 중고제품의 비중이 6.5:3.5 정도죠. 미국, 일본, 홍콩이 비교적 큰 시장이고 싱가포르도 세계 6위권이에요. 한국은 11위권이고요. 도전해볼 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Q 막상 부딪쳐 본 시장은 어떠하던가요.
A 처음엔 난도가 꽤 높았어요. 시장 분위기가 2000년대 초반 이커머스 태동기와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당시엔 G마켓과 옥션이 굉장히 큰 플랫폼이었는데, 그때도 상품 확보가 문제였거든요. 어느 정도 셀렉션을 갖고 계신 판매자들이 대부분 개인사업자였습니다. 비즈니스 규모를 키우려면 결국 법인사업자가 돼야 한다는 걸 깨닫는 데 꽤 시간이 걸렸습니다. 현재 명품거래 시장이 딱 그 시기예요. 판매자분들 중 법인사업자가 거의 없어요.
Q 난도가 높다는 건 어떤 의미입니까.
A 시계업계에 계신 분들을 만나 플랫폼에 대해 말씀드리면 다들 압구정에 보통 100개 정도의 숍이 있는데, 플랫폼에서 거래하는 건 안 될 거라고. 그 선입견이 꽤 셌습니다.
Q 그런데 결국 그걸 가능하게 한 셈이네요.
A 앞서 말했듯이 이커머스가 시작될 무렵에도 비슷했어요. 예를 들어 1억원의 제품을 판매해서 2000만원이 남으면 20%가 영업이익이잖아요. 1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1억원의 영업이익을 낸다고 하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경영자라면 영업이익률은 낮지만 분명 후자를 선택할 겁니다. 법인사업자로 한번 규모를 키우고 입소문이 나면 지속적인 판매가 이뤄지더라고요. 요즘 시계거래에도 그런 기운이 느껴집니다. 바이버의 새로운 파트너분들이시죠.
Q 파트너 수는 처음과 비교해 어느 정도나 늘었습니까.
A 지금은 많이 늘었습니다. 제가 지난해 7월에 합류했는데, 그때와 비교하면 약 5배 정도 늘었어요. 사실 처음엔 시계업계, 부산이나 대구 지역에 가면 거의 문전박대를 당했거든요. 두나무라는 회사가 대기업인 건 알겠는데, 어디 듣도 보도 못한 업체가 시계거래까지 하려고 하느냐고.(웃음)
Q 경기 침체로 인한 소비 위축 등 명품시장이 심상치 않은데요. 하이엔드 시계 분야는 낙폭이 좀 더 크다고 알려졌습니다. 바이버의 성장비결이 있을 법한데요.
A 한때 성장세가 높았던 명품 이커머스가 지금은 사정이 썩 좋지 않다고 알려졌습니다. 문제는 할인 경쟁인데요. 아마도 한 번쯤은 할인쿠폰을 받아보셨을 거예요. 각각의 이커머스가 결국은 차별성 없이 비슷해졌어요. 네이버가 가진 무기가 꽤 많은데도 쿠팡의 로켓배송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그런 무기를 구축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다양한 시계를 직접 경험해 볼 수 있는 ‘바이버 쇼룸’이나 최신 장비, 최고 역량의 엔지니어로 구성된 ‘바이버 랩스’, 정밀한 감정 진단을 제공하는 ‘바이버 감정진단 서비스’를 운영하는 것도 그런 이유죠.
Q 바이버 감정진단 서비스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 겁니까.
A 스위스 매뉴팩처 수준의 장비와 롤렉스, 오데마피게 등지에서 경력을 쌓은 바이버 엔지니어가 정밀한 감정진단을 제공하는 서비스죠. 2022년 바이버 플랫폼을 론칭하고 1년간 거래한 상품을 대상으로 수천여 건의 감정진단을 진행했는데 단 한 건의 오감정 사례가 없었습니다. 일반감정진단은 쇼룸에서 약 30분이면 결과를 확인할 수 있고, 정밀감정진단은 2~3일간의 감정기간이 소요됩니다.
Q 현재 16개 브랜드의 하이엔드 워치를 거래하고 있는데, 규모나 분야를 확대할 계획은.
A 헤리티지가 있고 사용가치와 투자가치가 높은 브랜드는 좀 더 늘어날 것 같은데, 거래규모를 늘리기 위해 분야를 확대하는 건 지양하고 있습니다. 하이엔드 럭셔리 분야에 전문화된 플랫폼으로 거듭나려고 애쓰고 있어요.
Q 가장 판매량이 많은 브랜드가 어떤 겁니까. 투자 가능성이 높은 브랜드도 있을 텐데.
A 역시 롤렉스죠.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환금성이 가장 높습니다. 롤렉스 외에 주목하고 있는 건 튜더(TUDOR)예요. 롤렉스가 인수해 이젠 롤렉스의 아우 브랜드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기술력도 높고 독창적인 브랜드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Q 궁극적인 목표라면.
A 단기적으로는 ‘시계는 바이버, 바이버는 시계’란 등식을 성립시키는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두나무의 그룹사로서 실체가 있는 대체투자자산으로 범위를 확대하는 게 어떨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고가의 시계를 비롯해 미술품, 와인, 위스키처럼 보존이 쉽지 않은 실물은 바이버 중심이 돼 보관 서비스를 진행하고 NFT로 거래하는 방식이죠.
Q 해외 진출도 기대되는데요.
A 홍콩이나 일본, 싱가포르 등 한국보다 명품거래가 앞선 나라들의 경우 바이버와 비슷하거나 같은 모델이 한 군데도 없습니다. 온라인 침투율도 굉장히 낮아요. 일본의 유명 리셀 업체들이 저희를 보고 종종 놀라워하곤 합니다. 홍콩도 그렇고요. 우선 외국인 구매자를 위한 서비스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안재형 기자 · 사진 류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6호 (2024년 7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