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교향악단의 신년음악회, 아시아 초연작 ‘FOOD(푸드)’와 ‘주변인’, 노배우 신구, 박근형, 박정자가 무대에 오르는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체코 브르노 국립 주니어 발레단의 국내 초연작 ‘NdB2’, 유니버설발레단의 ‘백조의 호수’, 백건우 피아노 리사이틀, 피아니스트 여제 마리아 조앙 피레스 내한공연, 10년 만에 내한하는 뮌헨 체임버 오케스트라, 아시아에서 처음 열리는 독일 팝아트 짐 아비뇽 전시회…. 언뜻 예술의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의 시즌 프로그램이 떠오르는 라인업은 모두 강동아트센터에서 진행되는 공연과 전시회다. 최근 국내 문화계에 강동문화재단이 회자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재단을 이끌고 있는 이는 30년간 LG맨으로 근무하며 LG아트센터 대표를 역임한 심우섭 대표. 2022년 공모를 거쳐 강동문화재단에 부임한 심 대표는 “문화재단의 사명은 문화예술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라며 “강동구뿐 아니라 수도권 동남권을 대표하는 공연장이 되기 위해 프로그램부터 차별화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관객과 소통에 나선 지역 아트센터의 작은 움직임에 유료회원과 후원도 눈에 띄게 늘었다. “한 해 10만 명이 강동아트센터를 찾는다”고 소개한 심 대표는 “아트센터가 사람을 모으는 새로운 앵커(거점) 시설이 되면 자연스레 관련 인프라가 늘며 자족도시로 거듭나게 된다”고 강조했다.
1966년생. 고려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LG화학을 거쳐 1995년부터 LG연암문화재단에서 근무했다. LG상남도서관장, LG아트센터 대표를 거쳐 2022년 4월부터 강동문화재단 대표이사로 재직하고 있다.
Q 많이 바쁘다고 들었습니다.
A 요즘은 생성형 AI를 살펴보고 있어요. 미래학자는 아니지만 문화예술계에도 AI가 도입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업무에 AI를 접목했을 때 일어날 자동화나 지능화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고객 서비스에 챗봇을 활용한다든지, 고객 경험 분석 데이터 기반의 온라인 마케팅에 AI를 접목하는 시도는 해볼 수 있을 것 같더군요. 지난해 강동문화재단이 독서경영 우수직장 인증을 받았는데, 독서동아리를 발전시켜서 AI 관련 사내경진대회를 개최할 계획입니다.
Q 30여 년간 LG맨으로 근무하다 2022년 봄에 강동문화재단 대표로 부임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겁니까.
A LG화학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는데, LG연암문화재단으로 옮겨서 그동안 사회공헌 분야를 담당했었어요. 그렇게 LG재단 국장, LG상남도서관장, LG아트센터 대표를 맡았습니다. 30년 직장생활을 마감하고 보니 기업에서 배운 경영 기법과 예술을 접목해 공공기관에 기여하고 싶더군요. 그래서 퇴직하고 바로 강동문화재단 대표 공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Q 강동아트센터는 어떤 공연장입니까.
A 2011년에 개관했으니 13년 된 강동구의 복합문화시설이에요. 850석의 대극장, 250석의 소극장, 300여 평의 전시장과 갤러리, 상주단체 연습장과 리허설 룸, 아카데미를 위한 교육장, 연습실 등을 갖추고 있습니다. 무대가 넓고 깊은 프로시니엄 구조라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올릴 수 있는, 서울에서 몇 안 되는 전문 공연장입니다.
Q 명일근린공원 산책로와 연결되더군요.
A 자연환경이 굉장히 좋은 곳입니다. 접근성도 점점 좋아지고 있어요. 지하철 9호선 공사가 진행 중인데, 곧 고덕역으로 5호선과 9호선이 지나게 됩니다. 저희 아트센터의 타깃 지역이 강남 3구와 하남시인데 이 지역이 모두 지하철로 연결되는 셈이죠.
Q 그러고 보니 주변의 재건축, 재개발도 한창입니다.
A 현재 강동구 주민이 약 47만 명인데, 둔촌동의 입주가 진행되면 50만 명에 육박할 거라더군요. 그렇게 되면 강동구가 서울·수도권 지자체 중 4번째로 많은 인구를 보유하게 됩니다. 예비 관객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요.
Q 여타 지역 아트센터와 운영전략이 달라 보입니다.
A 잘 보셨어요. 강동아트센터의 목표는 동남권의 고품격 공연장입니다. 보통의 구민회관 개념과는 다르죠. 직접 시설을 보셨으면 아실 텐데, 지역 공연장으로 남기엔 주민들의 구성이나 시설 수준, 자연환경이 너무 아까워요. 저희 재단 이사장이 이수희 구청장이신데, 이런 말씀을 드렸더니 본인 생각도 그렇다며 흔쾌히 지원을 약속하시더군요.
Q 고품격 공연장의 조건이 궁금한데요.
A 차별화하자. 그리고 브랜딩하자고 했습니다. 사실 공연장 이름을 가리고 지역 아트센터의 프로그램을 비교해보면 대부분 비슷하거든요. 그건 특색이 없는 거죠. 이런 면을 탈피하려면 진성 관객을 모아야 합니다. 공연장의 프로그램이 너무 좋다는 신뢰가 쌓이게 되면 저절로 내 공연장이 됩니다. 저곳의 발전을 위해 나도 한 수 거들어야겠다는 마음이 생기게 되죠. 그렇게 ‘GAC 베스티 클럽’이라는 유료회원제를 도입했습니다. 지난해 4월에 시작했는데, 5만원의 가입비를 내고 1년 단위로 갱신하는 회원제죠. 현재 회원 수가 550명을 넘었습니다.
Q 유료회원제를 운영한다는 건 그만큼 프로그램에 자신있다는 방증인데, 올해 라인업을 보니 아시아 초연도 눈에 띕니다.
A 시설과 서비스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사회적 이슈를 일으킬 만한 공연 프로그램이 있어야죠. 전체 예산에서 30%를 시그니처 공연으로 잡고 있고, 일정 수준은 수익도 챙겨야 하니 대중성을 겸비한 공연이 40~50%, 또 20~30%는 입문자를 위한 복지성 공연이나 지역 주민과의 협력공연 등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올 4월 4일부터 3일간 무대에 오르는 컨템퍼러리 공연 ‘푸드’는 지난해 에든버러 국제페스티벌에서 최고의 화제작이었어요. 아시아 초연작입니다. 5월 9일에 막이 오르는 소극장 연극 ‘주변인’도 아시아 초연이죠. 지난 3월 15일에 공연된 체코 브르노 국립 주니어 발레단의 ‘NdB2’는 국내 초연이었습니다. ‘푸드’는 지난해 저희 직원이 직접 에든버러 현지에서 섭외한 작품이에요. 강동문화재단과 공주문화관광재단, 국립아시아문화전당재단이 협력해서 오리지널 투어팀의 아시아 초연을 성사시켰습니다. 한국에서 공연한 후 대만이나 중국으로의 투어를 계획하고 있더군요.
Q ‘푸드’는 무대에 객석과 디너테이블이 설치된다고 들었습니다. 그럼 수익성을 장담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A 수익을 고려하면 850석의 좌석을 다 판매해야 하는데, ‘푸드’는 객석을 다 포기하고 무대 위에 20m에 이르는 테이블과 250개의 객석을 마련했습니다. 배우들이 관객과 대화하며 진행되는 공연이니 어쩔 수 없었어요. 수익보다 좋은 작품에 포커스를 맞췄습니다.
Q 사실 공연장의 가장 큰 고민은 재정 자립인데, 공공 공연장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A 민간 공연장도 한계가 있습니다. 해외에 벤치마킹할 공연장이 있는지 찾다 보니 미국과 영국의 경우 전체 재정의 약 15%를 후원이나 기부에 기대고 있더군요. 기업 후원이나 국가의 공적 보조가 약 10%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국내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거든요. 공공 공연장도 후원에 기대고 있는 부분이 크죠. 강동아트센터의 경우 공연을 보러 오시는 관객이 한 해 5만 명, 전시나 센터에서 휴식을 즐기기 위해 오는 분들이 5만 명에 이릅니다. 신규 고객을 만들고 티켓 재구매로 이끌기 위해 온라인 분야도 강화했어요. 카카오톡 열린 채널을 열었는데, 여기도 3400여 분이 참여하고 계십니다. 앞서 소개한 베스티 클럽 회원 수가 1500명을 넘기면 어떤 프로그램을 하든 기본 공간을 채울 수 있을 겁니다.
Q 올해 목표로 들리는데요.
A 문화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장소,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아트센터로 가꿔갈 겁니다. 지켜봐주십시오. 아, 공연 예매하는 것도 잊지 마시고.(웃음)
[안재형 기자 · 사진 류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3호 (2024년 4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