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환 백패커 대표의 명함에는 3가지 플랫폼 서비스가 나란히 기재돼 있다. 핸드메이드 마켓플레이스 ‘아이디어스’와 창작자 크라우드펀딩 ‘텀블벅’, 창작자 멤버십 커뮤니티 ‘스테디오’가 그 주인공이다. 2012년 닻을 올린 백패커가 2014년 아이디어스를 시작했고 2020년 텀블벅을 인수한 후 지난해 스테디오 서비스를 출시하며 세축이 완성됐다. 핸드메이드 작품 구매뿐만 아니라 창작자와 고객이 직접 소통하고 후원하며 제작에 참여하는 창작자 생태계 구축이 가능해진 셈이다. 현재 아이디어스에서 활동 중인 작가는 약 3만 5000명, 텀블벅의 창작자는 약 2만 6000명이나 된다. 지난해 말 누적거래액 1조원을 돌파한 백패커는 최근 1년간 수익구조가 흑자전환하며 올 초 국내외 벤처캐피털(VC)과 기관들로부터 총 200억원 규모의 시리즈C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다. 벤처업계에서 ‘창업 후 5년간 100배 성장’이란 백패커의 과거가 현재진행형이라고 회자되는 이유다. 김동환 대표는 “미국의 엣시(Etsy)가 아마존의 압박 속에서도 성장했듯 백패커도 아시아 1위 핸드메이드 마켓플레이스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릴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1982년생, 한양대 졸업 후 다음커뮤니케이션을 거쳐 벤처기업 인사이트미디어 일본 지사장으로 근무했다. 도예과를 졸업한 사촌동생과 플리마켓에서 작품을 판매하다 시장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2012년 백패커를 창업했다.
Q 사무실 분위기가 카페를 연상시키는데요.
A 19층과 20층을 쓰는데 아래층은 화이트톤의 카페 같은 느낌이고 위층은 촬영 스튜디오가 있어서 살짝 어두워요. 핸드메이드 플랫폼을 운영하다 보니 인테리어에도 나무 소재가 많습니다. 직원들 책상도 대부분 수제품이에요. 아이디어스에 입점한 작가님이 만드신 제품이죠.
Q 최근 스타트업의 강남 입성이 다시 주목받고 있는데요. 백패커도 동참한 겁니까.
A 저희는 홍대 근처에 오래 있었어요. 3년 전에 이곳으로 오게 됐는데, 채용 때문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개발자분들이 대부분 강남과 판교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홍대까지 출퇴근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교통이나 채용 면에서 강남지역이 분명 유리한 면이 있습니다.
Q 백패커는 현재 아이디어스, 텀블벅, 스테디오 등 3가지 서비스를 진행 중입니다. 각각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A 법인은 주식회사 ‘백패커’이고 그 안에 핸드메이드 마켓플레이스 ‘아이디어스’,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텀블벅’, 창작자 후원 기반 서비스 ‘스테디오’가 있어요. 아이디어스 안에도 여러 사업이 있는데, 입점한 작가님들에게 필요한 원부자재를 판매하고 또 B2B 원부자재 서비스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온·오프라인 클래스도 운영중이죠. 아이디어스는 핸드메이드 수공에 뿌리를 두고 여러 사업을 진행 중이고, 2020년에 인수한 텀블벅은 독립 자회사로 운영하다 올여름에 합병해 하나의 회사가 됐습니다. 텀블벅은 아이디어만 있으면 대중에게 그걸 공개해 크라우드펀딩을 받아 실현할 수 있는 플랫폼이에요. 미국엔 킥스타터 같은 사례가 있지요. 스테디오는 창작자가 자신의 찐팬들로부터 정기적으로 후원을 받을 수 있는 플랫폼이에요. 팬 개개인이 큰 금액이 아닌 한 달 3000원, 5000원, 1만원 등을 정기적으로 후원하면서 그 창작자가 만든 콘텐츠를 좀 더 일찍 혹은 독점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이죠. 꾸준히 창작활동을 지지하고 그 과정을 함께하는 서비스예요. 지난해 출시해 아직은 초기 단계죠. 텀블벅과는 지속성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어요.
Q 가장 규모가 큰 플랫폼은 역시 아이디어스일 텐데, 입점한 작가들의 매출 규모도 꽤 다양할 것 같습니다.
A 가장 많이 판매하는 작가는 연간 약 20억원의 매출을 올리기도 합니다. 어느 정도 규모의 경제가 되면 패밀리 비즈니스로 발전하기도 하는데, 직접 손으로 제작하는 작품을 판매하기 때문에 한 달에 5000만원에서 1억원이 상한선인 경우가 많죠.
Q 아이디어스에 입점하기 위한 기준은 무엇입니까.
A 저희 영업팀에서 독창성을 비롯해 6가지 기준을 갖고 평가합니다. 대중에게 소개했을 때 얼마나 관심도가 높고 또 판매로 이어질 수 있을지 판단하고 있습니다.
Q 3개의 플랫폼이 축을 이루고 있는데, 매출 구조는.
A 플랫폼 매출은 수수료가 중심인데, 현재 아이디어스는 15~20% 수준이에요. 판매 수수료를 받으면서 전문 포토그래퍼를 고용해 제품 사진이나 동영상 촬영 등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또 작가님들에게 필요한 원부자재를 저희가 직접 수입·구매해 공급하고 있어요. 거의 마진이 없기 때문에 감히 대한민국 최저가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입점한 작가님들이 대부분 4대 보험이 없어 건강 관리의 사각지대에 노출돼 있어요. 그래서 매년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게 지원하고 있습니다. 텀블벅은 프로젝트별로 수수료에 차등이 있어요. 5% 단일 수수료였는데, 지난해 말부터 펀드 규모에 따라 3단계로 나눴습니다. 평균 7% 정도 됩니다. 수수료가 높으면 저희가 비용을 분담해 마케팅까지 보장하는 패키지 형식이죠. 스테디오는 2가지 요금제가 있는데, 베이직 수수료가 5%, 프로가 10%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Q 높은 매출에 투자자들도 관심을 보였다고 들었습니다.
A 2022년 매출은 약 500억원 정도였고, 올해는 그보다 성장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실 스타트업도 매출보단 손익이 훨씬 중요한 시기가 됐어요. 지지난해까진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비용구조를 무시하더라도 일단 성장을 중시했었는데, 지난해부터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이젠 기업을 영속하려면 당연히 이익을 내야 하고 그 이익을 검증받는 시대가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저희도 지난해 여름부터 수익성에 좀 더 초점을 맞췄습니다. 재무적인 건전성을 유지하면서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는데, 최근 1년간 흑자로 돌아섰습니다.
Q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신다면.
A CFO 승인이 필요해서 조심스러운데.(웃음) 지난해 하반기와 올 상반기, 이렇게 최근 1년간 이익을 내고 있어요. 올해는 매출을 성장시키기보다 재무건전성을 확보하고 그걸 기반으로 성장하자는 전략이어서 매출이 늘더라도 그리 큰 규모는 아닐 수도 있을 것 같네요.
Q 올 초 투자 유치에도 성공했습니다.
A 이커머스와 플랫폼 산업은 약 2년 전까지만 해도 굉장히 각광받던 분야였어요. 인공위성 비즈니스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쏘아 올리기 전까진 굉장히 많은 공력과 연료가 필요하고 폭발 위험도 있지만 일단 올라가면 거의 무동력으로 궤도를 돌기 때문에 꾸준히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의미였지요. 그런데 현재는 많은 수의 플랫폼과 커머스 기업들이 이익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벤처캐피털에서 외면받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기업은 당연히 종속하는 기간 내내 손실보다 이익을 내야 합니다. 창업한 지 11년이 지난 백패커도 이제는 보여줘야 하는 시점이 왔다고 생각했어요. 올 초에 200억원 규모의 시리즈C 투자를 유치했는데, 최근 1년간 낸 수익도 있어서 투자받은 금액은 그대로 있습니다. 앞으로 M&A가 됐건 재투자가 됐건 필요할 때 쓸 계획이에요. 추가 투자는 아직 고려하고 있지 않습니다.
Q ‘창업 후 5년간 100배 성장’이란 수식어가 회자되고 있는데, 그 비결이 궁금합니다.
A 커머스의 가장 중요한 경쟁력은 제품입니다. 판매할 제품의 경쟁력이 바로 플랫폼의 경쟁력이죠. 대한민국 이커머스들은 대부분 똑같은 제품을 팔고 있어요. 내세울 수 있는 경쟁력이란 게 가격이죠. 그런데 그 가격도 하향평준화됐거든요. 이젠 비슷비슷합니다. 그래서 경쟁하는 게 총알배송이에요. 그 모든 걸 뛰어넘는 본질은 바로 제품에 대한 경쟁력이죠. 아이디어스는 어디에도 없는 작품을 작가님들이 직접 손으로 제작해 판매합니다. 다른 플랫폼에서 모방할 수 없는 펀더멘털이죠. 물론 주문을 받은 후 제작에 나서기 때문에 총알배송과는 거리가 멀어요. 그럼에도 소비자들도 참고 기다립니다. 나만의 작품(제품)이거든요. 쿠팡보다 많은 제품을 싸고 빠르게 팔 순 없지만 쿠팡과 다른 걸 팔고 있습니다.
Q 미국의 핸드메이드 마켓플레이스 ‘엣시’가 떠오르는 데요.
A 아마존이 이커머스 기업들을 압살했을 때 엣시만 살아 남았어요. 아마존에선 살 수 없는 제품을 엣시에서만 팔고 있기 때문입니다. 쿠팡이나 아마존이 제공하는 가치, 그러니까 많은 물건을 싸게 팔고 빠르게 배송하는 게 절대 틀린 건 아니에요. 단지 저희가 그 반대쪽에서 전혀 다른 가치를 제공하기 때문에 살아남고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죠.
Q 올 4월에 아이디어스의 해외 진출을 공개했는데, 현재 성과는 어떻습니까.
A 영어로 서비스를 운영 중인데, 미국이나 영국, 호주, 싱가포르 등 영어권에선 대부분 다 구매가 가능합니다. 사실 일차적인 타깃은 싱가포르예요. 우선 배송비가 저렴하고 K컬처, 한류에 대한 관심이 높아서 주시하고 있습니다. 국내 서비스는 SNS를 통해 작가와 소통하는 등 여러 기능이 고도화돼 있는데 영어 서비스는 아직 완전하지 않아요. 시장의 가능성을 엿보면서 최소한의 마케팅을 진행 중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나 싱가포르에서의 주문량이 적지 않습니다.
Q 해외 작가를 발굴할 계획도 있는 겁니까.
A 궁극적으로는 그런 생각이죠. 우선 현재는 한국에 있는 작가님들을 해외의 구매자와 연결해주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결국 스타트업의 생존방정식 중 필수요소는 해외진출이라 합니다. 여러 측면이 있을 텐데, 시장 규모의 한계도 있는 것 같아요. 한국의 경제인구가 현재 2000만 명 정도고 그게 더 늘어날 것 같지 않거든요. 장기적인 시각에서 해외 진출을 고려하는 이유죠. 아이디어스 입장에선 한국의 수공예를 세계에 알리는 사명도 있습니다. 약 2000년의 역사를 지닌 한국의 공예는 대학에 공예과가 있을 만큼 찬란한 문화유산이거든요. 그동안 소외받고 낙후된 산업으로 여겨졌지만 앞으로는 시각이 달라질 겁니다. 목표요? 전 세계에서 핸드메이드 마켓플레이스가 자리잡은 국가는 미국, 한국, 일본 정도인데 미국에 가장 앞선 1위고 2위가 아이디어스예요. 아시아권에서 가장 큰 핸드메이드 마켓플레이스이자 창작자를 위한 생태계를 만들고 싶습니다.
[안재형 기자 · 사진 류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