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욱 특파원의 일본열도 통신] 지지율 추락 포스트 아베 관전법, 親아베 기시다 후미오 vs 反아베 이시바 시게루로 압축
정욱 기자
입력 : 2020.06.29 14:45:58
수정 : 2020.06.29 14:50:36
‘아베 1강’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굳건했던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입지가 날로 흔들리고 있다.
코로나19 대응 부진으로 업무 추진력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가기 시작한 상황에서 잇따르는 스캔들이 억눌려있던 여론의 불만을 폭발시킨 형국이다.
의원내각제인 일본에서는 집권여당인 자민당의 총재가 총리가 된다. 현재 아베 총리의 자민당 총재 임기는 내년 9월까지다. 이미 자민당 당규를 바꿔 3연임까지 한 상황이라 추가적 연임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일본 언론사들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내각 지지율도 하락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 6월 조사에선 내각 지지율이 2차 집권(2012년 12월) 이후 최저치와 동일한 38%를 기록했다. 아사히신문 여론조사서도 내각 지지율은 29%로 기존 최저치와 동일했다. 내각 지지율과 정당 지지율 합산이 50% 이하가 되면 정권 교체가 이뤄진다는 이른바 ‘아오키 룰’의 기준에도 근접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세간의 관심은 자연스레 포스트 아베로 옮겨가고 있다. 잘 알려진 대로 현재 일본 언론 등이 주목하는 것은 1957년생 동갑인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전 방위상)과 기시다 후미오 현 자민당 정조회장(전 외상)이다.
두 사람 모두 각자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결국 핵심은 아베 총리와의 거리다. 친아베와 반아베의 대결 구도다. 이시바 전 간사장은 반아베를 내걸고 세력 규합에 나서고 있다. 이에 비해 아베 총리가 후임자로 찍었다는 평가가 파다한 기시다 정조회장은 일단 충성 모드를 유지하고 있다.
기시다 정조회장이 기대하는 것은 이른바 ‘선양(禪讓)’이다. 선양이란 본래 왕이 덕망 있는 인물에게 왕위를 물려준다는 뜻으로 후임자를 지명해 총리직을 승계해준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런 구도가 가능한 것은 총재 선출 방식 때문이다.
자민당 소속 의원(1인 1표)표와 대의원(득표수 대비 할당)표를 각각 반씩 더해 선거를 진행한다. 과반 이상을 얻은 후보가 없을 경우 1~2위를 대상으로 결선투표가 치러진다. 이 때는 국회의원만 참여한다. 애매한 상황일수록 국회의원의 표가 중요해지는 셈이다. 2012년 총재선거에서 이시바 전 간사장은 1차 투표에서 1위를 기록했지만 결선투표에선 아베 총리에 졌다.
8년이 지났지만 상황은 비슷하다. 예상 국회의원 득표수를 가늠해볼 수 있는 방법은 파벌 규모 파악이다. 과거에 비해서는 영향력이 떨어졌다지만 총재선 등에선 파벌의 영향력이 여전하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자민당 정조회장
자민당 최대 파벌은 아베 총리가 속한 호소다파(소속의원 97명). 이어 모테기 도시미쓰 외상 등이 참여하고 있는 다케시타파(54명), 아소 다로 부총리가 이끄는 아소파(53명), 니카이 간사장이 이끄는 니카이파(47명), 기시다 정조회장이 이끄는 기시다파(46명) 순이다. 현재는 이들이 모두 아베 총리를 지지하고 있다. 이시바 전 간사장은 자신의 파벌 19명이 전부다. 포스트 아베를 놓고 오늘 자민당 의원들의 표결이 이뤄진다면 기시다 정조회장이 이길 가능성이 높은 구도다.
여론조사에서 이시바 전 간사장이 총리후보 1순위를 하고 있다지만 기시다 정조회장의 총재 당선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아베 총리에 대한 국민적 지지도가 떨어질수록 파벌 간 동맹에도 균열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조용히 아베 총리의 정책에 대한 찬성 의견만 밝히는 기시다 정조회장으로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없고 이는 의원 선거에서 패배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현재 중의원 임기는 내년 10월까지다. 총리가 해산을 결정하면 그 전에도 선거는 이뤄질 수 있다. 다만 아베 총리나 자민당 입장에선 내각이나 여당 지지율이 급락하는 상황에서 선거를 치르기는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 결국 새 총재를 전면에 내세운 선거가 치러질 공산이 크다.
이시바 전 간사장은 이 틈을 파고들고 있다. 니카이 간사장을 비롯한 각 파벌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 젊은 의원들과는 의원숙소에서 술잔을 기울이는 등 적극적으로 외연 확장에 나서고 있다. 월간지 문예춘추(7월호)와 인터뷰에서 “내가 주장하는 지방분산, 내수주도형 국가상에 대해 니카이 간사장도 동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시바 전 간사장은 지난 8일엔 니카이 간사장을 만나 9월 열리는 자신의 파벌 행사에서 강연을 요청하기도 했다. 니카이 간사장 역시 만남 후 “(이시바 전 간사장은) 더 높은 곳으로 향하길 기대하는 별 중의 하나”라고 화답했다.
이시바 시게루 전 일본 자민당 간사장
니카이 간사장이 이시바 전 간사장을 추켜세우는 것은 아베 총리에 대한 불만이 한몫했다.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아베 총리는 기시다 정조회장이 소득감소 세대를 대상으로 한 30만엔 지급 계획을 발표하도록 멍석을 깔아줬다. 이 과정에서 배제된 니카이 간사장은 즉각 반발했고 이후 연립여당인 공명당까지 가세해 결국 전 국민을 상대로 한 10만엔 지급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결과적으로 기시다 정조회장의 능력에 대한 불신만 키우는 꼴이 됐다. 이시바 전 간사장은 또 문예춘추 인터뷰서 “스가 관방장관도 아키타 출신으로 지방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갖고 있다”고 추켜세웠다. 관방장관은 내각 안살림을 챙기며 위기 시 컨트롤타워를 하는 자리로 2인자로 불린다. 스가 장관 관련 논란이 커지자 아베 총리가 직접 나서 “내각 발족 후 관방장관과는 함께해오며 어떤 틈도 없다”고 직접 부인하고 나섰을 정도다.
차기 총리가 누가 될지는 한일 관계에도 큰 차이를 불러올 것으로 전망된다. 이시바 전 간사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관계 개선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2015년 한일 위안부합의 당시 외상이던 기시다 정조회장은 우리 정부와 합의를 사실상 파기 선언한 후 강경론을 펴고 있다. 기존 리더의 조직에 기대 수성에 집중하는 유력 주자와 공격적으로 세력을 불리는 경쟁자의 도전이 과연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