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용승 특파원의 월스트리트 인사이트] 미국의 심장 뉴욕시 6월 8일부터 1단계 경제 재개 | 맨해튼 곳곳 공사 한창… 유령도시서 활기 되찾아, 쿠오모 주지사 “규정 준수하지 않으면 다시 셧다운”
장용승 기자
입력 : 2020.06.29 14:16:50
수정 : 2020.06.29 14:50:36
“마스크를 쓴 뉴요커들이 이제 막 도시를 되찾기 시작했다.”
- 뉴욕타임스
“뉴욕시는 과연 언제쯤 코로나19 이전 상황으로 되돌아올 수 있을까.”
-월스트리트저널
‘세계의 수도’로 불리는 미국 뉴욕시가 6월 8일 1단계 경제 재개에 나서면서 미국 경제 회복에 대한 조심스러운 기대감이 나타나고 있다. 뉴욕시의 1단계 경제 재개는 단순히 한 도시의 경제 정상화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인구 840만 명의 미국 내 최대 도시인 뉴욕시는 미국 경제, 문화, 패션 등의 중심지로 미국 경제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뉴욕시의 경제 규모는 웬만한 국가와 맞먹는 수준이다. 미국 상무부와 세계은행에 따르면 뉴욕 대도시권(주변 도시를 포함하는 메트로폴리탄 분류 기준)의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약 1조8000억달러(2018년 기준)로, 한국의 GDP인 1조6463억달러(2019년 한국은행 발표 기준)보다 크다. 이에 따라 뉴욕시의 경제 재개가 어떻게 진행되느냐는 전체적인 미국 경제의 코로나19 극복 시험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 모든 언론들이 뉴욕시 일상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1단계 경제 재개 이후 일주일가량 지난 현지 분위기를 종합해보면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셧다운’ 조치로 ‘유령도시’가 됐던 뉴욕시가 점차 도시 활력을 되찾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사태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가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뉴노멀’에 적응하는 데 적지 않은 시행착오가 예상되는 데다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우려도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1단계 경제 재개에 맞춰 맨해튼을 찾은 지난 6월 9일, 주변 건물, 도로 공사 등이 한창 진행 중이었고, 마스크를 쓰고 길거리를 지나다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1단계 경제 정상화로 인해 건설, 농업, 제조업, 도매 거래, 소매(주문 후 픽업만 가능) 등의 비즈니스가 재개된 데 따른 것이었다. 미국 주요 언론들은 이번 1단계 정상화 조치로 뉴욕시에서 최대 40만 명이 일터로 복귀할 것으로 추산했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모마)이 위치한 맨해튼 53번가 주변 할랄푸드 트럭으로 유명한 ‘할랄가이즈(Halal Guys)’ 매니저 아메드 산은 “경제가 재개돼 기쁘다”며 경제 재개를 환영했지만 향후 전망에 대해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그는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는 모마 주변에서 3개 푸드트럭을 운영해왔지만 손님들의 발길이 끊기면서 이제는 1개로 줄였다”며 “단순 계산해볼 때 매출이 3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고 할 수 있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또 “코로나19 이전만 하더라도 음식을 사기 위해 직장인, 여행객 등이 몰리면서 긴 줄을 서야했다”며 “5~10분 정도 기다려야 음식을 주문할 수 있었는데, 이 모습을 언제 되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한국 뉴욕 특파원이라고 본인을 소개하자 그는 한국말로 “안녕하세요”라며 “코로나19 이전에 할랄가이즈를 찾는 한국 사람들이 많았는데 하루 빨리 이런 날이 다시 되돌아왔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다시 문을 연 뉴욕 브롱크스 자치구의 한 신발 매장에 마스크를 착용한 고객들이 줄지어 입장하고 있다.
▶경제 재개됐지만 이전 활력 완전히 되찾기까진 시간 걸릴 듯
수많은 인파가 몰리는 명소로 유명한 타임스퀘어도 이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경찰차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가운데 드문드문 보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카우보이 부츠와 모자, 하얀색 팬티만 입은 ‘네이키드 카우보이’가 쓸쓸하게 기타를 치는 등 한적한 분위기였다. 통상 6월은 관광객들이 대거 몰리는 성수기로 통한다. 하지만 항공 운항이 제한된 데다 코로나19 감염에 대한 우려로 여행 수요가 위축되면서 타임스퀘어가 ‘텅 빈 광장’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명품거리로 유명한 맨해튼 5번가에는 긴장감마저 감돌았다. 출입문과 유리창에 나무판자를 덧댄 채 문을 굳게 닫은 명품숍들이 대부분이었다. 앞서 백인 경찰관에 의한 흑인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에 항의하는 시위 도중 일부 폭력과 약탈 행위가 벌어지면서 피해를 입은 매장들이 속출하자 약탈을 방지하기 위해 업체들이 내놓은 ‘비상조치’다. 미국 주요 언론들은 뉴욕시 1단계 경제 재개에 기대감이 있지만 코로나19 2차 유행, 시위 여파 등으로 일부 매장들은 여전히 문을 닫은 채 사태를 관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뉴요커들이 이용하는 대표적인 교통수단인 지하철의 경우, 1단계 경제 정상화 시기에선 이용률이 15% 수준에 그칠 것으로 뉴욕시 교통당국은 내다봤다. 뉴욕타임스는 “뉴욕시는 경제 재개에도 여전히 그늘이 있다”며 “회복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병을 앓고 있는 환자의 모습”이라고 전했다.
전 세계 인종이 모여 살아 ‘멜팅팟(melting pot)’의 상징인 뉴욕시는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아 1단계 경제 재개 직전인 지난 6월 7일 기준으로 확진자가 20만 명, 사망자가 2만2000명을 넘어 미국 내 최대 ‘핫스팟(집중발병지역)’으로 경제 정상화가 가장 늦은 지역이었다. 앞서 앤드루 쿠오모 뉴욕 주지사는 지난 3월 22일 음식, 약국, 보건의료, 운송 등 필수사업을 제외한 모든 사업장에 100% 재택근무를 하도록 행정명령을 내리면서 뉴욕시가 ‘셧다운’이 됐다. 이번 뉴욕시의 1단계 경제 정상화는 ‘셧다운’에 들어간 지 78일 만으로, 사실상 미국 전역이 경제 활동 정상화에 돌입했다는 의미가 있다. 1단계가 성공적으로 진행되면 2단계 경제 정상화로 넘어갈 예정이다.
2단계 경제 재개가 이뤄지면 미용실, 소매점들은 수용인원의 50% 선에서 매장 내 손님을 받을 수 있고, 식당들도 야외테이블에서 영업을 할 수 있게 된다. 이후 3단계에선 식당들의 실내 영업이 허용되며 호텔은 수영장·헬스장 운영이 가능해진다. 4단계에선 예술, 엔터테인먼트 등 경제활동이 재개된다.
뉴욕시는 코로나19 2차 감염을 막는 데 주력하며 1단계 경제 정상화가 성공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상황이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쿠오모 뉴욕주지사는 1단계 경제 재개 이후 첫 주말을 맞은 지난 6월 14일, 맨해튼 등을 중심으로 마스크 미착용 등 사회적 거리 두기 위반 사례가 많다고 지적하며 “사업장과 사람들이 규정을 준수하지 않을 경우 다시 ‘셧다운’ 조치를 할 것”이라고 경고할 정도로, 경제 재개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여전히 높은 상황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호텔은 영업 재개를 준비하고 있지만 문제는 과연 고객들이 얼마나 예약할지가 문제”라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 익명을 요구한 맨해튼에 위치한 한 호텔 지배인은 “언제 호텔이 정상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지 지금으로선 예측하기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빼곡한 사람의 물결, 차량 정체에 소방차·앰뷸런스가 뒤엉켜 끊임없이 울려대는 경적·사이렌 소리 등은 코로나19 사태 이전 맨해튼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이제는 이러한 ‘교통지옥’의 맨해튼 모습이 그립다는 게 현지의 목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