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헌철 특파원의 워싱턴 워치] 코로나19, 트럼프에 ‘양날의 검’ 戰時 대통령 이미지는 유리… 바이든과 격차 줄여, 경기침체는 불리… 경제활동 정상화 ‘도박’이 변수
신헌철 기자
입력 : 2020.05.27 15:40:54
수정 : 2020.05.27 15:41:22
한국의 집권 여당에게 코로나19 사태는 총선에서 압도적 승리를 안겨준 결정적 승인으로 작용했다. 미국 언론은 물론 백악관도, 의회도 한국의 방역 성공 사례를 비교 잣대로 삼을 정도다. 반면 미국은 전 세계에서 코로나19 사망자가 가장 많은 나라가 됐다. 8월까지 사망자가 14만 명을 넘을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도 나왔다.
그럼에도 미국 대부분의 주가 지난 5월 중순부터 부분적으로 경제활동 정상화에 착수했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정점을 찍고 내려오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는 경제를 재가동하지 않으면 생계를 꾸릴 수 없는 미국인이 수천만 명에 달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4월 실업률은 14.7%까지 치솟았고 5월에는 더 높아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감염 걱정으로 구직 자체를 포기한 사람들이 실업률을 산정할 때 모수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실질 실업률은 4월에 이미 20%를 훌쩍 넘었을 것이란 주장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경제활동 정상화는 11월 대선의 명운을 건 도박이자 승부수다. 그의 호언장담처럼 3분기에 경제가 회복되기 시작하면 그는 전쟁에서 승리한 대통령의 이미지를 갖게 된다. 미국 정가에는 전시 대통령(Wartime President)은 재선에 성공한다는 경험칙이 있다.
코로나19에 대한 초동 대처 실패가 트럼프 대통령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예상됐으나 상황이 그렇게 흘러가진 않고 있다. CNN이 여론조사기관 SSRS에 의뢰해 지난 5월 7~10일 전국 111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트럼프 대통령에게 코로나19가 ‘양날의 검’이라는 점이 잘 드러난다. 양자대결 지지율을 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46%로 민주당 대권주자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51%)에 비해 5%포인트 뒤졌다. 최근 여론조사 흐름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같은 기관의 여론조사로 그간의 추이를 살펴보니 바이든 전 부통령은 작년 4월 이후 트럼프 대통령과의 1대1 가상대결에서 꾸준히 앞서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 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올해 4월에는 두 사람 간 격차가 11%포인트였으나 이번에는 6%포인트로 줄었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큰 타격을 입지 않고 있고, 오히려 중도층에게 어필하면서 격차를 좁히고 있는 것이다.
또 이번 조사에서 전통적인 경합주(스윙 스테이트)로 불리는 12개주만 떼어놓고 보면 트럼프 대통령(52%)이 오히려 바이든 전 부통령(45%)을 앞섰다. 미국은 대선에서 전체 득표율이 아니라 주별 선거인단 수를 기준으로 당선자를 결정하기 때문에 경합주가 사실상 승패를 좌우한다. 대부분의 주에서 ‘승자독식’ 제도를 채택해 단 1표라도 이긴 사람이 해당 주에 배정된 선거인단을 모두 가져간다. 2000년 엘 고어가 조지 W 부시에게, 2016년 힐러리 클린턴이 트럼프에게 득표율에서 이기고도 대선에서 졌던 이유다. 물론 이번 여론조사만 놓고 판단할 수 없고, 앞서 일부 조사에선 핵심 경합주에서도 바이든 전 부통령이 우세하다는 결과도 있다. 미국의 정치 평론가들은 코로나19 사태 속에 오히려 바이든 전 부통령이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는 점에 주목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좌충우돌 행보를 했지만 조기 경제 정상화를 주장하는 점이 오히려 노동자 계층에서 먹히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중서부 공장 지대인 러스트벨트의 경합주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리드하기 시작한 것이 방증이라는 얘기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층’은 여전히 공고하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 지지율은 최저 41%에서 최고 51% 사이를 오간다. 5월 평균치는 44%로 팬데믹 이후 오히려 소폭 오름세다. 지난 2012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과반 이하의 국정 지지율로도 밋 롬니 공화당 후보를 누르고 재선에 손쉽게 성공했다. 이번 CNN 여론조사를 보면 ‘누가 더 경제 이슈를 잘 다룰 것이냐’라는 질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54%를 얻어 바이든 전 부통령(42%)을 크게 앞섰다. 반면 ‘코로나19 사태를 누가 더 잘 처리하겠냐’는 질문에는 바이든 전 부통령(51%)이 트럼프 대통령(45%)에 앞섰다.
만약 조기 경제 정상화의 역풍으로 올 가을 감염자가 재확산되면 트럼프 대통령의 도박은 실패로 끝날 수 있다. 반면 승부수가 통한다면 재선으로 들어가는 문은 활짝 열릴 것이다.
필자는 최근 미국 대선 결과를 맞추는 ‘족집게’로 불리는 2명의 교수와 인터뷰를 했다. 앨런 릭트먼 아메리칸대 교수는 13개의 국정 지표를 기준으로 예측 모델을 만들어 1984년 이후 9번의 결과를 모두 맞춘 인물이다. 헬무트 노포스 뉴욕 스토니브룩대 교수는 1912년 이후 대통령 선거와 당내 경선인 프라이머리(Primary)와의 연관성을 추적해 자체 예측 모델을 만든 인물이다. 두 사람 모두 2016년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이길 것이라고 예측했다. 단 1곳의 여론조사를 제외하고 모두 힐러리 후보의 지지율이 높게 나왔지만 이들은 고유의 예측모델을 통해 다른 목소리를 냈고 결과적으로 정확히 맞췄던 것이다.
노포스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확률이 91%에 달한다고 확언했다. 그는 필자와 전화 인터뷰에서 “팬데믹 이후에도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과반을 넘지는 못하더라도 전혀 손상되지 않았다”며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은 사실상 경쟁후보 없이 트럼프 대통령이 90% 이상의 지지율을 얻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을 가리켜 “돌덩이처럼 단단하다”고 비유했다.
조지프 바이든 전 미국 부통령
경기침체를 초래한 대통령의 재선이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2012년 오바마가 재선될 때도 경제가 좋지 않았다”면서 “하지만 유권자는 대통령 탓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이번 팬데믹으로 인한 침체도 트럼프 탓을 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반면 릭트먼 교수는 “트럼프의 재선은 코로나19로 인해 분명 위험에 처했다”며 “경제가 나빠지고 사회가 불안해지고 있기 때문이지만 최종 판단은 유보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13개 지표 중 6개 이상이 ‘거짓’에 해당되면 집권당이 패배한다고 예상해왔다. 현재 확실한 ‘거짓’은 집권당이 중간선거에서 더 많은 하원 의석을 가져갔냐는 항목과 행정부가 대형 스캔들에 휘말리지 않았냐는 항목이다. 또 집권당 후보가 원래 지지층을 제외하고도 국민적 영웅이냐는 항목, 외교와 군사 분야에서 큰 성공을 거뒀냐는 항목도 ‘거짓’에 가깝다. 여기에 선거운동 기간이 경기침체기가 아니라는 항목, 임기 중 지속적인 사회적 불안이 없었냐는 항목까지 ‘거짓’이 되면 총 6개에 해당된다. 물론 릭트먼 교수는 좀 더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신중론을 폈지만 코로나19가 없었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손쉽게 당선됐을 것이라는 얘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