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헤지펀드 업계에서 가장 핫(hot)한 인물이다. 돈의 힘이 지배하는 헤지펀드 업계에서 테퍼 사장은 지난 2년 연속 가장 많은 보수를 받았다. 지난 한 해 동안 테퍼 사장이 거머쥔 현금은 35억달러(약 3조5000억원)였다. 하루 평균 100억원에 가까운 돈을 벌어들인 셈이다. 헤지펀드 업계 연봉킹인 테퍼 사장이 3조5000억원의 사나이로 불리는 이유다. 2012년 그의 수입은 22억달러였다.
헤지펀드 업계에서는 수익률이 바로 명성으로 연결된다. 돈을 맡긴 고객들에게 얼마만큼 벌어줬는지에 따라 서열이 정해지는 게 헤지펀드 업계 속성이다. 고객이 돈을 많이 벌면 당연히 헤지펀드도 많은 성과급을 챙길 수 있다. 헤지펀드 수수료 체계는 대개 2+20 방식이다. 헤지펀드 매니저들이 굴리는 자산의 2%를 기본수수료로 떼고 자산운용을 통해 이익을 낼 경우, 이익금에서 20%를 성과보수로 챙기는 식이다. 이 때문에 펀드수익률이 좋을수록 헤지펀드 매니저가 가져가는 이익도 눈덩이처럼 커진다. 테퍼 사장이 일반 직장인들은 상상하기조차 힘든 천문학적 규모의 돈을 벌어들인 배경이다.
푸대접한 골드만삭스 박차고 나와
1993년 아팔루사 매니지먼트를 설립하기 전 테퍼 사장은 8년여간 골드만삭스에서 투자부적격채권(정크본드)을 거래하는 트레이더로 일했다. 당시에도 돈 냄새를 기가 막히게 잘 맡는 트레이더로 명성을 날렸다. 1985년 골드만삭스에 입사한 지 6개월 만에 트레이딩 부서 책임자 자리를 꿰찬 것도 그의 동물적인 투자능력 덕분이었다.
하지만 1992년 승승장구하던 테퍼 사장은 갑자기 골드만삭스를 나왔다. 회사가 적절한 대우를 해주지 않는다는 불만 때문이었다. 뛰어난 주식·채권 매매능력을 발휘해 골드만삭스에 큰 이익을 안겨준 테퍼는 골드만삭스의 파트너가 되기를 원했다. 회사 측에 3차례나 파트너 대우를 요청했지만 골드만삭스 경영진은 당시 30대의 젊은 트레이더인 테퍼에게 파트너 자리를 선뜻 내주지 않았다. 골드만삭스 퇴사라는 충격처방이 테퍼 사장에게는 전화위복이 됐다. 골드만삭스를 떠난 다음해인 1993년 테퍼는 아팔루사 매니지먼트라는 헤지펀드를 설립했다. 그리고 지난 20여 년간 경이적인 펀드수익률을 기록했고 헤지펀드 업계 연봉킹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이다.
아팔루사 매니지먼트는 지난 20년간 몇 차례 부침은 있었지만 매년 평균 두 자릿수 수익률을 꾸준히 거둬들였다. 만약 테퍼 사장이 아팔루사 매니지먼트를 설립할 때 100만달러를 맡겼다면 그 돈은 현재 수수료를 다 떼더라도 1억9100만달러가 돼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지난 20년간 투자자금이 200배 가까이 눈덩이처럼 커진 셈이다. 이처럼 탁월한 성과를 거두면서 전 세계 큰손들이 돈을 싸들고 찾아와 자금을 운용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테퍼 사장은 아팔루사 매니지먼트 펀드규모를 200억달러에 맞춰놓고 더 이상 늘리지 않고 있다. 펀드 규모가 과도하게 커지면 투자자들에게 최상의 수익을 돌려주기 힘들다는 평소 소신 때문이다. 그래서 테퍼 사장은 펀드를 굴려 돈을 벌면 버는 대로 투자자들에게 돌려주고 있다. 200억달러 자산은 테퍼 사장을 포함해 34명의 펀드매니저들이 운용하고 있다.
올해 56세인 테퍼 사장은 헤지펀드 업계 전설인 조지 소로스 회장보다 나이가 훨씬 젊고 칼 아이칸 등 기업사냥꾼들과는 달리 투자하는 기업들과 충돌하지 않는 한편 내부자 거래로 신뢰성이 훼손된 스티브 코언과는 다른 길을 걸음으로써 헤지펀드 업계 대표주자가 됐다. 테퍼 회장은 매년 수백억 원대에 달하는 개인 돈을 각종 단체에 기부하는 기부왕이기도 하다.
특히 모교인 카네기멜론 대학에 1억2200만달러의 대규모 기부를 했다. 덕분에 카네기멜론 경영대학원은 그의 이름을 따 테퍼스쿨오브비즈니스로 불린다.
테퍼 랠리 얼마나 지속될까
테퍼 사장은 월가 금융시장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테퍼 사장의 말 한마디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이야기할 때 꼭 따라다니는 단어가 있다. 바로 테퍼 랠리(Tepper rally)다. 테퍼 팰리라는 조어가 만들어진 배경은 이렇다. 2010년 9월 테퍼 사장이 CNBC에 출연, 미국연방준비제도이사회 양적완화 조치가 장기간 뉴욕증시 랠리의 토대가 될 것으로 진단했다. 당시 증시는 약세 국면에서 한동안 벗어나지 못하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테퍼 사장이 증시강세론을 밝힌 이후 거짓말처럼 다우지수와 S&P500지수가 ‘테퍼 랠리’로 불리는 강세장을 이어갔다. 다우지수는 4년여간 50% 이상 올라 최근 1만7,000선 돌파 초읽기에 들어갔다. 테퍼 사장은 지난해 5월에도 CNBC에 출연해 미국 경제가 회복세에 접어들었다는 점을 강조했고 뉴욕증시 강세장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증시 거품론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테퍼 사장의 증시낙관론을 배경으로 곧바로 증시가 급등세로 돌아서는 등 테퍼 랠리가 재현됐다. 이처럼 테퍼 사장은 그동안 줄곧 증시 강세장에 무게중심을 두고 투자포트폴리오를 구축, 탁월한 수익을 올려왔다. 그런데 지난 5월 14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헤지펀드 포럼인 스카이브리지대안투자(SALT)콘퍼런스에 참석한 테퍼 사장이 증시강세론에서 한발 빼는 모습을 보여 시장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 당시 테퍼 사장은 포럼 현장에서 “지금은 시장상황을 다소 걱정해야 할 시점이다. 실제로 나도 불안하다”며 증시경계론을 펼쳤다.
테퍼 사장은 “미국 경제 성장률이 시장 기대만큼 빠르지 않다”며 “이런 점 때문에 2014년은 힘든 시장(tough market)이 될 것이고 시장이 점점 위험해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테퍼 사장은 “돈을 벌 시점이 있고 돈을 잃지 말아야 할 시점이 있는데 지금은 가지고 있는 돈을 지켜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아직까지도 주식 매도(숏)포지션을 취하기보다는 매수(롱)포지션을 취하는 것이 좋다고 보지만 만약 주식에 120%를 투자했다면 이는 과도한 것”이라며 “현금 비중을 높이는 게 좋을 것”이라고 주문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시장 강세론을 유지했던 테퍼 사장 입에서 증시 신중론이 나오자 시장은 곧바로 반응했다. 뉴욕증시 선물지수가 금세 곤두박질쳤고 실제로 다음날 열린 뉴욕증시는 투자심리가 불안해지면서 하락세로 마감했다. 테퍼 사장의 시장영향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태생적으로 강세론자인 테퍼 사장의 경고는 오래 가지 않았다.
지난 6월 5일 유럽중앙은행이 기준금리 인하 등 통화완화정책을 강화하자 테퍼 사장은 경고의 목소리를 다소 누그러뜨렸다. 테퍼 사장이 CNBC와의 인터뷰에서 “결론적으로 말하면 ECB가 행동에 나서면서 시장에 대한 걱정이 어느 정도 완화됐다”고 밝히자 뉴욕증시는 곧바로 큰 폭으로 상승했고, 다우와 S&P500지수가 사상최고치를 경신하는 랠리를 펼쳤다. 테퍼 랠리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시장 초미의 관심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