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추운 날씨와 폭설 때문에 지난 1월에 취소된 항공편은 4만9000편에 달한다. 이착륙이 지연된 항공편은 무려 30만편이다. 이 때문에 승객 약 3000만명이 공항에서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항공사들도 피해를 입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현상은 2월에도 계속 이어졌다. 올 들어 미국 항공사들은 그칠 줄 모르는 한파와 폭설로 수십 억달러의 금전적인 손실을 입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2 미국 워싱턴DC 지역에 살고 있는 C씨는 얼마 전 가스회사로부터 청구서를 받고 깜짝 놀랐다. 지난 1월 말부터 한 달간 쓴 가스난방비로 199달러나 청구됐기 때문이다. 작년 이맘 때 C씨가 지불한 가스비는 60~70달러 선에 불과했다. 20년 만의 혹한 탓에 난방비가 무려 세 배 가까이 불어난 것이다
이코노미스트 40명 “1분기 성장률 2% 초반”
2014년 미국 경제의 최대 변수는 무엇일까.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과 이에 따른 신흥국 금융불안, 중국경제 침체 및 유로존 디플레이션 등이 먼저 떠오를 것이다.
모두 맞는 얘기들이다. 그러나 지금 당장 미국 경제의 향방을 가를 최대변수는 올 겨울 북미대륙을 강타한 ‘추위’다. 미국의 유력 일간지인 USA투데이가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올해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2.8%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이번 조사에 참여한 미국 내 유명 이코노미스트 40명은 1분기 성장률은 2% 초반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추운 날씨’였다.
20년 만의 혹한이라는 이번 추위는 미국 경제에 이미 전방위적인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고용지표가 대표적이다. 사실 일자리만큼 날씨에 민감한 것도 없다. 건설 노동자, 어부, 골프강사 등 기상이 나빠지면 아예 일을 할 수 없는 직종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1월 미국의 실업률은 6.6%로 2008년 10월 이후로 최저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늘어난 일자리는 11만3000개로 시장 전망치(18만개)를 크게 밑돌았다. 혹한과 폭설이 일자리 저조의 주원인이었다는 분석이다.
미국경제의 70%를 차지한다는 소비도 타격을 피할 수 없다. 지난해 미국 내수를 이끌었던 자동차 판매도 추운 날씨 앞에 주춤하고 말았다. 지난 1월에만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3%나 줄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새 차를 사러 돌아다니기에는 날씨가 너무 추웠다는 것이다. 물론 혹한과 폭설이 영영 지속될 수는 없다. 언젠가는 끝이 날 것이다. 그 때가 되면 혹한과 폭설 때문에 하지 못했던 활동을 보충하게 된다. 미국 학교들은 그렇게 한다. 매년 2월 셋째 주 월요일은 미국의 ‘프레지던트 데이’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의 생일을 기념하는 이날은 정식 공휴일이다. 당연히 학교도 쉰다. 하지만 워싱턴DC 인근 버지니아 페어펙스 카운티에서는 이날 학교를 열기로 했다. 추운 날씨 때문에 자주 휴교를 하다 보니 공휴일 보충수업까지 해야 할 처지가 된 것이다. 올 들어 페어펙스 카운티 공립학교들이 혹한과 눈 때문에 학교 문을 닫거나 늦게 연 기간은 일주일을 훌쩍 뛰어넘는다.
지프·난방용품 업계는 쾌재
경제도 마찬가지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추위와 폭설 때문에 부진했던 생산활동은 이후 날이 풀리면서 시차를 두고 메워 나가게 된다. 다만 피해규모가 회복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면 얘기가 달라진다. 역사적으로 그런 사례는 허다하다. 미국에서는 지난 2012년 가을 뉴저지 주를 초토화시킨 허리케인 샌디가 최대 500억달러의 피해를 입힌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에 앞서 지난 2005년 미국 남부를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피해액이 600억달러에 달했다. 이쯤 되면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는 식의 위로는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된다.
2월에도 겨울 폭풍(winter storm)은 미국 남부와 동부를 강타했다. 알라바마, 조지아, 노스캐롤라이나, 사우스캐롤라이나를 거쳐 미국 수도권인 버지니아와 워싱턴DC 지역을 엄습했다. 최소 40만명이 전기가 끊겨 고통을 받았고, 4000여 편 이상의 항공편이 취소되거나 지연됐다. 인구밀집 지역인 미국 동부를 훑고 지나간 이번 겨울 폭풍은 소비를 비롯한 미국 내수경기에도 상당한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그러나 어두운 면이 있으면 밝은 면도 있는 법. 나쁜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익을 보는 곳도 있다. 맹추위 때문에 GM, 포드 등 다른 미국 자동차 회사들이 죽을 쑤고 있던 지난 1월 크라이슬러는 8%의 매출 신장을 기록했다. 지프 등 눈길에 달리기 좋은 차종의 판매가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밖에 날씨가 험악해지면서 겨울의류와 난방용품의 판매가 부쩍 늘어났다. 소나기가 갑자기 내리면 우산 장수가 쾌재를 부르는 것이 ‘기상 경제학’의 묘미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