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무려 15조6000억달러에 달한다. 부동의 1위다. 이런 미국에서 요즘 최저임금 논란이 한창이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근로자들은 최저임금을 올려야 한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지만, 기업과 일부 경제 전문가들은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미국 워싱턴 주 시애틀 남쪽에 위치한 시택(SeaTac). 인구가 12만명에 불과한 이 소도시에서 지난 11월 5일 ‘대형사건’이 발생했다. 최저임금을 시간당 15달러(약 1만6050원)로 높이는 방안을 놓고 벌인 투표에서 주민들이 압도적인 찬성표를 던진 것이다. 이로써 시애틀-타코마 공항 인근 지역에서 주로 호텔과 식당에서 일 해온 저임 근로자 6300명은 ‘임금 대박’을 터뜨리게 됐다. 미국의 연방 최저임금이 시간당 7.25달러(약 7757원)인 점을 감안하면 2배가 넘는 상승률이다.
시택 만큼은 아니지만 최저임금 인상 열풍은 미국 전역을 휩쓸고 있다.
미국 동부의 뉴저지 주에서는 최저임금을 시간당 8.25달러(약 8827원)으로 높이는 개정안이 통과됐고, 오하이오 주는 내년 1월 1일부터 시간당 7.85달러인 최저임금을 7.95달러(약 8506원)로 올릴 예정이다. 이밖에 미국의 수도 워싱턴DC과 미네소타에서도 최저임금을 각각 시간당 11.50달러(약 1만2305원)과 9.50달러(약 1만165원)으로 올리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최저임금이란 근로자의 생활안정을 위해 법으로 정해놓은 최소한의 임금을 말한다. 교육수준이 낮고, 업무경력이 짧으며, 별다른 기술이 없어 언제든지 다른 근로자로 대체될 수 있는 초보 근로자들이 최저임금의 지급 대상이 된다. 미국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미국 전체 근로자 가운데 3% 가량이 여기에 해당된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고용주로부터 받는 봉급보다 팁을 더 많이 받는 근로자들이기 때문에 실제 최저임금을 적용받는 순수 근로자는 2% 미만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한층 심해진 것이 오늘날의 미국이다. 미국 사회에서 가장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는 최저임금 근로자를 도와주자는 주장은 상당한 호응을 얻고 있다. 여기에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소비가 늘어나 지역경기 회복에 도움이 될 것이란 기대감도 만만치 않다. 상당수 정치인들이 최저임금 인상에 열성을 보이는 이유다.
그러나 반론도 거세다. 한꺼번에 너무 많이 올리면 ‘도끼로 제 발등을 찍는’ 격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노동시장도 ‘수요-공급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가격(임금)이 높아지면 당연히 수요(일자리)는 줄어들게 된다. 더 큰 고민은 일자리가 줄어드는 순서다. 교육수준이 낮고, 업무경력이 짧으며, 별다른 기술이 없어 언제든지 다른 근로자로 대체될 수 있는 초보 근로자들이 가장 먼저 일자리를 잃게 된다. 물론 인상되는 임금 만큼 노동 생산성이 개선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하지만 경험과 지식이 모자란 초보 근로자에게는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최저임금이 10% 오르면 대학 졸업자의 실업률에는 전혀 영향이 없지만, 고등학교 졸업자와 고졸 이하 학력자의 실업률은 각각 0.5%와 1.0% 가량 상승하게 된다. 최저임금 인상을 통해 도와주고자 했던 바로 그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 것이다. 경제학적으로는 고개가 끄덕여지는 얘기다.
그러나 최저임금은 미국에서도 경제보다는 정치의 영역인 듯하다. 최저임금 인상 행진이 이어지자 미국 연방정부도 최저임금 인상을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2월 연두교서를 발표하면서 현재 7.25달러인 연방 최저임금을 시간당 9달러 선으로 높이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최근에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향후 2년에 걸쳐 10.10달러(약 1만807원)로 높이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경제 전문가들이 부작용을 지적해도 오바마 행정부는 요지부동이다. 정치인들에게는 역시 ‘표’가 더 중요한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