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4일 중국은행 수석 경제학자가 이끄는 한 연구팀은 중국사회에 커다란 파장을 몰고 올 한 연구보고서를 발표했다.
<국가자산 부채의 중장기 해소 방안>이라는 보고서에 의하면 2013년 기준 중국 양로보험 기금이 무려 18조3000억위안(한화 약 3350조원)이나 부족하기 때문에 정부가 조속히 퇴직 연령을 연장하는 정책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금액은 2011년 중국 GDP의 38.8%, 정부 재정수입의 176%에 달하는 거액으로 지난해 한국 GDP의 2.7배에 맞먹는 천문학적 규모다.
보고서가 발표된 직후 중국 인력자원 및 사회보장부의 한 관리는 수치의 계산 방식과 결과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2011년 말 중국 양로기금 잔고가 1조9000억위안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즉 현재 보험료 수입이 보험금 지출을 초과하고 잔고가 여전히 증가하는 추세이기 때문에 파산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해 중국 사회과학원에서 발표한 한 보고서를 보면 1997년에 전국적인 양로보험 제도를 도입한 이래 양로기금에 대한 정부의 재정 보조금이 매년 크게 늘어 지난해까지 누적액이 무려 1조2500억위안에 달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1조9000억위안이라는 양로기금 잔고의 3분의 2도 결국은 재정 보조금으로 형성됐다는 얘기다. 실제로 중국 31개 성급 가운데 이미 13개 지역의 사회보험 기금이 정부 재정 보조금으로 유지되는 상황이라고 한다. 따라서 설사 18조3000억위안이라는 수치가 크게 과장된 것이고 전국적으로 보아 양로기금 잔고가 아직 증가하는 추세라고 해도 향후 조만간 양로기금 부족 위기가 발생하게 되는 것은 단지 시간문제라고 할 수 있다. 지난 7월 4일 원자바오 총리가 주최한 국무원 상무회의에서 이 문제가 크게 논의됐으며 이미 ‘사회보험료 징수 잠정조례’와 ‘실업보험 조례’가 수정될 것이라는 소문마저 나오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인구 수명이 크게 늘어나는 반면에 출생률이 하락하고 있는 나라들은 예외 없이 장래 모시점에서 양로보험 기금이 펑크가 나는 문제를 안고 있다. 중국은 그 중에서도 문제가 가장 심각한 편에 속한다.
특히 ‘독신 자녀 정책’ 때문에 중국은 세계에서 노령화 속도가 가장 빠른 나라다. 지금 받은 양로보험료로 현재 퇴직자의 양로금을 지불(現收現付)하는 양로금 운영방식이 얼마 못 가서 한계에 봉착하게 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더욱 중요한 것은 정치나 역사적인 원인 때문에 중국 현 사회보험제도에 구조적으로 심각한 불공평 문제가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중국의 양로보험을 중심으로 한 사회보험제도는 공무원과 국유기업 노동자들에게만 해당되는 제도였으며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농민들은 철저히 배제됐다. 예를 들면 공무원들의 양로금은 정부재정이 책임지고 국유기업 노동자들의 양로금은 사망할 때까지 원 기업에서 지급하도록 돼 있었지만 농민들은 노후를 단지 자식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 농민들에게 남아선호 경향이 강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수년전까지 중국 농민들에게 도시주민들과 같은 양로보험제도가 적용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편 도시에서 국유기업이 노동자들의 노후를 책임지는 방식 역시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었다. 국유기업이 퇴직자의 양로금을 부담하는 방식은 결과적으로 정부재정에 납부하는 기업 이윤의 감소를 대가로 한 것이기 때문에 계획경제 시대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개혁기 이후 민영기업과 외자기업이 경쟁에 참가하면서 설립 역사가 길고 퇴직 인원이 많은 국유기업일수록 양로금 지급부담이 많고 생산비용이 상대적으로 높아 불리한 위치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이른바 ‘역사적 부담’이 많은 문제는 1990년대 국유기업이 민영기업과 외자기업과의 경쟁에서 흔히 뒷걸음 칠 수밖에 없었던 주요 원인 중의 하나였다.
1990년대 중반부터 중국정부는 기업 간 경쟁환경이 공평하지 못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국유기업 민영화 개혁과 함께 ‘사회통합보장보험(社會統籌保險)’ 개혁을 실시해 왔다. 개혁의 요지는 국유기업을 포함한 모든 기업들이 통일적으로 정부의 사회보험 전문 계정에 기업과 개인별로 각각 보험료를 납부하고 기업대신 지방정부가 그 지역 퇴직 노동자들의 사회보험 금액을 통일적으로 책임지고 관리한다는 것이다. 한편 농민공들을 포함한 일반 농민들에 대해서는 최근 수년전에 와서야 비로소 정부가 점진적으로 도시 주민들과 유사한 보험제도를 적용하기로 결정했는데 실제로 지역마다 그 실행정도가 크게 다르다.
그러다 보니 현재 중국은 사회계층(공무원 노동자 농민)과 지역에 따라 사회보험제도가 달라 개인들의 부담액과 미래 수령액이 서로 크게 상이한 불공평한 현상이 존재하는데 이것이 사회적 불만의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또 지역마다 사회보험제도의 실시 방식이 일치하지 않다 보니 기업과 개인들이 될수록 보험료 납부 부담을 회피하는 대신 이익만 챙기려는 각종 편법 행위가 발생하고 있다. 현재 각 지방정부는 될수록 사회보험제도의 가입 범위를 확대하고 가입자들의 보험료 교부를 독려해 사회보험기금 부족 문제를 완화시키려고 시도하고 있다. 이는 물론 사회보험제도의 확대라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동시에 향후 정부재정 부담 증가라는 본질적인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왜냐하면 현재의 ‘현수현부(現收現付)’ 방식의 구조상 새로 증가하는 양로보험 가입자가 많을수록 향후 그들의 양로를 책임져야 할 차세대들의 부담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현재 양로보험료 수입이 양로금 지출을 초과해 형성된 양로기금 잔고를 어떻게 관리하는가 하는 것도 큰 과제다. 중국사회과학원 세계사회보험 연구센터의 정빙원(鄭秉文) 센터장은 “사회보험제도의 근본적인 개혁 없이 이대로 간다면 지금 보험에 가입하는 사람들이 수십 년 후 퇴직 시 매일 도시락을 사 먹기도 어려운 상황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한 적이 있다.
최근 광둥성에서는 지방 사회보험 기금을 주식시장에 투입해 기금의 가치를 보존하는 실험을 하고 있는데 이 역시 막대한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 향후에 발생할 ‘양로기금 펑크’ 과정을 완화하기 위해 현재 남 60세, 여 50세로 정해져 있는 퇴직제도를 바꿔 퇴직연령을 늦추려는 정책시도는 인터넷 설문조사에서 94% 이상 네티즌들의 강력한 반대를 받았다.
결국 어떠한 제도의 개혁도 관련자들의 이익에 관계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쉬운 해결 방법이 없다. 중국사회보험제도 개혁은 금년 가을 제18차 공산당 대회 이후 정식으로 출범하게 될 시진핑 지도부가 직면해야 할 중대한 도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