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리안은 ‘과일의 왕’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냄새가 고약하기는 하지만 고소한 두리안의 맛을 아는 사람들은 두리안을 최고의 과일로 꼽는 데 주저함이 없다.
이런 두리안의 맛을 중국도 알아버렸다. 중국 대륙이 두리안에 푹 빠진 것이다. 과일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중국에서 두리안 한 통 가격은 일반적으로 수박 열 통의 가격에 육박한다. 그만큼 고가의 과일이다. 하지만 중국에서 ‘두리안 한 통의 영양가가 닭 세 마리와 같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는 데다 특유의 맛과 식감에 빠져든 중국인들의 늘어나면서 두리안의 인기가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홍콩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에서는 비싼 과일을 사 먹을 때 두 번 생각하지 않고 바로 지갑을 열 수 있는 재정적 능력을 오랫동안 ‘체리 자유’라고 일컬었는데 이제는 ‘두리안 자유’라는 말로 대체되고 있다”고 전했다. 두리안이 체리를 제치고 중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비싼 과일’로 자리잡은 것이다. 실제 베이징 주요 마트를 돌아다녀 보면 과일 판매대의 가장 좋은 자리는 대부분 두리안이 차지하고 있다. 요즘 중국 젊은이들이 예비 배우자 부모 집에 결혼 허락을 받으러 갈 때 들고 가는 과일도 두리안이다.
이 같은 중국의 ‘두리안 사랑’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세계적 투자은행인 HSBC가 9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두리안 생산량의 91%가 중국에서 소비되고 있다.
중국의 두리안 소비가 급증하고 있지만 중국은 두리안 재배를 최근에 시작했다. 남중국해의 휴양섬 하이난성에 위치한 약 93만3000㎡ 면적 농장에서 지난 7월부터 두리안 수확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생산량이 중국 내 소비량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데다 맛과 품질도 동남아산과 비교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은 여전히 두리안 소비량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지난해 중국이 수입한 두리안은 82만톤으로 2017년(22만톤)보다 4배 가까이 급증했다. 금액으로는 총 40억3000만달러(약 5조4000억원)에 달한다. 수입 과일 중 부동의 1위다.
과거 중국의 핵심 수입처는 태국이었다. 하지만 중국 내 두리안 수요가 공급량을 초과하자 지난해 7월과 올해 1월부터 각각 베트남과 필리핀에도 수출문을 개방했다.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으로 인해 중국 두리안 시장의 문턱이 낮아진 것이다. RCEP는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10개 회원국 및 한국·중국·일본·호주·뉴질랜드 등에서 지난해 1월부터 발효된 자유무역협정(FTA)이다. 중국이 베트남과 필리핀에 두리안 수출을 허가한 이유가 RCEP 때문만은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외교적 함수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베트남과 필리핀이 미국과 가까워지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중국이 두리안 수출 허가라는 당근을 제시했다는 해석이 나온 배경이다. 중국은 베트남이 미국 주도의 경제 협열어준 시점도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가 대통령으로 취임해 친미 행보를 펼치던 때였다.
이때부터 중국 안팎에서 ‘두리안 외교’라는 용어가 회자하기 시작했다. 미국과 패권 다툼을 하고 있는 중국이 두리안을 매개로 동남아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한다는 의미다. 이 같은 두리안 외교는 베트남과 필리핀 등의 농업지도 자체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로부스타 커피를 생산해 전 세계로 수출하던 베트남 중부 고원지대가 중국 수출을 위한 두리안 산지로 급격히 변했다. 중국 두리안 시장이 열리자 소득을 늘리려는 베트남 농부들이 너도나도 커피나무를 갈아엎고 돈이 되는 두리안을 재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커피나무를 모두 없앤 26세 농부 베 둑 후인은 WSJ과의 인터뷰에서 “같은 재배 면적이면 두리안이 커피보다 5배 많은 소득을 안겨준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새로운 수출 시장을 개척하는 건 국가 경제에 보탬이 된다. 하지만 베트남이나 필리핀 정부는 두리안의 대중 수출이 빠르게 늘어나는 것을 오히려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대중국 수출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자국 경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급속도로 커지기 때문이다. 중국이 의도적으로 두리안 수입을 중단하면 자국 농업의 기반 자체가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도 많은 농민들이 거대한 중국 시장만 바라보고 올인을 할 경우 중국이 두리안을 외교 무기로 활용하고자 하는 유혹이 더 커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베트남 국영 언론들이 커피와 쌀 같은 전통 작물을 버리고 두리안을 재배하겠다고 달려드는 농부들에 대해 비판적 기사를 쏟아내는 것도 이런 우려의 연장선이다. 베트남 농업 전문가들은 중국 이외의 수출 시장을 개척하고 두리안의 국내 소비도 늘려야 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중국은 이미 거대한 자국 시장을 지렛대 삼아 상대 국가에 대한 무역 보복을 여러 차례 단행한 전례가 있다. 대만산 파인애플, 필리핀 바나나, 호주산 바닷가재 등에 대한 수입 금지가 대표적인 예다. 일반적으로 수입 제한 조치는 오염이나 해충 등 품질 문제로 인해 이뤄지지만 중국은 종종 뚜렷한 이유 없이 수입을 제한해 정치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대만 파인애플의 경우 중국은 2021년 3월 갑자기 수입을 금지했다. 당장 시장에서는 미·중 갈등과 양안(중국과 대만) 갈등이 거세지는 데 대한 보복성 조치라는 분석이 나왔다. 파인애플 생산량의 90%를 중국으로 수출하던 대만은 결국 직격탄을 맞았다. 중국 수입 제한 조치 이후 대만의 대중국 파인애플 수출 비중은 3%대로 추락한 것이다.
미 싱크탱크 스팀슨센터의 중국 프로그램 책임자인 윤순은 “중국은 자국의 경제 규모를 이용해 언제든 무역으로 수출국을 벌줄 수 있다”며 “중국에 판매하는 것은 기회지만 위험이기도 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