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초 미국 헤지펀드 퍼싱스퀘어캐피털매니지먼트의 설립자 빌 애크먼이 “미국 30년물 국채가 5.5% 갈 수 있다”고 발언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그의 얘기를 진지하게 귀 기울여 듣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애크먼이 미국 국채 30년물이 5.5% 간다고 언급할 당시 30년물 국채금리 수준은 4.3% 안팎이었다. 이 당시에도 이미 금리가 많이 오른 상황이라 ‘장기물 수익률이 과연 더 오를 수 있을까’를 놓고 설왕설래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10월 중순 현재 미국 국채 30년물 금리는 한때 4.9%를 넘어서며 5%대를 코앞에 두고 있다. 애크먼의 얘기가 허황되지 않았음을 보여준 셈이다.
실제 월가 구루들은 최근 잇달아 미국 채권시장에 경고등이 켜졌다고 조언을 하고 있다. 채권수익률과 채권가격은 역의 방향으로 움직인다.
월가 전설들이 미국 채권시장의 투매 패닉이 더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4.8%를 돌파한 미국 10년물 국채금리가 곧 5%를 찍을 수 있다는 것이다.
월가의 원조 채권왕으로 유명한 빌 그로스는 10월 초 인터뷰에서 “10년물 국채금리가 단기 훨씬 더 높은 수준으로 치솟을 수 있다. 5%까지 갈 것으로 본다”고 말한 바 있다. 그로스는 지난 1971년 핌코(PIMCO)를 공동 설립해 세계 최대 채권투자회사로 키운 전설적인 투자자다. 이때 붙은 ‘채권왕’ 별명은 그의 모든 것을 상징한다.
레이 달리오 역시 비슷한 의견을 내놓고 있다. 그는 “긴 기간 동안 뜨거운 인플레이션이 이어질 것으로 본다. (장기)국채금리가 5%를 찍을 수 있다”고 말했다. 래리 핑크블랙록 CEO 역시 “1년 전부터 10년물 국채금리가 5%를 넘어야 한다고 봤다”고 말한 바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장기물 국채는 계속해서 오를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일까. 이를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기간 프리미엄’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기간 프리미엄이란 만기가 긴 국채를 보유할 때 드는 위험에 대해 보상해주는 것이다. 쉽게 설명해 언제든 예금을 찾을 수 있는 ‘요구불 예금’ 통장과 만기가 긴 ‘적금 통장’을 비교해보자. 요구불 예금 이자가 적금 이자보다 더 높다면 아무도 적금을 들지 않을 것이다. 적금은 오랜 기간 돈을 묶어둬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기 때문에 더 높은 이자를 쳐줘야 가입을 한다.
미국 국채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만기가 짧은 단기물보다 만기가 긴 장기물 금리가 더 높아야 정상이다. 그런데 기준금리 인상이 짧은 시간 압축적으로 진행되면서 기준 금리 움직임에 민감한 단기물 금리가 너무 빨리 올라버렸다. 그래서 지금은 단기물 금리가 장기물 금리보다 더 높은 상황이다.
게다가 지난 3월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등 금융권 메가톤급 이슈가 터지면서 장기금리는 한 때 하향 안정화 추세를 보이기도 했다. 경기 침체가 오면 통상 채권가격은 올라간다. 채권수익률이 내려간다는 것이다. 채권은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이에 만기가 긴 장기국채금리가 경기 침체 우려감에 하락하면서 단기금리와 장기금리 차이가 벌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이후 미국은 경기 침체는커녕 경기 확장 국면에 들어섰다. 인플레이션은 떨어져 3%대로 안착했지만 견고한 노동시장과 강력한 GDP 성장률은 미국 경제의 강함을 증명하는 도구로 활용됐다. 그러자 경기 침체를 예상하고 장기물 금리를 내리던 시장이 다르게 반응한 것이다. 판단 미스를 시인하고 장기물 금리를 올리는 방향으로 돌아섰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아직 단기물 금리에 비해 장기물 금리는 훨씬 낮다. 기본적으로 월가 전문가들의 견해는 여기서 출발한다. 장기물 금리가 단기물 금리보다 높아져야 하기 때문에 장기물 금리가 많이 올랐지만 더 오를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애크먼의 얘기를 통해 좀 더 세부적인 견해를 파악하면 다음과 같다. 앞으로 인플레이션을 바라보는 잣대가 달라질 수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는 ‘평화의 혜택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미국과 중국을 축으로 한 신냉전시대가 도래하면서 글로벌이 둘로 쪼개졌다. 그에 따른 거래비용 증가로 고비용사회가 됐다는 게 내용의 골자다.
또 중국 외주의 장기 디플레이션 효과도 없어졌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 노릇을 하면서 미국의 인플레를 가져갔던 사회가 저물었다는 것이다.
근로자와 노조의 교섭력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는 점도 지목됐다. 파업이 많이 발생하고 성공적인 파업으로 상당한 임금 인상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또한 에너지가격이 오르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올라갈거란 전망도 한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가 생산을 억제하는 동안 미국이 전략적 석유 비축량을 다시 채워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도 문제의 원인이 된다고 지적한다. 애크먼이 글을 쓴 이후에 터진 사건이지만 이스라엘-하마스 사태 역시 사후적으로 애크먼의 견해에 손을 들어주게 하는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 미국 국채 공급이 늘어나면서 수급이 꼬인 것도 장기 국채 상승을 압박하는 대목이다. 미국의 국가 부채는 33조달러에 달한다. 앞으로 급격한 증가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양당인 민주당과 공화당이 재정건전화에 나설 뜻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내년 대선을 앞두고 선거 준비에 돌입한 미국 민주당은 인프라 지출을 위해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고 있다. 이렇게 되면 국채가 시장에 쏟아지게 되고 수요 공급 원리에 따라 가격은 떨어진다. 국채가격이 떨어진다는 것은 국채수익률이 올라간다는 뜻이다. 게다가 역사적으로 미국채의 주요 매수자였던 중국과 다른 국가들이 미국채를 매도하고 있어 더 문제다. 중국은 최근 몇 년간 보유한 미국 국채를 계속 시장에 내다팔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좋을 때 중국은 미국채 매수 주요 주체였다. 미국이 달러를 찍어 물건을 중국에서 사면, 중국은 보유한 달러로 미국 국채를 사들여 미국은 물가 상승 압력 없이 호황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같은 관계는 모두 깨졌다. 미국과 중국이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는 최악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
국채금리가 고공행진하면 주식시장에도 악재가 될 수밖에 없다. 주식은 결국 이자율의 함수다. 만약 30년물 금리가 5%를 넘는다면 이걸 살 경우 30년 동안 안정적으로 매년 5% 넘는 이자를 챙길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변동성이 심한 주식보다 채권이 훨씬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 이런 기전으로 주식 투심이 약화되고 채권 쏠림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