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퍼스(Compass)는 미국 부동산 시장에서 혜성 같은 존재다. 설립된 지 10년이 되지 않았지만 미국 부동산 시장을 휩쓸며 지난해 1위(리얼트렌드 기준)로 등극했다. 지난해 컴퍼스를 통한 부동산 거래액은 전년 대비 68% 증가한 2542억달러에 달했다. 이런 컴퍼스가 최근 임직원 10%를 해고하겠다고 밝혔다. 컴퍼스뿐만 아니다. 질로와 함께 부동산 정보 빅데이터 기업의 양대 산맥인 레드핀(Red Fin)도 임직원 6%를 해고하기로 결정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전례 없이 끓어올랐던 부동산 시장이 가라앉는 징조다.
당장 부동산 가격이 추락할 징조는 없지만 20~30%씩 전례 없이 폭등하던 상승세가 둔화될 가능성은 높아졌다. 경기 둔화 신호음은 부동산 시장 외에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가전제품 유통을 담당하는 A사 관계자는 “2분기 들어 매출 신장률이 전년 동기 대비 20% 이상 감소세로 돌아섰다”며 “팬데믹 발생 이후 누렸던 호황은 이제 확실히 꺾였다”고 말했다.
이런 점은 미국의 소매판매 지표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5월 소매판매는 전월보다 0.3% 감소했다. 지난해 12월 이후 5개월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인플레이션이 장기화하면서 미국인들이 지갑을 닫기 시작한 것이다. 5월 미국의 자동차 판매가 3.8% 급감한 것이 대표적이다.
유통업체들의 재고 관리 실패는 2분기 실적에 어두운 그림자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감소세가 지속되던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5월부터 소폭이지만 다시 증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6월 둘째 주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22만9000건으로 집계됐다. 여전히 낮은 수준이기는 하지만 전문가 전망치(21만7000건)보다 높았으며 매주 증가하는 추세다.
이렇게 실물 경기가 식어가고 있지만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다시 상승하고 있다. 지난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전년 동기 대비 8.6% 상승하며 스태그플레이션(고물가 속 저성장)에 대한 우려도 커진 상태다.
연준이 1994년 이후 처음으로 기준금리 인상 폭을 0.75%포인트로 확대해 고강도 긴축에 따른 경기침체 우려가 부상하면서 주가는 낙폭을 키웠다. <사진 연합뉴스>
이렇게 미국 경제가 어려운 상황으로 빠지게 된 것과 관련,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뒷북 대응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코로나19 사태로 경제 상황이 과거와 다르게 완전히 바뀌었는데 연준은 옛날 교과서 논리로 통화정책을 펴는 데 급급하다”고 신랄하게 꼬집었다.
연준은 지난 15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마치고, 75bp(0.75%P, 1bp=0.01%포인트)의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5월 소비자물가지수 발표 이후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 75bp 인상)’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자 이례적으로 이를 수용한 것이다. 연준이 한 번에 75bp 폭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한 것은 28년 만이다.
파월 의장은 “10년 넘게 연준에 근무하면서 FOMC 결과 발표 직전에 (금리 조정의 폭을) 수정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라고 말했다. 그만큼 이번에는 막판에 다급하게 기준금리 인상 폭을 수정했다는 뜻이다.
중앙은행의 거시경제, 기준금리 전망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특히 연준은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금리 인상에 나설 경우 경기침체를 야기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또 연방정부 부채를 고려할 때, 기준금리를 급격하게 올릴 경우 닥칠 충격까지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연준이 인플레이션에 대해서 안이한 판단을 했다는 점은 두고두고 비판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1981년 말 이후 최악의 인플레이션이 진행되고 있지만 연준의 대응은 안이했다. 파월 의장은 지난해 11월 연임이 결정되기 직전까지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라고 수없이 반복해왔다. 파월 의장의 전임자인 재닛 옐런 재무장관도 마찬가지였다. 옐런 장관은 최근 상원 금융위원회에 출석한 자리에서 “당시에 인플레이션에 대한 판단이 잘못됐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파월 의장은 7월에도 50~75bp 금리 인상을 예고했다. 뒤늦게 강력한 긴축 모드에 들어갔지만 월가에서는 너무 늦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이미 경기둔화의 신호음이 곳곳에서 울리고 있기 때문에 뒤늦게 무리수를 범할 가능성이 높고, 이는 경기침체를 더 앞당기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연준은 올해 미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1.7%로 전망했다. 지난 3월 전망치(2.8%)보다 1.1%포인트 하향 조정한 것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번 금리 인상에 대해서 “인플레이션을 통제하려는 가장 공격적인 조치지만 투자자와 일부 기업은 인플레이션을 통제하려는 조치가 경제를 지나치게 냉각시켜 경기침체와 정리해고의 물결을 촉발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고 지적했다.
중간선거를 앞두고 수세에 몰린 민주당 정부가 계속해서 연준을 압박할 경우 연준도 이에 자유롭기 힘들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5월 말 파월 의장을 백악관으로 불러 면담한 것 자체가 중앙은행에 대한 무언의 압박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트윗으로 파월 의장을 공개 비판했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파월 의장과 면담에서 “연준의 독립성을 존중한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백악관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연준 의장을 만난 것 자체가 통화정책에 개입한 것이다. ‘연준의 독립성을 존중한다’라고 쓰고 ‘인플레이션을 잡지 못해 중간선거에 패배할 경우 연준의 책임이다’라고 읽어야 할 판이다.
연준이 비판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인플레이션의 원인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번 인플레이션은 강력한 수요 외에 공급 부족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 금리 인상은 수요 억제를 기할 수 있지만 공급 부족 현상을 치유할 수는 없다. 유가 급등과 각종 물가 상승을 초래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예상할 수 없었던 변수다.
하지만 공급망 혼란에 따른 물가 상승세는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던 현상인데 연준의 대응은 안이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중국의 제로코로나 정책이 지속가능하지 않고, 글로벌 공급망에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점도 예견할 수 있었던 변수다.
2020년 상반기 코로나19 사태 초기에 중국의 주요 생산 기지가 멈추며 공급망 혼란이 지속됐던 점을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파월 의장이 인플레이션에 대한 판단 실수로 이 같은 일을 초래했다면 이제는 경기 판단에 대한 실수를 범하지 않아야 할 시점이다. 파월 의장은 “경제가 침체한다는 조짐이 없다”며 “고용 시장의 성장이 둔화하고 있지만, 아직도 상당히 건실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경기침체는 예고하고 찾아오지 않는다. 그 속도도 전례 없이 빠를 수 있다.
이 글의 모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미 실물 경기에서는 그런 조짐이 확실히 나타나고 있다. 파월 의장이 믿고 있는 안정적인 고용 시장도 한순간에 다시 악화될 수 있다. IT, 가상화폐, 부동산 기업 등 경기 침체에 민감한 업종은 인력 구조조정에 나서며 ‘탄광 속의 카나리아’처럼 경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파월 의장이 이런 현상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