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진오일 도매 공급이 제대로 되질 않습니다. 할 수 없이 월마트 등등을 전전하며 엔진오일을 사와야 하는 상황입니다.”
지난 11일(현지시간) 미국 뉴저지주 팰리세이즈파크에 있는 차량정비소를 찾았을 때 정비소 대표인 A씨가 한 말이다.
A씨는 “엔진오일뿐 아니라 차량 부품도 공급되지 않는 것이 많아 차 수리를 제대로 할 수 없다”며 “타이어는 가격이 1년 만에 약 30% 올랐고, 일부 모델은 아예 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 14일 뉴저지주 잉글우드에 있는 대형마트인 숍라이트. 통조림 코너는 매대가 거의 비어 있었다. 냉장식품, 음료수 코너에는 “최근 계속되는 생산 부족에 따라 일부 품목에 공급이 제한되고 있으니 양해를 바란다”라는 안내문에 곳곳에 붙어 있었다. 제품 공급에 제약이 생기다보니 가격도 올라가고 있다. 공급망 붕괴에 따른 인플레이션 파고가 덮친 현장이다.
지난 12일은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발표가 있었던 날이었다. 시장의 초미의 관심사인 경제지표이기 때문에 미리 기사를 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정확히 몇 년 만의 최대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과거 데이터가 필요했다. 하지만 2000년 이전 기록을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12월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7.0%를 기록, 4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최근 인플레이션이 케케묵은 40년 전 데이터를 찾아 비교해야 할 정도가 된 것이다.
이렇게 인플레이션이 심각해지자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강력한 긴축 카드를 꺼내들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연임 인준 인사청문회에서 강경 발언을 쏟아냈고, 부의장으로 지명된 레이얼 브레이너드 연준 이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파월 의장은 “더 높은 물가 상승이 고착화하는 것을 막기 위한 수단을 쓰겠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 경제는 더 이상 확장적 정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며 “금리를 더 올려야 할 상황이 되면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공급난과 물가인상으로 미국이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해 12월 실업률이 3.9%를 기록했다는 발표가 나오자 연준의 매파적 통화정책이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JP모건, 씨티그룹, 도이치뱅크는 올해 금리 인상 횟수 전망을 3회에서 4회로 조정했다. 골드만삭스도 이후 3회에서 4회로 전망을 수정했다.
월가뿐 아니라 연준 내부에서는 이제 올해 4번의 금리 인상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연내 4회 금리 인상을 할 경우 현재 0.00~0.25%인 미국 기준금리는 1.00~1.25%가 된다. 첫 금리 인상은 오는 3월로 예상된다.
패트릭 하커 필라델피아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13일 한 지역 행사에서 “인플레이션이 잡히지 않을 경우 4번째 금리 인상을 확신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찰스 에번스 시카고 연방준비은행 총재도 이날 지역 언론 행사에서 “올해 2~4회의 금리 인상이 필요할 것으로 강하게 믿는다”고 말했다.
윌리엄 더블리 전 뉴욕연방준비은행 총재는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단기금리를 최근 15년래 최고 수준인 3~4%까지 높여 경제 성장을 의도적으로 낮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제는 4번으로도 부족하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최고경영자(CEO)는 14일 실적 발표에서 “내 견해로는 4번 이상의 금리 인상이 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며 “6번 또는 7번이 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1980년대 물가를 잡기 위해 극단적인 금리 인상에 나섰던 점에 비하면 이런 파격적 금리 인상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폴 볼커 연준 의장 시절에는 토요일 밤 한번에 200bp(2%포인트) 금리를 올리던 시절도 겪어봤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번 인플레이션이 금리 인상이라는 한 가지 처방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복잡한 방정식이라는 점이다.
2022년 전미경제학회(AEA 2022) 행사에서 이런 점을 지적하는 학자들이 많았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금리를 올려서 수요를 억제하는 것은 공급망 병목, 수급 불안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울 수 있다”며 인플레이션에 대한 종합적인 정책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공급망 혼란이 최근 인플레이션을 가중시킨 1차 요인이었다면 올해는 인건비, 주거비 상승이 2차 압박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 두 요소는 한번 오르면 다시 내려가지 않는다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수급 상황에 따라 가격이 내려가기도 하는 에너지, 식품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미국 어디에서나 유통, 서비스 매장마다 입구에는 구인 공고가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미국은 심각한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최저임금 15달러 공약을 내세웠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이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다. 거주지 주변의 일자리를 매칭해주는 플랫폼인 잡오지오닷컴(jobozio.com)에 기자가 사는 곳의 우편번호를 입력해봤다. 단순 조립 업무인데 시간당 30달러를 주는 곳도 있었다. 팬데믹 이후 인력난이 극심해진 상황인데, 오미크론 변이 영향으로 확진자가 급증하며 모든 현장이 더 제한된 인력으로 돌아가야 하는 실정이다.
욘 스테인손 UC버클리 교수는 “퇴사자가 늘어나며 기업들은 구인난을 겪고 있어서 임금 상승 압력이 비용 부담으로 계속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장은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낮게 유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이런 신뢰가 붕괴될 경우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했던 1970년대와 비슷한 상황으로 복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임금 상승과 함께 물가를 부채질하는 것은 주거비다. 주거비는 가계에서 지출 비중이 가장 큰 항목이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 구성에서도 주거비 비중은 3분의 1에 달한다.
미국 1위 부동산 거래 플랫폼인 질로우는 지난해 19% 상승한 주택 가격이 올해에도 강세장이 이어져 14% 안팎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골드만삭스는 2021년 10월~2022년 12월 주택 가격이 16%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2020년 10월~2021년 9월 17.7% 상승률에 비해서는 소폭 하락하지만 여전히 강세장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매매 가격이 오르면 렌트 가격은 함께 오를 수밖에 없다. 미국에는 한국과 같은 전세가 없기 때문에 모기지를 통해 구입한 집을 렌트해줄 경우 시세를 바로바로 반영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공급난과 물가인상으로 미국이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해 12월 연준은 거시경제전망 자료에서 올해 PCE(개인소비지출) 기준 인플레이션이 2.2%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PCE 기준 인플레이션이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보다 다소 낮게 나타나지만, 올해 인플레이션이 2%대에 그칠 것으로 낙관하는 사람은 극소수다.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거비는 부동산 계약 특성상 시차를 두고 물가지표에 영향을 주게 된다.
경제학의 바이블로 통하는 <맨큐의 경제학>을 쓴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교수는 이런 점을 지적했다.
전미경제학회 행사에서 맨큐 교수는 “소비자물가지수(CPI)를 구성하는 항목인 렌트비의 경우 조사 대상 주택을 6개월마다 조사하고 있어 뒷북 데이터인 경우가 많다”며 “이런 점부터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플레이션 수치 자체가 현실을 반영하고 있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연준의 정책적 대응이 자칫 오판을 부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증시를 비롯한 시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요소로 올해 가장 주목해서 봐야 할 포인트는 연준의 대차대조표 축소(양적 긴축)다.
연준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무제한적인 양적 완화에 나선 영향으로 연준 자산은 위기 전 4조2000억달러에서 최근 8조8000억달러까지 치솟았다. 이런 채권을 만기에 재투자하지 않거나 매각하는 것이 대차대조표 축소다. 테이퍼링(유동성 공급 축소)은 오는 3월로 마무리되고, 금리 인상은 예고된 수순이기 때문에 이제 가장 큰 불확실성은 양적 긴축이 언제부터, 어느 정도로 이뤄지는지 여부다.
▶美 주택 가격 올해도 두 자릿수 상승 전망
파월 연준 의장은 “2~4차례 회의를 거쳐서 일정을 확정할 것이며 아마도 올해 하반기에 대차대조표 축소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7월 정도로 예상했던 시장 전망보다 늦은 일정이어서 시장이 일단 안도했지만, 물가 상승세가 진정되지 않는다면 일정이 앞당겨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2017~2019년 단행했던 대차대조표 축소 시에는 월 500억달러가 한도였으며 6000억달러를 줄이는 데 그쳤다. 당시는 첫 금리 인상 후 2년 뒤 연준이 양적 긴축에 들어갔지만 올해는 그렇게 할 여유가 없다.
래피얼 보스틱 애틀랜타연방준비은행 총재는 로이터와 인터뷰에서 “대차대조표 축소는 공격적으로 추진되어야 하며 1조5000억달러 규모를 줄일 때까지 최소 월 1000억달러 규모로 진행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연준 내부에서는 이렇게 대규모 양적 긴축을 해본 적이 없다는 점에서 매우 조심스러운 의견을 펴는 견해도 있다.
메리 데일리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대차대조표 축소는 매우 강력한 정책 수단이지만 연준이 거의 사용해본 경험이 없다는 난점이 있다”며 “점진적으로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운명도 이제 인플레이션 숫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이든 대통령과 파월 의장이 이 복잡한 방정식을 어떻게 풀어 나갈지 더욱 더 주목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