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블 이코노미] Part Ⅱ 부동산 | 고개 드는 거품론, 과열지역을 중심으로 집값 버블 위험 경고음… 금리 인상, 실물경기 부진, 가계부채 최대 변수
정다운 기자
입력 : 2021.05.26 10:51:05
수정 : 2021.05.26 10:51:19
지난 몇 년간 전국 부동산 시장은 말 그대로 ‘불장’이었다. 2013~2014년께 차츰 회복세를 보이는가 싶던 집값은 이후에도 쉬지 않고 급등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내 집 마련 타이밍을 놓친 실수요자, 다른 집으로 이사 가려는 유주택자 모두 집값이 언제까지 오를지, 떨어진다면 언제쯤 조정이 올지 다양한 전망에 귀 기울인다.
최근에는 서울, 세종 등 과열 지역을 중심으로 집값에 버블(거품) 위험이 있다는 진단들이 슬금슬금 고개를 들고 있다. 그간 ‘상승’ 전망 일색이던 부동산 시장에서 ‘하락’ 의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이목을 끈다.
▶국토硏의 경고 “서울·세종 집값 거품 위험 수준”
올 들어 집값 하락론을 먼저 제기한 곳은 국토연구원이었다. 지난 3월 내놓은 ‘수도권 중장기 주택공급 효과와 시사점’ 보고서에서 국토연구원은 “‘2·4 부동산 안정대책(이하 2·4 공급대책)’으로 서울 집값은 앞으로 10년간 10.3%포인트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토연구원은 앞으로 10년(2021~2030년)간 연평균 0.64%포인트, 10년 누계로 6.4%포인트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같은 기간 서울 집값은 연평균 1.03%포인트, 10년 누계로 10.3%포인트 하락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집값 하락 효과가 확대되기 시작하는 시기는 2023년부터다.
그보다 앞서 2월 국토연구원은 ‘국토이슈리포트 34회’를 통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주요 도시의 주택 시장에서 버블 위험이 확대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집값 거품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글로벌 은행 UBS의 부동산 버블지수 산출식을 준용해 우리나라 주요 도시의 집값 버블지수를 추정한 결과, 지난해 기준(1~3분기)으로 서울과 세종의 집값 버블지수는 각 1.54로 측정됐다. 지수가 1.5를 넘으면 버블 위험이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 0.5~1.5는 고평가된 수준이고, -0.5~0.5는 적정 수준, -1.5~-0.5는 저평가된 것으로 본다. 서울은 버블지수가 2019년 1.60에서 지난해 소폭 하락했다. 하지만 세종은 버블지수가 2018년 0.86에서 2019년 1.05으로 해마다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기준 저평가된 지역은 전북(-1.25), 경북(-1.06), 경남(-0.95), 충북(-0.71), 충남(-0.55) 등이었다.
소폭이긴 하지만 한국건설산업연구원도 지난해 11월 ‘2021년 부동산시장 전망’에서 올해 전국 집값이 0.5%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수도권 집값이 0.7% 내릴 것으로 봤다. 상승률이 1%가 안 되는, 낮은 수준이긴 하지만 그동안 ‘상승’ 일색이던 부동산 시장에서 ‘하락’을 외쳤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이 밖에 올해 하락을 예상하는 기관이나 전문가는 많지 않다. 다만 과거보다는 보수적인 전망을 내놓으면서 다소 결을 달리하는 점이 눈에 띈다. 전례 없는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조정’에 대한 압박이 크다는 의미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원장은 올해 상승 가능성을 점치면서도 “지난 7년간 올랐고 물가상승률이나 소득증가율 등 우리 경제의 내재가치에 비해 상승률이 높다”고 말한다. 사이클상으로는 집값이 정점을 향해 가고 있고, 투자 위험도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는 경고다.
▶집값 하락 왜?
이들 전문가·기관의 예측이 모두 맞을 것으로 예단하기는 이르지만 저마다 나름의 논리는 있다.
국토연구원은 2·4 공급 대책에 따라 주택 공급이 늘어나면 집값이 하락한다고 본다. 2·4 공급대책을 반영한 수도권 중장기 주택공급은 연평균 수도권 30만8000가구, 서울 11만3000가구에 이를 것이란 설명이다. 멸실 주택을 반영하면 수도권 주택은 연평균 7만4000가구, 서울은 4만 가구씩 순수하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주택 공급이 본격화되면 특히 금리가 급격하게 인상되는 등 외부 충격이 생겨 집값 하락 압력은 더 확대된다. 다만 정부의 2·4 공급대책이 계획대로 이행될 경우에 한해서라는 단서를 달았다. 황관석 국토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주택 공급에 따른 집값 안정 효과는 주택이 정부 계획대로 공급되는 것을 가정해 분석한 전망치”라며 “2·4대책에 따른 주택공급이 계획대로 추진될 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토연구원은 또 수도권 주택 시장은 순환국면 분석 결과, 지난해 4분기 현재 확장국면이 확대됐고, 주택가격의 장기 추세와 명목 국내총생산(GDP), 소비자물가와의 장기적 균형 수준을 고려할 때 최소 4.5%, 최대 13.2% 고평가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정부가 수도권 3기 신도시를 비롯한 대규모 주택 공급 확대 정책을 추진하면서 머지않아 집값이 급락할 것이라는 주장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정부는 3기 신도시 사전청약을 통해 올 하반기 3만 가구, 내년 3만2000가구를 공급하고 공공 재개발, 재건축 등을 추진해 공급을 대거 늘릴 계획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주택 공급 확대 방안을 통해 시장이 예상하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물량을 공급함으로써 공급 부족에 대한 불안을 일거에 해소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를 두고 유튜버들은 대규모 주택 공급이 쏟아지면 집값이 폭락하는 만큼 투자에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전국 집값이 소폭 하락할 것으로 본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의 설명은 이렇다. 전월세 계약갱신청구권 도입으로 인해 ‘즉시 입주 가능한 물건’이 줄어들면서 매수세가 둔화될 수 있다. 김성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즉시 입주 가능한 물건에 대해선 수요가 몰리며 강세가 예상되지만 대다수의 사실상 판매가 어려운 물건(전세 낀 물건)은 결국 가격을 낮춰 내놓을 수밖에 없다”며 “시장 전반적으로 약보합세가 예상된다”고 말한다.
같은 맥락에서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도 집값 전망을 보수적으로 본다.
심 교수는 “올해는 기껏해야 강보합 수준”이라면서 “여전히 집값 상승 압력은 강하지만 그만큼 거시경제 환경과 추가 규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하방 압력도 만만찮다”는 설명이다. 심 교수는 “사실 지난해 상반기 시장이 안정세에 접어드는 분위기였고 집값이 조정될 가능성이 있었는데 임대차 2법(전월세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이 발표되면서 집값을 다시 한 번 밀어 올렸다”고 덧붙인다. 이후 ‘고점’에 대해 수요자가 느끼는 부담이 커졌고, 매수세가 잦아들 것이란 설명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수도권 하락폭이 소폭이나마 더 클 것으로 보는 이유는 수도권 대부분 지역이 조정대상지역 등 규제지역으로 묶여 있기 때문이다. 지방의 덜 오른 비규제지역으로 유동성이 몰리면 풍선효과로 지방 집값은 당분간 상승 압력이 유지될 여지가 크다.
다만 이런 식으로 오른 가격 거품은 향후 금리가 인상되거나, 실물경기에 위기가 오거나, 부채(가계 혹은 자영업자, 중소기업 등)가 부실해지면 가장 먼저 꺼질 수 있다는 경고가 뒤따른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올해 보유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 부과 기준일이 되기 전 세금 부담을 느낀 다주택자의 매물이 시장에 나오면 수요자들이 관심을 갖겠지만, 수요가 지속되긴 어려울 것”이라며 “정부의 고강도 규제에 일부 지역은 매물이 쌓이면서 가격 하락 효과를 보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제로 금리 인상 압력은 부동산 거품론에서 꾸준히 제기돼 온 집값 하락 요인이다. 그간 집값 상승 동력이 됐던 풍부한 유동성 효과가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라는 얘기다.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되면 기준 금리 인상으로 유동성이 축소돼 집값이 급락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금리가 오르고 대출 부실이 커지면 주택 시장이 가장 먼저 직격탄을 맞는다는 주장이다.
안 그래도 최근 시장에서는 미국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예상보다 높게 나타나면서 인플레이션에 대한 경계심이 커진 상황. 지난 4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지난해 같은 달 대비 4% 이상 급증했다. 지난해 경기 침체로 인한 기저 효과뿐 아니라 백신 보급, 경제 회복세, 초대형 경기 부양책 등이 맞물린 결과다.
미국에서는 소비자들의 수요가 폭발하고 기업들의 경영 활동이 재개되면서 물가 상승 압력이 가중돼 왔다. 인플레이션 공포가 시장을 덮치면서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상 시기가 빨라지면, 국내 금융 시장도 금리 인상 시기를 앞당길 가능성이 크다. 최근 더욱 강화된 대출 규제도 그간 오른 집값이 조정 국면에 들어갈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다.
으로 강화하기로 했다. 내 집 마련을 위해 ‘영끌(영혼까지 끌어 모으는)’식 대출을 계획했거나 마이너스통장 등 신용대출을 사용 중이던 사람 모두에게 타격이 불가피하게 됐다.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 한도 모두 크게 줄어들 수 있는 만큼 주택 구매 수요는 감소할 수 있다.
지난 5월 29일 금융위원회가 내놓은 ‘가계부채 관리 방안’을 보면 오는 7월 1일부터 서울 등 규제지역에서 6억원이 넘는 집에 대해 주담대를 받거나 1억원 이상 신용대출을 받을 때는 DSR 40% 규제가 적용된다. 내년 7월부턴 이 두 가지 경우와 함께 총 대출액이 2억원을 넘어도 DSR 규제 대상이 된다.
DSR가 40%로 제한될 경우 예컨대 연소득이 3000만원인 사람은 원금과 이자를 합해 연 1200만원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만 빌릴 수 있다. 이미 신용대출이나 ‘마통’을 이용 중이라면 주택담보대출 한도가 수천만원 줄어드는 구조다. 이어 내년 7월부터는 총 대출액이 2억원, 2023년 7월부터는 1억원을 넘으면 예외 없이 DSR 40%가 적용된다. 연소득이 1억원 미만이면서 대출을 보유한 사람의 추가 대출 여력이 크게 줄어든다.
▶‘무리한 주장’ 지적도… “집값 상승 압력 여전”
하지만 대다수 부동산 전문가들은 일부 거품론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는 신중론을 편다. 기준금리가 오르더라도 정부가 DTI(총부채상환비율), LTV(주택담보인정비율) 등 강력한 대출 규제를 통해 가계부채를 관리해온 만큼 부동산 시장에 미치는 파장이 크지 않다는 전망이 대세다. 코로나19가 예상보다 일찍 종식된다 해도 실물경기 악화로 당분간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판단도 이를 뒷받침하는 논리다.
공급 확대에 따른 집값 하락이 단기간 내 현실화될지도 미지수다. 집값 급등에 놀란 정부가 대규모 공급 확대를 준비 중이지만 주로 3기 신도시 등 수도권에 공급이 집중되는 만큼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재건축, 재개발 규제를 확 풀지 않는 한 실수요자가 원하는 서울 도심 역세권 공급 확대는 쉽지 않다는 의견이다. 윤재호 메트로컨설팅 대표는 “‘풍선 효과’가 나타나 매매가가 이상 급등한 일부 지방 부동산 가격은 조정을 받겠지만 단순히 주택 공급을 늘린다고 해서 집값이 폭락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오히려 집값이 더 상승할 것으로 보는 전문가도 많다. 이들 전문가는 주택 공급 부족은 여전하고, 전·월세 시장 불안이 커질 수 있으며, 상승 기대 심리가 여전하다는 점을 꼽는다.
윤지해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지난해 다주택자의 양도세·보유세를 강화한 7·10 대책을 통해 매물을 정리할 의사가 있었던 다주택자는 대부분 보유 중이던 주택을 정리했다고 봐야 한다”면서 “앞으로 과세 기준일인 6월 1일이 지나고 나면 매물 잠김 현상이 더 심화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구매 가능한 매물이 적어지는 만큼 집값이 여전히 강세를 띨 것이란 주장이다.
이은형 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특히 서울 지역 아파트값은 기대심리 변수가 크다”며 “최근 오세훈 서울시장이 당선된 후 주요 재건축 지역에는 기대심리·매수심리 모두 커지고 있다”며 “앞으로 매도세보다는 매수세가 강해 가격 상승을 지탱할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이 5월 2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22차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기존 부동산 정책의 큰 골격과 기조는 견지하되 변화가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가능한 한 다음 달까지 모두 결론 내고 발표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서도 부동산 가격 논란
코로나19·초저금리 여파로 고평가 우려 커져
우리나라뿐 아니라 유럽, 아시아, 북미 등 전 세계 주택 시장에서도 ‘집값 거품론’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3월 28일 ‘집값이 전 세계에서 부풀어 오르고 있다’는 기사를 통해 글로벌 주택가격 상승이 잠재적 거품 우려를 키우고 있다고 진단했다. 수년간 이어진 초저금리가 주택 수요를 키운 가운데 코로나19 대유행 여파가 집값 수요를 부추겼다는 설명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37개 회원국 집값은 지난해 3분기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지난해 연간 상승률도 거의 5%로 근 20년간 최대폭이다. 수년간 이어진 초저금리가 주택 수요를 키워온 가운데 코로나19 사태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천문학적 규모의 재정 부양과 재택근무 확대에 따른 ‘교외 넓은 집’ 이사 수요의 급증으로 집값이 급등했다는 것이다. 이에 WSJ는 국가마다 딜레마에 빠졌다고 진단했다. ‘포스트 코로나19’ 경기 회복을 위해 초저금리 유지를 원하면서도 국민이 가격이 급등한 집을 사느라 과도한 부채를 떠안는 것을 염려하는, 곤란한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덴마크 중앙은행은 최근 낮은 자금조달 비용이 집값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경고성 보고서를 냈다. 카스텐 빌토프트 덴마크 중앙은행 부총재는 “연 5~10%의 집값 상승이 장기적으로 지속 불가능하다는 것은 명백하다”고 강조했다. WSJ는 또 중국 금융당국은 자산 시장을 “거품”이라고 언급하면서 시장 안정을 위한 규제 노력을 기울였으나 거의 소용이 없었다고 봤다. 지난해 중국 선전의 부동산 가격 상승률은 16%에 달했다. WSJ는 지난해 15% 가까이 집값이 오른 서울에서 일부 부부들이 저금리 대출을 많이 받기 위해 혼인신고를 늦추고 집을 사는 사례도 있다고 소개했다. 뉴질랜드도 올 들어 2월 주택 중위가격이 지난해 같은 달보다 23% 급등한 역대 최고 수준에 이르자 주택담보대출 기준을 강화하고 나섰다. 미국, 중국보다 경제 전망이 좋지 않았던 유럽에서도 평균 1.35%에 불과한 주택담보대출 금리와 각국 정부의 급여 보조, 대출 상환 유예 조치가 집값을 끌어올렸다.
다만 미국 등 여러 나라의 경제학자들은 최근 집값 과열이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주택 시장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본다고 WSJ는 전했다. 당시보다 채무자들의 신용 등급이 높고 투기 수요보다는 실수요가 많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따라 향후 금리가 상승하고 수요가 잦아들더라도 과열된 시장이 큰 충격 없이 자연스럽게 식을 수 있다는 게 WSJ의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