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블 이코노미] Part Ⅰ 주식 | 공매도 재개·외인 이탈에 다시 박스권 갇힌 증시, 주가 고점 논란 커도 기업실적 호전 낙관론 여전
박지훈 기자
입력 : 2021.05.26 10:43:28
수정 : 2021.05.26 10:43:46
인플레이션 공포 확산으로 글로벌 금융 시장이 출렁이면서 주식 시장의 변동성도 확대되고 있다. 테이퍼링 우려와 조기 금리 인상에 대한 공포로 그동안 상승 피로도가 높아진 자산의 거품 붕괴 우려도 고개를 들고 있다. 과도한 인플레이션 우려는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구리, 원유 등 원자재 가격은 코로나 이전 가격을 회복한 지 오래고, 심지어 목재값까지 고공행진하며 최근 역대 최고 가격대에 머물고 있다. 연초 대비 목재 가격은 60% 넘게 상승했다.
지난 3월 대비 나스닥지수도 같은 기간 두 배 가까이 상승했다. 미국 주택의 평균 매매 가격은 올 3월 32만9100달러(미국부동산협회)로 협회가 통계를 내기 시작한 1999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S&P와 다우존스지수는 모두 올해 들어서만 신고점을 20회 이상 갈아치웠다. 프랑스와 호주 등 각국의 대표 주가지수도 사상 최고 기록을 새롭게 쓰고 있다.
국내 주식 시장도 상황이 비슷하다. 지난 1월 7일 3000시대를 연 코스피지수는 지난 5월 10일 3249를 기록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코스닥지수도 지난 4월 12일 20년 7개월 만에 1000선을 돌파한 이후 조정을 받았다.
김재칠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이에 대해 “2021년 4월 기준으로 S&P500 기업의 평균 PER는 33.3배, 나스닥100 기업의 평균 PER는 39.7배인데, 이는 2008년 10월 이후의 평균인 19.4배와 22.7배를 크게 뛰어넘는 수준”이라며 “장기 평균을 넘어선 주식의 밸류에이션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
▶연준, 문제는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자산 버블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한 각국 정부의 부양책과 통화 팽창 정책이 시장 거품을 키우고 있다는 경고는 이미 지난해부터 제기되고 있다. 각국 정부가 돈 풀기를 멈추고 긴축으로 전환할 경우 거품이 일시에 꺼지면서 투자자의 피해가 속출할 수 있다는 우려다. 실제 전문가들은 자산 시장의 버블이 가져올 충격에 대해 경고메시지를 내고 있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최근 “팬데믹 이후 주식 시장을 비롯해 암호화폐 등 금융 부문에서 광범위한 거품이 생겼다”며 “다시 변이 바이러스 확산과 같은 외부 충격에 쉽게 무너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억만장자 투자자인 제프 그린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수도꼭지를 틀듯 돈을 쏟아 부으면서 모든 자산에서 거품이 발생했다”며 “지금 상황이 언제까지나 계속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 연방준비은행(이하 연준) 역시 인플레이션에 대해서는 “일시적 현상”이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자산 시장의 밸류에이션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하는 모습이다. 연준은 최근 ‘일부 자산의 평가 가치가 높은 상태’라는 내용을 담은 금융안정보고서를 내놓은 바 있다. 물가에 대해서는 꾸준히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지난 5월 4일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의 갑작스러운 ‘금리 인상’ 발언 또한 자산 시장에 대한 경고 측면이 크다.
금리정책에 대한 결정권이 없는 재무장관이 사전에 시장의 변동성을 줄이기 위해 일종의 ‘예방주사’를 놓아 자산 시장의 거품을 걷어내기 위한 ‘장치’라는 해석이다.
김일구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인플레이션 파이터에서 버블 파이터로 변신하고 있다”고 밝혔다. 과거 연준은 인플레이션 압력이 나타나면 선제적으로 금리를 올려 차단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1970~1980년대 세계 경제를 괴롭혔던 인플레이션은 사라지고 1990년대 미국 역사상 가장 긴 호황을 이끌어낸 바 있다. 코로나19이후 연준의 대처는 과거와 달라졌다는 것이 김 연구원의 설명이다.
그는 “2000년대 이후 팬데믹을 제외한 두 차례 경기 침체는 모두 자산 버블 때문이었다”며 “이에 따라 연준도 주적을 인플레이션에서 자산 버블로 바꾸고, 적에 맞설 주력 무기도 연방기금금리에서 장기금리로 교체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은행 역시 시장의 인플레이션 우려에 대해서 차분한 모습이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전년 대비)은 2.3%로 물가안정목표치(2.0%)를 훌쩍 넘었음에도 기저효과와 변동성이 높은 식료품 및 에너지 영향이 큰 일시적인 현상으로 분석하고 있다. 연준과 한은 모두 인플레이션이 걱정되지만, 지금 물가 상승세에는 일시적 요인이 많아 대응에 나서는 것은 이르다는 입장이다.
▶공매도 재개 코스닥에 타격, 외국인 자금도 이탈 지속
최근 주식 시장은 인플레이션 우려와 공매도 재개 등으로 사상최고점을 찍은 후 내려와 박스권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코스피지수는 3000~3200에, 코스닥지수는 900~1000에 갇힌 모양세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5월 18일 종가기준 코스피지수는 3173.05p에 거래를 마쳤고, 코스닥은 969.10p에 거래를 마감했다. 불과 1주일 전 종가기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며 치솟았던 분위기는 가라앉은 모습이다. 미국 증시 약세와 공매도 재개가 겹치면서 부진을 겪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 증시 하강 중심에는 외국인이 있다. 외국인은 지난달 27일 이후 하루를 제외하곤 연일 순매도 행진을 이어갔다. 코스피가 3249.30으로 사상 최고치를 찍었던 10일 2352억원을 사들인 게 전부였다. 공매도가 부분 재개된 3일 이후로 이 기간 개인은 8조9000억원 순매수했지만 외국인은 8조9000억원 순매도했다. 기관은 2500억원 사들이는 데 그쳤다.
금융당국이 지난 3일부터 국내 증시의 공매도를 부분 재개한 지 보름이 지난 시점에 막상 공매도 가능 종목인 대형주보다 중소형주의 출혈이 심한 모습이다. 공매도가 바이오주 등 성장주가 많은 코스닥 시장에 부담으로 작용하며 유가증권 시장보다 코스닥, 중소형주에 더 큰 충격을 줬다.
단적으로 코스피지수는 올해 들어 지난 14일까지 7.1% 상승했다. 최근 코스피는 인플레이션 공포에 따른 통화정책 긴축 우려로 조정을 겪고 있지만 연초 대비 여전히 상승한 상태다. 반면 같은 기간 코스닥지수는 1.1%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코스피200과 코스닥150이 지수 정기변경을 앞둔 만큼 신규 편입·편출 종목들의 주가 변동성이 높아질 것이란 투자자들의 우려도 커졌다. 코스피200과 코스닥150 지수 정기변경 결과는 이달 중 거래소의 변경 내역 발표와 다음 달 10일 정기변경 시행 순으로 진행된다. 증권사들은 코스닥150의 경우 15개 종목의 편출입을 전망하고 있다.
다만 이진우 메리츠증권 투자전략팀장은 “공매도의 경우 종목에 대한 풀이 제한돼 특정 섹터·종목에 대한 가격 반응이 컸던 것으로 해석된다”며 “지금은 이벤트에 따른 시장보다는 기업과 시장 전반의 리스크온 모드나 산업에 대한 이슈가 더 크게 영향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하반기 몰린 대형 공모주
증시에는 오히려 부담?
지난해부터 수백 대 1의 청약 경쟁률을 경신하며 이른바 ‘따상’이란 신조어를 만들어낸 공모주 시장의 거품이 빠지고 있는 모습이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해 신규 상장한 29개 기업(스팩·이전상장·리츠 제외) 가운데 현 주가가 공모가를 밑도는 기업이 7곳으로 집계됐다.
씨앤씨인터내셔널의 경우 수요 예측 경쟁률 1029 대 1을 기록하며 밴드 상단에서 최종 공모가가 확정됐고 청약 경쟁률도 898 대 1을 기록, 청약 증거금만 약 10조원 가까이 몰렸다지만 실제 시장에서는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씨앤씨인터내셔널의 시초가는 공모가(4만7500원)를 밑도는 4만7250원에 형성했고, 시초가 대비 12% 넘게 떨어진 4만1150원에 장을 마쳤다. 이날 1%대 반등했으나, 아직 공모가에는 못 미치는 수준이다.
상장 직후 급락해 화제가 됐던 SKIET의 이날 종가는 14만4000원으로, 여전히 공모가(10만5000원) 대비 37% 높은 수준이다.
업계에서는 ‘따상’이란 신조어의 탄생이 과열을 반영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최종경 흥국증권 리서치팀장은 “최근 공모가를 하회하는 일부 기업이 나온 것은 과열 국면으로 흐르던 시장이 안정화에 들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거품이 걷히는 분위기의 공모주 시장은 하반기 본격적인 대어급 기업공개(IPO)가 준비 중이다. 최대 200조원 이상을 예상하는 자금이 IPO 시장에 대기하고 있다. 유진투자증권에 따르면 하반기 대형 IPO를 앞둔 기업들은 LG에너지솔루션(약 100조원), 카카오뱅크(약 34조원), 크래프톤(약 22조원), 현대엔지니어링(약 10조원) 등이다. 문제는 이들이 주식 시장에 모습을 드러내면 증시 전반에 주식 공급이 늘어남에 따라 자금쏠림에 따른 후유증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러한 공모 규모는 1999~2000년 닷컴버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보통 IPO는 증시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본다. IPO가 활발하면 기업의 자본 조달이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것으로, 증시를 부양하는 원동력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IPO가 지나치게 몰려 시장 규모(시가총액)의 2~3% 이상 주식 공급이 늘어나게 되면 주가의 성장에 오히려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박승영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보통 IPO는 중소형주들이 주를 이루지만 올해엔 초대형주들 IPO가 많아 코스피와 기존 대형주들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주식 시장의 수급 상황은 중국 경기 둔화의 영향으로 지난해보다는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라며 “위안화 가치 상승 기대가 약해질 때 외국인 투자가들은 신흥국과 한국 증시에서 순매수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그는 “증자와 기업공개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시장이 점차 과열됐고 시차를 두고 주가에 부담으로 작용했다”며 “대표적인 케이스가 닷컴버블”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하반기 대규모 기업공개가 증시 상승을 늦추는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지만 경기 회복의 모멘텀을 해칠 정도의 변수는 아니라는 것이 중론이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 연구원은 “올 하반기 경기 회복 모멘텀은 둔화되겠지만 위험자산 가격에 대한 비중 확대 전략이 유효하다”면서도 “하반기 대규모 기업공개에 따른 수급 부담이 업사이드를 제한할 전망”이라고 밝혔다.
▶증시 상승 선결 조건 ‘실적 개선·인플레 완화’
버블 우려에도 하반기 경기 회복 기대감과 기업 실적 개선에 대한 모멘텀은 살아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올해 상반기 현재 전 세계 각국에서 코로나19 백신 공급이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고, 미국이 공격적인 부양 정책을 지속하며 증시는 가파른 랠리를 펼치고 있다. 백신 접종률 상승에 따른 경제 정상화 기대감이 한껏 높아지면서 이제 시장 참가자들은 오히려 물가 상승과 미국 중앙은행의 테이퍼링 등 정책 변화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다만 인플레이션 우려가 하반기 주가 조정의 빌미는 될 수 있어도 악재가 될 가능성은 낮다는 의견도 있다. 기업들의 실적개선 속도도 가팔라지며 이익 추정치가 지수를 지지할 것이라는 평가다.
김상호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하반기 기업이익 추정치의 추가 상향 여력도 존재하고, 내년도 이익 개선은 주요국을 상회하고 있어 긍정적인 펀더멘털 환경도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증권사 하우스가 제시한 하반기 코스피 예상 밴드는 3000~3700선이다. 신한금융투자는 올해 하반기 코스피가 최대 3700포인트까지 오를 수 있다고 봤고 하나금융투자는 3650포인트를 상단으로 예상했다. 유진투자증권은 올해 하반기 코스피 상단을 3400포인트 전후로 추정했다.
가장 시장에 우호적인 평가를 내놓은 김상호 신한금융투자의 연구원은 “하반기 순환적 부침에 대응하는 유연함이 필요하겠으나 결국 경기 회복에 따른 이익 추가개선과 수익성 회복, 배당성향 개선 등이 코스피 밸류에이션 디레이팅(저평가)을 제한할 것”이라면서 “하반기 코스피 밴드는 3000~3700포인트로 제시한다”고 말했다.
반면 현재 코스피가 올해 실적 개선 기대를 상당 부분 반영했다는 목소리도 있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주가지수상으로 추가적인 업사이드가 드라마틱하게 높지는 않다”면서 “실적의 추가 상향 여지를 감안한 올해 적정 코스피는 3282~ 3382포인트로 계산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