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40대 중반인 남자는 지난 겨울부터 퇴근길에 꼭 소시지 한 팩을 사들고 귀가한다. 와이프나 두 아들을 위한 게 아니다. 초인종 소리에 득달같이 뛰어와 반기는 ‘짱아’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말, 짱아의 아빠가 됐다… 여자는 30대 후반의 골드미스다. 나 홀로 가구의 전형인 그녀의 아침은 여느 맞벌이 여성과 다르지 않다. 함께 산 지 2년이 다 된 ‘토토’를 놀이방에 데려다주고 출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짱아와 토토는 누구일까. 그와 그녀가 매일 안고 보듬는 반려견 이름이다.
그는 말한다. “한 개그 프로그램에서 그러더군요.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뛰어나와 반기는 게 개뿐이라고. 그땐 그냥 웃어 넘겼는데, 지금은 현실이 됐습니다. 그런데 이놈을 집에 들이고선 밖에서 아등바등하다 집에 돌아왔을 때 휑했던 기운이 사라졌어요. 어느 순간 휴대폰을 보니 짱아 사진이 아들 사진보다 많더군요.”
그녀는 말한다. “2년 전에 친구 부탁으로 몇 달 맡아 키웠는데, 그냥 정이 들었어요. 그 뒤로 함께 지내는데, 제가 혼자 살다보니 평일엔 놀아줄 시간이 없잖아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토토 혼자 집을 지켜야 하는데, 알아보니 강아지 놀이방이 있더라고요. 두어 달 전부터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놀이방에 보냅니다.”
비단 그와 그녀만의 일상이 아니다. 2016년 대한민국은 반려동물 사육 인구 1000만 명 시대를 맞았다. 2015년 총인구수가 약 5150만 명(행정자치부의 주민등록 전산망 기준)이었으니 5명 중 1명이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는 셈이다. 농협경제연구소가 발표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전체 10가구 중 2가구에 해당된다. 그럼 어떤 동물을 반려동물(Companion Animal·伴侶動物)이라 부를까. 국어사전에 오른 ‘반려(伴侶)’란 ‘짝이 되는 동무’란 뜻이다. ‘동물이나 물품 따위를 좋아해 가까이 두고 귀여워하거나 즐김’이란 뜻의 ‘애완(愛玩)’과는 그 깊이가 다르다.
지난해 말 농림축산검역본부가 발표한 ‘2015 동물보호에 대한 국민의식 결과보고’를 보면 가장 많이 사육되는 반려동물은 ‘개’였다. 무려 76.0%의 압도적인 비율로 수위를 차지했다. 그 뒤를 ‘고양이’(12.4%)가 멀찍이서 뒤쫓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에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는 ‘펫팸족’(Pet+Family)도 등장했다. 그야말로 인생의 동반자요, 또 하나의 가족이다. 여의도 방송가의 한 관계자는 “펫팸족을 겨냥한 예능프로그램이 하나둘 늘고 있다”며 “최근 예능 트렌드는 쿡방 아니면 펫방”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 Part Ⅰ | 반려동물 붐업, 푹 빠진 1000만 명
한국 여자골프계의 여제라 불리는 박인비가 지난해 8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대회에 불참을 알렸다. 5주 연속으로 미국과 영국, 한국을 오가는 강행군에 휴식이 필요하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였다. 하지만 대회가 치러진 후 밝혀진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반려견 ‘세미’가 위독했기 때문이다. 코커스페니얼과 진돗개의 믹스견인 세미는 박인비가 초등학교 시절 골프대회에서 우승한 뒤 아버지로부터 선물 받은 보배였다. 무려 17년 동안 함께한 가족이었다. 투어생활을 시작하고선 부모님이 키웠지만 드라이버 헤드커버를 세미의 형상으로 바꿀 만큼 정이 두터웠다. 당시 박인비는 “세미는 강아지가 아니라 가족”이라며 “쉬는 동안 세미와 뒹굴뒹굴하며 함께 시간을 보내겠다”고 말했다.
최근 애견의류는 10만원대 이상 고가브랜드가 주목받고 있다. 최근엔 ‘김서룡 옴므’ ‘스튜디오K’ ‘S=YZ’ ‘HR’ 등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에서 한정판 애견의류를 내놓기도 했다.
서울 강남에서 개인 사업을 하는 양현주 씨는 최근 함께 지내는 포메라니아 ‘똘민이’의 1살 생일을 맞았다. 그녀는 반려견의 생일을 맞아 주변 지인들과 동물병원에 작은 선물을 돌렸다. 이른바 돌 선물이었다. 양씨는 “10여 년 전에 반려견을 키우다 사별했다”며 “오랜만에 분양받은 냥냥이를 위해 나름 생일 축하 이벤트를 생각했다”고 전했다.
서울 서대문구의 한 원룸에서 반려견 ‘루나’와 함께 사는 장윤수 씨는 주변 지인들에게 유명한 ‘펫푸어(Pet Poor)’다. 30대 초반인 그의 월급은 약 200만원. 그중 매달 15만~20만원가량을 루나를 위해 지출한다. 사료와 간식, 옷과 목줄 등 액세서리가 주된 내역이다. 감기나 눈병 때문에 동물병원에라도 가는 달이면 지출이 훨씬 늘어난다. 장씨는 “혼자가 아니라 함께 있다는 든든함이 가장 큰 장점”이라며 “좀 더 작은 원룸으로 옮기는 한이 있어도 루나에겐 부족함 없이 채워주고 싶다”고 말했다.
경기도 분당에 살고 있는 프리랜서 이윤수 씨는 일주일에 두 번 자가용을 이용해 서울 강남으로 출근하며 반려견 ‘에이미’와 함께 차에 오른다. 근무시간인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에이미는 회사 근처 강아지 놀이방에서 지낸다. 비용은 1시간에 6000원(중형견).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운영되는 놀이방은 종일 이용할 땐 비용이 4만5000원이다. 이씨는 “만만한 금액은 아니지만 놀이방에서 여러 다른 견들과 지내면서 사회성도 키우고 예절도 배우는 것 같다”며 “아직 아이는 없지만 내 아이라고 생각하면 못할 것도 없는 금액”이라고 전했다.
이렇듯 반려동물을 키우는 이들의 변화된 일상에 대해 박상우 한국애견연맹총재는 “무엇보다 가족구조의 변화가 또 하나의 가족을 낳았다”고 말한다.
“이제는 3~4인 가구보다, 1인 혹은 2인 가구수가 더 많아졌습니다. 출산율도 OECD 최저를 기록하고 있어요. 애완동물은 사람과 생활하는 동물이지만 반려동물은 사람과 정서를 교류하는 가족입니다. 우리나라에선 2007년 동물보호법이 개정된 이후 반려동물이란 단어가 공식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는데, 더 이상 사람의 ‘아래’가 아니라 바로 ‘옆’에 함께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결국 가족이 줄어든 그 자리를 반려견이 대체하고 있다고 봅니다. 항상 변함없는 애정을 주는 애견을 옆에 두고 가족처럼 지내는 것이지요.”
▶불황이 무슨 말? 반려동물 시장
이러한 분위기에 시장도 반응하고 있다. 경기침체가 주된 화두인 시대에 반려동물 시장의 성장이 도드라진다. 업계에 따르면 2010년 1조원이던 국내 반려동물 시장의 규모는 매년 두 자릿수 이상 높은 성장세를 거듭해 지난해 1조8000억원까지 늘었다. 2020년에는 약 220% 성장한 5조8100억원대가 예상된다. 규모만 놓고 보면 2조7000억원대의 영유아 사교육 시장, 2조2000억원대의 이러닝 시장 등과 비교해도 결코 작지 않다.
업계 관계자들은 “2000년대 들어 1인 가구와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증가해 시장 규모가 성장했다”고 입을 모은다. 2014년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애완동물 사육에 가구당 지출한 월평균 비용이 사료와 간식비 5만4793원, 용품구입비 3만5528원 등 총 13만5632원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이처럼 사육비용이 높아지면서 이를 겨냥한 새로운 시장도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한국애견연맹의 한 관계자는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건 어린 아이를 키우는 것만큼이나 사랑이 필요하고 손이 많이 가는 일인데, 사육에 불편한 사항들을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시장이 등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우선 눈에 띄는 분야는 의료서비스다. 반려동물 전문 진료시장이 커지면서 동물병원도 전문화·대형화되는 추세다. 실제로 평일 오후에 찾은 서울 청담동의 이리온 동물병원은 규모만 작을 뿐 일반종합병원과 다를 게 없었다. 하루 평균 50여 명, 월평균 1500여 명이 찾는다. X레이,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 등 영상장비는 물론이고 수술실과 집중치료실, 재활치료실까지 갖췄다. 그 외에 애견 미용실·놀이방·카페·호텔 등을 갖춰 반려동물에 관한 원스톱 서비스가 가능했다. 문재봉 대표원장은 “동물병원의 진료는 크게 예방진료와 질병치료로 나뉜다”며 “예방진료는 예방접종, 스케일링, 건강검진 등 사람과 비슷하게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전문화되고 있는 의료서비스의 비용에 대한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국내에서도 반려동물 의료보험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 삼성화재에서 제공하는 ‘파밀리아리스 애견의료보험2’는 반려견의 질병과 상해와 관련한 비용에 대해 자기 부담금을 제외한 금액의 70%를 보상한다. 반려견으로 인해 발생한 배상책임 손해에 대해 자기부담금을 제외한 금액을 보험금으로 지급한다. 롯데손해보험의 ‘롯데마이펫보험’은 개와 고양이가 대상이며 수술, 입원, 통원 치료비를 보장한다. 수술은 1회당 150만원, 입원 1일당 10만원 등 치료비 한도와 수술 2회, 입원 22일의 횟수 한도를 두고 있다.
반려동물의 외로움을 덜어주기 위한 서비스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1~2인 가구가 늘면서 반려동물과 함께하지 못하는 시간에 대한 관리와 그 수요를 노린 것이다. 반려동물을 위한 놀이방, 호텔, 전문 TV채널, CCTV 등 다양한 시장이 여기에 해당된다. 반려동물 호텔의 경우 1박에 3~4만원, 룸 형식인 경우엔 15만원대 등 시설이 다양하다. 여름철 휴가 시즌엔 방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란 소리도 들린다. 관련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호텔이라고 해서 반려동물을 그냥 부려놓는 게 아니라 철저히 관리해준다”며 “웹캠을 통해 주인이 24시간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반려동물을 관찰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서비스는 강아지 놀이방도 마찬가지다. 최근엔 반려동물을 위한 TV도 화제다. KT가 송출하고 있는 ‘도그TV’ 서비스가 주인공이다. 반려동물 선진국인 미국의 경우 100만 시청견이 확보되기도 했다. 이 외에도 반려동물의 건강관리 혹은 분실 우려 등에 대한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 GPS칩이 내장된 센서를 장착해 비만도 체크를 통한 운동량 조사와 일정 영역 이탈 시 바로 신고해주는 센서, 반려동물과 놀아줄 수 있는 로봇 등이 속속 개발되고 있다.
반려견 관련용품. 전용 물(3500원), 전용 우유(5000원), 수제간식(8000~1만원대) 등 종류가 다양하다. 수입제품인 밥그릇은 9만원이다.
▶사료시장은 고급화가 대세
반려동물 사육에 매월 지속적인 비용이 지출되는 사료시장은 다국적 기업이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전 세계 동물 사료 시장의 69%를 점유하고 있는 기업은 마스(Mars), 네슬레(Nestle) 등이며 이들을 포함한 상위 5개 기업이 전체 시장의 약 85%를 차지하고 있다. 국내시장도 마찬가지. 이들 기업은 국내에도 직·간접적으로 진출해 70% 이상의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 주로 수익성이 높은 고급 사료시장이 주 무대다. 국내 기업들 역시 반려동물 시장의 성장성을 인식하고 사료의 고급화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CJ제일제당(오프레시, 오네이처), 동원F&B(뉴트리플랜), 롯데네슬레코리아(퓨리나), 사조산업(사조 로하이 캣푸드), 이마트(엠엠도그), 동아원 관계사 대산물산 ANF(제품 수입) 등이 유기농, 고급 사료를 판매하고 있다.
영국 버밍엄이서 열린 세계명견경연대회 ‘크러프츠(Crufts) 2016’행사장에 마련된 삼성전자 부스. 삼성은 1993년부터 24년간 이 대회를 후원하고 있다.
▶지자체도 반려동물 사업 스타트
올 초에는 지방자치단체들이 공공 장묘시설 등 반려동물 사업 계획을 연이어 발표하기도 했다. 정부도 반려동물 관련 TF(테스크포스)팀을 꾸리겠다고 밝혔다. 우선 경남 창원시가 반려동물 인구 1000만 시대에 발맞춰 죽은 반려동물을 친환경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반려동물 공공 장묘시설’을 건립하겠다고 발표했다. 지자체 차원의 첫 추진 사례여서 주목된다. 창원시설공단 관계자는 “반려동물 공공 장묘시설을 통해 환경 문제와 동물 생명 윤리 인식도 제고할 수 있도록 다양한 시민 의견을 수렴해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경기도와 대전시가 반려동물 테마파크를, 강원도 춘천시가 애견체험박물관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초 수원시에 애견운동장을 건립한 경기도는 여주시에 12만평 규모의 반려동물 테마파크를 건립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9월 ‘2015 대전 반려동물 대축제’를 개최한 대전시는 현재 반려동물 테마파크(가칭 플랜더스 파크)와 관련해 연구 용역을 실시하고 입지를 재검토하고 있다. 테마파크엔 추모공원, 펫 박물관, 애견호텔, 애견행동교정센터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춘천시는 지역 중견기업인 더존IT그룹 계열사인 ‘동물과 사람’이 남산면 광판리 10만m²의 터에 애견 체험 박물관을 조성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박물관은 올 상반기 착공해 내년 하반기 완공될 예정이다. 동물과 사람이 250억원을 투입해 건립하는 애견 체험 박물관에는 전 세계 주요 애완견을 볼 수 있는 실내외 전시관을 비롯해 체험관, 애견호텔, 견사, 훈련교육관, 상품 매장, 편의시설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동물과 사람은 박물관 건립과 연계해 한국애견연맹과 공동으로 지난 4월 10일 춘천 송암스포츠타운에서 제2회 강원펫페스티벌 및 세계애견연맹(FCI) 국제도그쇼를 개최했다.
이미 서울에는 서울어린이대공원과 상암월드컵공원에 ‘반려견 놀이터’가 운영되고 있다. 최근엔 보라매공원에도 문을 열었다.
큰손은 역시 40·50·60대
서울 강남지역의 한 백화점, 반려동물 관련 용품 숍에 고가의 외국 명품 브랜드가 눈에 띈다. 업계 관계자는 “3000만원짜리 개집도 있다”고 귀띔이다. 20만원대가 주를 이뤘던 이 백화점의 매대엔 최근 고급화가 진행 중이다. 그만큼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는 방증이다. 실제로 갤러리아백화점의 애견전문매장 ‘펫 부티크’는 문을 연 이후 매년 평균 20%씩 매출이 성장하고 있다. 특히 지난 1월 1일부터 3월 23일까지 15만원 이상의 고가제품 판매가 전년 동기 대비 50%나 늘었다. 이마트가 운영하는 애견전문매장 ‘몰리스 펫샵’도 지난 1월 1일부터 3월 23일까지 10만원 이상 고가제품의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46.2%나 증가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온라인 쇼핑몰에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40~60대 고객들의 클릭수가 눈에 띄게 늘었다. ‘큰손’이란 말이 나오는 이유다. 올 1분기에 G마켓의 반려동물용품 판매율은 전년 동기 대비 6% 증가했다. 이 중 40대 소비자들의 구매율은 20%나 늘었다. 50대는 14%, 60대 이상은 전년 동기 대비 36%나 껑충 뛰어 올랐다. 반면 20대 소비자의 구매율은 5% 감소했다. 40대의 경우 같은 기간 구매한 연령층 중 32%의 비중을 차지했다. 이러한 현상은 옥션도 마찬가지. 40대 고객의 판매율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2% 증가했다. 50대는 31%, 60대는 33%나 올랐다. 40대 이상 소비자들은 구매 비중도 높았다. 40대는 39%, 50대는 19%, 60대는 6%의 구매비중을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