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리스크관리 전문가 권경혁 써미트투자자문 사장 모든 투자자산은 위험 내포 기대수익률로 판단해야
입력 : 2013.07.29 15:34:10
“채권은 안전자산, 주식은 위험자산이란 구분은 잘못됐다. ELS 역시 주가가 좋을 땐 안전자산처럼 여겨졌지만 주가가 하락하자 지금은 하락 밴드를 터치(손실 확정)할 정도로 위험자산이 됐다. 마찬가지로 상품별로 안전자산 위험자산을 나눈 것은 잘못이다.”
국내 최고의 리스크관리 전문가인 권경혁 써미트투자자문 사장은 지금과 같은 저금리 국면에선 채권이 오히려 위험자산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채권은 기대수익률이 낮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작은 자산으로 간주됐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선 채권의 위험이 더 높을 수도 있다. 지금과 같은 저금리 시대엔 특히 그렇다.”
고금리 국면에선 금리가 조금 변하더라도 변동률이 높지 않지만 저금리 국면에선 분모가 작아 금리가 조금만 변하더라도 변동률이 훨씬 크게 나타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궁극적으로 투자 상품 중엔 위험하지 않은 게 없다. 한때 부동산이 안전자산이었으나 지금은 주식보다 더 위험하다. 이런 점을 볼 때 위험자산이냐 안전자산이냐는 수익률의 기대치를 보고 결정해야 한다.”
권 사장은 채권의 위험이 컸던 경우들을 사례로 들었다.
“1990년엔 하이일드 채권에 특화한 투자회사였던 드렉셀 번햄이 파산하면서 하이일드 채권 시장이 망가졌다. 2008년 금융위기 때는 미국 국채 역시 일시적으로 급락했고 신용도가 높았던 모기지담보부증권은 물론이고 단기로 운용되는 MMF마저 순자산이 장부가를 밑도는 위기상황이 발생해 미국 정부가 구제에 나섰다. 2010년 유럽위기 때는 독일과 스위스 등을 제외한 유럽 대부분의 국채가 폭락해 투자자들이 큰 손실을 입었다.”
그는 최근 들어 국채도 변동폭이 매우 커졌고 안전자산(Risk Free) 개념이 망가졌다고 했다. “국채를 안전자산으로 본 것은 기본적으로 국가는 징세권이 있기 때문에 최악의 경우 세금을 더 거둬서 부채를 상환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럽위기가 닥치자 그리스 국채는 정크본드 수준으로 망가졌다. 트리셰 전 ECB 총재는 그리스에 1차 구제금융을 지원할 때 개인투자자들은 국채는 위험하지 않다는 믿음을 갖고 투자한 만큼 지급보증을 해야 한다고 버텼다. 그러나 드라기 현 ECB 총재는 개인투자자들에게도 손실을 분담시켰다.”
그렇다면 글로벌 위기가 부각될 때마다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미국이나 일본의 국채는 어떨까.
“미국이나 일본은 국가부채가 너무 크다. 미국의 경우 부외부채가 상당해 실제 부채 수준은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훨씬 많다. 게다가 두 나라 모두 부채를 줄이거나 이자를 갚기 위해 세율을 올리면 경제가 망가질 수도 있는 상황에 처해 있다. 과거의 투자이론으로는 통하지 않는 부분이다.”
다만 미국의 경우 기축통화국의 이점을 살려 필요 시 돈을 찍어낼 수 있는 데다 투자자가 전 세계에 퍼져 있어 국가 부도 위험은 크지 않다고 했다.
“메릴린치에서 근무할 때 투자자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했다. 필요할 경우 발행한 채권을 순식간에 소화할 수 있는 데다 어느 한 투자자가 팔더라도 다른 투자자가 사기 때문에 가격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는 국채의 대부분을 자국 금융기관과 개인들이 보유하고 있는 만큼 외국인들의 투매에 따른 위험은 적다. 독일을 비롯한 외국 금융기관들의 투매로 위기를 맞았던 유럽 주변국들이 이런 점에서 일본을 매우 부러워했다. 그러나 권 사장은 이제는 그 이점이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은 금리가 조금만 올라가면 금융기관들이 부실해지고 정부가 부채의 이자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게다가 고령화가 진전돼 돈을 풀어도 경기부양 효과가 쉽게 나타나지 않는다.”
최악의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렇지만 권 사장은 극단적인 상황을 예상해 미리 지나친 비관론에 빠져들지는 말라고 경계했다. 유럽 위기가 끝없는 수렁으로 빠져들 것 같았으나 시장의 요구에 따라 정치인들이 해법을 찾아냈듯 일본 역시 결국은 해법을 찾게 될 것이란 점에서다. 다만 과도하게 채권에 집중하고 있는 국내 금융기관들은 포트폴리오를 합리적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보험사의 경우 듀레이션을 맞추느라(보험의 만기와 투자의 만기를 일치시킴) 대부분의 자산을 채권에 투자하고 있고 주식비중이 너무 낮기 때문에 금리가 급변할 때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
채권이나 주식 부동산 상품 등의 위험 정도가 수시로 바뀌고 있는 만큼 거기에 맞춰 자산배분을 효과적으로 해야 수익률을 높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