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에서 주목받는 거물들이 잇달아 주식을 매도하는 모습이 관측된다. 이같은 움직임이 시장에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지에 관심이 몰린다. S&P 500 지수는 올해 상반기 동안 21% 상승하며 1997년 이래 가장 큰 폭의 상승을 기록했다. 일각에서는 시장의 과열에 대한 우려와 함께 신중한 투자 전략을 시사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반대로 이건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방편의 하나일 뿐 월가가 증시 하락에 베팅한 것으로 오해하면 안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인사이더센티먼트닷컴에 따르면 2024년 7월 미국 기업 내부자들의 순매수 비율은 15.7%로 1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9월에도 비율은 여전히 21.9%로 10년 평균인 26.3%를 크게 밑돌았다. 기업 내부자들은 일반적으로 회사의 미래 수익성이나 시장의 방향성을 예측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같은 움직임은 경제 및 주식 시장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 대한 경계심을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JP모건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 역시 미국 경제에 대한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다이먼 회장은 인플레이션 압력이 주식시장에 미칠 장기적인 영향을 우려하며, 경제 전망에 대한 불확실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제프 베이조스와 마크 저커버그 같은 세계적인 거물들도 자사주를 대거 매도하며 이러한 분위기에 일조하고 있다.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CEO는 최근 약 103억 달러어치의 자사주를 매각했다.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 CEO 역시 21억달러 규모의 자사주를 처분했다.
특히 버크셔 해서웨이를 이끄는 워런 버핏의 움직임은 시장 파장이 크다는 평가다. 버크셔 해서웨이는 뱅크오브아메리카(BofA)의 지분율을 10% 아래로 줄였다. 버크셔가 BofA 주식을 지속적으로 매도한 결과다. 15일 연속으로 매도한 후 버크셔의 BofA 지분은 9.987%로 감소했다. 이로 인해 버크셔는 더 이상 BofA 거래 내용을 즉시 보고할 의무가 없어졌다.
여기서 버크셔가 BofA의 지분을 추가로 줄일 가능성에 대해 시장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오는 11월 중순에 공개될 예정인 13F 보고서에는 9월 말까지의 데이터가 반영된다. 버크셔의 최근 지분 조정 내용은 내년 2월까지 기다려야 정확히 확인할 수 있다.
버크셔는 BofA 주식을 7월 중순 이후 꾸준히 매도했다. 현재까지 약 105억달러 상당의 주식을 처분했다.
여기서 생긴 현금을 합쳐 버크셔는 현재 3000억달러에 가까운 현금을 보유한 것으로 분석된다. 버크셔 역사상 최대 현금 보유량이다. 일각에서는 버핏이 현재 시장이 과대평가됐다고 판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한다. 투자자들 사이에서 신중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는 신호로 해석되는 이유다.
투자자들 사이에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또 다른 인물은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의 저자 로버트 기요사키다. 기요사키는 최근 모든 자산군이 폭락할 가능성을 경고하며, 연준과 재무부가 주도한 통화정책이 결국 큰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기요사키는 자신의 X(옛 트위터)를 통해 “기술 차트는 역사상 가장 큰 시장 붕괴를 시사하고 있다”며 “부동산, 주식, 채권, 금, 은, 비트코인 가격이 모두 폭락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그는 “내년 말부터 시작될 강세장 사이클은 금, 은, 비트코인 투자자들이 모두 기다려온 이벤트가 될 것이다. 투자자들은 그동안 인내한 만큼 보상을 받게 될 것”이라고 장기 비전도 밝혔다. 다음 강세장 사이클에서는 금,은, 비트코인이 다시 한번 사상 최고치를 경신할 것이라는 얘기다. 그는 “금은 온스 당 1만5000달러, 은은 온스당 110달러, 비트코인은 개당 1000만달러를 돌파할 것”이라고 세부 수치도 밝혔다. 다가올 폭락장은 자산을 저렴한 가격에 매수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얘기다.
엄청난 수준으로 현금을 쌓고 있는 버핏 역시 특정 주식을 놓고서는 과감하게 매수 콜을 외치고 있다. 최근 버크셔 해서웨이는 위성 라디오 회사 시리우스XM의 지분을 추가로 매입했다. 9월 9일부터 11일 사이에 시리우스XM 홀딩스 주식 360만 주를 약 8700만 달러에 매입했다. 이에 따라 버크셔의 시리우스XM 보유 지분은 32%로 증가했다. 버크셔가 장기적으로 시리우스XM에 대한 관심을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버크셔는 2016년 시리우스XM의 모회사인 리버티미디어의 주식을 처음 매수했다. 이후 2023년 리버티미디어가 시리우스XM 지분을 통합하면서 버크셔는 올해 초부터 리버티시리우스XM에 대한 투자를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달 초에 이러한 통합이 완료되자 버크셔는 투자를 더욱 확대했다.
버크셔는 일본 엔화 채권 발행을 통해 일본 주식시장에 대한 관심도 이어가고 있다. 버크셔는 2024년 4월에 이어 최근 2조 5000억달러 규모 엔화 채권을 추가로 발행했다. 이는 2019년 이후 가장 큰 규모로 평가된다. 일본 시장에서 보이는 버크셔 행보는 그들의 장기적인 일본 주식 투자 확대 전략을 반영한 것이다. 버핏은 일본 종합상사 5곳(미쓰비시, 미쓰이, 이토추, 마루베니, 스미토모)에 대한 지분을 꾸준히 확대해왔다. 일각에서는 일본의 주요 은행 및 보험사로도 투자 범위를 넓힐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필립증권 재팬의 마스자와 다케히코는 “버크셔의 엔화 채권 발행은 일본 주식의 상승에 대한 기대감을 반영한 것”이라며 “가치주 중심의 투자 기회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미국 위주의 투자를 하는 버핏이 미국은행 지분도 줄이고 있는데, 일본 은행에 추가 투자를 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내놓는다.
월가 투자은행도 미국 주식에 대한 긍정적인 의견을 내놓고 있다. 투자은행 UBS는 내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 전망치를 기존 6000에서 6400으로 올렸다. UBS의 조나단 골럽 분석가는 경제 여건이 우호적이고 이것이 증시에 강한 상승세를 불러올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는 UBS 내부 자료를 인용하며 내년 미국의 명목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3.7%, 실질 GDP 성장률은 1.6%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의 경제가 내년에도 확장세를 유지할 것으로 보여 경제에 충격이 가해질 공산은 높지 않다는 분석이다. 또 그는 “금리 인하는 주식 시장의 밸류에이션을 올릴 것”이라고도 설명했다. 그는 “경기 침체가 아닌 상황에서 연준이 금리를 인하하면 밸류에이션은 높아진다”고 덧붙였다. 골드만삭스도 지난해 말 이후 네 차례나 S&P500지수를 상향 조정한 바 있다.
최근 블룸버그와 인터뷰한 ‘월가 구루’ 스탠리 드러켄밀러의 생각에도 관심이 쏠린다. 그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엔비디아 주식을 모두 팔았다. 나는 투자할 때 많은 실수를 저지르는데 그 중 하나는 엔비디아 주식을 모두 매도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엔비디아가 주당 850~900달러일 때 주식을 다 팔았는데 지금 주가는 주당 1300달러가 넘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드러켄밀러는 “나는 장기적으로 AI의 발전을 믿으며 엔비디아가 훌륭한 회사라고 생각한다. 엔비디아 주가가 내려가면 주식을 다시 살 것”이라고 계획을 전했다.
그는 지난 9월 한번에 금리 50bp를 내린 연준의 결정이 실수였다는 입장이다. 드러켄밀러는 “만약 연준의 판단이 틀려서 다시 인플레이션이 발발한다면 또 다시 통화정책 방향을 긴축으로 되돌려야 할 것”이라며 ‘지금 주식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고 암호화폐도 미친 듯 오르고 있다. 이는 결국 시장이 인플레를 예상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실제는 그는 포트폴리오의 15~20%가량을 미국채 숏 포지션에 할당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연준이 금리를 50bp내린 날 나는 그게 실수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채권 숏포지션을 잡았다”며 “우리는 여전히 그 포지션을 가지고 있다”고 전했다. 또 그는 “단기적으로 시장이 어디로 튈지는 알 수 없지만 내년에 인플레이션이 다시 가속화된다면 수익률을 극대화 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내가 틀리고 연준의 판단이 맞더라도 손실은 일부분에 그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지금 미국의 GDP를 보면 10년물 금리는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5.5% 부근에서 거래되어야 한다고 본다. 따라서 나에게 최적의 판단은 채권을 매도하는 것이었다”고 덧붙였다.
[홍장원 뉴욕특파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70호 (2024년 1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