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시장에서 가장 경계하는 것이 현 경제 흐름에서 경기 침체의 징후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이번 긴축 종말 시대의 연착륙을 유도하기 위해 넘어야 할 첫 번째 허들인 셈인데, ‘심리’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한 것을 감안할 때 세계 각국의 각종 경제 지표에 촉각이 곤두선 이유이기도 하다.
세계 경제 흐름에서 그래도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 미국의 여러 경제 지표들이다. 기준금리 인하 이후 나오는 여러 지표들은 일단 다소 혼조세다. 미국의 소비 심리를 가늠할 수 있는 9월 소매판매 지수를 보면 인플레이션 압력이 완화됐다고 보는 시각이 크다.
미 상무부는 9월 소매판매가 7144억달러로 전월 대비 0.4% 증가했다고 밝혔는데, 월가는 고금리 장기화와 임금 증가세 둔화로 민간 소비가 둔화할 것이라는 전망을 해왔다. 하지만 9월 소매판매 지수는 다우존스 예상치 0.3% 증가를 웃돌았다. 0.1%였던 지난달 증가폭을 크게 웃돈 수치다. 이는 미국의 소비 심리가 예상보다 강하고, 이는 인플레이션이 어느 정도 완화됐다는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곧 있을 블랙프라이데이 시즌과 맞물리면 미국 경제의 큰 축인 소비 흐름은 당분간 강하게 나타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고물가가 미국의 소비심리를 더 이상 옥죄지 않는단 의미다. 미국 소매판매는 미국 경제의 3분의 2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
하지만 9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2.4%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시장 전망치 2.3%에 비해 소폭 높은 수치다.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CPI의 경우 전년 대비 3.3% 올라 역시 전망치인 3.2%를 소폭 웃돌았다. 이같은 지표는 인플레이션 압력이 여전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고용 상태를 보여주는 신규실업수당 청구 건수도 그 수치가 일관적이지 않다. 10월 첫째 주는 시장 전망치인 23만 건보다 높은 25만 8000건이었지만, 둘째 주(10월 6~12일)에는 전주 대비 1만 9000건 줄어든 24만 1000건으로 나타났다. 아직 미국 경제가 확실하게 경기둔화를 떨쳐낸 채 움직이고 있다고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상황이다.
2년 넘게 역전됐던 미국의 장·단기 국채 금리가 ‘빅컷’ 이후 정상 궤도로 돌아온 것에 대한 해석도 엇갈린다. 역사적으로 장단기 금리 역전이 해소된 후 경기 침체가 발생한 적이 많았다는 이유에서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1962년 이후 미국 장단기 국채 금리가 역전된 후 해소된 사례는 총 15번인데, 이 중 9번이 금리 역전이 해소된 후 1년 이내에 침체가 나타났다.
하지만 미 경기에 대한 인식이 나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에는 다를 수 있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크리스티나 후퍼 인베스코 수석 글로벌 시장 전략가는 “장단기 금리차의 의미를 무시할 순 없지만 이로 인해 경기침체가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를 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하이일드 채권 스프레드의 경우 2007년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이 지표가 높을수록 경기는 좋지 않다는 신호다. 유럽은 미국보다 상황이 좋지 않다. 만성적인 경기침체 우려에서 좀체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인플레이션 압력은 떨쳐냈지만, 경제가 활력을 띠지 못하고 있다. 9월 유로존 구매관리자지수(PMI)는 49.6으로 전달(51)에 비해 하락했는데, PMI가 50을 밑돌면 경기 위축을 의미한다. 독일 재무부는 최근 올해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0.2%로 하향했다. 전망치대로라면 독일 경제는 2년 연속 역성장이다.
이에 미국보다 일찍 긴축정책을 전환한 유럽중앙은행(ECB)은 10월 13년 만에 처음으로 두 달 연속 정책 금리를 인하했다. 경기 위축 우려가 커지면서 금리인하에 속도를 붙이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유로존의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통화 당국의 목표치(2%)보다 낮은 1.7%를 기록해, 인플레이션 둔화 움직임이 확실해진 것이 금리인하 운용의 폭을 넓혀주고 있다.
경기침체와 관련해 가장 걱정스런 국가는 중국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살아나지 못하는 중국 경제는 해결 과제가 한가득이지만,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전 세계의 수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중국이기에 중국 경제 침체는 세계 경제의 시름이 되고 있다. 특히 시한폭탄 같은 부동산 문제가 실제 터지기라도 한다면 지구촌 전체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벌써부터 금리인하 실기론이 나온다. 조금 더 빨리 금리인하를 해야 되는 것 아니었냐는 것인데,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동향과 막대한 가계부채 그리고 부동산 시장 등에 미칠 파장 등을 고려해야 하는 당국 입장에서는 그 시기 결정이 쉽지 않은 문제였음은 분명해 보인다. 이 같은 글로벌 분위기를 고려할 때, 시장은 추가 금리 인하폭에 시선을 쏟고 있다. 이제 막 시작된 금리 인하 흐름이 얼마만큼의 폭으로, 언제까지 진행될 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일단 세계 긴축 흐름을 사실상 정하는 미국의 분위기는 점진적인 통상수준(0.25%)의 추가 인하는 필요하다고 본다. 다만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9월 빅컷과 같은 과감한 선제적 조치는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우리 통화 당국의 경우도 아직까지는 미국처럼 빅컷을 단행할 정도의 경기 침체 상황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유럽의 상황은 다소 다르다. 경기침체 징후가 뚜렷해 금리인하의 속도가 더 빨라질 수 있다는 시각이 커지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ECB가 오는 12월 통화정책회의 때 ‘빅컷’(0.5%포인트 금리인하)을 단행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번 긴축 종말 시대의 안착을 위해 또 중요한 것이 ‘고용 시장의 안정’이다. 각국 정책 당국의 기본적인 주요 목표이기도 한데, 현재 각국이 씨름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특히 최근 청년 실업률 문제가 꽤 심각하다. 이런 점에서 코로나 팬데믹 이후 산업의 패러다임 전환을 이끌고 있는 인공지능(AI), 전기차, 로봇, 우주산업 등의 분야의 역할이 계속 중요해질 전망이다. 이제 막 태동한 이들 산업들의 발전 가능성은 무한하지만, 이에 따른 인력은 부족한 상태다.
물론 ‘테크’ 중심의 이들 산업이 전방위적인 일자리를 파생시키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파이가 커지면 그 파생효과는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산업 초기임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버블’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이 부담이다. 테크산업에 쏠린 분위기가 과거 인터넷 버블이 터지기 직전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실제 전기차 산업의 경우 과잉 투자 논란과 수요 부진으로 일부 유망 업체까지 파산을 하고 있다. 배터리 불안 문제가 불거진 이후 전기차를 기피하는 현상은 확산되고 있다. 이를 두고 일시적 수요 둔화를 뜻하는 ‘캐즘’으로 보기도 하지만, 일각에서는 구조적 문제일 수도 있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전기차 전환에 진심이었던 유럽 자동차 업체들의 경우 100% 전기차만 생산하겠다는 약속을 뒤집은 곳도 있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내연기관 자동차가 사라지게 될 가능성이 높지만 그 시기가 길어진다면 관련 산업 전체가 힘들어질 수도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특히 자동차 산업의 경우 일자리 창출 분야가 많기 때문에 전기차로의 전환이 성공적이지 못하면 전체 고용 시장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AI 분야도 마찬가지다. 전기차 못지않게 화려하게 등장을 했지만 벌써 회의론이 심각하다. 막대한 투자에도 이렇다 할 수익성이 나오지 않는 것이 이유다. 사실 AI 용처도 딱히 눈에 띄지 않는다. 이러다보니 관련 업체들은 배(매출)보다 배꼽(비용)이 더 큰 상황에 직면해 있다.
영국 대형 투자은행 바클레이즈는 빅테크 기업들이 2026년까지 AI 모델 개발에 연간 600억달러를 지출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그에 따른 매출은 약 200억달러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혜성처럼 등장한 챗GPT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올해 약 6조원의 매출을 기록할 것으로 추정되는데, 비용은 2배에 달하는 12조원을 넘을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물론 엔비디아,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 기업들은 과도기적 현상이라며 버블론을 일축하며, 오히려 더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는 “기술 전환기에 특정 기술에 과소 투자하는 것이 과잉투자보다 더 큰 위험을 초래한다”고 했고, AI 석학인 얀 르쿤 뉴욕대 교수는 과잉 투자 논란에 대해 “10년 내 획기적 성과가 나온다면 낭비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인공지능 분야는 고용 시장과 역설적인 관계다. 인공지능이 인간 일자리를 대체할 수 있다는 견해가 여전히 설득력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리사 쿡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는 인공지능이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경제가 기술 변화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고용시장에 조정이 일어날 수 있다”면서 “이는 완전고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닷컴 버블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버블이 터지긴 했지만 결국에는 새로운 파생 일자리들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너무 비관적으로 볼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결국 선순환적 구조 속에 AI를 활용한 다양한 일자리들이 만들어지면 결국 고용시장에도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시장의 안착이 중요하단 얘기다.
아직은 미래 산업인 로봇, 우주 산업의 경우 초창기라 버블 논란과는 거리가 멀다. 다소 전문적인 분야여서 역시 광범위한 노동시장의 일자리와 연계시키기에는 아직 이르다. 하지만 로봇과 우주시대가 본격 도래한다면, 이역시 지금까지 없었던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긴축 종말의 시대를 맞아 늘어날 수 있는 유동성을 활용해 산업 도약의 계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정학적 갈등도 긴축 종말 시대 안착과 관련해 무시 못할 변수다. 정치 안보 이슈지만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서둘러 해법을 찾아야 하지만 상황은 쉽지 않다.
특히 미·중 갈등을 비롯해 이스라엘이 벌이고 있는 중동 전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최근 진행되고 있는 지정학적 이슈들은 하나같이 ‘정도’가 심해지면 글로벌 경제에 타격을 줄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현재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만 봐도 당장 유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구촌 에너지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이뤄지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은 원유가 세계 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자원이라는 점에서 유가 불안은 간단치 않은 상황이다.
실제 이스라엘과 전면전도 불사하겠다는 이란이 글로벌 원유 운송로인 호르무즈해협을 봉쇄하겠다는 이야기만 나오면 유가는 심하게 요동친다. 최근 이스라엘이 자국의 침략을 주도했던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수장 야흐야 신와르 사살에 성공하면서 긴장감은 더 커지고 있다. 사실상 붕괴 상태에 있는 하마스를 대신해 역내 반 이스라엘 세력의 중심인 이란이 새로운 전선을 형성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도 이 참에 자국을 둘러싸고 있는 중동 안보 지형을 바꾸겠다는 전략을 취하고 있어 양측이 더 치열한 대결 구도를 형성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벌써 원유가격의 폭등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씨티은행은 중동 갈등이 계속 확대된다면 현재 배럴당 70달러대에 머물고 있는 원유가격이 내년 초까지 12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또 1년 넘게 진행되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간 전쟁도 만만찮은 세계 경제 불안 요소다. 이 전쟁은 사실상 미국·유럽과 러시아 간 대리전 양상 성격이 짙은데, 최근 북한이 이 전쟁에 파병을 했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러시아와 북한이 가까워졌다는 것은 동북아 및 미중러 등 글로벌 강대국 간 지정학적 관계에서 예기치 못한 변수이기 때문이다. 최근 양국의 관계는 단순히 친교 수준을 넘어 ‘혈맹’의 단계로까지 진입한 분위기다.
최근 북한이 갑자기 우리를 적대국으로 상정하며 관계 단절을 천명한 상황에서 자칫 남북 간 무력충돌이라도 벌어지면 이는 러시아의 한반도 문제 개입으로까지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심각한 사안이다. 만일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인접국인 중국과 우리의 동맹국인 미국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한반도가 미·중·러 간 파워게임이 벌어지는 각축장이 또다시 될 수도 있단 얘기다. 이 대목에서 중국-대만 간 갈등도 눈여겨보지 않을 수 없다. 이 문제는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중화민족의 통일이라는 중국이 숙원을 해결하려는 것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사실 이 문제의 주요 핵심은 미·중 간의 파워게임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반도체 등 첨단산업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대만은 미국에게 제 1의 전략적 요충지가 됐다.
일국양제 기치 아래 중국이 시중에 떠도는 시나리오대로 대만을 무력 침공한다면 미국은 자국의 이익이 침해를 받는다는 명분으로 적극적 개입을 할 수밖에 없다. 국제사회가 우려하는 것은 대만과 한반도가 동시에 불안해지는 상황이다. 현재 지구촌서 진행되고 있는 지정학적 갈등이 서로 연결돼 가고 있는 분위기가 ‘정말 예사롭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로버트 매닝 스팀슨센터 선임연구원은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에 기고한 글에서 “한반도의 전쟁 가능성이 1950년 이후로 가장 높다”면서 “중국이 미국이 아시아의 군사력을 이 지역에 투입하는 틈을 노려 북한이 한국을 공격할 수 있고, 중국과 북한이 동시에 대만과 한국을 각각 침공할 수도 있다는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중간 국지전이 벌어진다면 전 세계 GDP의 10%(약 10조 달러)가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문수인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70호 (2024년 1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