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은 금융시장에 언제나 큰 영향을 미치는 이벤트다. 특히 이번 대선은 트럼프 전 대통령과 신흥 후보 해리스 간의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며, 그 결과에 따라 금융시장의 방향성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금융시장은 정치적 불확실성을 극도로 경계하기 때문에, 대선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높은 변동성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 7월부터 8월까지 계속되고 있는 글로벌 증시 폭락과 반등 그리고 외환시장의 급격한 변동성 장세의 원인을 두고 전문가들은 ‘폴리코노미(Policonomy) 리스크’가 현실화 되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폴리코노미는 폴리틱스(Politics)와 경제를 뜻하는 이코노미(Economy)의 합성어로 정치에 경제가 휘둘리는 현상을 뜻하는데 최근 이러한 폴리코노미가 강해지면서 경제와 금융시장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는 것이다.
만약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다면, 그의 정책 기조에 따라 금융시장과 경제정책 전반에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해리스가 당선될 경우 기존 바이든 정부의 정책이 어느 정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러나 역시 불확실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한국 경제 역시 미국 대선의 결과에 따라 상당한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대선 이후 연준의 금리 정책 변화에 따라 원·달러 환율과 한국의 금리 정책이 변동될 가능성이 있다.
박석중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해리스는 상수, 트럼프는 변수로 접근해야 하지만 문제는 트럼프노믹스가 우려 일색으로 해석된다는 점”이라며 “트럼프 캠프의 극단적 자국 이기주의는 공격적 관세와 감세 정책으로 표출됐고 이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로도 귀결됐다. 그러나 정치적 수사에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하기보다 정책 조합이 갖는 함의를 읽어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최근 금융시장에서 ‘트럼프 트레이드’라는 용어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트럼프 트레이드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경제 정책에 따라 특정 산업군이 이익을 보거나 손실을 보는 현상을 예측해 투자시장에 반영되는 것을 의미한다. 주로 감세, 규제 완화, 보호무역 등 트럼프의 정책이 영향을 미치는 산업들과 금리 변동성을 활용하는 투자전략을 뜻한다.
트럼프의 대선 지지율에 따라 이러한 영향력은 시장에 더욱 크게 주목받기도 했다. 실제 트럼프의 출마 선언 이후 IT와 반도체, 빅테크 업종에서 차익실현이 나타나고 있으며, 은행, 헬스케어, 전통 에너지가 주도 테마로 부상하고 있다. 이는 트럼프의 정책이 해당 산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기대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전반적으로 트럼프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며, 규제 완화와 감세를 주도하고,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워 제조업 부흥과 보호무역을 추진하는 정책을 내놓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대선 후보직을 사퇴하고,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민주당 후보로 부상하면서 트럼프 트레이드는 속도 조절이 이루어지고 있다. 조정을 보였던 빅테크, 반도체 분야의 주식이 회복하고 헬스케어, 전통 에너지 분야의 기업들의 주가가 다시 조정을 보이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새로운 후보의 등장과 시장의 관심으로 인해 주식시장은 당분간 높은 변동성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박상현 iM투자증권 경제 연구원은 “지난 7월 트럼프 후보 피격 이후 증시 등 금융시장에 거세게 몰아친 트럼프 트레이드 현상도 일종의 폴리코노미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덧붙여 그는 “결과론적 얘기지만 해리스 부통령의 지지율 부상과 함께 수그러든 트럼프 트레이드는 증시와 채권시장에 혼란을 준 것”이라며 “문제는 미 대선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트럼프 트레이드 혹은 해리스 트레이드가 언제든지 빈발할 여지가 있어 금융시장이 정치 상황에 따라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 상당 기간 지속될 수 있다”라고 분석했다.
미 대선 정국에 시장 변동성이 한국 증시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란 예상이 나오고 있다. 코스피와 글로벌 증시 간의 상관관계가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 한몫하고 있다. 트럼프 1기 당시보다 미 증시와 코스피의 상관관계가 더욱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박석중 연구원은 “과거 상해종합지수와의 직접적 영향에서 S&P500과의 상관관계가 높아지고 있다”라며 “트럼프 1기와 한국 증시의 미국 증시와의 상관관계는 높지 않았던 것과 달리 코스피와 S&P500의 상관계수는 2022년 6월 0.21에서 바이든 정부 2024년 0.73까지 증가했다”라고 분석했다. 이렇게 미국 시장 영향력이 높아진 이유는 최근 몇 년간 탈 중국 무역 트렌드에 동참해 온 한국 경제에 미국 비중이 높아졌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트럼프 1기 이후 한국의 수출 점유율에서 미국의 비중은 14%에서 20% 수준까지 상승했다.
미국 시장에 대한 무역의존도가 높아진 환경에 트럼프 1기에 대한 기억은 좋지만은 않다. 당시 한국의 대 미국 무역흑자는 2017년 179억달러에서 2019년 114억달러까지 감소됐다. 방위비 분담과 환율조작국 지정에서의 부담에서 미국산 셰일가스 구매로 수입액이 확대됐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는 2023년 444억달러까지 확대됐다. 박석중 연구원은 “트럼프 1기는 한국에 되돌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행보는 반복될 전망”이라며 “방위비 부담을 두고 안보를 압박하고, 환율조작국 지정의 위협으로 FTA 재개정, 상호관세 부과를 조율할 수 있어 외교, 안보, 통상, 모두에서 이전보다 높은 수위의 압박에 대비가 필요하다”라고 조언했다.
업황별로 차이가 있지만 트럼프 1기와 크게 달라진 점은 한국의 주력산업인 메모리 반도체 업황이 회복되며 기업이익과 외국인 수급 여건이 개선되었다는 점이다. 또한, 팬데믹 1기 당시 정책금리 상승 국면에서 올해부터는 금리 인하로 전환될 가능성이 증가하면서 한국 증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홍지연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트럼프의 보호무역 정책과 관세 부과로 인해 한국 증시에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고 특히 신재생에너지 및 전기차 정책의 변화는 위험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라면서도 “올 2분기 한국은 주요국 증시 중에서 실적 개선이 기대되는 상위 국가로 평가받고 있는 만큼 트럼프 발 위험을 과대 해석할 필요는 없다”라고 분석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지난 7월부터 일관적으로 11월 대선 전 기준금리를 낮춰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국내 금융시장과 중앙은행의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지난 7월 16일 트럼프 전 대통령은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 이하 연준)의 금리 인하 가능성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그들(연준)이 오는 11월 5일 선거 전에 금리를 낮출지도 모른다”라며 “그것은 그들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라고 발언하며 연준의 미 기준금리 인하 움직임에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 연준의 금리인하 움직임이 대선에서 자신의 당선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금리 인하보다 에너지 비용을 낮춰 물가를 잡는 것이 우선이라고 주장했다.
금융시장은 트럼프의 발언에 즉각 반응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 이전까지 시장은 연준이 9월 통화정책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할 것으로 예상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에 따르면, 금리선물시장은 연준이 현행 5.25∼5.50%의 기준금리를 유지할 가능성을 매우 높게 보고 있었다. 그러나 트럼프 전 대통령의 피격 사건 이후 그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금리 전망 역시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정욱 KB증권 연구원은 “트럼프가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질수록 연준의 추가 금리 인하 기대감은 낮아질 수 있다”라며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이 높아지면 연준이 금리 인하를 추진하는 데 있어 정치적 부담이 커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라고 분석했다. 다만 이러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압박은 많은 반발을 받고 있으며 연준의 독립성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적다는 것이 중론이다.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은 이에 대해 최근 “연준은 독립적인 기관이며, 대통령으로서 그 결정을 간섭하지 않을 것”이라며 트럼프의 대척점에 섰다. 버락 오바마 정부 시절 미국 재무부를 이끌었던 래리 서머스 전 장관도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을 비판하며, “선출직 정치인은 경제 부양에 대한 유혹이 있기 때문에 세계의 모든 중앙은행은 정부와의 이해 상충을 막기 위해 독립성이 보장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트럼프 트레이드가 주식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면, 채권시장에서는 그 영향이 더욱 복잡하다. 트럼프의 경제정책은 채권시장에 다양한 형태로 영향을 미친다. 트럼프 1기 임기 중, 정부 부채 발행 규모는 7.6조달러 증가했다. 이는 역대 대통령 중 임기 중 가장 많은 증가세를 보인 사례로 기록되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트럼프의 재정정책이 금리상승을 촉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러한 우려는 미 국채 10년물 금리가 대선 토론 직후 2일 동안 15bp(1bp는 0.01%포인트) 이상 급등한 것에서 드러난다. 이는 금융시장이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을 매우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 트럼프가 처음 당선된 2016년 이후 미 금리 수준은 큰 폭으로 상승했다. 트럼프 당선 직후, 리플레이션(reflation) 기대감이 형성되면서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1% 중반대에서 2% 중반까지 급격히 상승했다. 리플레이션이란 경제 회복을 위한 정책으로, 일반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일으켜 경제 성장을 촉진하려는 의도를 가진다.
이후 2018년까지 미국 통화정책의 정상화가 진행되면서 금리는 3%대까지 추가로 상승했다. 그러나 이후 미·중 무역 갈등과 팬데믹이라는 돌발 변수가 나타나면서 금리는 다시 하락하기 시작했다. 중요한 점은 현재 미국 기준금리가 트럼프 1기 때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라는 것이다. 이는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할 경우, 그의 확장적 재정정책이 금리를 더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전망을 강화한다.
트럼프의 재정정책은 한국 금융환경에도 상당한 고민거리를 안겨주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연준의 금리 인하에 찬물을 끼얹을 경우, 한국은행 역시 금리 인하 시기를 조정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은행은 기준금리 인하와 관련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7월 지난 11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이제는 차선을 바꾸고 적절한 시기에 방향 전환을 준비하는 상황이 조성됐다”라며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에 대해 언급하면서도 시기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미 대선과 일본의 기준금리 인상 여파 등 글로벌 이슈와 수도권 부동산 가계부채 움직임 등 불확실성이 높은 환경에 신중하게 시기를 조율할 것이란 예상이 많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미 대선 외에도 워낙 변수가 많은 환경에 섣불리 선제적 금리 인하 카드를 꺼내 들기 어려운 환경”이라며 “한미 금리 격차가 2%포인트 역전돼 있는 상황에서 연준보다 앞서서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은 적다”라고 분석했다.
[박지훈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8호 (2024년 9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