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다시 그린 상권지도 뜨는 거리, 뜨는 공식은] Part 1 MZ세대 놀이터 성수 | 맛집 즐비한 주 7일 상권 명품·대기업 테스트베드로
안재형 기자
입력 : 2022.07.01 15:20:27
수정 : 2022.07.01 15:23:53
“주말에는 놀러오는 분들이 많고 평일에는 이곳에 근무하는 분들이 많아요. 맛집 많고 갈 곳 많으니 주 7일 상권이죠.”
지하철 2호선 성수역에 내리자마자 눈에 띄는 A부동산에 들어가 말을 건네니 대뜸 “공실률이란 게 뭔지 모르는 동네”란 말이 돌아왔다. 종로부터 명동까지 강북지역 상가들의 상황이 녹록지 않은 현재, 공실률을 모른다니. 자료를 들춰보니 이말, 괜한 과장이 아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성수동 일대 상권의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2019년 4분기에 3.7%, 지난해 4분기엔 1.5%로 낮아졌다. 소규모 상가로 넘어가면 그야말로 제로, 0%대다. 상가를 찾는 이는 많은데 빈 곳이 없다보니 임대료도 올랐다. 6평 소규모 매장의 경우 1~2년 전엔 보증금 1000만원에 월 120만~130만원이던 임대료가 150만원까지 올랐단다.
“그래도 이곳은 성동구청이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정책을 펴면서 임대료가 급격히 오르지 않았어요. 그래서 임대료 올랐다고 방 빼는 경우도 많지 않아요.”
A부동산 공인중개사의 설명이다. 성수동에서 가장 핫한 거리는 어딘지 물어보니 “꺾어진 골목 따라 내려가다 보면 사진 찍는 젊은 사람들이 많이 나올 텐데, 그곳이 연무장길 카페거리”란 답이 돌아왔다.
▶평일에도 북적이는 거리, 인증샷 명소
알려준 대로 대로변에서 안쪽으로 3분여 걷다보니 전혀 다른 분위기의 건물 앞에서 거리낌 없이 사진 촬영에 나선 이들이 보였다. 이곳은 지난 4월 개장한 프랑스 명품 브랜드 크리스챤 디올의 단독매장이다. 수십 년은 족히 지난 듯 세월의 더께가 그득한 주변 건물에 비해 뜬금없이 호화로운 이 공간에서 언뜻 봐도 MZ세대인 이들이 셔터를 누르며 그 자리에서 SNS를 날린다. 이 어울리지 않는 신구의 조화가 어쩌면 현재 성수동을 ‘힙’하게 만든 원동력이다.
디올 매장 바로 앞에 펼쳐진 거리가 바로 연무장길. 정확한 도로명은 연무장5길이다. 평일 오후인데도 거리는 복잡했다. 한눈에 봐도 한 집 건너 한 집이 맛집이다. 요즘 알 만한 이들은 다 안다는 까페 센느, 도치피자, 보이어, 이태리차차차, 큐씨오, 오와리 등등이 이곳에 포진해있다. 도넛으로 유명한 카페 노티드, 피치드 등 유명 맛집도 지척이다. 이번엔 연무장길에 자리한 B부동산에 들어가 현재 상황을 물었다. 돌아온 답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들어오면서 보셨겠지만 디올 주변으로 리모델링하는 건물들이 많아졌어요. 이 길에는 큰 건물이나 신축이 없기 때문에 통으로 임대해서 리모델링하는 분들이 많은데, 상가임대차보호법이 시행되고선 젊은 분들이 목돈 들여서 세련되게 꾸미고 있지요. 넉넉히 10년은 나가지 않아도 된다니 건물을 사는 것보다 깨끗이 리모델링하는 게 득 아니겠어요.”
연무장길의 임대료를 물었더니 “3~4년 전엔 1000만원에 80만~90만원이던 게 지금은 2배 정도 뛰었는데, 아직은 임대료가 부담스럽진 않지만 작은 매장도 권리금이 1억원씩 생겼다”며 장황한 설명이 이어졌다.
“내 기억으로 성수동에 사람이 몰려온 건 대림창고에 카페가 들어선 2011년인가 부터였어요. 여기가 원래는 정미소였다가 자재를 쌓아놓는 그냥 창고였는데, 아주 천지개벽을 했어요. 그러고 나서 주변에 정비소나 물류창고, 인쇄소 같은 허름한 공장들이 카페나 고깃집이 되고 문화공간으로 변하면서 이 연무장길에도 맛집들이 하나둘 들어서기 시작하더라고. 지금은 공실이 거의 없어요. 아니, 아예 없지. 성수역 대로변 건물은 평당 2억5000만원에서 3억원 정도 하고 연무장길은 2억원 정도 돼요. 골목 안쪽에 35평짜리 건물이 50억원이라니까. 주차장? 수십 년은 된 건물에 주차장은 무슨. 지하철 타고 버스 타고 와서 맛있는 거 먹고 명품 사서 나가는 동네가 됐다니까. 2019년인가 길 건너에 블루보틀이란 커피집이 생기고선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패션,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이 하나둘 들어오더니 명품이랑 대기업들도 들어오더라고. 이게 다 아까 오면서 봤다는 그 사진 찍던 젊은이들 덕분이에요. 젊은 사람들이 몰리니 중년도 한 번씩 오게 되고 사람이 끊이지 않으니 물건 팔려는 이들도 몰리는 거지.”
연무장길에서 십수 년간 부동산을 운영했다는 장년의 공인중개사는 한 가지 빼놓은 게 있다며 “식당들이 맛이 있어야 해. 그것도 중요한 조건”이라고 덧붙였다.
▶대형 업무지구 자리한 한국의 브루클린
공인중개사의 말마따나 찾는 이들이 늘어나는 선순환이 시작되면서 성수동 상권의 부흥이 시작됐다. 앞서 나열한 핫플레이스와 함께 이 상권을 견인하는 든든한 버팀목은 거리 곳곳에 자리한 오피스다. 성수동엔 올 1월 기준 총 85개의 지식산업센터가 자리했다. 서울에선 금천구 가산동(133개)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수다. 패스트파이브, 헤이그라운드 등 공유오피스도 많다. KT&G가 운영하는 공유오피스 ‘상상플래닛’, 아주그룹이 투자한 ‘스파크플러스’도 성수동에 있다. 강남과 판교 등지에 있던 스타트업과 IT 기업이 대거 이곳으로 이주했다. 저렴한 임대료에 넓은 사무실을 쓸 수 있고 다리 하나만 건너면 강남에 닿아 새로운 대규모 업무지구로 떠올랐다. 낡은 공장 지대에서 스타트업의 산실이 된 미국 뉴욕의 브루클린과 비교해 ‘한국의 브루클린’이란 별칭도 생겼다.
이미 SM엔터엔터테인먼트와 차량 공유업체 쏘카는 성수동 D타워에 입주했고, ‘배틀그라운드’로 유명한 IT 기업 크래프톤은 지난해 연면적 9만9000㎡의 이마트 성수동 본사 건물을 1조1000억원 이상에 매입해 사옥을 포함한 복합빌딩으로 개발하고 있다. 패션 기업인 무신사와 젠틀몬스터도 각각 3300㎡, 1만8000㎡ 규모의 부지를 매입해 현재 사옥을 올리고 있다. 특히 무신사는 지난해 본사를 강남에서 성수동 공유오피스로 옮기고 신사옥 부지를 비롯해 성수동 일대의 부동산을 매입하기도 했다.
카페골목
▶플래그십·팝업스토어의 성지로
내로라하는 브랜드와 대기업의 플래그십스토어, 팝업스토어도 성수동에 몰리고 있다. 체험을 제공하는 아모레퍼시픽의 아모레 성수, 패션 브랜드 아더에러의 플래그십스토어인 아더스페이스 2.0은 이미 MZ세대의 명소가 됐다. 문구 기업 모나미는 성수동에 ‘모나미 팩토리’를 주제로 콘셉트스토어를 운영하고 있다. 성수동에 있던 모나미 공장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MZ세대를 위한 체험형 특화공간을 강조하고 있는데, 총 15가지 잉크 중 마음에 드는 색을 배합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나만의 잉크를 만들 수 있는 잉크랩이 자리했다. 라이프 디자인 펀딩 플랫폼 와디즈가 운영하는 ‘공간 와디즈’도 성수동에 있다. 와디즈가 펀딩하는 제품들을 직접 체험하거나 펀딩에 성공한 제품들을 구매할 수 있는 공간이다.
앞서 소개한 크리스챤 디올을 비롯해 에·루·샤라 불리는 명품 기업들도 성수동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우선 크리스챤 디올의 성수동 매장은 명품 브랜드의 첫 단독매장이다. 2015년 청담동에 플래그십스토어 ‘하우스 오브 디올’을 개장한 크리스챤 디올의 두 번째 매장으로 약 40억원을 들여 완성했다.
지상 1층 규모인데 3층 높이의 외벽이 둘러싼 아치형태의 건물이다. 외관은 파리 몽테뉴 거리의 디올 플래그십스토어를 재해석했다고 알려졌다. 이로써 국내 크리스챤 디올의 매장은 총 23개가 됐다.
국내 명품 브랜드의 한 관계자는 “크리스챤 디올의 국내 매출이 늘어나며 한국에 대한 투자가 늘어난 것”이라며 “명품 업계가 성수동을 특별한 상권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전했다. 그는 “아크로포레스트, 트리마제 등 초고층 주거 시설이 들어서면서 성수동 일대가 신흥 부촌으로 떠오른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덧붙였다.
성수동 지식산업센터
이러한 상권 분석이 잇따르며 샤넬은 이미 2019년부터 성수동에서 패션·뷰티 팝업스토어를 열고 있다. 루이비통은 지난해 7월 성수동의 대형 카페에서 남성을 대상으로 한 팝업스토어를 운영했다. 에르메스도 지난해 성수동 디뮤지엄에서 가방 전시회를 개최한 바 있다. 그런가 하면 국내 패션 브랜드들도 성수동으로 거처를 옮기고 있다. 코오롱FnC가 운영하는 남성복 브랜드 커스텀멜로우는 플래그십 매장을 지난해 홍대에서 성수로 옮겼다. 삼성물산 패션 부문의 패션 편집숍 비이커는 청담동과 한남동에 이어 오는 11월 성수동에 세 번째 플래그십스토어를 선보일 예정이다.
B부동산의 공인중개사는 “놀러온 이들을 붙잡는 맛집과 매장이 늘고 직장인들을 붙잡는 지식산업센터 분양이 계속되고 있어 당분간 성수동 상권은 상승곡선이 계속될 것”이라며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정책에 따라 급격히 오르지 않은 임대료를 언제까지 붙잡고 있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