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평촌의 직장인 김동성 씨(48)는 최근 이사를 앞두고 집 안 물건을 정리했다. 오래된 디지털 카메라와 어린이 도서, 자전거 등을 중고거래로 팔아 약 70만원 정도를 벌었다. 김 씨는 “주변에서 ‘당근’ ‘당근’ 하기에 한번 해봤는데, 거래도 편하고 쓰지 않던 물건을 팔아서 돈을 번다는 기분이 들어 좋았다”면서 “중고거래가 새로운 경제권을 형성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이 확산되는 가운데, 중고거래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불경기에 중고로 필요한 물건을 사기 위한 거래뿐 아니라, 쇼핑업계 전반에서 유일하게 돈 되는 장사인 명품 소비와 리셀까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고거래업계 1위로 완벽하게 안착한 당근마켓을 포함해 번개장터, 중고나라 등이 시장의 파이를 키우고 있다. 롯데와 신세계, 네이버, 롯데하이마트 등 대기업들도 중고거래 플랫폼에 투자하거나 직접 플랫폼을 만들며 전방위로 시장의 문을 두드리는 모습이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2008년 4조원이던 국내 중고거래 시장 규모는 2020년 20조원으로 5배 성장했다. 글로벌 중고거래 시장 규모도 2021년 270억달러(약 32조원)에서 2025년 770억달러(약 91조원)로 성장할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해 당근마켓을 통한 이웃 간 중고거래 연결 건수는 2020년보다 약 30% 증가한 1억5000여 건으로 집계됐다.
이 같은 성장의 기본 배경은 전문화된 리커머스 플랫폼이 다수 등장하면서 중고 제품에 대한 불신과 거래의 불편함이 줄어든 점이다. 최근 국내외 리커머스 플랫폼들은 상품을 직매입하거나 위탁 서비스를 제공해 상품 신뢰도를 높이고, 플랫폼의 자체 택배 서비스 및 결제 시스템 도입도 거래 편의성과 안정성을 높이고 있다.
▶MZ세대 소비문화로 확산
최근에는 단순 중고용품 장터를 넘어, 지역 커뮤니티와 동네 상권을 연결하는 ‘하이퍼로컬(Hyper-local)’, 한정판 고가 상품을 되파는 ‘리셀테크(Resell+재테크)’ 등 복합적인 플랫폼으로 진화하는 모습이다. 국내외에서 수천억원의 투자를 유치하는가 하면 오프라인 매장도 열며 외형 확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실제 리셀테크로 구매가 몇 배에 달하는 수익을 얻을 수 있게 되자 되팔 상품을 구매하기 위한 경쟁도 치열해졌다. 최근 리뉴얼된 포켓몬 스티커가 들어 있는 포켓몬빵은 소셜미디어에서 회자되고, 방탄소년단(BTS) 등이 빵 사진 인증 대열에 합류하면서 희귀템이 됐다.
신종 리셀 시장이 계속해서 형성되는 이유는 리셀이 투자인 동시에 또래 문화처럼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소셜미디어 등에서 특정 품목에 대한 긍정적 여론이 형성되고 주목도가 높아지면 너도 나도 사들여서 ‘인증’한다. 구매자가 특정 품목에 몰릴 것을 예상하고 사재기를 하거나 가격을 띄우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도 빠른 리셀 시장 형성의 이유다. 명품과 운동화에 국한되지 않고 희귀식물·동전·레고부터 유행 상품까지 품목도 다양해지고 있다. 당근마켓 관계자는 “명품이나 운동화 등 일부 상품에서 리셀 재테크가 각광받는 점, 특색 있는 중고제품을 발굴해 개성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MZ세대의 소비문화가 확산된 점도 중고거래 시장 성장에 일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고거래 산업이 포스트 팬데믹 시대의 유망 업종으로 꼽히지만, 국내외 주요 업체들이 아직 광고 노출 외에 뚜렷한 수익원이 없다는 점은 한계로 지목된다. 스레드업과 세계 최대 중고명품 플랫폼 더리얼리얼은 2020년 각각 560억원, 2070억원의 적자를 냈다. 당근마켓과 번개장터도 2020년 각각 134억원, 135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