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추월차선’ 연금 성공 투자법] 은퇴 후 평균 소득 60% 줄어들어 생계 막막 “당장 車·커피 낭비 줄이고 ‘3층 연금’부터 쌓아라”
김병수 기자
입력 : 2021.10.28 15:13:03
수정 : 2021.11.05 14:44:39
# 서울 중견기업에 다니는 40대 중반의 A씨. 최근 노후대비에 관심이 생겨서 금융회사에 다니는 선배에게 연금상품에 가입하라는 권유를 받고 고민에 빠졌다. 미리 노후를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지만, 매달 수십만원에 달하는 납입금이 부담된다. 주거비, 생활비를 빼고 결혼 자금을 모으기 위한 저축을 하려면 당장 몇 만원도 아쉬운 형편이다.
대한민국이 고령화사회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지만 여유 있게 생활하는 노인의 수는 많지 않다. 오히려 가중되는 빈곤에 허덕이며 살아가는 노인들이 갈수록 늘어나는 분위기다.
통계청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지난해 말 812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약 15.7%를 차지한다. 고령자가 한 명 이상 있는 가구 비중도 전체(2035만 가구)의 22.8%까지 늘었다. 하지만 고령층의 삶은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다. 지난해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를 보면 국민은 은퇴 후 적정 생활비로 가구당 월 294만원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 중 절반이 넘는 54.8%가 ‘준비 부족’을 호소했다. 고령층 10명 가운데 5명 이상이 잠재적 빈곤층으로 향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노인 빈곤 문제는 주요국 중에서 한국이 가장 심각하다. 한국 고령층(66세 이상)의 상대적 빈곤율은 4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높다. 복지제도가 발달한 프랑스나 노르웨이는 한 자릿수이고, 미국 또한 23.1%로 한국의 절반 수준이다. 상대적 빈곤율은 중위소득 50% 미만 계층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말한다. 올해 1인 가구 중위소득이 182만원인 것을 감안하면 고령층 10명 가운데 4명 이상이 월 90만원가량의 돈으로 어렵게 생활한다는 얘기다.
의료비도 문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8년 65세 이상 고령자의 1인당 연간 진료비는 448만7000원, 1인당 본인 부담 의료비는 104만6000원이다. 이는 전년보다 각각 32만5000원, 3만1000원 늘었다. 이에 따라 전체 인구와 비교한 고령자 1인당 진료비는 2.9배, 본인 부담 의료비는 2.8배가 높다. 나이가 들수록 의료비 지출이 많다는 얘기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은퇴를 하고도 다시 일하는 고령층이 계속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65세 이상 노인의 경제활동 참여율은 36.9%로, 3년 전 30.9%에 비해 증가했다. 특히 상대적으로 ‘젊은 노인’에 해당하는 65∼69세 연령대에서는 경제활동 참여율이 55.1%로 절반을 넘었다. 다만 일하는 노인 중 73.9%는 여전히 현재 일하는 이유로 ‘생계비 마련’을 꼽으며 공적 연금만으로 노후 소득 보장이 이뤄지지 않다는 것을 시사했다.
실제 보험개발원이 만든 ‘2020 은퇴시장 리포트’에서도 은퇴 가구의 평균 자산은 3억6316만원으로, 은퇴 전(4억8185만원)의 75.3%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간 평균 소득도 은퇴 전에는 6255만원에 달했지만 은퇴 후에는 2708만원으로 58%나 줄어드는 것으로 조사됐다.
고령층 자산의 상당수가 부동산에 몰려 있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최근 급격히 오른 공시가격은 이들의 어깨를 무겁게 하고 있다. 공시가격을 기준으로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등 세금은 물론 건강보험료 등 각종 준조세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당장 문재인 정부 들어 전국적인 집값 상승에다 정부의 공시가격 현실화 방침이 겹치면서 서울 시내에 웬만한 아파트 한 채만 보유해도 수백만원의 건보료를 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자녀에게 의지해 온 고령층의 건강보험료 피부양자 자격이 박탈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노인 10명 중 3명만 국민연금… 월평균 53만원 불과
정부에 대한 기대도 한계가 있다. 고령층 인구가 늘면서 각종 복지 분야 지출도 덩달아 뛰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우리나라 복지 분야 의무지출(공적연금·사회보장제도·공공부조 등)은 2019년 106조8000억원에서 2050년 347조7000억원으로 연평균 3.9%씩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5.7%에서 10.4%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나는 것이다. 류재광 삼성생명 인생금융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정부가 재정으로 지원한 분야는 다시 후퇴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며 “국가채무는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고령자의 노후 보장을 위해 우리나라는 3층 구조의 연금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1층이 국민연금, 2층이 퇴직연금, 3층이 개인연금으로 불린다. 1층까지는 공적연금, 2~3층은 사적연금에 해당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공적연금이 늦게 도입되면서 연금 혜택을 받는 고령층이 적을뿐더러 지급 금액도 적다. 65세 이상 고령 인구의 국민연금 수급자 비중은 약 35%에 불과하고, 공무원·사학연금 등을 포함하더라도 공적연금 수급자는 고령 인구의 40%에 미치지 못한다. 금액도 노후생활 보장에 충분하지 않다. 지난해 6월 기준으로 국민연금 노령연금 수급자는 425만 명, 이들이 월평균 받은 금액은 53만6000원에 불과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선 40년 가입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소득대체율은 42.1% 수준으로 분석한다. OECD 국가 평균인 45.7%와 비교할 때 크게 낮아 보이지 않지만 여기에는 허점이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법정 정년은 만 60세다. 40년 가입을 가정할 경우 만 20세에 취업한 뒤 한 해도 빠지지 않고 국민연금을 납부해야 한다는 얘기다. 여기에 사적연금으로 불리는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을 포함해 선진국과 비교하면 우리의 소득대체율은 더욱 낮아진다.
재무설계 전문가들은 기본적인 생활 보장을 위해 국민연금에 가입하고, 표준적인 생활 보장을 위해 퇴직연금을 활용하고, 여유 있는 생활을 만들기 위해 개인연금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안정적인 노후생활을 위해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3층 구조의 노후소득 보장장치를 최대한 갖춰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은 직장생활을 한 사람이라면 기본적으로 갖게 되는 상품이다. 우리가 주목해서 봐야 할 상품은 개인연금이다. 개인연금은 크게 세제적격과 세제비적격 상품으로 나뉜다. 세제적격은 소득과 세액공제 혜택이 있는 상품이다. 연말정산과 소득을 신고할 때 환급 받을 수 있고, 향후 연금 수령 시 5.5% 이하의 저율과세 적용을 받는다. 대표적으로 신탁, 펀드, 보험, 퇴직연금(개인형 IRP) 등 4가지를 꼽을 수 있다.
은퇴를 앞두거나 은퇴가 시작된 50대의 경우 은퇴 후 생활비 마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때 퇴직금을 IRP에 넣어둔 뒤 이를 생애주기펀드(TDF)로 운용하면 좋은 성과를 올릴 수 있다. TDF는 생애주기에 맞춰 자산 배분을 해주는 펀드를 말한다. 가입 초기에는 고위험·고수익을 위해 주식 비중이 높지만 은퇴 시점에 가까워질수록 안정적 자금 운용을 위해 채권 비중이 높아진다. 최근 직장 이동이 잦아지면서 퇴직급여가 IRP로 가고 있다. 개인들은 IRP를 잘 운용해 수익률을 높이려는 고민도 필요하다.
만약 은퇴 후 개인연금에 대한 준비가 부족했다면 본인 소유의 주택을 연금화하는 방법도 있다. 주택연금은 본인이 소유한 주택의 가격에 따라 사망 시까지 연금을 차등해 받을 수 있는 상품이다. 연금액은 주택금융공사가 판단하는 내 집 시세에 따라 결정된다. 2021년 9월 기준으로 3억원짜리 주택에 거주하는 경우 70세 노인이 수령할 수 있는 주택연금은 월 92만1000원이다. 9억원짜리 주택의 경우 월 수령액이 267만5000원으로 늘어난다.
▶전문가들 “세제혜택 늘려 노후준비 도와야”
전문가들은 우리나라도 사적연금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과감한 세제혜택 등을 제공해 국민들의 노후준비에 도움을 줘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발표한 ‘2019 연금리포트’를 보면 우리나라의 사적연금 세제지원 비율은 15.2%로 OECD 평균 26.2%의 절반을 조금 웃도는 것으로 조사됐다.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등 선진국들의 경우 세제지원 비율이 30% 안팎을 오간다. 고령화가 우리보다 앞선 일본도 22.3%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현재 50세 이상에만 혜택을 부여하는 연금계좌 세액공제 한도를 전 연령으로 확대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경제활동이 활발한 연령대부터 중장기에 걸쳐 체계적인 노후준비를 지원하기 위해 전 연령에 걸친 한도 상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보장성 보험료에 대한 세액공제 한도 확대도 필요한 부분으로 지적된다. 보장성보험은 만기 환급액이 납입보험료를 초과하지 않는 상품이다. 대표적으로 자동차보험과 각종 건강보험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현재 보장성 보험료에 대한 세액공제 한도는 100만원이다. 문제는 1인당 평균 자동차보험료가 68만원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이것만으로 세액공제 한도인 100만원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최현자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현재 연금저축은 나이 제한이 있고 소득구간별로 환급액이 달라진다. 이런 구분을 없애 세제혜택을 확대하고 젊은 사람들이 조기 가입할 경우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공적연금의 개혁도 필요하다. 호주의 글로벌 컨설팅 업체 머서가 발표한 ‘2020 글로벌 연금지수’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의 연금제도는 39개국 중 31위에 그쳤다. 한국은 C등급을 받았는데 이는 현재 상태는 양호하지만 중대한 위험이 있어 개혁 없이는 장기적으로 지속하기 힘든 상태를 의미한다. 전년에도 한국은 37개국 중에서 29위를 기록했다. 머서는 “15~64세 연령층의 65세 이상 부양 부담률의 경우 한국은 73%로 두드러지게 높다”며 “여기에 심각한 저출산 문제는 장기적으로 연금의 지속가능성에 부담을 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연금제도가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정년 연장과 함께 ‘더 내고 덜 받는 구조’로의 연금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진영 밸런스자산연구소 대표는 “무엇보다 은퇴를 앞두고 본인의 자산이 어느 정도인지, 어느 정도를 은퇴자산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면서 “노는 자산을 정리하고, 일정 부분을 투자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