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 경영학] 기업에서 주류로 부상 | 키워드는 수평적 소통… 조직보다 개인·확실한 보상·워라밸 중시, 지위고하 불문 할 말 하고 SNS 통해 연대
김병수 기자
입력 : 2021.10.06 16:37:41
수정 : 2021.10.06 16:38:14
#올 초 ‘MZ세대’발 성과급 논란이 대기업과 IT업계를 강타했다. SK하이닉스 사례가 대표적이다. 하이닉스의 2020년 회사 영업이익은 코로나19 와중에도 언택트 열풍에 힘입어 거의 2배 가까이 증가했지만 성과급은 실적이 좋지 않았던 2019년과 비슷한 수준으로 지급됐다. 이에 의문을 품은 입사 4년 차 MZ 직원이 이석희 SK하이닉스 사장에게 직접 항의성 이메일을 보냈고, 파장은 컸다. 성과급 논란은 삼성전자, 현대차 등 국내 주요 기업에 전방위적으로 퍼지면서 각사마다 문제를 해결하느라 부산했다.
#지난 2월 25일 네이버 창업자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와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이 각각 화상으로 직원들을 만난 일도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 젊은 직원들이 창업자를 향해 ‘인센티브와 부상 방안을 개선하라’고 요구하자 직접 설명하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이날 간담회에서 직원들은 창업자를 향해 “인센티브나 연봉 산출 공식을 공개해달라” “직원들에게 적절한 보상이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등 날카로운 질문을 쏟아냈다. 재계에서 신세대로 통하는 두 창업자들도 ‘할 말 다 하는’ MZ세대의 돌직구에 진땀을 흘려야 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임직원 소통 프로그램인 타운홀 미팅에서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밀레니얼과 Z세대를 아우르는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자)는 국내 근로자의 60%를 차지하면서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전문가들은 ‘SK하이닉스 성과급 파동’을 계기로 성과에 대해 공정하고 투명한 보상을 거침없이 요구하는 MZ세대의 정체성이 확실히 드러난 만큼 기업들의 내부소통 확대와 조직 혁신이 절실해졌다고 강조한다. 이들은 상명하복, 연공서열식 기업 문화를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기성세대와는 다르다. 평생 직장에 목을 매지도, 회사에 희생하지도 않는다. 워라밸과 소통을 중시할 뿐 아니라 공정과 투명성에 큰 가치를 두는 세대다. 평가와 보상에 있어 공정성이 훼손됐다고 느끼면 거침없이 반박한다.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은 MZ 세대의 한 축인 밀레니얼 세대를 “미 미 미 제너레이션(Me Me Me Generation)”이라고 했다. ‘미 퍼스트(Me first)’로, 무엇보다 자신을 가장 위한다는 뜻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최근 개인 인스타그램 계정을 개설하는 등 재계 총수들이 SNS를 통해 MZ세대를 중심으로 한 대중과의 소통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투명하고 공정한 보상 원해
앞서 성과급 논쟁은 최근 정년 연장 문제까지 더해져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이런 사태에 대해 전문가들은 기업 경영진이 불투명한 산정으로 MZ세대 구성원들의 분노를 키웠다고 본다. 기업들은 지난해 실적과 투자·세금 같은 미래 비용을 반영해 성과급을 산정했다고 하지만 상세 공식을 밝히지 않아 불공정 논란이 커졌다는 설명이다. 기업들은 영업기밀을 이유로 정확한 산출 방식은 공개하지 않는다. 반면 MZ세대 직장인들은 이 같은 경영 방식에 참지 않고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개인 성과에 따른 합당하고 투명한 보상을 해달라는 목소리다.
최근 일고 있는 정년 연장 추진 움직임에 MZ세대들이 반대하고 나서는 것도 유사한 사례다. 현대차, 기아, 한국GM 등 국내 완성차 3사 노조가 국회 청원을 통해 “노동자의 정년을 연장해 달라”는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하자, 같은 일터에서 일하는 MZ세대는 이를 “꼰대들의 철밥통 지키기로 규정하고, 이로 인해 청년층은 일자리를 빼앗긴다”며 분명한 반대 입장을 보인 바 있다. 이런 분위기를 촉발한 중심에 MZ세대가 있다. 성과급과 정년 문제는 구성원들 사이에서 누가 유리하면 나머지는 불리할 수밖에 없는 문제다. 때문에 그동안 사내에서 불만이 있더라도 여기에 대한 문제 제기는 소위 ‘꼰대’세대들에게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MZ세대들은 달랐다. 문제가 있다고 여기면 따져 묻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단 합리적이면서 공정에서 어긋나지 않는다는 기준 아래에서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흙수저’로 태어났어도 취업하고 몇 년 일하면 대출받아서 ‘내 집 마련’에 성공하는 등 직장을 통해 삶을 살 수 있다는 인식이 컸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며 “‘연봉에 따라 공정한 대우를 받는다’는 인식과 ‘근로소득으로 자아를 실현하겠다’는 인식이 공존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직장은 직장일 뿐
성과급과 정년 문제가 불거진 또 다른 배경에는 MZ세대의 직장과 일에 대한 인식 변화가 놓여 있다.
국내 취업조사기관 ‘사람인’이 지난해 국내 주요 기업 451곳의 인사담당자들에게 설문한 결과 MZ세대는 워크라이프밸런스(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보장을 회사에 요구하며, 조직보다 개인 이익을 우선시하는 성향이 두드러진 것으로 조사됐다. 또 자유롭고 수평적인 문화와 공평한 기회를 중시하는 것도 MZ세대의 특징으로 나타났다.
대기업 인사담당부장인 A씨는 “과거 세대와 달리 상사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칼퇴 문화’가 대표적이다. 내 일을 끝내면 그뿐이라는 인식”이라 설명했다. 회식이나 야유회 등에 소극적인 것도 일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직장을 평생직장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언제든 떠날 수 있는 곳으로 여겨, 현 직장에 있는 동안은 남 눈치 보지 않고 불합리한 구석에는 거침없이 목소리를 낸다는 점도 일맥상통한다. 서울시가 발표한 ‘MZ세대의 경제 활동 및 사회적 인식 변화 분석’ 결과에 따르면 MZ세대는 2020년 ‘더 좋은 직장이 나타나면 언제라도 옮기는 것이 좋다’는 항목에서 10점 만점 중 7.14점을 기록해 대체로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베이비붐세대(6.11점)에 비해 1.03점 높은 수치다. 특히 MZ세대 중 1인 가구(7.25점, 0.5점 증가)에서 이 같은 경향이 높게 나타났다. 같은 기간 서울시민 전체 점수가 0.25점(6.42→6.67점) 올랐다는 점을 감안하면 배에 가까운 수치다.
물론 문제점도 있다. 이들의 지나친 이기주의적 행태 때문이다. 회사 전체보다는 사생활을 더 중요시하는 MZ세대의 특성이 윗세대들과의 보이지 않는 충돌지점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모 대기업의 한 팀장은 “젊은 직원의 휴가나 다른 요청이 오면 최대한 신속히 처리해 준다”면서 “지나치게 따지거나 뒷말이 나오는 경우가 많아 솔직히 피곤하다”고 말했다.
유준환 LG전자 사람중심 사무직 노동조합 위원장이 지난 2월 노조 설립 신고를 하고 있다.
▶명령 대신 소통… 수단은 SNS로
베이비붐세대 혹은 X세대가 수직적 소통과 눈치껏 일하는 데 익숙하다면, MZ세대는 명확한 소통을 요구한다. MZ세대는 태어나면서부터 디지털 기기에 둘러싸여 성장한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다. 스마트폰 탄생 이후 SNS(Social Networking Service) 시장은 급성장했다. MZ세대는 SNS를 기반으로 구축된 모바일 미디어 환경에서 정보를 소비-유통-배포-재생산한다. 나이나 사회적 지위의 고하를 따지지 않고 디지털 기기를 통해 소통해왔고, 직장에서도 이런 커뮤니케이션을 원한다. ‘상사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라’는 수직적 소통방식에는 거부감을 가지지만, 수평적인 의사소통은 오히려 높은 반응도를 보인다는 것.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직원이든 고객이든 MZ세대를 사로잡기 위해서는 적극적이고 투명한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단순히 물질적 혜택으로는 이들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얘기다. 이정 한국외대 교수는 “MZ세대는 개인주의와 합리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다. 경영진이 적극적인 소통으로 불만의 근원을 없애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기업 내 소통문화를 바꾸려는 시도는 MZ세대의 의견이 곧 소비자를 이해하는 단초가 된다는 판단도 한몫한다. 자기계발과 회사의 발전을 동일선상에서 바라보는 이들의 특성을 이해하면 기업의 미래 먹거리를 찾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기업 내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MZ세대와의 융화를 통한 조직 발전 측면도 있다. 주로 임원급인 베이비붐(1955~1969년생)세대·X세대(1970년대생)와 실무경험은 부족하지만 트렌드에 밝은 MZ세대가 공존하기 위해서는 세대별·개인별 특성 이해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노조 문화도 달라진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MZ세대지만 이들은 최근 조직화하며 세를 불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앞으로 사내 목소리가 더 커질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지난 3월 LG전자에서 사무직 노동조합이 출범한 이후 금호타이어, 현대차그룹에서 잇따라 사무직 노조가 탄생했다.
현대차 사무직 노조는 지난 3월 MZ세대를 중심으로 출범했다. 생산직, 기능직 위주로 구성된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차 지부가 노사협상을 주도하는 동안 침묵해왔던 사무·연구직들이 공개적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사무직 노조는 공정에 기반한 보상시스템 도입과 근로환경 개선을 기치로 내걸었다. 계열사 직원은 물론 비정규직, 계약직 직원까지 대변하겠다고 나서 이목을 끌기도 했다.
현대차뿐만 아니라 올 들어 LG전자와 금호타이어 등 생산직 중심으로 노조가 구성돼 있던 사업장에서 사무직들이 별도 노조를 결성하기도 했다. 삼성전자 4개 노조 중 1곳도 사무직이 중심이다. MZ세대 사무직 노조들은 ‘디지털 네이티브’답게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이용해 의견을 모은다. 노조 출범 준비도 SNS를 통해 이뤄졌다. 현대차 사무직 노조의 경우 출범 준비를 위해 네이버 밴드를 개설하고 현대모비스·현대글로비스 등 계열사 직원까지 5000명을 모으기도 했다.
이들의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경영진은 잔뜩 긴장하고 있지만 그동안 사내에 축적된 여러 문제들을 해소해 나간다는 점에서, 내부소통 강화와 성과급 체계 정비 등 제도 개선에 나서고 있다. 대기업 간부 D씨는 “성과급만 해도 그동안 불만은 있었지만 문제 제기를 하지 못했는데 MZ세대들이 나선 이후 정상화된 측면이 있다”면서 “일한 만큼 제대로 된 보상이 주어지면 이로 인해 일에 더 매진하게 되는 측면이 있다”고 전했다.
아울러 직장 내 소통이 강화되고 있다. CEO들이 MZ세대들과 직접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이제 익숙한 풍경이다. 주요 그룹 총수들은 직접 근무 현장을 방문하거나 SNS 활동을 통해 소통을 강화하고 있다. 또 개인결정권과 취향, 일과 삶의 조화 등을 추구하는 MZ세대에 맞춰 인사관리방식과 조직문화 변화도 꾀하고 있다. 일각에선 MZ세대가 현재 시점의 성과 공유에 집착한다는 비판도 제기한다.
박영범 한성대 교수는 “MZ세대가 노조까지 결성하며 현재 시점에서 보다 많은 성과 배분을 요구하고 있다”며 “회사의 장기적인 성장과 발전에 의문을 가지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가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하고 직원 개개인의 발전에도 투자한다는 확신을 직원들에게 심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