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7월까지 중소벤처기업부가 밝힌 국내 유니콘 기업은 총 15개사다. 올 들어서만 4개사가 새롭게 추가됐다. 6개사가 새로운 유니콘으로 떠올랐던 2019년과 비교하면 막대한 시중 유동성에 역대 최다 기록도 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유니콘(Unicorn) 기업은 기업가치 10억달러(1조원) 이상, 창업한 지 10년 이하인 비상장 스타트업 기업을 의미한다. 유니콘은 알다시피 머리에 뿔 하나가 달린 전설 속의 동물이다. 스타트업 기업이 상장하기 전 기업가치가 1조원 이상 되는 게 마치 유니콘처럼 상상 속에서나 존재할 수 있다는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중기부가 발표한 유니콘 기업은 회사 가치가 1조원 이상이면서 외국 기업에 인수·합병(M&A)되거나 대기업 계열사가 아닌 비상장사만을 추려낸 숫자다.
올해 새롭게 유니콘으로 이름을 올린 기업은 프롭테크(부동산과 기술 융합 분야) 기업 ‘직방’, 블록체인 기반 핀테크(금융과 기술 융합) 기업 ‘두나무’, 신선식품 등 전자상거래 플랫폼 마켓컬리를 운영하는 ‘컬리’다. 여기에 또 하나, 세계적인 비디오 메신저 앱 ‘아자르’를 운영하는 ‘하이퍼커넥트’가 올해 미국 매치그룹에 17억2500만 달러에 인수됐다. 하지만 국내 벤처캐피털(VC) 평가액이 1조원 미만이다 급격히 회사 가치가 커지며 매각돼 공식 통계에선 제외됐다. 이로써 기업가치 1조원을 돌파한 이력이 있는 기업은 2018년 말 13개사에서 2019년 말 19개사, 2020년 말 20개사, 올해 현재 24개사(하이퍼커넥트 포함)로 늘었다.
전세희 중기부 투자회수관리과장은 “올 상반기 국내 유니콘 기업의 탄생은 작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제2 벤처붐에 대기업 중심 경제구조가 벤처·스타트업 중심으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며 “대규모 투자와 후속투자 연결이 지속되고 있어 또 다른 유니콘 기업이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거대 투자자금이 마중물 된 제2 벤처붐, 종사자만 73만 명
올 상반기 벤처투자와 펀드 결성 규모는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정부와 금융시장에서 벤처펀드에 뭉칫돈을 넣고, 이 투자금이 벤처기업에 쏟아지는 ‘제2 벤처붐’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올 상반기에 벤처투자 3조730억원, 펀드 결성 2조7433억원을 달성했다고 밝혔다. 이 시기에 벤처기업으로 흘러간 투자금은 전년 동기 대비 85.6%나 늘었다. 2000년대 초반 IT 강국의 버팀목이 된 ‘제1 벤처붐’에 이어 또 다시 벤처붐이 일고 있다고 평가받는 이유다.
이러한 상황에 스타트업 열기도 뜨겁다. 실제로 최근 중소벤처기업부가 산업부, 문체부, 과기부 등 10개 부처와 함께 진행하는 ‘도전! K-스타트업 2021’에 총 7352개 팀이 신청했다. 역대 최다 신청자다. 최연소자는 16세, 최고령자는 86세로 연령층도 다양해져 창업에 도전하는 사회 전반의 열기를 증명했다. 창업 지표인 신설법인 수도 지난해 12만3305개를 기록하며, 20년 전인 2000년(6만1535개)에 비해 2배 이상 늘었다.
김슬아 컬리 대표
사업 분야도 다변화됐다. 유니콘으로 평가받고 있는 국내 스타트업의 면면을 살펴보면 쇼핑, 배달, 숙박, 바이오, 핀테크, 화장품, 식품, 콘텐츠 등 주로 비대면 방식의 다양한 분야에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제1 벤처붐이라 불리던 2000년대 초반, IT 분야 스타트업이 몰린 것과 비교하면 전혀 다른 모습이다.
스타트업과 벤처붐 관련 기업 종사자도 1년 사이 10% 이상 늘었다. 전체 기업 종사자 증가율보다 3배나 높은 수치다. 중기부에 따르면 올 6월 말 현재 벤처기업 3만8193곳 중 한국고용정보원에 고용보험 가입자 정보제공에 동의해 고용정보가 유효한 3만5482곳의 고용 인원이 72만7000여 명으로 집계됐다. 1년 전보다 6만7000여 명(10.2%) 늘어난 수치다. 전체 고용보험 가입자가 1436만9000여 명으로 1년 전보다 3.4%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벤처기업의 고용 증가율이 약 3배나 높은 수준이다.
벤처기업 1곳당 고용 인원은 20.5명으로 1년 전보다 1.9명 늘었다. 업종별로는 정보통신기술(ICT) 서비스 종사자가 약 15만 명으로 1년 전보다 18.4%(2만3000명) 늘어 증가 폭이 가장 컸다. 유통·서비스(1만1000명), 전기·기계·장비(8000명) 등의 업종도 많이 늘었다. 조사 대상 벤처기업 중 비대면 분야 벤처기업(7311곳) 종사자는 18만5000명으로 25.4%를 차지했다. 1년 전보다는 17.8% 늘어 전체 평균 증가율(10.2%)을 웃돌았다.
벤처기업 중 유니콘 기업인 8곳(크래프톤, 야놀자, 무신사, 에이프로젠, 컬리, 직방, 우아한형제들 등)의 종사자는 6953명으로 43.8%(2119명) 늘었다. 이 중 컬리가 838명에서 1896명으로 126.3%, 크래프톤은 718명에서 1298명으로 80.8% 늘었다.
안성우 직방 대표
이석우 두나무 대표
▶유니콘의 비즈니스 키워드는 ‘비대면’
그렇다면 이들 벤처와 스타트업의 사업 분야는 무엇일까. 최근 유니콘으로 성장한 스타트업의 사업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전개 방식은 비대면 비즈니스에 집중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상황에 비대면 방식으로 시장을 키우고 수익을 올리는 사업 방식이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올해 유니콘이 된 직방, 컬리, 두나무, 하이퍼커넥트도 모두 비대면 비즈니스와 관련이 있다.
새벽배송으로 유명한 온라인 푸드마켓 ‘마켓컬리’를 운영하고 있는 컬리는 2254억원 규모의 시리즈F 투자 유치를 완료하면서 유니콘에 입성했다. 제2의 쿠팡을 노리며 미국 상장을 추진하던 컬리는 현재 국내 증시 상장으로 방향을 틀고 주관사 선정에 나섰다. 업계에선 “빨라도 내년 상반기에 상장 절차가 마무리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컬리의 기업가치는 2조5000억원으로 평가된다. 지난해 5월 2000억원을 유치했을 때 9000억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은 것과 비교하면 1년 새 2.6배나 훌쩍 성장한 수치다. 컬리가 운영 중인 마켓컬리의 지난해 매출은 9531억원이었다. 이 또한 1년 새 두 배 넘게 성장한 금액이다.
안상일 하이퍼커넥트 대표
아파트, 빌라, 원룸, 오피스텔, 상가 등의 가격 빅데이터를 구축해 국민 부동산 앱이라 불리는 직방은 벤처투자기관 간 구주거래를 통해 약 1조1000억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아 유니콘에 등극했다. 직방은 지난해 매출 458억원, 38억원의 이익을 내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비상장주 거래 플랫폼 ‘증권플러스 비상장’과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를 운영 중인 두나무는 한화투자증권이 583억원을 투입해 지분 6.15%를 확보하면서 1조원 규모의 기업가치를 입증했다.
하이퍼커넥트가 운영하는 비디오 채팅 앱 ‘아자르’는 서비스 초기에 중동 지역에서 시작된 붐이 전 세계로 확장되며 코로나19 상황에 온라인 공간에서의 만남을 이끌었다. 2019년 하이퍼넥트의 매출은 1646억원, 지난해에는 2579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그런가 하면 최근 국내 16번째 유니콘 등극이 기정사실화된 지역 기반의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마켓’도 비대면 비즈니스가 사업의 중요한 키워드다. 당근마켓은 8월 중 1800억원 규모의 시리즈D 투자 유치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벤처투자업계에 따르면 이번 투자에는 기존 투자자인 알토스벤처스, 굿워터캐피털, 스트롱벤처스, 소프트뱅크벤처스, 캡스톤파트너스, 카카오벤처스를 비롯해 홍콩계 벤처캐피털인 애스펙스매니지먼트 등이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2015년 설립된 당근마켓은 2016년 13억원의 시리즈A 투자 유치에 이어 2018년 시리즈B 63억원, 2019년 시리즈C 400억원을 유치했다. 이번 시리즈D 투자에서 인정받은 기업가치는 3조원대로 2019년 2000억~3000억원보다 몸값이 10배 이상 뛰었다. 당근마켓의 현재 가입자 수는 2000만 명을 넘어섰다. 구인·구직 등 다양한 분야의 업체들과 제휴하며 지역 기반을 벗어나 하이퍼로컬 서비스로 범위를 넓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