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9일, 일본은행이 단기 정책금리를 0.75%로 끌어올렸다. 일본이 다시 ‘금리를 올리는 나라’로 되돌아오는 장면은 숫자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지난 20~30년 동안 세계 금융시장은 일본을 ‘조달 통화’로 전제해 왔다. 금리가 낮고, 엔화 변동성이 상대적으로 잔잔하다는 가정 아래에서 투자자들은 엔화를 빌려 더 높은 금리를 주는 자산을 사는 거래를 반복했다. 이게 엔 캐리 트레이드다.
흥미로운 건, 금리를 올린 직후에도 시장은 ‘캐리의 종료’를 선언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엔화는 오히려 약세 흐름을 보였고, 세계 시장에 퍼진 일본의 자금이 다시 일본으로 향할 것이란 공포는 단기적으로 사그라들며 주식시장은 반등했다. 시장에는 ‘아직은 포지션을 유지해도 된다’라는 심리가 퍼졌다. 보인다. 금리가 움직였는데도 돈의 습관은 바로 바뀌지 않았다. 바로 그 틈이 2026년의 위험을 만든다. 일본의 인상은 캐리 거래를 당장 끝내기보다, ‘언제든 되감길 수 있는 레버리지’를 더 비싸고 불안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그리고 이 일본의 움직임은 한국과 미국의 길을 더 또렷하게 대비시킨다. 한국은 2025년 11월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하며 환율·금융안정 제약을 먼저 확인했고, 미국 연준은 12월 금리 인하의 방향을 유지하면서도 “불확실성이 여전히 높다”라는 문장으로 속도 조절을 분명히 했다. 같은 시기에도 일본은 ‘인상’, 한국은 ‘동결(관리)’, 미국은 ‘인하(조절)’의 서로 다른 경로를 밟는다. 이 엇갈림이야말로 2026년 ‘안전 수익(Safe Yield)’을 다시 어렵게 만드는 배경이다.
엔 캐리 트레이드를 가장 쉽게 풀면 이렇다. “이자가 거의 없는 통화로 돈을 빌려, 이자가 높은 곳에 투자해 차이를 먹는다.” 예컨대 엔화로 조달해 달러 채권이나 고금리 통화 자산을 사면 금리 차이만큼 수익이 기대된다. 문제는 이 거래가 금리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엔화가 갑자기 강해지면(달러/엔 하락), 환차손이 금리 차이를 한 번에 지워버릴 수 있다. 그래서 캐리의 핵심은 ‘낮은 금리’만큼이나 ‘낮은 변동성’이다.
일본은행이 금리를 올렸다는 건, 바로 이 ‘변동성의 전제’를 흔드는 사건이다. 금리 자체가 여전히 낮아도, 시장이 “일본은 더 올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가격에 넣는 순간 엔화는 더 민감한 통화가 된다. 포지션이 쌓여 있는 시장에서 변동성은 종종 예고 없이 폭발한다. ‘청산이 오면 천천히 오지 않는다’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국내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일본발 충격은 일본 주식이나 일본 채권보다 ‘글로벌 위험자산’에서 먼저 나타날 수 있다”라며 “미국 투자시장에서 많이 화두가 되고 있지만 오히려 급등세가 높았던 한국 시장도 충격파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라고 진단했다.
엔 캐리 포지션이 줄어들 때 자금은 가장 유동적이고 레버리지가 많이 얹힌 자산부터 줄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달러 강세·변동성 확대·주가 조정이 한 덩어리로 움직일 수 있다. 일본의 인상은 2026년의 첫 장면을 ‘내리는 금리”가 아니라 ‘엇갈리는 금리”로 만들어버렸다.
한국은행은 2025년 11월 27일 기준금리를 2.50%로 동결했다. 겉으로 보면 “인하를 미루는 선택”이다. 하지만 한국의 통화정책은 경기만으로 단순화하기 어렵다. 특히 최근 글로벌 사이클이 엇갈릴 때는 원화가 더 민감해진다. 미국이 완만한 인하로 가고, 일본이 인상으로 방향을 틀면, 원화는 금리차뿐 아니라 달러 흐름과 위험선호(리스크온·리스크오프)의 영향을 동시에 받는다.
지난해 12월 19일 금융당국이 FX 시장에서 달러 공급을 보완하기 위한 한시 조치를 내놓은 건, 이 구도를 잘 보여준다. 시장의 ‘기대 인하’가 커져도 환율이 불안하면 중앙은행은 쉽게 움직이기 어려워진다. 더 중요한건, 한국에서 ‘안전수익’이란 단순히 국채 금리나 예금금리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안전수익의 핵심은 필요할 때 팔 수 있고(유동성), 시스템이 흔들릴 때도 작동하는가(시장 기능)인데, 이 기준에서 한국은 채권시장 안전장치의 비중을 키우는 국면에 있다.
로이터는 2025년 12월 19일 “한국 당국이 온쇼어 FX시장에서 달러 공급을 늘리는 한시 조치를 내놨다’라며 “유동성 확대보다는 금융안정을 위한 조치를 이어가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금융당국이 채권시장 안정 프로그램을 2026년까지 이어가는 방향을 논의한 대목은 상징적이다. “금리를 어떻게 하느냐”와 별개로 “시장 자체가 흔들리지 않게 만드는 장치”를 동시에 강화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금리인하 사이클이 진행되더라도 국채 공급, 회사채 스프레드, 외국인 자금 흐름이 꼬이면 안전자산의 가격도 흔들릴 수 있다. 2026년 한국 투자자에게 가장 현실적인 질문은 그래서 이렇게 바뀐다. “언제 내리나?”가 아니라 “내릴 때 흔들리지 않을 조건이 갖춰졌나?”
미국은 2025년 말 인하 국면에 들어섰다. 하지만 시장이 기대했던 것처럼 ‘인하가 곧 위험자산의 자동 랠리’로 이어지는 장은 아니다. 제롬 파월 연준의장은 12월 FOMC 성명을 통해 “경제가 확장하고 있음을 확인하면서도, 인플레이션이 여전히 부담스럽고 전망 불확실성이 높다”라고 강조한다. 이 문장 하나가 2026년 미국 금리의 성격을 설명한다. 금리를 내리는 방향은 유지하되, “데이터가 허락할 때만” 움직이겠다는 태도다.
이때 가장 크게 달라지는 건 ‘이자의 종류’다. 많은 투자자가 안전 수익을 이야기할 때 장기채부터 떠올린다. 그러나 인하가 빠를 때 장기채가 강해지는 것과 인하가 느릴 때 장기채가 안정적인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인하가 완만하면 단기·중단기 구간의 금리 매력은 오래 남는다. 반면 장기물은 인플레이션 재상승 우려, 재정 이슈, 정책 리스크(정치 변수 포함)에 더 민감해질 수 있다.
연준의 점도표(SEP)는 시장에 “큰 폭의 인하를 가정하기 어렵다”라는 인상을 남겼다. 결과적으로 2026년의 투자 전략은 ‘인하 베팅’ 하나로 단순화되기보다, 인하가 느리게 진행되는 동안 어디서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확보할지로 이동한다.
2026년의 난이도를 올리는 핵심은 금리 인하 자체가 아니라 비대칭이다. 일본은 인상으로, 미국은 인하(하지만 신중하게)로, 한국은 동결과 시장 안정 조합으로 간다. 사이클이 엇갈리면 자금은 단순히 ‘더 높은 금리’만 보고 움직이지 않는다. 같은 4%라도 환헤지 비용이 커지면 실질 수익은 크게 깎인다. 반대로 헤지 없이 달러 자산을 들고 가면 수익률은 좋아 보여도 변동성은 훨씬 커진다.
이 환경에서 투자자는 ‘금리 차이’가 아니라 ‘변동성 차이’를 더 크게 체감한다. 일본의 인상은 엔화의 변동성을 키울 수 있고, 이는 달러/엔뿐 아니라 원/엔, 원/달러에도 간접 영향을 미친다. 캐리 포지션이 커지는 국면에서는 위험자산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버티는 듯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충격이 오면, 청산은 동시에 발생한다. ‘안전수익’을 찾는 투자자에게 가장 위험한 순간은 바로 이때다. 안전하다고 믿었던 자산이 아니라, 안전하다고 믿었던 ‘환경’이 깨질 때다.
이쯤 되면 안전마진은 단순히 “예금이냐 국채냐”의 선택이 아니다. 안전수익은 세 가지 질문으로 바뀐다. 첫째, 가격이 흔들릴 때 손실이 어디까지 열리는가(듀레이션). 둘째, 충격이 왔을 때 팔 수 있는가(유동성). 셋째, 이 수익이 통화·정책·시장 수급 변화에 얼마나 민감한가(구조).
이 관점에서 장기채는 더 이상 만능 방패가 아닐 가능성이 커졌다. 과거에는 주식이 빠질 때 장기채가 오르는 ‘전통적 상쇄’가 잘 작동했다. 그러나 인플레이션 이후의 세계에서는 장기채가 물가·재정·정치 리스크에 더 민감해지고, 때로는 주식과 함께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블랙록의 2026 아웃룩은 이런 문제의식을 전면에 놓고, 분산의 방식 자체를 재구성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낸다. 보고서는 “안전수익은 ‘가장 높은 이자’가 아니라 ‘가장 안정적인 구조’로 재정의되고 있다”라고 관측했다. 특히 보고서는 미국 장기 국채의 리스크 방어력 약화를 전제로 ‘분산의 재설계’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변화는 투자자의 언어를 바꾼다. “연 4%를 받는다”보다 “연 4%가 유지되는 조건이 무엇인가”가 더 중요해진다. 금리가 내려가는 세계에서도 변동성이 커지면 안전수익은 오히려 더 귀해진다. 그리고 그 안전수익의 설계는 이제 단일 자산이 아니라 만기·통화·유동성의 조합으로 결정된다.
2026년의 안전수익은 아이러니하게도 금리 인하 구간에서 더 어렵다. “내리니 편해졌다”가 아니라, “내리는데도 나라별로 다르게 움직여 더 복잡해졌다”가 현실에 가깝다. 일본은 인상을 통해 조달 통화의 조건을 바꿨고, 미국은 인하하되 경로를 좁혔고, 한국은 인하 가능성을 남겨두면서도 원화·유동성의 제약을 더 앞에 둔다. 이 조합은 투자자에게 단 하나의 정답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대응은 선명해진다. 안전수익을 ‘어떤 상품을 샀는지’로 정의하지 말고 ‘어떤 구조를 만들었는지’로 정의해야 한다. 만기 구조를 분리해 변동성을 관리하고, 통화 구조를 분리해 환율 충격을 흡수하고, 유동성 구조를 점검해 필요할 때 현금화를 보장해야 한다. 한국이 채권시장 안정 장치를 연장·운영하는 방향을 논의한 것도, 결국 “시장이 기능해야 안전수익도 안전하다”라는 현실을 반영한다.
엔 캐리 트레이드는 이런 환경에서 일종의 경고등이 된다. 캐리가 이어지는 동안 시장은 비교적 평온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포지션이 유지되고 있다’라는 사실 자체가 잠재 에너지가 쌓이고 있음을 뜻하기도 한다. 일본의 인상은 그 에너지의 비용을 높였다. 미국의 속도 조절은 그 에너지가 쉽게 분산되지 않음을 시사한다. 그리고 한국의 동결과 시장 안정 조합은, 이런 엇갈림 속에서 “안전수익은 결국 시스템과 통화의 문제”라는 결론으로 연결된다. 2026년에는 이 결론이 투자 성과를 가르는 기준이 될 가능성이 크다.
[박지훈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84호 (2026년 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