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 디플레이션 우려 등 가뜩이나 어려운 중국 경제에 또 다른 시한폭탄이 째깍거리고 있다. 2021년 헝다(에버그란데) 사태 이후 수면 아래 잠복돼 있었던 부동산 부실 문제가 중국 최대 민간건설업체인 비구이위안(컨트리가든)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우려로 다시 떠올랐기 때문이다. 중국 부동산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리오프닝 이후에도 살아나지 않는 경제 상황과 맞물리며 심상치 않은 위기감을 조성하고 있다. 중국 내 부동산은 GDP의 4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이 부문의 리스크가 본격적으로 터진다면 중국은 물론 반등의 기회를 모색하던 세계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을 의식한 듯 그동안 부동산 문제에 손을 놓고 있던 중국 정부도 움직일 채비를 하고 있다. 중국 정부의 지원이 없다면 부동산 관련 기업들이 넘어가는 일은 기정사실일 수밖에 없어 내놓을 조치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2021년 헝다 사태 이후 잠잠하던 중국 부동산업체들의 파산 우려가 올 하반기에 접어들면서 또다시 불거지고 있다. 헝다보다 더 큰 몸집의 회사도 있어 시장은 잔뜩 긴장하고 있다.
중국 부동산 위기와 관련해 가장 촉각이 곤두선 기업은 지난해까지 중국 부동산시장 1위를 차지했던 비구이위안이다. 2017년 헝다를 제치고 부동산개발업체 1위에 오른 이후 2018년부터 2021년까지 매년 5조위안(약 917조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할 정도로 성장세가 가팔랐다. 헝다가 디폴트에 빠진 2021년 이후에도 회사는 중국 대표 부동산업체로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는 듯했지만, 이번에 결국 자신들도 중국의 부동산 위기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여실히 내비쳤다.
문제가 불거진 것은 만기 도래한 액면가 10억달러(1조3415억원) 채권 2종에 대한 이자 2250만달러(300여억원)를 상환하지 못하면서부터다. 최종 디폴트 선언 전 30일간의 유예기간을 갖는다는 점에서 곧바로 디폴트 처리는 되지 않았지만, 이자를 갚지 못하면 언제든 디폴트 처리될 수 있다.
이번 비구이위안 사태가 심상치 않은 것은 지난해 11월 중국 대형 국영은행들이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대형부동산업체들에 1조1550억위안(약 211조5000억원)에 달하는 신규 대출을 해준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하이증권보에 따르면 당시 비구이위안은 공상은행, 중국우정저축은행 등 3개 국유은행으로부터 1500억위안(약 27조4500억원)의 여신 한도를 제공받았다. 하지만 불과 8개월 만에 돈이 없어서 이자를 내지 못하는 상황에 내몰린 것이다. 이는 당시 지원받은 돈이 부족했거나, 충분했지만 보유 자금 소진 상황이 더 빨랐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회사 상황은 악화일로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비구이위안의 상반기 잠정 순손실은 450억~550억위안(약 8조2350억~10조650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같은 기간만 해도 이 회사는 19억1000만위안(3495여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지만 불과 1년 만에 상황이 확 바뀐 것이다. 지난해 말 기준 비구이위안의 총 부채는 1조4000억위안(256여조원)에 이른다.
회사가 이 같은 처지에 내몰린 것은 중국 부동산 시장이 좀체 살아날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부동산 내수 시장이 위축되면서 주 수입원인 신규 주택이 팔리지 않고, 이에 따라 수입원이 고갈되면서 난국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올 1월부터 7월까지 집계된 비구이위안의 주택 판매액은 1408억위안(25조7600여억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35%가 줄었다. 2021년 대비로는 75% 하락한 수치다. 비구이위안 못지않게 위험한 곳이 또 다른 대형 개발업체인 완다그룹이다.
지난 7월 완다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다롄완다 상업관리 집단이 만기가 도래한 채권 4억달러(5360여억원)를 갚지 못해 위기에 처한 바 있다. 회사는 최소 2억달러(2680여억원)를 마련하지 못했는데, 완다그룹은 계열사 지분을 팔아 간신히 위기를 넘겼다.
또 다른 부동산 업체인 위안양(시노오션)도 2024년 만기 2094만달러(280여억원) 채권의 이자를 상환하지 못해 디폴트 위기에 처했다.
그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헝다의 손실 규모도 천문학적 수준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고 있다. 헝다는 올 7월 돌연 2021년과 2022년의 실적보고서를 발표했는데, 각각 순손실 규모가 2021년 4760억위안(87조1000여억원)과 2022년 1059억위안(약 19조3800억원)으로 총 5819억위안(106조4800억원)에 달했다. 2020년 순이익이 81억위안(약 1조4800억원)을 기록했던 점을 감안하면 사정이 얼마나 나빠졌는지 엿볼 수 있다.
지난해 매출도 2020년 대비 55% 하락한 2301억위안(약 40조1000억원)을 나타냈으며, 지난해 기준 총 부채액은 2조4400억위안(약 446조원)에 달했다. 총 부채액은 2020년 대비 23% 늘어난 수치다.
그동안 손실 규모를 꽁꽁 감춰둔 셈인데, 이미 한계에 부닥친 기업 상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듯하다.
현재 중국 부동산 시장의 가장 큰 리스크는 팔리지 않는 주택들이다. 중국 내 대부분의 부동산개발업체들은 대부분 아파트 완공 전에 분양을 하고 들어오는 자금을 또 다른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형식으로 운영된다. 중국에 부동산 붐이 일던 초기 이 같은 사업 방식은 꽤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중국 내 어느 정도 주택 공급이 이뤄지고 나면서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공급과잉 논란이 일었고, 코로나19 팬데믹과 경기 침체 같은 외부 변수가 닥치자 속수무책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조용찬 미중산업경제연구소장은 “현재 중국에서 진행 중인 신도시 개발 사업의 총 인구 규모는 30억 명으로, 현 중국 전체 인구 14억여 명의 2배가 넘는다”면서 “이것만 봐도 그동안 중국 부동산 시장이 얼마나 무분별하게 진행됐는지 알 수 있고, 경제 상황이 악화되자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비구이위안 사태와 관련해 “지난 2년간 중국의 부동산 위기가 얼마나 깊숙이 자리잡았는지를 보여준다”고 꼬집었다.
지난해 중국 부동산 연구기구인 베이커연구원이 중국 28개 주요 도시의 주택 공실률 조사 결과, 베이징, 상하이 등 1선 도시보다 2선과 3선 도시의 공실률이 높았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장시성 난창의 경우 중국 28개 대도시 중 가장 높은 20%에 육박하는 공실률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에 따르면 자금 등의 문제로 짓다 만 주택도 중국 전역에 200만 채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재정의 3분의 1가량을 부동산 관련 분야에 의존하는 지방정부도 중국 부동산 문제를 더 키우고 있다.
각 지방정부들은 그동안 중국 전역에서 진행된 도시 현대화 사업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자체 부동산 사업들을 적극적으로 진행해왔는데, 무분별한 진행의 후유증이 최근 본격적으로 불거지고 있다. 가장 큰 뇌관은 인프라 투자를 담당하는 지방정부융자기구(LGFV)다. LGFV는 인프라 투자를 위해 만든 특수목적 법인으로, 지방정부의 토지 등을 담보로 금융권에서 융자를 받거나 회사채를 발행해 자금을 확보하고, 사업을 진행해 나온 수익으로 채무를 상환한다. 그런데 그동안 낮은 수익성으로 인해 이 같은 구조가 선순환적으로 이뤄지지 못했고, 대부분 새로운 대출을 통해 갚는 방식으로 이뤄져왔다. 빚을 빚으로 갚는 식이다.
그동안 우려만 제기됐었지만, 최근 부동산 경기 악화가 심각한 상황에 이르자 LGFV의 부실도 점차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LGFV 역시 빌려간 기업들의 미상환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 7월 48개 LGFV가 기업어음(CP)을 상환하지 못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더 큰 문제는 LGFV 총 부채 규모가 정확히 파악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골드만삭스는 그 규모가 53조위안(9700여조원)에 이를 수도 있다는 분석까지 하고 있다. 이는 중국 연간 GDP의 절반에 해당되는 규모인데, 만일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사태가 전개된다면 중국발 ‘리먼 사태’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 중소도시에서 집중적으로 사업을 진행해왔던 비구이위안의 디폴트까지 더해진다면 지방정부의 파산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현재 중국 부동산과 관련된 각종 지표는 악화일로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미분양 상업용 부동산 면적(6억4159만㎡)은 지난해 동기 대비 17% 증가했다. 이 중 미분양 신규 주택 면적은 18% 늘어났다. 주택이 팔리지 않으니 가격은 당연히 하락세다. 부동산 연구기관인 중즈(中指)연구원에 따르면 중국 100대 도시의 신규 주택과 기존 주택(중고 주택) 가격은 모두 하락세에 놓여 있다.
중국 건설업체들의 매출 감소세도 가파르다. FT가 중국부동산 거래 데이터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중국 내 상위 50위권 민간 개발업체의 2021년 매출 합계는 4조위안(732여조원)에 달했지만, 올해는 이미 상반기가 지난 시점의 매출은 났지만 1조위안(183여조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곳곳서 불거지는 자국 부동산 부실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던 중국 정부지만 비구이위안 사태와 관련해서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비구이위안 사태가 터지자마자 관계당국이 관련 회의를 여는 등 대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정부 곳곳에서 부동산 규제 완화와 관련한 시그널도 나오고 있다. 7월 열린 공산당 중앙정치국 회의에서 부동산과 관련해 “집은 투기하는 곳이 아니라 거주하는 곳이다”라는 시진핑 주석의 경고가 포함되지 않은 것이 대표적이다. 이 표현은 시 주석 집권 1기였던 2016년 처음 등장한 이후 정치국회의 때마다 거의 빠지지 않고 언급됐었다. 이후 중국 당국은 주택담보대출 규제 조치 등을 강하게 실시하며 부동산 투기 잡기에 나서고 부동산개발업체들의 어려움을 가중시켰다.
시장에서는 ‘부동산=투기’라는 언급이 사라졌다는 측면에서 중국 정부가 이번 기회를 잠재우기 위해 부동산 규제완화 조치 및 부양책을 내놓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비구이위안 사태는 일파만파로 퍼져나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중국의 금융 부분에도 위기가 전염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중국의 유명 신탁회사 등이 고객들에게 만기 신탁상품의 이익금은 물론 원금도 지급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수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