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과 홍수 등 이상 기후는 산업계 풍경도 바꿔놓고 있다. 유통업계는 이상 기후로 인해 생산은 물론 유통 과정에 관리 고도화가 필수였다. 대표적인 야외 사업장인 조선·철강업체는 생산성 유지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해 폭우로 포스코 포항공장이 큰 피해를 입은 게 대표적인 사례다. 올여름 같은 폭염은 노동생산성과도 직결된다. 미국 UCLA대학 연구에 따르면 평균 기온이 1℃ 상승할 때마다 노동생산성은 2% 떨어진다.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은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폭염이 불러오는 노동생산성 손실액이 미국에서만 연간 1000억달러(약 129조8500억원)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기온이 오를수록 손실도 늘어나 2030년에는 GDP의 약 0.5%인 2000억달러, 2050년에는 GDP의 1%인 5000억달러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이 기관은 전망했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곳은 식품과 유통업계다. 식품업계 1위 CJ제일제당은 올 2분기 영업이익 2358억원(대한통운 제외)으로 전년 대비 40% 줄었다. 특히 이 기간 식품 부문 영업이익은 1427억원으로 전년보다 15% 줄었다. 조선, 제철 등 중후장대 산업은 폭염에 따른 생산성 저하로 비상이다.
반면 새로운 시장이 열리고 있다. 여름철 옷의 냉감(Cooling) 신소재는 물론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기후 테크 스타트업도 생겨나고 있다. 빅테크 업체들은 AI(인공지능)를 활용해 기상 이변을 예측하는 사업에 나서기도 한다. 일본 다이이치세이메이(第一生命) 경제연구소가 2018년 내놓은 분석 결과에 따르면, 평균기온이 섭씨 1도 오르면 에어컨·음료·빙과·자외선 차단제 등 관련 상품에 대한 가계 소비 지출이 0.5%씩 올라 GDP(국내총생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아이스크림과 페인트업계는 요즘 폭염에 따른 특수를 누리고 있다.
폭염에 맞서 냉감 신소재와 관련 신기술 개발 경쟁이 뜨겁다. 냉감 소재는 체온을 조절하고 착용자에게 시원한 효과를 주기 위해 특별히 개발된 기능성 소재(Technical Textile)를 뜻한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업 베리파이드마켓리서치(Verified Market Research)에 따르면, 2020년 전 세계 냉감 소재 시장 규모는 약 19억4000만달러로 평가됐다. 2021년부터 2028년까지 연평균 약 6%의 성장률로 30억5000만달러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현재 글로벌 냉감 소재 시장은 쿨코어(미국), 알스트롬-뭉쇼(핀란드), 폴라텍(미국), 난야플라스틱(대만), 텍스-레이(대만), 아사히카세이(일본) 등 글로벌 대기업이 주도하는 형국이다. 페인트업계에서는 차열페인트 시장이 각광받는다. 차열페인트는 태양열을 반사해 표면온도 상승을 막고 내부로 전달되는 열을 차단한다. 페인트업계에서는 국내 차열페인트 시장 규모를 약 500억원대로 보고 있다. 유례없는 폭염으로 올여름 차열페인트 판매량은 전년보다 10% 이상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로봇으로 대표되는 무인화 산업 역시 폭염에 대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금융 산업에서는 폭염 보험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해외 보험사는 폭염이 유발하는 다양한 피해 사례를 시뮬레이션하고 특화 상품을 내놓고 있다. 지난해 4월 일본 스미토모생명은 열사병 특화 보험을 내놨다. 지난해 6월 말 폭염이 발생하자 같은 해 6월 29일부터 사흘간 6000건 이상 열사병 보험 계약이 체결될 만큼 인기를 끌었다. 같은 해 7월 손포재팬도 열사병으로 사망 또는 입원한 경우 보험금을 지급하는 상해보험 특약 계약 기준을 기존 23세 미만에서 전 연령층으로 확대했다. 도쿄해상은 올 6월 열사병으로 입원할 경우 보험금 지불과 의료 지원이 가능한 서비스를 선보였다.
국내에선 삼성화재와 DB손해보험, 현대해상, 메리츠화재, KB손해보험, NH농협손해보험 등에서 폭염 피해 관련 보험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농작물재해보험과 가축재해보험 내 폭염 재해보장 추가 특별약관, 양식수산물재해보험 내 고수온 원인 수산물손해 담보 특별 약관, 시민안전 보험 등이다. 삼성화재는 계절별 특화 위험을 보장하는 ‘계절맞춤 미니보험’을 삼성 금융 통합 플랫폼 ‘모니모’에서 선보였다. 이 보험에 가입하고 병원에서 열사병, 일사병, 열경련 등 진단을 받으면 온열질환 진단비로 30만원까지 지급된다.
폭염으로 기존 곡창지대 작황은 나빠졌지만, 반대로 추웠던 고위도·극지방 국가들은 기후가 따뜻해지면서 한때 불모지였거나 비생산적인 토지가 비옥한 땅으로 바뀌는 반사 이익을 얻고 있다.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밀과 카놀라(유채), 완두콩 정도만 재배하던 캐나다는 이제 고수익 작물인 옥수수와 대두를 경작할 수 있게 됐고, 러시아는 밀 재배 면적이 계속 확대돼 현재는 세계 1위 밀 수출국으로 떠올랐다.
우리에게는 열대과일과 열대어종 등을 기를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한다. 전라남도농업기술원 과수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국 7대 열대과일(망고·패션프루트·용과·올리브·파파야·구아바·바나나) 재배농가는 511호, 재배면적은 178.2ha(53만9000평)다. 전남은 156호, 53.5ha(16만1800평)로 농가 수 기준으로 제주(118호)를 제치고 전국 1위다. 아열대 과일의 대표 격으로 꼽히는 망고 역시 국내에서 재배 면적이 늘고 있다. 농지에서 망고를 키우고 수확하는 농가들은 상품성 좋은 국산 망고를 찾는 손길이 늘어 생산량도 덩달아 증가하는 추세다.
어업 지도도 바뀌고 있다. 국민횟감 광어를 위협할 정도로 인기가 치솟는 겨울 제철 생선 ‘방어’가 대표적이다. 통계청 어업생산동향조사 품종별 통계에 따르면 제주도의 방어 어획량은 2010년 1444톤에서 2020년 1317톤으로 소폭 줄어든 반면 강원도의 어획량은 2010년 486톤에서 2020년 2408톤으로 약 395% 증가했다. 서해의 살오징어 어획량이 늘어나게 된 이유는 방어보다 다소 복잡하다. 동해의 살오징어들이 서해로 옮겨 간 것이 아니라, 동해의 어획량이 줄어들고 서해의 어획량이 늘어난 것이다. 물론 수온 상승은 어업생산량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있다. 한대성 어종이 급격히 감소하면서 어류의 유출은 많아졌지만 유입은 더뎌졌기 때문이다. 국내 연근해 어업생산량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151만 톤 안팎이었지만, 2010년대 들어서 105만 톤 수준으로 감소했으며 2020년대에는 100만 톤 선도 깨졌다. 따라서 기후변화로 찾아온 연근해 어종 감소의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해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고수온에서 생존하는 품종들을 집중적으로 키워 어민들에게 보급하는 식이다.
기후변화발(發) 기상이변으로 일기예보의 정확도가 중요해지면서 글로벌 IT 기업들이 AI를 활용한 기상예측모델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현재 이 분야 선도 기업은 IBM이다. IBM은 2016년 미국 최대 기상정보업체 웨더컴퍼니를 인수, 2018년 AI 기반 고해상도 기상예측모델 ‘그래프’를 선보였다. 그래프는 세계 전 지역을 3㎢ 단위로 나누고, 각각의 지역에서 매시간 수집한 기상정보를 분석해 최대 12시간 뒤 예상 일기를 기존 모델 대비 3배 높은 해상도로 제공한다. 이전까지 대부분 모델은 10~15㎢ 단위 지역별 기상정보를 6~12시간마다 수집해 분석하는 데 그쳤다. 2019년 기업용 그래프 출시 후 2021년 세계 기상예보서비스 시장 점유율 1위(18.3%)에 오른 IBM의 아성은 무너지지 않고 있다.
IBM의 뒤를 바짝 쫓는 기업은 구글이다. 구글의 AI 전담 조직 딥마인드는 2020년 ‘나우캐스트’를 공개했다. 나우캐스트는 실시간, 30분 전, 60분 전 레이더 영상에 찍힌 구름의 양과 지리적 특성 등을 분석해 최대 6시간 뒤 강수량을 5~10분 만에 예측하는 모델이다. 구글은 나우캐스트를 발전시켜 2021년 영국 기상청, 영국 엑서터대와 함께 90분 뒤 강수 확률을 예측하는 AI를 개발,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중국 화웨이도 관련 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화웨이의 클라우드 자회사 화웨이클라우드는 최근 43년간의 기상정보를 학습시켜 구축한 ‘판구 웨더’가 기존 수치 기반 예보 방식보다 20% 더 정확하다는 내용의 논문을 네이처에 실었다. 화웨이는 이 논문에서 판구 웨더가 1시간~7일 뒤 일기를 예측하는 데 수초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엔비디아는 기상예보를 넘어 기후변화예보를 목표로 지구의 디지털 트윈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한 슈퍼컴퓨터 개발 프로젝트 ‘어스-2’를 2021년 발표했다. 지난해 엔비디아는 2초 내로 7일 뒤 일기를 예측할 수 있는 모델 ‘포캐스트넷’에 관한 논문을 아카이브에 게재했다. 한국기상산업기술원에 따르면 세계 기상예보서비스 시장은 2021년 30억8528만달러(약 4조668억원)에서 2028년 58억3504만달러(약 7조6912억원) 규모로 연평균 9.72% 성장이 전망된다. 하지만 향후 시장 규모는 이보다 더 커질 전망이다. 한국기상산업기술원은 “기상정보를 활용하는 산업 분야가 다양해지면서 기상예보서비스 시장 규모가 확대될 것”이라며 항공, 미디어, 에너지·공공, 운송·물류, 보험, 농업, 해양 등의 산업에서 수요가 늘고 있다고 짚었다.
‘기후테크’에도 관심이 몰리고 있다. 이상기후를 일으키는 주범으로 손꼽히는 이산화탄소(CO₂)를 활용한 사업이 중심이다. 이산화탄소의 실질 순배출량을 줄이고 탄소중립을 앞당기기 위해 이산화탄소 저장기술(CCS·Carbon Capture & Storage)을 활용한 이산화탄소 포집·활용·저장(CCUS·Carbon Capture, Utilization& Storage) 사업이 신성장동력 비즈니스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산업마케팅연구소에서 발간한 ‘2023 기후변화·탄소중립·CCUS 시장동향과 유망 기술개발 및 기업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CCUS 시장은 2020년 16억1600만달러(2조1388억원)에서 연평균 16.99% 증가해 오는 2025년 35억4200만달러(4조6878억원)로 규모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CCUS 시장도 2020년 147억원에서 연평균 17.05% 증가하면서 2025년 323억원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CCUS 기술의 기여도를 총감축량의 15% 수준으로 평가하고 있다. 단일 기술로는 감축 기여도가 가장 높다. 포집된 이산화탄소는 저장 분야에서 90%, 활용 분야에서 10% 수준으로 처리할 것으로 예측했다.
CCUS 활용도가 높은 분야는 건설, 조선, 에너지업계다. 특히 HD한국조선해양과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조선업계는 ‘대형 액화이산화탄소(LCO2) 운반선’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관련 기술 경쟁력 확보에 나선 상황이다. 또 포스코가 개발한 대형 LCO2 운반선용 강재도 국내 최초로 국제인증을 받으며 CCUS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 중이다. DL이앤씨, 현대건설, GS건설 등 건설업계 역시 전통적인 건설업에서 탈피하고 신재생에너지 사업으로 CCUS 사업을 활용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산화탄소가 돈이 되는 시대로 변화하는 중이다.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것으로 탄소부채를 줄이는 것은 물론 이산화탄소를 활용한 신재생에너지를 통해 기업 수익까지 확보할 수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며 “다만 아직 사업이 초기이기 때문에 인프라를 구축하고 밸류체인을 완성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이며 향후 기반이 마련되면 비즈니스의 성장 속도가 급속하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들의 행보도 빨라지고 있다. 우선 삼성전자는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목표로 내세웠다. ‘신(新)환경경영전략’을 통해 ‘친환경 경영’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공정가스 저감, 폐전자제품 수거·재활용, 수자원 보존, 오염물질 최소화 등 환경경영 과제에 총 7조원 이상 투자할 계획이다.
SK는 삼성전자보다 10년 앞선 2040년을 탄소중립 시점으로 정했다. 2020년 국내 최초로 RE100에 가입한 SK는 계열사별로 다양한 탄소중립 목표를 추진 중이다.
2021년에는 그룹 내 최고 의사협의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에 ‘환경사업위원회’를 신설했다. 특히 배터리 재생 분야는 SK의 핵심 탄소중립 실현 방안이다. SK이노베이션의 폐배터리 재활용(BMR) 기술 개발과 BaaS(배터리 생애주기 서비스) 사업, SK온의 전기차 배터리 생산 등이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현대차는 2021년 9월 2045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기후변화 통합 솔루션’을 공개했다. 2040년까지 차량 운행, 협력사, 사업장 등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을 2019년 대비 75% 감축하기로 했다. 탄소 포집·활용·저장 기술(CCUS)을 도입해 2045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0으로 만들 계획이다. LG전자도 2030년 탄소중립, 2050년 재생에너지 100% 전환을 공표했다. 2025년까지 해외 모든 생산법인에 100% 재생에너지를 도입해 국내외 전체 전기 사용량의 50%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김병수·안재형 기자]